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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였던 아르헨티나는 왜 가난해졌나?
부자였던 아르헨티나는 왜 가난해졌나?
이예지 | 2013.03.08 16:28 수정됨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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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 아르헨티나는 세계최강대국 반열에 올라간 적이 있는 나라였다. 그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이와 같은 이유들에 기인한다.

     

    1. 산업을 여전히 농업에 의존했다.

    1차 대전때 농업을 발전시켜서 연합군의 식량 및 피복을 조달하며 아르헨티나는 짭짤하게 이득을 올렸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며 공업과 상업을 발달시키지 않았다.

     

    현재도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고의 낙농국가 중 하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가난하다. 뭘 의미할까? 농업은 이제는 도태산업이라는 소리다.(농사져서 먹고 사는 나라치고 부자나라 없다. 미국? 걔네 전공이 무기산업과 헐리웃이지, 낙농은 아니다. 미국의 관점에서 낙농은 전공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다.)

     

    2. 군사독재!

    개인적으로 이게 가장 큰 원인이라 단정짓고 있다. 한국의 경우 박정희가 군사독재해서 경제를 부흥시켰다고? 조까! 박정희의 군사반란을 무마시키기엔 이런거 밖에 없기 때문에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시킨 것을 강조했다. 그나마 경제개발도 엉터리로 했기 때문에 IMF가 초래된거다. 물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꾸준히 세웠다고는 하지만 이건 경제개발을 시켰다고 볼 수 없다. 진짜 경제개발을 시킨 건 일본이다. 한국은 아직도 가난하다. 아르헨티나가 가난하다고? 한국의 경제상태는 그런말을 할 자격이 없다. 동급이다! 물론 1996년도까지는 한국은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국민들은 깨달았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가 외국인들에게 팔릴때 한국의 삼성동과 테헤란로 역시 같은 꼴을 당했다. 암튼...

     

    아르헨티나는 군사독재를 함으로 인해 경제개발을 시킬 결정적 기회를 잃었다. 호르헤 비델라는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주최하고 그걸로 쑈를 했다. 레오폴드 갈티에리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영국이 불법점령한 말비나스에 전쟁을 일으켰다. 말비나스 전쟁이 타격이 컸다. 패전국 아르헨티나는 (그 섬을 '포클랜드'라고 하는 것은 '독도'를 '다께시마'라고 하는 것과 같다.)전쟁보상금을 물게 되어 이게 경제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고 영국도 이 전쟁으로 인해 선진국이라는 명칭을 상실하게 된다. 그 이후 아르헨티나의 경제악화를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페소:달러 고정환율제를 시행했지만 이게 오히려 더 긁어부스럼 만들었다. 호르헤 비델라만 아니였다면 아르헨티나는 적어도 그지경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군사독재... 한 사람의 야욕에 대한 핑계로서 국가정책을 세우는 것 치고 성공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군사독재는 반대자들이 많아서 절대 장기적일 수가 없는 데다가 국가정책 역시 비전을 세우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권에 대한 핑계로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군사독재는 절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렴할 수가 없어서 다각적인 관점에서 국가경영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가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반대자들을 잠재우기 위해 정권기간 내내 피를 뿌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안그래도 정상적으로 대통령이 되도 여기저기서 시위를 하는 판국에 그따위 방법으로 대통령이 되면 이건 정부와 국민간의 전면전 양상이라고 봐도 무방한 지경에 이른다. 이러니 나라꼴이 어찌되겠는가? 더군다나 이런 나라가 외국의 침략을 받으면 꼭 망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이건 뽀나쓰인데 군사독재국가는 기본적으로 병역이 징병제라는 것을 깔고 들어간다. (아르헨티나? 에비타 사망시점부터 1995년까지 징병제였다.)모병제 국가에서 이런짓하면 병사들이 전부 제대해버린다. 누가 자신의 부모형제 및 칭구를 총으로 쏴죽이고 싶겠냐?)

     

    3. 대책없는 국가운영

    아르헨티나 정부는 뭔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나하나 과정을 밟아가며 경제를 살릴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되지 않았다. 무조건 당장의 인플레이션을 막자고 달러:페소 환율고정제를 해서 경제를 갉아먹게 만들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한마디로 국가를 아무렇게나 다스린 거다.

     

    아르헨티나는 윗대가리들이 지 맘대로, 고스돕하듯 나라를 다스리고 주사위를 던져서 정책을 결정하는 등 너무 허접하게 나라를 다스려서 그 지경이 된 거다.

     

    참고 : 국가운영의 교과서라면 1960년 이후의 일본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은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 일제시대때의 망국주의를 하나하나 뜯어고치고 군인 역시 징병제를 없애고 특수공무원화시켜서 공무원 중에서도 상급 공무원으로 변모시켰다.(일본 자위대 장교 정도면 일본에서는 대기업 고급간부와도 비교가 안될 만큼 대우가 좋다. 일단 월급서부터가 장난이 아니다.) 경제는 컴퓨터 및 전자기기 등의 경공업 위주로 바꾸고 같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크기는 최소화하면서 성능은 최고로 만들기 위해 기를 썼다. 이 결과 일본은 미국 빼고 가장 부자나라가 됐다.

     

    아르헨티나는 큰 장풍 두대맞고 개털된 일본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지 않아서 그지경 난 거다.

    2005.12.11 15:55 | 신고
  • 1970년 대에만 해도, 세계에서 7번째 안에 드는 나라였지만

     

    외환위기(IMF)로 10년? 아니 10년은 말도 아니고, 그 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중후진국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IMF걸린지 3년만에

     

    빚을 다 갚았지만, 아르헨티나는 아직도 다 갚지 못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6.03.20 09:07 | 신고
  • 국가 경제나 개인 경제나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돈 벌 능력을 기르지 않거나 번 것보다 더 쓰니 발전할 힘을 잃는 것입니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에도 국가적으로 번 돈 보다 더 많이 흥청망청 돈을 써댔었죠. 그래서 돈이 없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위기가 터져 빚을 갚으라고 하는데 갚을 돈이 없어 IMF를 맞았죠.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의견 충돌이 극심하여 여야 모두 각자 자기 지지층만 생각하고 국가경제를 알뜰하게 운영하지 못해서 추락한 거죠. 아르헨티나가 세계 10위권의 부국의 자리에 오른 것은 우리나라의 박정희 시대에 해당하는 경제발전시기였는데 이를 주도한 정권이 무너진 진 후에 상생의 정치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면서 추락한 겁니다

    2012.12.24 09:26 | 신고
  •  

    국가 부도! 아르헨티나 진단

    아르헨티나의 운명

    페론이 뿌린 비극의 씨앗 대평원의 잔치는 끝났는가 


    외채 1420억달러, 국가위험도 세계 1위, 바닥난 국고, 실업률 18%,

    체감실업률 50%, 공동화된 중산층과 늘어나는 빈곤층, 끊이지 않는 시위. 아르헨티나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이강원 < 시인, 수필가, 주 아르헨티나 대사부인 >


    2001년 12월20일에서 2002년 1월1일 사이.


    이 한 여름밤의 열흘은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가장 숨가쁘고 긴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줄줄이 사탕처럼 다섯 명의 대통령이 무대를 오르내렸다. 다섯번째로 선출된 에두알데 대통령이 취임식 날 국가견장과 함께 받은 숙제바구니는 마술을 부리지 않는 한 풀기 어려운 난제로 그득하다.


    아직도 환청처럼 귓가에 맴도는 냄비 두드리는 소리. 바로 하루 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무더운 여름 밤거리를 뒤흔들던 소리다.


    ꡒ이번 냄비시위가 불순분자의 선동에 의한 것이며 국민은 계속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대통령의 대 국민 연설을 듣고 그대로 냄비 집어들고 거리로 나왔어. 집집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냄비 프라이팬 국자 심지어는 냄비뚜껑까지 들고 나왔지. 처음에는 서너 명이었는데 골목마다 밀려나와 순식간에 몇 십만 명이 됐어.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누에베 데 훌리오(7월9일의 거리) 140m가 좁을 정도였잖아? 아무리 국민의 소리를 못 듣는 벽창호라고 해도 대통령이 그토록 국민의 뼈아픈 고통을 모를 수 있었을까? 그런 지도자는 당연히 물러나야 해.ꡓ


    케이블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마리엘라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그녀는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는 중산층 시민이다. ꡐ마리엘라까지?ꡑ 이번 냄비시위의 심각성이 짜르르 전해온다. 빈민층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거리로 나왔다면 이 정부는 소생할 가망이 없는 것이다.


    ꡒ4년이란 긴 세월을 경제위기의 줄타기를 하면서 누적된 우리의 분노와 좌절감을 정치인들은 짐작이나 할까요? 아이는 네 명이나 되는데 직장은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어떻게 살란 말입니까. 정말 눈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슈퍼마켓을 약탈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대로 가면 저도 다음달에는 그 무리에 합류해야 할 것 같으니까요.ꡓ


    항공사 직원이었던 호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찌그러진 양은냄비를 두드렸다. 이 냄비소리는 바로 국민들이 한 목소리로 내지르는 비명이다. 참고 참다가 터져나온 절규! 이 소리가 하루만에 대통령의 무릎을 꿇게 해 임기의 반을 남겨놓은 데 라 루아 대통령을 2년 10일 만에 물러나게 했다.


    이토록 부글부글 끓어올라온 감정이 폭발할 것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감지되었다. 특히 지난해 10월의 상․하원 선거는 야당에게 승리를 안겨주었지만 그것은 2등의 승리였다. 1등은 40%를 차지한 거부표와 기권표였다.


    ꡒ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찍을 후보가 없어서 내가 좋아하는 코미디 만화 주인공 이름을 써주었지요. 어느 후보보다도 마음에 들었어요ꡓ 하며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지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실제로 아예 투표장을 찾지 않은 사람도 많았지만 좋아하는 캐릭터, 조크 쓰기, 심지어는 오사마 빈 라덴의 얼굴이 그려진 투표용지도 나왔다. 이는 여야 정치인 모두에게 던진 등골이 서늘한 심판이었다. 넉 달째 월급과 연금이 13%나 깎이는 내핍운동에 묵묵히 따랐던 국민들에게 12월초에 발표한 주 250달러, 월 1000달러로 한정한 은행예금의 일부동결은 국민의 얼어붙은 마음에 꽂은 비수가 되었다.


    ꡒ지난 몇 년간 아르헨티나에서 늘어난 것 좀 열거해 볼까요? 빚과 실업자, 극빈자, 국가위험도 수치, 점쟁이와 정신과 의사, 그리고 푹 절은 한숨입니다. 1950년대만 해도 영국까지 넘겨보던 나라가 어찌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울화가 치밀어서 프라이팬을 들고 나왔어요. 누구의 지시도 따르지 않고 모두 자발적으로 나온 사람들이니 이는 바로 민중혁명입니다.ꡓ 경제학자 로페스까지 푸념을 늘어놓는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넘치는 부를 주체하지 못했던 곳, 캐나다와 호주를 따돌리고 세계 7대 강국의 자리까지 차지하며 ꡐ남미의 진주ꡑ라는 명성을 얻었고, 수도를 각종 건축양식과 조각의 박물관으로 꾸며 ꡐ남미의 파리ꡑ라고 불리던 곳, 세계에서 가장 넓은 18차선 도로, 1913년에는 남미 최초의 지하철을 건설하고 자랑하던 나라, 다섯 살짜리까지 지정 정신과의사를 두고 지내고 1년에 수차례 유럽여행과 쇼핑을 즐기던 나라, 바로 아르헨티나다.



    냄비혁명


    엄청난 외채, 두 집 건너 실업자, 서서히 대량학살을 당하고 있다고 비명 지르는 빈곤층, 그리고 국가위험도 세계 챔피언 획득이 그들이 보여주는 오늘의 모습이다. 이런 자신의 추락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르헨티나의 겉모습은 여전히 천연하고 아름답다.


    스페인어로 은이라는 뜻이라서 그럴까. 아르헨티나의 빼어난 자태와 풍부한 자원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남북 4000km, 동서 1000km로 세계에서 여덟번째, 한반도 14배의 면적이다. 왼쪽 옆구리에 안데스산맥을, 다른 한쪽에는 대서양을 품고 있다. 그러니 그 속에 담겨있는 다양함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북서쪽에는 사막과 남미 최고봉인 아콩카과(6980m)와 그 연봉들, 북동쪽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이며 세계 자연 유산 유적지인 이과수폭포와 열대 우림, 중부지방의 광활한 대평원 팜파, 그리고 남쪽에는 대초원과 만년설의 빙하가 버티고 있다. 한 나라가 마치 미니 세계지도를 품고 있는 듯한 천혜 조건이다. 무한한 지하자원, 넓고 비옥한 곡창지대, 풍부한 목축, 다양한 관광자원은 누가 보아도 입에 군침 돌게 하는 풍요로움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곳을 여행해보면 ꡐ신이 지구를 빚을 때 아르헨티나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다ꡑ는 것이 한눈에 느껴진다. 북쪽의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왼쪽어깨를 맞대고 있는 칠레, 오른쪽의 우루과이가 입을 비죽 내밀 정도의 특혜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곳 사람들은 신도 아르헨티나 국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래머, 화가 후안 미로, 첼리스트 요요 마, 시인 타골, 소설가 유진 오닐과 앙드레 말로 등 많은 예술가가 이곳에 매혹되었고 이곳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탈리아의 영화배우 비토리오 가스만(Vittorio Gasman)은 이 지상에서 천국은 바로 아르헨티나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러면 이런 빼어난 조건으로 세계 5등의 자리까지 차지했다가 꼴지 그룹으로 추락할 때까지 과연 경보의 종은 울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몸이 썩어 들어갈 때까지 너무 오랫동안 키워온 고질병이 눈귀를 모두 막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안과 군사혁명, 만성적 재정적자, 과다한 외채, 미숙한 경제정책 운용, 도려내기 힘들 정도로 곳곳에 번진 부정 불감증, 그리고 페론의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엉켜서 생긴 이곳만의 고질 병! 지난 70년 동안 여러 번 발병했지만 병이 도질 때마다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고 마치 치료된 양 착각에 빠져 지냈다. 착각에는 커트라인이 없다더니 이곳의 현사태를 보면 절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ꡒ우리나라가 4년째 중환자실에 누워있지만 그나마 목숨부지하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명의를 만나면 회복할 가능성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작은 집안경제도 빚이 늘어나면 쓸 것 줄이고 더 열심히 일하는데 이 나라는 곳간에 쌓여있는 재산 빼다 팔아먹거나 더 큰 빚을 얻어서 꾸려왔으니 말이 됩니까? 여기에 안주해서 별일 없겠지 하고 지내온 우리 국민들도 한심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 나라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고 진단합니다. 출구는 온 국민이 손톱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파야 찾을 수 있겠지요.ꡓ


    영자신문인 ꡐ부에노스 아이레스 헤럴드ꡑ의 편집장 마이클이 냉소를 지으며 쏟아놓은 말이다.



    아르헨티나 드림


    모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그렇듯 이곳에도 디아기타 케란디 과라니 등의 인디안 부족들이 정착해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이후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쳐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중앙집권주의자와 연방주의자들의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은 뒤 1853년 연방헌법을 제정, 초대 대통령을 선출했다. 19세기 말 이래 아르헨티나는 육류와 곡물수출에 힘입어 연평균 7%의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20세기 초반에는 일인당 GNP가 유럽국가들보다도 높았다.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뉴욕과 맞먹는 대도시로 커졌다.


    당연히 유럽인들에게는 ꡐ아메리칸 드림ꡑ을 능가하는 ꡐ아르헨티나 드림ꡑ으로 비쳐져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동구 등지에서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들의 이민가방 속에는 앞으로 ꡐ아르헨티나 병ꡑ을 일으키는 병균이 되는 사회주의와 아나키즘도 함께 들어 있었다. 이들은 자리잡자마자 노동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노동자의 몫을 챙기기 시작했다.


    때 맞추어 등장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령은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유효 적절하게 이용하는 뛰어난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45년 5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2차대전 후 곡물수출로 벌어들인 엄청난 외화를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기 바빴고, 소비재 위주로 이루어진 공업발전계획은 자본재 수입의 증가를 유발, 외환사정을 악화시켰다.


    급성장할 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는 페론의 포퓰리즘 정책으로 물 건너가고 아르헨티나는 구조적 만성 고질병환자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페론주의는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파업에는 뛰어난 노동자, 기업 경쟁력보다는 정경유착의 꿀맛을 탐닉하는 기업가, 국가발전이나 경제성장 등은 뒤로한 채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 국가의 발전은 안중에도 없이 개인의 몫만 게걸스럽게 찾는 국민 등 집단이기주의 그룹을 양산해냈다.


    설상가상으로 1950년대 들어 기본재 수입증가와 미국, 영국이 실시한 아르헨티나 산 농축산물 수입 제한으로 외환사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페론은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55년 군 쿠데타로 실각,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그는 1972년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복귀하지만 세번째 부인 이사벨을 부통령으로 삼는 씻을 수 없는 실책을 범했다. 1974년 7월 그가 사망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이사벨은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지만 너무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페론이라는 이름 두자뿐이었다.


    이런 지도자의 무능을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려는 좌익 게릴라와 우익의 테러는 국가를 혼란에 빠트려 1976년 군사 쿠데타를 유발했다. 이 군사 쿠테타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어둡고도 슬픈 사건으로 기억된다. 좌익 게릴라 분쇄라는 명분으로 사라져 아직까지 찾지 못한 영혼이 1만명에서 3만명이라고 한다. 군사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벌인 긁어 부스럼 전쟁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전, 1983년 대망의 문민정부에 정권을 내주었다.


    ꡒ알폰신 대통령이 이끄는 문민정부에게 거는 기대는 참 컸지요. ꡐ더러운 전쟁ꡑ이라고까지 불리던 군사독재에서 풀려났으니까요. 그런데 갈수록 태산이라고 이번에도 꽝이지 뭡니까. 이번에는 5000%까지 가는 살인적인 인플레의 덫에 치이게 된 겁니다.ꡓ



    페로니즘의 망령


    사랑은 가도 옛 말은 남는다던가? 페론은 갔지만 그가 남긴 페론주의의 망령은 불사조처럼 되살아나 아르헨티나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발목을 잡고 있다.


    ꡒ알폰신 대통령도 페로니즘의 희생자지요. 매사에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이기주의집단에 그의 말이 먹혀들겠어요? 처음에는 구조조정도 시도했지만 페로니즘의 벽을 뚫지 못하고 결국 임기를 6개월 남겨놓고 물러났지요.ꡓ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일다 아줌마의 얘기다. 지평선을 삼킬 만큼 광활한 라팜파. 며칠을 달려도 인가조차 없으며 오직 끝없는 지평선과 광대한 하늘만 존재하는 대평야가 바로 라팜파다. 이래도 상상이 안되면 지평선에 홀려 현기증에 빠지는 병(horizontal vertigo) 을 일으키는, 다림질해놓은 듯한 막막한 대지를 상상해보면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라팜파는 요술주전자처럼 무한한 곡물과 고기를 생산, 아르헨티나에 주체하지 못할 만큼 막대한 부를 안겨주었다.


    ꡒ그때는 참 굉장했지요. 금이 너무 많아 금고에 다 넣을 수가 없어 은행 복도에까지 쌓아놓았어요. 국민이 원하면 길도 금으로 깔아주겠다고 큰소리치는 지도자도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아르헨티나의 황금기(The golden age)였지요. 이때 먼 곳을 내다보고 중장기 국가 발전에 재투자하는 지도자를 못 만난 것이 두고두고 한으로 남습니다.ꡓ


    텔레 페 방송국 기자 홀헤는 한숨을 깊게 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조각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호화롭고 격조 있는 가로등도 대부분 이때 건립되었는데, 유럽산 원자재로 유럽 최고의 건축가와 조각가가 설계하고 만들었다. 거리 곳곳에 깔린 조약돌(cobble stone)도 한 장에 1달러씩 주고 사왔다고 한다. 마침 집 앞길도 그 돌길이어서 세어보았다. 어림잡아도 100m에 80장 이상이니 부에노스 주변에 깔린 것만 합쳐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될 것이다. 옛사랑의 그림자만큼이나 안타까운 지난 날 영화의 자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묘한 매력을 가진 도시다. 고색이 창연한가 하면 녹색의 나무와 꽃이 화사하고 넓은 거리와 그 모퉁이마다 자리잡고 있는 카페는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우수의 줄을 팽팽하게 조인다. 부에노스의 봄은 자스민의 향기가 불러온다. 담장마다 그득 그득 피어오른 이 꽃의 향기는 밤에 더 짙어져 이 꽃향기는 향수로도 쓰이지만 최음제로도 쓰인다니 이 도시가 잠자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자스민의 바통은 자카란다 나무가 이어 받는다. 2m도 넘는 이 나무는 그 우락부락한 가지에 조그만 종 모양의 보라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워낸다. 만개한 이 꽃의 보라색으로 잠식당한 도시의 모습은 숨을 들여 마실 정도로 아련하고 아름답다. 이 꽃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피는 꽃은 자카란다보다 한길은 더 큰 띠빠 나무다. 삶은 계란 노른자 같은 색깔의 꽃을 노랗게 뿜어낸다. 도시의 어느 거리를 걷는가에 따라 떨어진 꽃잎으로 길 색깔까지 달라진다.


    가을과 겨울에도 꽃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야자수는 흰 꽃을 무더기로 피워내고 술통모양을 빼닮은 빨로 보라초라는 나무는 분홍색과 흰색 꽃으로 큰 그림자를 만들어줄 정도다. 피고 지는 꽃을 묵묵히 지켜주는 꺾다리 아저씨 유칼립투스 나무와 참나무도 곳곳에 빽빽하다. 세련된 용모와 옷차림의 시민들은 세련된 도시와 어우러져 누구나 유럽에 와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게다가 도시를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100% 백인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곳처럼 유색인종이 드문 곳은 보기 힘들다. 누구는 스페인이 식민지로 삼기 전에 인종청소부터 하고 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ꡒ이들은 아침에 길에 나가서 흑인을 보면 그날은 재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귀하다는 얘기지요.ꡓ


    식품점을 하는 중국인 첸이 신기하다며 들려주었다. 이들은 겉모습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자신들은 라틴아메리칸이 아니고 유럽인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도 확고하게. 자신의 땅이 유럽에 붙어야 할 것이 잘못되어 남미에 붙게 되었다고 불평하고 자궁 속의 아기도 세상 나올 때 남미 땅에서는 나오기를 거절한단다. 오죽하면 아르헨티나 제2의 국가가 된 탱고도 처음에는 천시하다가 프랑스에서 좋다고 하자 ꡒ그래? 정말 괜찮네!ꡓ 하고 다시 받아들여 그 진가를 부여받았다.



    중산층 몰락 사태


    이토록 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남미의 왕따 역할을 자청하고 다른 남미 국가들과 자신들을 차별화한다. 이런 억지를 부리고 살자니 마음이 편할 리 없고, 그러다보니 마음 골병든 사람도 늘어나 환자당 정신과의사 숫자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이런 멘탈리티는 자신과 국가를 분리시키는 현상으로 나타나 위급한 일이 있으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곤 한다. 이번 사태에도 이미 초장에 외국으로 빠져나간 돈이 막대하고 최근에는 하루에 7억달러씩 인출했다니 ꡐ헤매는 대통령ꡑ 데 라 루아와 ꡐ새파란 눈의 몬스터ꡑ 카발로 경제장관이 어찌 예금동결조치를 내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ꡒ부유층이 빼돌려 해외에서 잠자고 있는 달러가 아르헨티나 외채액수와 맞먹는다는 것은 이미 비밀이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 우루과이, 스위스에 계좌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서민들이 열 받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사는 극빈자가 500만 명이 넘는데….ꡓ


    경제학자 로페스의 계속되는 말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원주민 인디오문화와 스페인․포르투갈문화, 미국문화와 유럽문화의 얼개가 복잡하게 얽힌 잡종문화의 배경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이 문화적인 공통점 외에 또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ꡐ빈부의 격차ꡑ다. 라틴아메리카의 5억 인구 중 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9000만 명이 극빈층이다. 극빈층이란 4인 기준 월 생활비 200달러 미만으로 1인당 하루 1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계란 한 줄에 2달러, 고기 1kg에 7달러, 칫솔 한 개에도 5달러이니 이들이 집단 영양실조상태에 빠져있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는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가장 건강하고 두터운 중산층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4년간 지속된 경제 불황은 엄청난 힘으로 이 중산층을 파괴했다. 매일 8060명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눈사태에 비길 수 있는 중산층 몰락 사태인 것이다. 시내 중심의 버스터미널 레티로역 바로 뒤에는 ꡐ비쟈 31ꡑ이라는 이름을 가진 빈민촌이 있다. 화려하고 우아한 시내를 배경으로 포장도 안된 질퍽거리는 좁은 미로를 끼고 판자촌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요즘 이곳 입구에 플래카드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다. ꡐBienvenidos, la clase media!!!!ꡑ 중산층 입주를 크게 환영한다는 말이다. 요즘 거리에는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엄마, 신호등에 걸린 사이 차를 닦으려고 걸레를 들고 뛰는 아이들, 네거리에서 방망이와 공을 돌리며 잠깐 쇼를 보여주고 동전이라도 받으려는 청년들의 숫자가 엄청 늘었다. 밤이면 세계에서 가장 넓은 길, 누에베 데 훌리오의 중앙분리대 녹지지역이나 부에노스의 브로드웨이 코리엔테스 거리 극장들 앞에는 잠자리를 찾는 노숙자들로 붐빈다. 이들의 대부분이 한때는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었던 중산층 출신이다. 이들 사이에 신종 인기 직업은 말 한 마리 사서 쓰레기 수집하는 마부가 되는 것이라 한다.


    ꡒ이것 역시 하루살이 인생이기는 하지요. 종이 1kg 팔면 4센트(50원)정도 받아요. 열심히 하면 하루 한 끼는 굶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 데리고 말채찍 휘두르며 드라이브도 할 수 있어서 신나지요.ꡓ


    스스로 행운아라는 한달 차 마부 훌리오의 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는 은행원이었다.



    ꡒ이제 춤 출 기력도 없어요ꡓ


    ꡒ차는 벌써 반 년 전에 팔았고 집도 변두리 촌으로 옮겼어요. 의료보험회사 이사였던 남편은 배달사원으로 전락해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데도 오늘은 슈퍼마켓 갈 돈까지 떨어졌어요. 춤 추어도 돈 던져주는 모자 속은 비어 있을 때가 많아요. 이제는 춤 출 기력도 없어요.ꡓ


    번화가에서 탱고를 추는 거리의 댄서 니나는 울먹였다. 행운의 여신이 찾아오지 않는 한 니나의 가족도 곧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알폰신으로부터 6개월까지 덤으로 받아 1989년에서 1999년까지 10년 넘게 아르헨티나를 통치한 메넴 대통령은 앞으로 역사가들의 도마에 가장 많이 오르게 될 것이다. 시리아 이민의 후예인 그는 임기 초 5000%가 넘는 인플레를 잡아 국내외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인플레 잡기의 공신인 달러와 페소를 1:1로 묶은 고정환율제는 불과 4년도 안되어 그 약발이 떨어지고 오히려 나라 경제를 갉아먹는 흉악범이 된다. 한동안 이들은 세계 일등국의 화페인 그린백과 같은 가치를 갖는 화페를 사용한다는 사실에 어깨가 으쓱해 지냈다. 그러나 그건 바로 뱁새가 황새 따라가기였고 장님 자기 닭 잡아먹기였다. 곧 이 제도가 무리라는 것을 안 환상의 콤비 메넴과 카발로 장관은 민영화라는 미명으로 국영기업체와 토지를 매각해서 그 틈을 메웠다.


    ꡒ세상에 자국의 국적 비행기까지 팔아먹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에 은행 철도 전기 수도 TV채널 석유채굴권까지 매각했어요. 가장 원통한 것은 세계에서 공해의 마지막 보루라는 남쪽 파타고니아의 상당부분을 팔아먹은 것이지요. 베네통 사장, 테드 터너 CNN 사장, 스필버그, 빌 게이츠 등 세계의 갑부 치고 그곳에 땅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지요. 더 기막힌 것은 판매대금 중 막대한 양의 돈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리무중이라는 것입니다.ꡓ


    페로니즘의 신봉자인 메넴 대통령은 식을 줄 모르는 활력과 화려한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하다. 상황이 비관적일 때일수록 큰소리치며 낙관적인 견해를 쏟아내 국민들도 그 말에 주술이 걸려 잠시 현실을 잊을 정도였다. 그는 재임시절 화려한 전용기를 3대나 구입해서 탱고 1, 2, 3으로 명명하고, 화려한 이발소(머리는 그의 아킬레스 건) 설치하기, 관저에 성형외과의사를 상주시키고 수시로 성형수술 받기 등으로 끊임없이 깜짝쇼를 보여주었다.



    불사조들의 행진


    그의 깜짝쇼는 70세를 넘어서도 식을 줄 몰라 작년 6월에는 자기 나이 절반의 미스 유니버스 출신 세실리아 볼로코와 결혼식을 시끌벅적하게 치르더니 신방 차린 지 2주도 안돼 무기밀매 혐의로 구속되었다.


    가택연금 형태로 다섯 달 동안 궁전 같은 곳에서 오붓하게 지낸 뒤, ꡒ아마 우리가 어느 누구보다 가장 길고 달콤한 신혼생활을 했을 걸?ꡓ 하고 얘기해서 ꡒ살인적 인플레를 잠재웠다는 고정환율제가 결국 국가 파탄을 가져온 주범으로 밝혀졌으니 우리는 그가 주는 독약을 서서히 마신 격이야!ꡓ라고 한탄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게다가 세실리아는 칠레인이면서 결혼 전부터 깻잎머리와 누드에 국기 색깔(흰색과 하늘색) 대형타월을 두르고 잡지 표지에 등장, ꡐ제2의 에비타ꡑ 분위기를 짙게 풍겨서 그들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ꡐ깜짝쇼 커플ꡑ임을 보여주었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사에서 정치인 퇴장은 있을 수 없다. 그야말로 꺼진 불도 다시 보자요, 불사조들의 행진이다. 임기 못 채우고 물러난 알폰신 전 대통령과 데 라 루아에 패배해 정치은퇴를 선언한 두알데가 모두 지난해 10월 상원의원 선거에 당선, 화려하게 복귀함으로써 불사조임을 보여주었다. 두알데는 이번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니 사람의 운명도 그렇지만 정치운명을 누가 점칠 수 있을까. 결국 그는 대통령직 4년을 데 라 루아와 공평하게 2년씩 나누어 갖게 되었다. 이렇듯이 이곳에는 정치 입단자가 수두룩하다. 메넴은 꽃 중의 꽃이자 거물 불사조이니 그는 정치 입신의 경지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노욕은 끊임없이 솟는 샘물인지 2003년에 대통령에 다시 도전하겠다니 누가 알랴, 몇 년 뒤 국민들은 데 라 루아의 도전장을 접수하게 되려는지….


    작년 12월20일 황혼이 검붉게 스러져가는 저녁 7시 카사 로사다(대통령 집무실)의 정문은 이미 냄비시위대로 한치의 틈도 없었다. 데 라 루아 대통령이 사임서를 제출하고 가족이 기다리는 관저로 가는 길은 하늘 길밖에 없었다. 헬리콥터를 타기 위해 옥상으로 걸어가는 그의 어깨에는 이틀 사이에 몇 년의 세월이 얹혀있는 듯했다. 이로써 아르헨티나는 다섯번째 불명예 퇴임 대통령을 갖게 되었다. 변호사 출신으로 36세에 상원의원에 당선,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려온 그다.


    ꡒ메넴에 질려 Mr. Clean이라는 그를 찍었어요. 얼굴이 바뀔수록 더 큰 자루를 들고 나타나는 도둑놈이자 거짓말쟁이인 정치인들에 질렸거든요. 그러나 언챙이 아니면 일색이라더니 데 라 루아는 색도 냄새도 맛도 없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어요. 문제만 생기면 전임자 원망하고 결정적일 때 꼭 실기를 거듭했습니다. 늘 열흘날 잔치에 열하룻날 병풍 치는 격이었지요. 게다가 보좌관은 뒤로하고 28세 아들 안토니오의 말만 들으니 뭐가 되겠어요. 6개월도 안돼 국민이 등돌리기 시작했지요. 중산층을 냄비시위에 끓어들이게 한 연설도 안토니오가 써준 것이라고 합니다.ꡓ


    시인 올란도의 말이다. 그만큼 언론에서 희화된 대통령도 드물 것이다. 그를 무능한 위기 관리능력 상실자로 비꼬고 찌르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 방송되어 그 시간이면 영부인은 관저에 있는 20여 대의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기 바빴다고 한다. 심지어는 그의 이름을 딴 ꡐdelarruizarꡑ라는 새로운 용어도 생겼다. 주저와 혼돈, 갇혀있음을 뜻한다. 그는 현재 수도 남쪽 대서양 해변을 끊임없이 혼자 얘기하며 걷고 있다고 한다.


    그가 물러나자 다시 페론당의 시대가 왔다. 페론당의 정치 9단 4인방이 밀실에 모여 마치 교황 선출하듯 뽑은 대통령이 산 루이스주의 알프레도 로드리게스 사 주지사다. 70일 시한부 대통령이지만 그는 선출되자마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비가 꽃 본 듯이 활짝활짝 웃더니 곧 ꡐ함박웃음 대통령ꡑ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누구는 강남제비를 닮은 ꡐ산 루이스 제비ꡑ 같다고도 했다.



    귀신 붙은 대통령 자리


    그 자리에는 무슨 귀신이 붙었는지 앉기만 하면 사람이 변하나보다. 사 대통령은 4인방의 수렴청정을 받아야하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100만 일자리 고용창출, 노조 지도자 만나 정책 백지수표 발행 등 자신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 잠시 착각하더니 4인방의 노여움은 물론 다시 일어난 냄비시위로 설자리를 잃고 일주일 만에 사임한다.


    ꡒ사 대통령이 시골사람이라 그래요. 산 루이스 벽촌에서 18년 동안 주지사를 했잖아요. 그곳에서는 황제 같았거든요. 1993년에는 납치돼 모텔에서 ꡐY no Cꡑ라는 포르노에 출연, 섹스비디오를 찍은 사건도 있었지요. 그러나 납치됐다는 것은 그의 말이고 그가 18세 여자아이를 납치해서 찍었다는 말도 있어요. 이런 대단한 섹스 스캔들 뒤에도 그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주지사에 당선 됐습니다. 그러니 큰물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겠지요.ꡓ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은 50대 남자가 들려준 ꡐ아르헨티나의 사 비디오ꡑ 얘기다. 그리고 골수 페론주의자며 정계의 원로 에두알도 두알데가 2003년 12월 다음 대통령 선거 때까지 2년 동안 대통령직을 맞는 조건으로 취임, 숨가쁘게 돌아가던 수레바퀴에 제동을 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지사 두 차례, 부통령 등을 거쳐 경륜으로는 충분히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0년 동안 전임자들이 신주단지 모시듯이 끌어안고 있던 아르헨티나의 애물단지 고정환율제로부터 탈출, 평가절하를 감행했다.


    아르헨티나 역사의 산증인인 5월 광장(플라자 데 마요)! 1807년 이래 중요한 정치 사회 사건들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곳이다. 지난 열흘 동안도 이곳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두 그 가슴에 품었다. 이 광장 바로 앞에 있는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Casa Rosada)는 시위대가 그려놓은 낙서로 흉하게 얼룩져 있다.


    페론과 에비타, 그리고 영화촬영을 위해 이곳에 온 마돈나가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던 그 유명한 발코니도 지척에 있다.


    ꡒ우리에게 이 광장은 정신적 피난처이자 어머니 품 같은 곳입니다. 아직도 냄비 두드리는 소리가 남아있는 듯하죠? 저도 얼마나 열심히 두드렸는지 아직도 팔이 아파요. 덕분에 집에 있는 냄비는 모두 못 쓰게 찌그러졌어요.ꡓ


    광장에서 국기를 파는 후안은 아직도 며칠 동안에 생긴 변화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냄비의 효과에 맛들인 일부 시민은 이제 작은 이권을 위해서도 냄비를 들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냄비가 집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콩가루 집안이 됐다는 얘기이자 집안의 평화가 사라졌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던데…. 이제 평가절하의 여파는 화산 폭발에 비유될 만큼 클 것이다. 정치인, 기업가, 노동자, 그리고 국민 모두가 뼈를 깎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지금까지 피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볼 기회가 없었던 국민들이라 고통면역 제로이니 누구보다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아르헨티나는 영원히 표류하게 될 것이다. 70년 전 페론주의의 외투를 과감히 벗어버리든가 21세기에 맞도록 수선하든가, 세금을 내는 사람은 바보라고까지 얘기하는 부정의 뿌리는 국민 모두 스스로 도려내야 할 것이다.


    축구 외에는 구심점이 없다지만 축구장의 한마음 열기를 왜 국가 바로 세우기에 쓰지 못하나. 무엇보다 아직도 포근히 잠자고 있는 천연자원을 개발하고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풍부한 관광자원의 상품화, 그리고 지구촌 곳곳에 우수와 열정의 멋을 뿌리는 탱고를 업그레이드한다면 ꡐ아르헨티나 드림ꡑ은 다시 피어날 것이다.



    ꡐ아르헨티나여 울지 마오ꡑ


    이 ꡐ아르헨티나 드림ꡑ은 많은 한국인을 이 땅으로 불러왔다. 1965년 부에노스 아이레스 항구에 첫 이민선이 들어선 이래 1980년대 말에는 교민수가 4만5000명까지 불어났으나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이곳에서 꿈을 접는 숫자가 늘어나 현재는 2만5000명 정도의 교민이 삶의 둥지를 틀고 있다.


    다부지고 근면한 한국인들의 기질은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이미 ꡐ109 한국촌ꡑ을 비롯, 온세와 아베자네다 지역의 상가형성, 2개의 일간지 발간, 40여 개의 교회, 한국 병원, 한국인 골프장에 한국인 전용 묘지까지 갖추는 일을 36년만에 이룩했다. 이미 2세 중에는 의사, 변호사, 건축가, 언론인 등 전문인이 배출되어 현지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이번 소요사태로 200여 가게가 털리고 수십명이 다친 중국인에 비해 한국인은 4가족만이 재산피해를 입었다.


    현 여당인 사회정의당(PJ)의 대부 페론. 그의 두번째 부인인 에비타를 빼놓고는 아르헨티나의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사망 50주기가 되는 금년 7월26일에는 기념관 개관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ꡒ지금 에비타는 이곳을 내려다보고 울고 있을 거예요. 그가 한 일이 다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이 어려울 때 마음을 기댈 피난처 역할을 아주 잘 해 주었지요. 나라가 최악의 상황에 빠져있는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우리를 이끌어줄 지도자가 없어요. 저는 그것이 더 암담하게 느껴집니다.ꡓ


    부에노스 대학의 사회학 교수 이사벨의 탄식이다. 에비타는 ꡐ부유한 자들의 창녀, 가난한 자들의 성녀ꡑ로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내가 만난 이곳 사람들은 거의 그녀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비판하는 것은 첫번째 금기라는 것은 알 만한 외국인은 다 알고 있다.


    시내 중심가 특급 지역인 레콜레타. 고급 상가와 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이곳의 명물은 1만7000평의 레콜레타 묘지다. 7만 명이 잠들어 있는 이곳은 18명의 전직 대통령, 장군 각료, 예술가 등 아르헨티나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만 묻힐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에비타의 묘도 있다. 찾기 어려울 만큼 묘지 왼쪽 한구석에 있지만 안내인 없이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늘 그녀의 묘 앞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팜파주의 조그만 도시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탱고가수, 라디오 아나운서를 하다가 페론과 결혼해 영부인에 오른 전설 같은 삶을 산 여인. 골동품상이나 책방에 걸린 그녀의 사진은 지금 보아도 무척 아름답다. 그녀는 아르헨티나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갖게 해주었고 소외되고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많은 활동을 했다. 에비타를 추모하는 열기는 지방에 가면 더 뜨겁게 느껴진다. 공공건물이나 식당 할 것 없이 대통령 사진보다 에비타의 사진을 더 많이 붙여놓았다.


    레콜레타 묘지는 나도 자주 찾는다. 에비타의 집 앞에 서니 오늘은 저절로 ꡐDonꡑt cry for me, Argentinaꡑ가 입가에 맴돈다.


    ꡒ아르헨티나여, 나 때문에 울지 말아요. 나는 항상 당신들 곁에 있었어요. 때로는 어렵고 험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약속은 늘 지켰어요. 나를 멀리 하지 마세요.ꡓ



    <신동아 2002년 2월호>



    ꡒ지도층 부정부패와 병든 국민의식이 나라살림 거덜냈다”

    국가부도! 아르헨티나가 주는 교훈


    김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drwhkim@yahoo.com) 



    한때 세계 6위의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지난해말 국가부도 상태에 빠졌다. 1,400억달러가 넘는 外債에 40%가 넘는 실제 실업률 등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첩첩산중이다.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잘못된 환율정책과 긴축정책이 이번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지만 보다 뿌리깊은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함께 병든 국민의식이 어울려 빚은 비극이라는 것이 아르헨티나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필자의 분석이다.<편집자 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요 광장에서 지난해 12월 20일 사임을 정부청사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거리로 뛰쳐나온 성난 군중, 불타는 자동차, 상점 문을 마구 부수고 뛰어드는 약탈 행렬과 방화, 정부청사를 위협하는 시위대와 진압경찰간의 격렬한 몸싸움, 대통령의 사임, 그리고 임시 대통령의 사임으로 이어지면서 혼미를 거듭하는 아르헨티나 정국….


    연말연시를 기해 전세계를 경악시킨 이런 장면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1980년대 독재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국민들의 교육수준이나 소득이 낮은 저개발국 얘기도 아니다. 에콰도르․페루 등 남미 국가에서 간혹 볼 수 있었던 광경이기는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아니었다. 한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었던 나라, 남미에서 중산층이 가장 두터운 나라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모습은 의외일 수 밖에 없다. 지난 1960, 70년대 수만명의 우리나라 이민이 살기 좋은 이 땅을 찾아 떠나기도 했던 ꡐ꿈의 나라ꡑ가 아닌가.


    그러나 오늘의 아르헨티나는 1인당 GDP 7,700달러의 통계에도 불구하고 빈곤층이 인구의 44%에 달하고, 완전실업이 18.3%에 이르는 왜곡된 사회다. 대대적인 공기업 민영화후 민간기업들의 경영방침에 따라 실업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페소화의 고평가와 수입 자유화로 인한 산업생산의 위축으로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게 되었다. 불완전고용을 합치면 실업률은 무려 40%에 육박한다.


    많은 외자(外資)가 유치되었지만 생산부문으로 투입된 것은 자동차 등 일부 산업에 국한되었고, 나머지는 대부분 외환․증권 등 금융투기, 해외 자본도피로 소진되었다. 아르헨티나는 신흥시장에서 가장 투자위험도가 높은 나라로 전락했다. 1,420억달러에 이르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규모는 사상 최대이고, 국가위험도의 척도인 국채가산금리는 지난 1월10일 현재 5,070bp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아르헨티나 국채금리가 미국 재무부 채권 금리에 50%포인트 이상 얹어 주어야 거래됨을 의미한다. 누구도 이 나라의 채권을 사려 들지 않는 마당에 이런 수치는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다. 국내 실세금리인 30일물 페소화 금리도 지난해초 10% 수준에서 지난해 11월 이미 55%를 돌파했고, 최근에는 아예 금융경색으로 자금이 돌지조차 않는다. 한때 초(超)인플레를 걱정해야 했던 아르헨티나에서 1999년부터는 불황으로 인한 내수감소로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일어나 지난해 물가상승률은 -1.3%를 기록했다.



    위기 원인 놓고 네 탓 내 탓 공방전


    이번 아르헨티나 사태는 한마디로 페소화 고평가로 산업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장기간 지속된 재정긴축정책이 내수 위축과 투자 저하를 불러온 데 직접적 원인이 있다. 장기불황은 고실업과 사회 불만을 낳았고, 여기에 정치 지도력 부재와 국제통화기금(IMF)의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대응이 겹치면서 마침내 전국적인 약탈, 방화 사태로 번지고 대통령 연쇄 사임이라는 정치공백으로 이어진 것이다.


    세계의 학자들과 국제기구 전문가들은 아르헨티나 상황을 두고 각기 엇갈린 견해를 내놓고 있다.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보면, 한 주장은 IMF의 잘못된 위기 처방과 계도 혹은 세계화(世界化․globalization)의 오류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있고, 다른 주장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과 부패에 책임이 있다는 반론이다. 즉, ꡐ네 탓 논쟁ꡑ이다.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필자는 외부보다 내부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깝고 직접적인 원인은 분명 고정환율정책 지속과 무리한 재정긴축 시도에서 비롯된 위기여서 이를 권장해온 IMF에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 특히 지난해말 IMF는 갑작스럽게 강경한 태도로 돌변해 아르헨티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페르난도 델라루아 정부에 앞서 카를로스 메넴 정부 시대에 이미 싹텄다. 적시에 환율정책의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정치적 무책임이 근본 원인이다. 재정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탈세를 근절시키고 세수기반을 확충하는 등 재정기강 확립을 택하기 보다 단순한 재정긴축으로 문제를 미봉하는 데 급급했다. 물론 이같은 정책 실기(失機)의 배경에는 뿌리깊은 정경유착과 부패, 해외 재산도피같은 환부가 있음은 물론이다.


    또한 페론이즘으로 대변되는 과거 비전 없는 지도자들이 부채질한, 복지국가 이념에 중독된 나약한 국민의식과 개혁 거부 태도가 경제정책 운영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 점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아르헨티나 병의 특수성이다. 오늘의 사태가 처음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계속된 아르헨티나 정치․경제의 병리현상이어서 단면분석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환율정책과 긴축정책이 실패의 직접 원인


    달러화와 페소화의 1:1 교환으로 유명해진 아르헨티나의 이른바 ꡐ태환제ꡑ는 지난 1991년 처음 도입됐다. 지난해 12월19일 델라루아 대통령이 정부의 예금인출제한조치와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지방 소요를 계엄령으로 진압하려다 대통령직을 사임한 것처럼, 12년 전인 1989년 라울 알폰신 대통령은 연 4,923%의 초인플레 속에서 식량폭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계엄령을 선포했다가 조기퇴진했다. 당시 취임 일정을 5개월 앞당겨 1989년말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은 인플레 억제에 정치 생명을 걸었고, 마침내 도밍고 카발로 경제장관을 입각시켜 ꡐ태환제ꡑ를 만들어냈다.


    이 제도는 1991년 당시 기존 화폐인 ꡐ아우스트랄ꡑ과 미 달러화의 교환비율을 10,000대1로 고정시킨 후 ꡐ태환법ꡑ(兌換法․Law of Convertibility)을 제정해 고정환율제를 법적으로 보장한 것이다. 이는 홍콩이 택하고 있는 통화위원회제도(currency board system)와 유사한 것으로 민간 및 민간은행 보유 현금과 민간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의 합계인 본원통화(현금)가 외환보유액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와 함께 외환거래에 관한 모든 규제를 철폐하여 국내통화의 가치를 보장했고, 아우스트랄화(貨)는 1992년 1월1일을 기해 0자 4개를 떼어내고 ꡐ10,000 아우스트랄=1페소ꡑ 비율로 페소화로 대체되어 마침내 ꡐ1페소=1달러ꡑ의 등가교환 공존시대를 만들었던 것이다.


    태환법 하에서는 외환보유고가 늘지 않는 이상 정부가 마음대로 현금을 찍어내지 못하고, 누구나 페소화를 달러화로 바꿀 수 있도록 보장하였기 때문에 국민의 인플레 심리를 하루 아침에 제거하는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태환제를 도입한 직후 월평균 소비자물가는 1.2%에 머물러 태환제 실시 직전인 1991년 2월의 평균 27% 수준과 대조적이었다. 199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7.5%로 196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이었으며, 태환제 실시 2년 반만인 1993년 8월의 인플레는 마침내 0%를 기록했다.


    과거 정부가 인기관리를 위해 노동자나 지방정부가 재정지원을 요구하면 통화 남발로 대응하는 것이 상례였던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가 통화위원회제도를 도입하기는 사상 유례 없는 것이었다. 국제사회는 메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을 높이 평가했고, 그는 인플레 억제의 치적으로 1995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고정환율제는 국제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994년 멕시코, 1997년 한국, 1999년 브라질의 통화위기가 모두 관리변동환율제라는 일종의 고정환율제를 고집하다 경제파탄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 나라는 모두 그 이후 자유변동환율제로 환율제도를 바꿔 채택했다. 아르헨티나의 태환제는 다른 나라들처럼 일정 변동폭 내에서 환율을 조금씩 조정하는 방식도 아니고 달러화와의 1:1 완전 고정환율제였기 때문에 더욱 경직된 제도였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 미국경제가 유례없는 붐을 타고 달러화 가치가 높아지자 이에 연동된 페소화 가치 역시 높아졌다. 이는 아르헨티나가 생산하는 제품이 상대적으로 비싸져 가격경쟁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그 결과 수출이 막히고 기업활동이 둔화됐다. 외국인투자기업들은 다투어 브라질 등 인근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다. 실업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1994년 말부터 1999년 초까지 멕시코에 이어 아시아 국가들과 러시아․브라질 등 개발도상권이 속속 통화위기를 겪으며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태환제를 고수한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상대가치는 경쟁국에 비해 갈수록 높아졌다. 이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를 아르헨티나는 외채를 끌어들여 해결하려 했다. 요약하자면 인플레를 잡으려다 경제침체와 실업, 외채 증가를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ꡐ경제난의 원인도 해법도 모두 경제정책에 있다ꡑ는 말이 있듯 만일 아르헨티나 정부가 태환제를 조기에 포기하고 자유변동환율제로 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파국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이를 진작 실행하지 못했을까.


    메넴은 태환제로 경제안정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유치, 금융시장 개방정책으로 해외자금을 끌어들여 1991~94년 연평균 7.7%의 고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1994년 12월 멕시코의 페소화가 평가절하되자 중남미 신흥시장으로부터 자본 이탈이 시작됐다. 그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가 아르헨티나였다. 경제성장률은 -4.4%로 추락했고 그 반대로 실업률은 16.4%로 치솟았다.


    당시 아르헨티나 업계는 페소화가 20% 가량 고평가되어 있다며 경쟁력 회복을 위해 태환제 포기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해 대선과 총선을 치러야 했던 메넴은 태환제 포기와 페소화 평가절하가 가져올 수 있는 경제혼란을 우려해 정책 결정을 끝내 미루었다. 오로지 1996년 이후 비난의 표적이 되어온 카발로 경제장관을 해임하는 미봉책으로 경제위기를 무마하려 했다.


    1997년 아시아 위기의 여파가 몰려왔을 무렵에도 메넴은 근본적인 치유책인 경제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그의 관심은 오로지 3선 출마뿐이었다. 태환제 폐지와 국민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구조조정은 그로서는 너무 위험한 모험이었다. 경제개혁 대신 매년 IMF를 비롯한 국제금융기관들과의 협상을 통한 금융지원에 목을 매는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했어도 그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데 실패하고 물러나야 했다.


    1999년 12월 메넴으로부터 빚더미 경제를 떠맡은 델라루아 대통령 역시 평가절하의 필요성은 인식했지만, 평가절하후 자신에게 닥칠 정치적 부담을 두려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평가절하에 따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페소화 평가절하는 외채 상환 부담의 확대와 물가상승, 빚더미 대출기업 및 가계의 파산, 부실대출 금융기관의 도산, 실업 증가로 이어져 극심한 사회혼란을 초래할 것이었다.


    만일 델라루아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평가절하의 결단을 내리고 그 모든 후유증의 책임을 이전의 메넴 정부의 실정(失政)에 그 책임을 떠넘길 수 있었다면 지난해 말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어차피 소요사태 속에 사임할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델라루아 대통령은 그같은 기회를 공중에 날려보내고 조국을 끝이 안보이는 혼란 속에 몰아넣고 말았으며 자신은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비참하게 권좌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사실 델라루아 정권은 그같은 과감한 개혁을 시도할 정치적 힘이 부족했다. 중도계 급진당(UCR)과 좌익계 국가통합전선(FREPASO)의 연정으로 집권한 데다 초기부터 당정(黨政)간, 각료간에 경제․사회정책 노선을 두고 심한 이견을 보여 연합당 출신 부통령의 사임과 각료들의 연쇄 사임으로 정책 추진 능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청렴했지만 우유부단한 대통령의 성격마저 겹쳐 델라루아 정권의 집권 2년은 사실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결국 델라루아 정권은 메넴의 집권 후기처럼 IMF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95년 멕시코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재선에 성공한 메넴은 이를 전후해 IMF에 전적으로 기대기 시작했고, 아르헨티나의 경제정책 운영은 IMF의 손에 넘어갔다. 아르헨티나는 1995년 3월부터 1년간 IMF로부터 총 28억달러를 지원받았고, 1996년 4월 10억4,000만달러의 대기성 차관에 합의하였으며, 1997년 12월 부터 2000년 말까지 3년간 28억달러의 확대신용차관(EF F)을 공여받기로 하였다가 이를 1999년 2월 60억달러로 늘렸다. 부실덩어리 경제를 떠맡은 델라루아도 IMF로부터 취임 직후인 2000년 12월 387억달러의 구제금융과 2001년 8월 80억달러의 추가지원을 받았다.



    긴축정책의 장기화­정경유착의 함정


    이와 별도로 아르헨티나는 1998년 11월에는 세계은행과 미주개발은행으로부터 55억달러를 지원받기도 했다. 비록 아르헨티나 경제가 1996~97년 평균 5.5%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이는 빚더미 위에서 추가 빚보증을 앞세워 외자를 끌어들이는 가운데 이룬 거품성장일 뿐이었다. 메넴 집권기 동안 정부 부채는 GDP 대비 30% 수준에서 46%로 늘어났다.


    최근 모든 IMF 관리체제의 경험이 그렇듯 IMF는 아르헨티나에 금융지원의 대가로 재정수지 개선을 요구했다. 즉, 한해 재정적자 목표치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재정긴축을 시행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의 경우 재정적자 목표치는 65억달러였다. 그러나 이미 상반기에 그 선을 넘어 IMF는 하반기에 재정적자 폭이 제로(0)가 되도록 초긴축정책을 펼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요구는 근년의 경우 1995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다.


    페소화의 고평가로 말미암아 아르헨티나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지고 생산위축이 가속화된 상황에서 IMF의 이러한 긴축 요구는 너무 가혹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민영화 정책과 수출부진으로 실업이 양산되고 있는데 정부지출마저 긴축노선으로 가는 것은 내수위축과 투자위축, 세수기반 약화를 부추겨 불황과 실업의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몇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이 발견된다. 먼저 아르헨티나 정부는 IMF와의 약속대로 재정수지 목표를 달성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정부의 재정개혁 의지도 부족했지만 장기간 경기침체로 세수는 예상보다 더 줄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IMF가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타협하며 금융지원을 계속해온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쩌면 IMF가 아르헨티나보다 더 다급하게 협상에 임했을 수도 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해 8월 IMF의 마이클 무사 수석분석관은 ꡒ이번 추가금융지원은 IMF 근무 10년 동안 최악의 실수였다ꡓ고 술회할 정도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아르헨티나에 계속 자금을 퍼준 IMF의 태도는 결국 채권자들의 피해를 우려한 조치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메넴 집권기동안 개방화에 앞장선 아르헨티나 경제가 자칫 과거의 폐쇄적인 모습으로 회귀할 경우 국제투자자들의 피해가 클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IMF는 그간의 미온적인 입장에서 지난해 12월 갑자기 강경 입장으로 선회, 델라루아정부를 압박해 재정적자 축소 계획을 관철토록 하려 했지만 결과는 델라루아 정부의 붕괴로 나타났다. IMF는 델라루아 정부가 2001년 재정적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2002년 긴축재정안이 의회의 승인을 얻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 12월 인출 예정이던 12억6,000만달러의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자금경색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러 정부는 공무원 임금과 연금 감축, 예금 인출을 주당 250달러, 월 1,000달러로 제한, 해외송금 제한 등 극단적인 조치를 발표한 터였다. 이는 공공노조 총파업과 연이은 소요사태, 델라루아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결국 외채상환 중단으로까지 사태가 악화된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IMF는 가장 피하려고 했던 사태를 부추긴 꼴이 됐다. 국제사회에서는 그간 IMF의 유화적인 지원태도를 비난했었는데 이번에는 강경 입장으로 돌변한 IMF가 ꡐ때늦은 경보ꡑ를 울림으로써 아르헨티나를 회생 불가능의 벼랑으로 몰아넣은 꼴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여름부터 아르헨티나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가해 아르헨티나의 자본 유출과 신뢰도 손상을 가져온 폴 오닐 미 재무장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오닐 장관은 아르헨티나 지원 거절 입장을 밝히는 이코노미스트지(誌)와의 회견에서 ꡒ아르헨티나 경제는 지난 70년간 들쭉날쭉해 왔고, 수출산업이라고 할 것이 전혀 없다. 모두 그들의 잘못ꡓ이라고 혹평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IMF의 요구조건이 원칙적으로 재정수지 균형이지 무조건적인 재정긴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정부는 세수 확충보다 세출축소 방향으로만 정책기조를 잡아왔다는 점이다.


    아르헨티나 사회는 탈세 관행이 뿌리깊은 사회다. 국민들도 이같은 관행에 젖어 있어 세금 인상에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40%가 크건 작건 탈세를 하는 탈세자로 추산된다는 분석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아르헨티나의 재정적자는 약 110억달러에 이르지만, 탈세 규모는 이보다 많은 200억달러에 이른다는 것이 아르헨티나 사회에서는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음에 비춰보면 균형재정의 달성을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긴축이 아니라 탈세 방지, 세수기반 확충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경기회복을 위해서도 좋은 처방일 수 있다. 그러나 뿌리깊은 정경유착과 부패환경 하에서 탈세를 엄격히 규제할 행정력은 미비하게 마련이다.



    정권욕과 정치부패, 병든 국민의식이 부른 비극


    과거 아르헨티나 경제사를 돌아보면 고평가와 금융시장 개방, 외채증가 추세 뒤에는 반드시 정경유착으로 얽힌 탈세와 해외 재산도피가 숨어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외채가 처음으로 급증한 시기는 지난 1976~82년 군부통치 하에서였다. 당시 페소화가 고평가된 상태에서 금융자유화가 이루어지자 은행들은 국내외 금리차를 노려 자금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민간부문의 외채가 1978년말 41억달러에서 1980년말 127억달러로 세배로 늘어났고, 공공부문도 84억달러에서 145억달러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결국 막대한 외자유치는 부실대출을 낳아 1980년 3월 은행 도산이 시작됐고, 1982년까지 정부는 71개 금융기관을 인수해 수십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문제는 재산의 해외도피다. 외자가 대거 유입되던 당시 페소화는 고평가 바람을 타고 달러로 바꿔져 국외로 빼돌려졌다. 한 보고서는 1979~82년 사이 224억달러가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한 바 있는데 이는 당시 외채규모와 맞먹는 수치였다. 따라서 최근 태환제에 따라 페소화가 고평가되는 동안에도 막대한 자금이 정경유착의 고리 속에서 유입되고 다시 해외로 빼돌려졌을 것으로 믿어진다. 일각에서는 해외도피자금 규모가 총외채 규모의 70% 가량인 1,0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같은 부패고리 하에서는 철저한 세무행정과 조사,탈세방지 대책 등의 정책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부적인 부패 고리가 과감한 정책결정을 채택할 수 없게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론상 세수 확충 방안의 하나로 세금 인상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는 이마저 어렵다. 지나친 공기업 민영화의 부작용 때문이다. 공기업 민영화가 아르헨티나 정부의 자율적인 세제행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아니, 공기업 민영화와 세제행정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메넴 정부는 빈부격차 확대에 따른 사회적 불균형 해소를 위해 교육․보건․의료 지출을 늘리려고 세금 인상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이 방침은 다수의 목소리가 돼버린 외국기업들의 반발로 관철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유력지 라 나시온은 이를 가리켜 ꡐ땅 잃은 아르헨티나ꡑ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공공부문 축소로 인해 정부의 힘이 너무도 위축된 나머지 경제에 개입할 정책도구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메넴은 전화․전력․유통․천연가스․석유․철도․고속도로․항만서비스․석유화학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였다.


    민영화의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다. 무려 400억달러에 달하는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얼마일지 모르는 리베이트(rebate)가 정치인․관료․기업인 사이에 오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부패구조 속에서는 기업들을 겨냥한 정부의 세금인상 시도가 먹혀들 리 없는 것이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에 남겨진 균형재정의 정책수단이란 한번도 달성하지 못한 긴축재정의 편성뿐이었던 것이다.



    페론이즘 망령­노동개혁의 실패


    마지막으로 아르헨티나 위기의 또 한가지 원인은 이 나라를 맴돌고 있는 페론이즘 망령이다. 페론이즘은 페론당 소속 메넴의 집권기 동안 죽지 않고 되살아났다. 그의 집권기 동안 정부지출은 GDP 대비 8.9%에서 21%로 늘어났다. 페론이즘의 핵심은 포퓰리즘(민중주의)과 민족주의이며, 실제로 정부의 선심정책과 노동운동의 활성화로 나타난다. 지난 수년간에 걸쳐 IMF는 아르헨티나의 재정수지 개선 외에 노동개혁을 요구해 왔다. 이 두가지는 모두 페론이즘의 유산을 청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ꡒ후안 페론을 말하지 않고는 아르헨티나 문제를 논할 수 없다ꡓ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페론 전 대통령의 선심정책이 아르헨티나의 정치․경제․사회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페론은 1946~55년 집권했고, 망명후 다시 1973년에 재집권했다가 이듬해 사망한 후 미망인 이사벨 부통령이 1976년까지 통치했다. 총 12년에 걸친 이들의 통치이념이 바로 페론이즘이다. 아르헨티나의 정치문화에 유럽식 복지국가(welfare state) 이념을 이식시킨 형태인데 이 기간 동안 노동자를 위한 실질임금 인상과 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 혜택이 늘어나 정부지출의 대폭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사실 유럽식 복지국가를 구현하겠다는 페론이즘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정서를 현혹시키는 정치적 선전도구였다.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인․스페인인․유대인․아랍인 등이 어우려져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이탈리아․스페인인들이 대거 이주해 도시노동자 계층을 형성했고, ꡐ항구에서 유럽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며 살아가는ꡑ 아르헨티나인들에게 유럽의 정치사조는 항상 동경과 모방의 대상이 되곤 했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아르헨티나인들이 얼마나 유럽인들처럼 행동하려 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페론이즘은 아르헨티나인들에게 분수에 넘치는 환상을 심어 주었다. 한때 아르헨티나는 곡창지대 팜파스 평원을 무대로 쇠고기․밀․옥수수 등 곡물의 수출대국으로 세계 6위의 부국으로 꼽혔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유럽 지원 정책인 마셜플랜으로 미국 및 영연방 국가들의 곡물이 유럽시장을 독차지한 데 이어 나중에는 유럽지역 통합과 함께 추진된 공동농업정책(CAP) 때문에 농․축산물의 유럽 수출 길이 막히게 되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의 녹색혁명으로 농산물 경쟁이 가열되어 수출전략에 큰 차질을 빚었다. 주력산업의 재편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아르헨티나는 아시아 국가들이나 멕시코․브라질처럼 수출제조업을 일으키는 공업화를 이루지 못했다.


    따라서 유럽식 복지국가 이념은 20세기 초반 아르헨티나에는 적합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20세기 후반 쇠퇴일로에 들어선 아르헨티나에는 과분한 것이었다. 더욱이 산업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전환기에 무리한 임금인상에 따른 생산비용 증대는 제조업자들의 생산의욕을 떨어뜨려 산업공동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중산계급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UCR 소속의 알폰신 대통령은 지난 1980년대 파업권 제한과 임금협상의 분권화를 내용으로 하는 노동관계법 제정을 두차례나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메넴도 한때 IMF와의 약속이행을 위해 노동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의회 통과가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관철되지 못하자 1996년말 대통령령으로 노동개혁법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조가 위헌소송을 제기했고, 1997년초 법원은 위헌판결을 내려 노동개혁은 다시 무산되었다. UCR 출신 델라루아도 집권 초기에 노동개혁을 추진했으나 반대세력의 역공세로 부통령의 부패스캔들이 폭로되고 마침내 연정의 붕괴를 맞아 좌절했다. 아르헨티나의 노동개혁은 이처럼 오늘날까지도 ꡐ불가침의 영역ꡑ이 되어 있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의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노동개혁은 사회불안 가중 요소로 정치인들에게 부담만 될 뿐이다.


    페론당 소속 에두아르도 두알데 현 대통령의 위기관리대책을 들여다보면 민중․민족주의적인 페론이즘의 단면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두알데는 1999년 대선에서 델라루아에게 패배한 인물이고, 과거 부에노스아이레스주지사 시절 부에노스아이레스주를 아르헨티나의 23개주 가운데 가장 재정적자가 많은 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헌법상 대통령 보궐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될 대통령이 델라루아의 잔여 임기 2년을 채우도록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의회내 정치적 타협으로 2003년 12월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키로 예정돼 있다. 합법성과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그로서는 자칫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언제라도 축출될 수 있는 형편이어서 과감한 개혁정치를 펼 리 만무하다.


    두알데는 지난 1월5, 6일 긴급경제조치 권한을 하원과 상원으로부터 부여받아 페소화의 29% 평가절하, 10만달러 이하의 달러화표시 은행대출의 페소화 표시 전환, 가격상한제 및 공공요금의 페소화 전환과 동결, 원유 수출세 인상 등을 발표했다. 이같은 위기관리 대책은 상당수의 아르헨티나 은행과 공공서비스, 에너지산업을 소유하고 있는 스페인과 미국 등의 외국인투자은행과 기업에 평가절하의 부담을 지우고, 국민의 이해를 보호하려는 전형적인 페론이즘의 전형이다.


    따라서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조속히 해결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두알데가 취하고 있는 정책 가운데 정치인과 공무원의 수를 대폭 감축하겠다는 것 외에는 장기적으로 경제 회생에 도움을 줄 선명한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도력의 부재다. 최근 대통령직 승계의 내막이 그 실상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20일 델라루아 대통령이 사임한 후 정치일정은 올해 3월3일 대통령 보궐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었고, 그때까지 승계 순위에 따라 임시 대통령이 통치하도록 돼 있었다.



    ꡐ반항하는 10대ꡑ같은 아르헨티나, 희망이 없다


    그러나 부통령은 이미 유고상태고, 2순위인 라몬 푸에르타 상원의장도 떠맡기를 꺼려해 23일 의회 다수당인 페론당내 결정으로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산후안주(州) 지사가 임시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는 평가절하 거부, 외채상환유예, 채무상환 재협상, 일자리 창출, 제3통화 ꡐ아르헨티나ꡑ 발행 등 정면돌파식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용 대책을 내놓았고 곧 그의 정치적 야심설이 유포되면서 정적들과 갈등을 빚다 8일만에 사임했다. 대통령직 바통은 다시 상원의장에게 돌아왔는데 푸에르타 의장은 아예 상원의장직을 사퇴하며 자리를 피했고, 3순위인 에두아르도 카마노 하원의장은 이를 다시 페론당이 결정해 줄 것을 요청해 마침내 밀실회의가 열렸다.


    여기서 보궐선거 일정을 취소하는 타협 끝에 두알데 상원의원에게 대통령직이 넘겨진 것이다. 2주 동안 5명의 대통령이 드나드는 이런 상황은 아르헨티나에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지난 1943년 군부 쿠데타로부터 1983년 알폰신 민선 대통령 취임까지 20명의 대통령이 평균 2년씩 통치했고, 지금까지도 임기를 다 채운 사람은 페론과 메넴 둘뿐이다. 이 기간중 경제장관들의 임기는 그보다 짧은 평균 1.5년 꼴이었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수틀리면 자진사퇴하는 것이 관행이다. 소신과 책임감을 갖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아르헨티나의 불행이다. 물러난 카발로 경제장관은 아르헨티나를 ꡐ반항하는 10대ꡑ에 비유했다. 쓴 맛을 보기 전까지는 결코 이성(理性)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웃 나라 칠레가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 1980년대 후반 각고의 경제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브라질이 지방재정적자와 구조조정 지연 때문에 90년대말 재정위기를 겪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이들 나라로부터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얻거나 성공의 본을 따르려 하지 않고 그저 남의 일로만 여겼다. 비전과 역량을 갖춘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칠레는 오늘날 비교적 건실한 시장경제를 갖춘 국가로 자리매김한 반면 아르헨티나는 아직도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페론시대가 막을 내린 1976년 아르헨티나는 이웃 칠레와 같은 경제개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군부는 칠레의 군부처럼 자유시장경제주의자 호세 알프레도 마르티네스 데 오스를 경제장관으로 세우고 개방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가격통제 철폐, 다중환율의 일원화, 페소화 평가절하, 수출세 인하, 일부 수입규제 철폐, 수입금융 원활화 등을 통해 수출산업 부흥과 보호주의 장벽 철폐를 꾀했다.


    당시 군부는 보호주의 산업정책이 강성노조를 낳는다고 믿어 국내산업을 국제경쟁에 노출시켜 페론이즘의 기반인 노조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군부는 개방경제를 선호하는 농축산업계와 보호개발경제이론을 지지하는 신흥 제조업계의 중간에 끼여 일관된 경제정책을 펴지 못했다.


    특히 철강․군수산업처럼 안보와 직결된 산업은 군부내 로비력이 막강해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으로부터 제외되려고 애썼고, 군부가 정치적 부담 때문에 대량실업도 꺼려 경제팀은 칠레의 경우와 달리 각계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반면 칠레는 이해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채 자유시장 모델에 바탕을 둔 경제발전의 비전과 철학을 갖고 경제관료 중심의 선명하고 일관된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소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이 지난해 12월 22일 밥 국기를 그린 긴 천을 들고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가 주는 다섯가지 교훈


    아르헨티나 사태는 몇가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첫째, 페소화의 고평가가 수출경쟁력을 저하시킨 사례처럼 정책수단의 유용성이 떨어지거나 역기능이 초래되었을 때 비전 없고 무책임한 정치인은 정책변화가 가져올 정치적 대가를 먼저 생각해 경제정책운용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더 큰 국가경제의 파국을 초래한다. 단기적인 정치적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과단성 있는 정책변화를 택해야 한다.


    둘째, 고평가와 금융자유화조치의 결합은 외화 도입을 통해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불순세력을 낳는다. 여기에 정경유착과 정치부패가 어우러지면 필연적으로 경제정책의 왜곡과 경제운용능력 상실을 초래하며 외채 누적과 탈세, 해외 재산도피를 방조․방치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셋째, 장기불황 속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긴축재정정책의 오류에서 보듯 IMF가 관리대상 경제에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재정긴축은 대상국가의 경제여건과 시기에 맞게 적절히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아르헨티나의 산업공동화 현상에서 보듯 고평가의 장기화와 준비되지 않은 개방경제로의 이행은 국내 산업의 지나친 위축을 초래함으로써 생산의욕을 저하시키고 금융투기와 해외 재산도피를 가열시킬 위험이 있다.


    다섯째, 페론이즘 망령에서 보듯 오도된 경제발전 환상이나 선심정책은 국민의 의식을 병들게 함으로써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집단이기주의를 만연시킴으로써 정부의 과다한 재정지출http://www.kssline.pe.kr/book%28other%29/%B1%B9%B0%A1%20%BA%CE%B5%B5%21%20%BE%C6%B8%A3%C7%EE%C6%BC%B3%AA%20%C1%F8%B4%DC.hwp과 재정적자 관행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경제구조면에서는 한국은 아르헨티나와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미 IMF 경제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는 우리에게도 아르헨티나 위기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정치적 리더십의 교체기마다 위기가 재발하는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월간중앙 2002. 2월호>

    2005.06.12 20:36 | 신고
  • ... 좀 간추려줬으면 고맙겠는뎁
    2005.06.12 20:42 | 신고
  • 진짜 긴 내용이네여~!

    읽다가 지쳐 버렸어영..ㅋ

    2005.07.05 01:40 | 신고
  • 너무 사치를 부려서가 아닐까염??
    2005.08.03 14:11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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