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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역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국악의 배경과 그 역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Truemind | 2005.11.23 20:29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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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음악사 이해



    한국음악의 역사

    근세 나라의 음악을 국악(Korean classical music)이라 한다. 곧 우리 민족의 고유성(固有性) 과 전통성을 지닌 민족의 음악이 우리의 국악이다. 국악이란 이름은 조선 말엽 고종때 장악원(掌樂院)에서 부터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래 음악이 이 땅에 들어 오면서 서양음악에 대한 우리나라 고유한 음악이라는 뜻으로 국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음악의 역사라는 것은 미술·문학·연극·무용 등의 예술문화는 물론 정치·경제·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음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부 세력의 침략과 끊임없는 항쟁으로 그 수난이 많았다 할 것이다. 더구나 고려·이조시대의 사대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역사의 어두운면에서 우리 음악은 너무나 고독했다. 당악이 들어오면 당악을 추종하고, 아악을 들여와 국가 대사에 사용하고, 향악보다 이들 음악만이 격조가 높은 양, 이것이 우리의 음악인 것처럼 착각하고 추종하여 번창 하였지만, 그 음악을 밑거름으로 더욱 우리의 음악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꽃피우려 했던 옛 음악인들이 있어 오늘날 우리의 음악을 알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외래의 그 어느 것보다 찬연한 음악으로 살아 있는 것이라 믿는다.

    긴 역사를 민족과 함께 생성되어 온 우리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아악(雅樂)·당악(唐樂)·속악(俗樂) 등의 명칭으로 분류된다. 향악이나 속악은 순수한 재래의 음악이라는 뜻이고, 주로 궁정이나 지식층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일반 민간에서 사용된 음악은 이 향악이나 속악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다. 고려시대는 향악 대신 속악이라는 말을 썼고, 조선시대엔 아악과 속악으로 크게 가르고, 속악은 당악과 향악을 동시에 지칭한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국악을 분류한다면 아악·당악·향악으로 가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아악은 중국 송(宋)나라의 정악(正樂)을 말하는 것 으로 궁정에서 행하는 제사 및 연향(宴享)에 두루 쓰였다. 또한 당악이란 당나라 음악뿐만 아니라 송나라에서 들어온 중국의 속악을 총칭하는 이름이나, 그것을 한국식으로 고쳐진 동화(同化)되고 한국화된 것이 많기에 중국음악이라고 완전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이 당악에 대한 한국음악이 향악이라고 한다. 이 분류방법에 근래에는 판소리·산조·잡가·민요·농악 등을 묶어 민속악으로 그 분류에 넣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음악사를 상고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갑오경장 이후의 근세의 음악으로 나누어 그 내용을 간략히 짚어 보기로 하겠다.
    상고시대



    1. 상고시대(上古時代)

    이전시대의 음악을 계승 발전시킨 삼국시대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가 제각기 고유한 국가체제와 문화를 형성하였던 3세기 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고구려에서는 거문고가 가야에서는 가야금이 창안되어 이 시대의 음악사를 주도했다. 또, 문화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 시대는 중국, 서역의 음악이 전래 되었고, 삼국의 음악이 중국, 일본에 진출하는 등 전례없는 국제교류시대가 전개되었다.

    고구려의 음악문화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일본서기(日本書記)』『수서(隋書)』등의 문헌자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악기 거문고는 『삼국사기』악지에 의하면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조하여 새악기를 만든 후, 이 악기를 위한 일백곡을 지어 연주를 하니 갑자기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므로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 붙였는데 훗날 '학'자가 빠지고 '현금(玄琴)', 즉 거문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연주되기 시작한 거문고는 독주 악기로, 또는 춤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음악사에 중요한 맥을 이루며 전승되고 있다. 또 중국 문헌인 『수서(隋書)』동이전에, 고구려에서는 오현금·피리·횡취(橫吹)·소(簫)·고(鼓) 등이 연주되었다고 전하는데, 일본에 전해진 군후, 횡적, 막목, 춤의 편성과는 달리 중국 전래의 외래악기가 포함된 것으로 고구려 음악의 전혀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이 밖에 서역에서 들어온 관악기 피리가 편성에 추가되므로써 풍부한 음향을 가진 새로운 고구려 음악이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서』와 『구당서(舊唐書)』등에는 중국 수(隋)와 당(唐)나라 때 중국 궁중에서 연주되던 각나라의 음악을 7부기(七部伎)·9부기·10부기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악이 포함되어 있어 이는 국제적인 음악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인 시기는 늦으나 5세기~6세기 사이에 중국 남송과 북위 등에 고구려악 못지 않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삼국 중에서 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되는 백제음악은 고구려 음악과 같이 군후·막목·횡적·춤의 편성으로 되어 있다. 특히 미마지(味摩之)가 오(吳)나라에서 배운 기악무(伎樂舞)를 일본에 전한, 이 기악의 가면은 일본 여러 절에 지금까지 보관 되고 있다. 이기악은 산대도감(山臺都監) 놀이 및 봉산 탈춤과 같은 가면무라고 한다.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국내에서는 고(鼓)·각(角)·공후·쟁·우·지·적(笛) 등 일곱가지 악기가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는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과 유사하다. 한편, 백제의 가요로 유명한 정읍사(井邑詞)가 있고, 곡목만 전해지는 방등산·무등산·지리산 등이 있다.

    신라의 음악문화는 삼국 중 중국과의 국제교류가 가장 저조했다. 가야국의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우륵(于勒)은 가야금을 위해 12곡의 가야금곡을 지어 가야금 시대를 열었다. 우륵이 지은 12곡의 가야금 곡의 제목은 대부분 현재 경상남북도의 여러 지명(地名)과, 이밖에 탈놀이 중의 사자춤과 관련이 있을 듯한 <사자기>라는 곡명, 구슬던지기 놀이의 일종인 <보기(寶伎)>라는 곡명으로 되어 있어 우륵이 향토색 짙은 각 지역의 음악 및 민간에 전승되는 놀이 등을 주제로 가야금곡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6세기 경에 신라에 수용된 가야금은 신라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신라악은 대부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편성이다. 통일 전의 <신열악>·<사내악>·<미지악> 등 고악(古樂)은 가야금을 수용한 이후, 곡이 세련되고 아정한 음악으로 바뀌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신라 음악사를 보면, 조상제사, 연희 등에 소용되는 음악을 위해 둔 것으로 해석되는 '음성서(音聲署)'라는 국가음악기관을 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삼국시대



    2. 삼국시대

    이전시대의 음악을 계승 발전시킨 삼국시대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가 제각기 고유한 국가체제와 문화를 형성하였던 3세기 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고구려에서는 거문고가 가야에서는 가야금이 창안되어 이 시대의 음악사를 주도했다. 또, 문화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 시대는 중국, 서역의 음악이 전래되었고, 삼국의 음악이 중국, 일본에 진출하는 등 전례없는 국제교류시대가 전개되었다.

    고구려의 음악문화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일본서기(日本書記)』『수서(隋書)』등의 문헌자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악기 거문고는 『삼국사기』악지에 의하면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조하여 새악기를 만든 후, 이 악기를 위한 일백곡을 지어 연주를 하니 갑자기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므로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 붙였는데 훗날 '학'자가 빠지고 '현금(玄琴)', 즉 거문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연주되기 시작한 거문고는 독주 악기로, 또는 춤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음악사에 중요한 맥을 이루며 전승되고 있다. 또 중국 문헌인 『수서(隋書)』동이전에, 고구려에서는 오현금·피리·횡취(橫吹)·소(簫)·고(鼓) 등이 연주되었다고 전하는데, 일본에 전해진 군후, 횡적, 막목, 춤의 편성과는 달리 중국 전래의 외래악기가 포함된 것으로 고구려 음악의 전혀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이 밖에 서역에서 들어온 관악기 피리가 편성에 추가되므로써 풍부한 음향을 가진 새로운 고구려 음악이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서』와 『구당서(舊唐書)』등에는 중국 수(隋)와 당(唐)나라 때 중국 궁중에서 연주되던 각나라의 음악을 7부기(七部 伎)·9부기·10부기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악이 포함되어 있어 이는 국제적인 음악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인 시기는 늦으나 5세기~6세기 사이에 중국 남송과 북위 등에 고구려악 못지 않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삼국 중에서 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되는 백제음악은 고구려 음악과 같이 군후·막목·횡적·춤의 편성으로 되어 있다. 특히 미마지(味摩之)가 오(吳)나라에서 배운 기악무(伎樂舞)를 일본에 전한, 이 기악의 가면은 일본 여러 절에 지금까지 보관되고 있다. 이기악은 산대도감(山臺都監) 놀이 및 봉산 탈춤과 같은 가면무라고 한다.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국내에서는 고(鼓)·각(角)·공후·쟁·우·지·적(笛) 등 일곱가지 악기가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는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과 유사하다. 한편, 백제의 가요로 유명한 정읍사(井邑詞)가 있고, 곡목만 전해지는 방등산·무등산·지리산 등이 있다.

    신라의 음악문화는 삼국 중 중국과의 국제교류가 가장 저조했다. 가야국의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우륵(于勒)은 가야금을 위해 12곡의 가야금곡을 지어 가야금 시대를 열었다. 우륵이 지은 12곡의 가야금 곡의 제목은 대부분 현재 경상남북도의 여러 지명(地名)과, 이밖에 탈놀이 중의 사자춤과 관련이 있을 듯한 <사자기>라는 곡명, 구슬던지기 놀이의 일종인 <보기(寶伎)>라는 곡명으로 되어 있어 우륵이 향토색 짙은 각 지역의 음악 및 민간에 전승되는 놀이 등을 주제로 가야금곡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6세기 경에 신라에 수용된 가야금은 신라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신라악은 대부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편성이다. 통일 전의 <신열악>·<사내악>·<미지악> 등 고악(古樂)은 가야금을 수용한 이후, 곡이 세련되고 아정한 음악으로 바뀌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신라 음악사를 보면, 조상제사, 연희 등에 소용되는 음악을 위해 둔 것으로 해석되는 '음성서(音聲署)'라는 국가음악기관을 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

    3. 통일신라시대

    이 시대의 음악문화는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전래 되었으며, 궁중에서는 삼현삼죽(가야금·거문고·비파·대금·중금·소금)이 주축을 이루는 향악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신라고유의 향토음악 향악은 삼현삼죽과 박판(拍板)·대고(大鼓)·가(歌)·무(舞)로 이루어져 훨씬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이는 서역의 악기 향비파, 당나라의 악기 박판·대고 등을 복합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상류사회 지식계층에는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금가(琴歌)의 문화가 맥을 이루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금가인 <풍입송>류의 음악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민간에서는 고대의 제천의식을 수반했던 국중대회의 전통이 팔관회(八關會)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 시대의 특징으로 범패를 들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의식음악으로 830년 신라의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 옥천사에서 가르쳐 불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신라의 향가는 진성여왕 2년(888)때 위홍과 대구화상이 편찬한 삼대목이란 향가집은 전해지지 않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용가, 헌화가, 서동요 등 10여곡이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4.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음악사는 의종말년(1170)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고려조는 불교를 숭상하여 불교적인 행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고, 전통적인 무격의식과 관련되어 면면히 이어온 것도 있다.

    전기는 향가와 화랑의 전통, 팔관회와 연등회 등 통일신라의 유풍이 강하게 전승되는 한편, 중국으로 부터 아악이 전래되어 향악, 당악, 아악의 전통이 정립되었다. 종묘 사직 등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사용된 중국 고대의 의식음악인 아악은 금·석·사·죽·포·토·혁·목의 팔음(八音)악기를 당상악(堂上樂;登歌)과 당하악(堂下樂;架)으로 구분 배치하여 율려(律呂)에 맞게 교대연주하는 독특한 음악이다. 뿐만아니라 여기에 악장과 춤이 반드시 따르는 악, 가, 무 총체의 음악으로서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가장 이상적인 음악으로 인식되어 왔다.

     

    국악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통론)


    흔히, 우리 한국 민족을 가리켜 슬픔과 한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음악인 국악은 청승맞은 음악일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한마디로 잘못된 주장입니다.

    국악의 정악에는 슬픈 곡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한 음악, 즉 슬픔도 결코 슬픔으로 표현하지 아니하는 음악이 바로 우리의 정악입니다. 그래서 정악곡은 계면조롤 된 곡 조차도 꿋꿋하고 화평정대한 느낌을 줍니다.

    반면 정악과는 달리 민속악에는 슬픈 느낌을 주는 곡이 대단히 많습니다.
    수심가, 육자배기, 흥타령...그리고 산조, 시나위...이러한 곡들은 정말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게 하고 애간장을 긁는 비곡(悲曲)들입니다. 그러니 이상한 것은 이러한 곡들은 슬픈 느낌을 주면서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민족의 정서의 본질은 한이 아니라 흥(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심가나 육자배기같은 비곡을 들으면 신명이 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민족이 슬픔의 민족, 즉 염세적인 기질의 민족이었다면 어떻게 5천년동안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흥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한국민족의 기질은 낙천적인 기질인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 낙천적인게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과거의 어려움을 너무 잘 잊으니까요. 진짜 슬픈 음악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같은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눈보라치는 겨울, 실연당한 사나이가 정처없이 방랑길을 떠난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겨울나그네는 아무런 희망과 구원이 없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남도가락 흥타령은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면서도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하면서 결코 정말에는 빠지지 않습니다.

    1. 국악과 화성

    '음의 높고 낮음의 조화'보다는 '음색의 조화'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우리 조상(동양인)들은 아무래도 화성을 소홀히 취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악에는 서양음악과 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화성이 없습니다. 단지, 가락과 가락이 만날 때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부차적인 의미의 화성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순전히 서양음악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악은 화성이 없는 원시 상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리는 정말 일방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음악인은 '국악은 화성이 없는 대신 리듬과 가락이 서양 음악보다 훨씬 잘 발달되어 있으므로 결코 서양음악에 뒤지는 음악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또 어떤 분은 '화성은 국악의 특징인 농현을 방해하는 요소이므로 오히려 화성이 불필요한 음악이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국악식 논리로 서양음악에 맞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 객관적인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서양음악의 논리로도 무(無)화성의 국악을 옹호할 수 있는 객관적인 논리가 없겠느냐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레고리안 성가를 아시는지요? 중세 서양의 기독교 음악말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 역시 무화성의 음악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제대로 아는 분들 중에서는 무화성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화성 음악보다 열등한(덜 발달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독특한 양식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레고리안 성가에 화성을 붙이고 반주를 붙여 연주해 보세요. 더 좋은 음악이 되는가...

    우리 국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유니즌(unison)으로 된 합주음악인 '수제천'이나 '동동'같은 곡에 화성을 붙여 보세요. 색다른 음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더 나은 음악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국악은 화성을 향해 발전해 나가는(또는 발전해야 할) 과정의 음악이 아니라 이미 그자체로 완성된 음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음악이 이 땅에 수입된 이후부터 대해 심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왔던 것 같습니다. 화성에 대한 지나친 숭배... 이것이 우리 전통 음악 발전을 크게 가로 막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 교과서에도 아무런 비판과 단서도 없이 음악의 3요소는 '리듬, 가락, 화성'이라고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백대웅 교수 주장대로 화성이 없는 음악은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국악에 대한 열등 의식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성을 절대시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무시(배척)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수용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국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것은 새로 창작되는 신국악에 적용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화성법, 즉 '국악화성법'이 연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설픈 화성 수용은 오히려 국악을 망가뜨리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화성을 바탕으로 작곡한 신국악이 무화성이 전통 국악보다 훨씬 수준이 낮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무화성이 음악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악음(樂音: 고른 음)은 자연배음(自然倍音)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령 솔(sol)이라는 음도 실제는 여러 음(자연배음)으로 이루어진 겹음(화성음)인 셈이니 유니즌은 엄격한 의미에서 무화성이 아니라 자연의 화성인 것입니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다'는 말의 의미가 갑자기 잡히는 듯 하군요. '인위적 화성이 있음은 곧 자연적 화성의 없음이요, 인위적 화성의 없음은 곧 자연적 화성의 있음이라!'
    이해가 가시는지요? 다소 궤변스러운 결론이 되겠지만 자연화성으로 된 우리 국악이야말로 우주적으로 열린 훌륭한 음악이 아니겠습니까? 이론가 법칙과 의해 만들어진 인공(인위)적 화성음악은 닫힌 답답한 음악이겠고...음악의 각자(覺者)가 된 기분입니다.

    2. 국악 장단(리듬형)의 특징

    국악의 장단은 서양 음악 장단(리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중국, 일본과도 다릅니다. 대체적으로 국악 장단은 긴 것이 특징입니다(24박자로 기보되는 진양조 장단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긴 장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리랑 같은 민요를 서양 5선보로 기보할 때 3박자로 기보하는 것보다 12박자로 기보하는 것이 더 정확한 기보가 됩니다. (그래야 노랫말이 더 잘 살아남)

    이것은 우리말 구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악 장단은 거의 예외없이 첫박이 센박(强拍)입니다. 세마치도 첫박이 장구장단으로 덩! 굿거리도 첫박이 장구장단으로 덩! 인데, '덩!'은 채편과 북편을 동시에 치는 합장단(合長短)으로 센박을 의미합니다. 반면, 국악에서 끝박은 여린박(弱拍)입니다. 이 역시 우리말의 특징에서 기인합니다(서양 음악은 정반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영어와 우리말은 어순(語順)부터 다를 뿐 아니라 영어에는 '전치사'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으며 대신 '조사'가 있는데, 이러한 여러가지의 어학적 차이가 곧 음악적 차이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말이 다르면 음악도 다르다는 것인데, 이것은 말에서 음악이 발생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악곡 뿐만 아니라 기악곡도 그렇습니다(음악의 변천사를 보면 기악곡은 성악곡에서 비롯되었음. 특히 우리 국악에서 기악곡은 거의가 성악곡이 변한 것임). 예컨데 서양의 소나타 형식과 국악의 산조 형식을 비교해 보면 말의 구조와 음악의 구조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악이 센박에서 시작해서 여린박으로 끝나게 되는 것은 우리말의 특징 때문이라고 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학교에 간다

    이 예문에 강세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예문에 음악을 붙이면 첫박이 센박이 되며, 끝박에 걸리는 '(ㄴ)다'는 종결형 어미에 해당하므로 약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강세의 위치가 변할 수도 있겠지만)

    국악 장단의 또 한 가지 특징은 3박자 계통의 장단이 주종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4박자 계통의 중국 음악과 전혀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 한 가지만으로도 국악은 결코 중국 음악의 아류가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어떤 음악인은 2박자 계통의 장단은 본능적인 장단이며(맥박은 2박자 계통에 가까움), 3박자 계통의 장단은 문화적인 장단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3박자 계통의 장단이 주종을 이루는 국악은 우수하다는 논법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양쪽 음악의 우열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로의 특징을 찾아내는게 더 바람직하겠지요.

    그런데, 서양 음악 수입의 부산물로 생겨난 한국 가곡을 분석해 보면 이러한 국악 장단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음악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즉, 한국 가곡이 지나치게 서양 작곡기법에 의존하고 있는 비(非)한국적인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홍난파의 거의 모든 가곡 작품을 비롯하여 음악 애호가들의 많은 애호를 받고 있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김동진의 가고파 등등...) 그러므로 한국가곡이 글자 그대로 진정한 한국의 가곡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말 가사의 특징에 맞는 장단법부터 충분히 검토되고 연구된 후 작곡이 이루어져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국악 화성법 연구보다 훨씬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국악 장단은 이처럼 독특하기 때문에 비슷한 음계를 쓰고 있는 이웃나라의 음악과 쉽게 구별이 됩니다. 아무튼, 독특한 국악 장단은 복잡미와 세련미에 있어서는 인도와 더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의 사물놀이패가 세계 타악기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바가 있습니다. 상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국악에서 장단에 대해서 만큼은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3. 국악의 빠르기(Tempo)

    국악(특히 정악)은 서양 음악에 비해 템포가 무척 느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서양 음악에서 아주 느린 Largo(라르고)의 1분간 메트로놈 속도가 대략 40정도인데, 국악곡 영산회상 상영산은 15~20정도 입니다. 두 배이상 느린 셈이지요. 그런가하면, 산조의 단몰이 악장은 반대로 서양 음악의 presto보다 빠릅니다. 결론적으로 국악의 템포 범위가 서양 음악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겠는데,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메트로놈의 템포 범위는 40~208정도이며, 국악의 템포 범위는 대략 15~230정도 입니다. (물론, 이 수치는 고정불변의 것은 아닙니다.)

    국악이 느린 것은 템포의 기준을 '호흡'에 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 서양음악은 '맥박'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박(拍)을 beat, 또는 pulse라고 합니다. 두 단어 다 '고동(鼓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악인은 국악을 폐부적(肺腑的) 음악, 서양음악을 심장적(心藏的) 음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정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폐부와 심장... 이것은 비단 음악에서만의 차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서 국악을 감상하신다면 느린 템포에 곧 적응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요즈음처럼 빠른 시대에는 오히려 국악과 같이 느린 음악이 약(藥)이 될 것입니다. 생활도 빠르고 음악도 빠른 세상은 정말 사람 살 데가 못 될 것입니다.

    4. 국악의 기준 음높이

    상식적인 얘기지만, 서양음악에서는 440㎐의 음을 기준음고(표준음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1초동안 진동수가 440인 a(가)음을 기준음고를 정한 것이지요. 이 440㎐=a음을 국제고도(國際高度: international pitch)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이것은 국제고도가 아니라 서양고도인 셈입니다.

    서양인들은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서 항상 자기네 것이 세계의 기준이며, 으뜸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이 1만 5천년 동안이나 살아왔던 아메리카대륙에 대해서도 백인들은 그 대륙을 차지한 그 날부터를 아메리카 역사의 원년(元年)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인종만큼이나, 또 언어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음악에 어떻게 국제고도란 것이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벨탑 붕괴로 인한 신(神)의 형벌과 은혜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피아노가 악기의 왕이란 것도 순전히 서양음악적인 음악관(音樂觀)에서 생겨난 편견입니다. 피아노는 장점만큼 또 단점도 많은 악기이거든요.

     

     

    국악악곡 이야기


    한국의 전통 음악은 지금에 '국악' 또는 '한국음악'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우리의 역사에서 생성되어 현재 남아있는 음악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중국 쪽에서 들어온 음악이나 악기도 있고, 또 우리 민족이 직접 창작한 음악이나 악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우리 것으로 수용된 것이기에 우리는 그 모두를 '전통음악', 또는 '한국음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전통 음악은 종적(從的)으로는 먼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의 큰 외국 음악과의 만남을 통해서 풍부해져왔고, 횡적(橫的)으로는 높은 왕실에서부터 낮은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 의해서 다양하게 발달되어 왔다.


    1) 과거의 분류방법(3분법)

    아악(雅樂) 중국 송(宋)나라에서 들어온 정악(正樂 : 아정(雅正)아고 정대(正大)한 음악)으로 조선시대에 박연이 정리했다고 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과거 우리나라 궁중의 각종 행사에 두루 쓰인 음악이었는데, 현재는 공자묘(孔子廟)에 쓰이는 제사 음악인 '문묘제례악'만 남아 있다.


    당악(唐樂) 당악 역시 중국(당(唐)나라, 송나라)에서 들어온 음악인데, 이 음악은 중국의 속악(俗樂) : 속된 음악, 대중음악이란 뜻)이다. 즉, 당악이나 아악이다 둘 다 수입된 음악인 것이다. 그러나 당악은 대중적인 음악이며, 아악은 공자의 예악(禮樂) 사상을 바탕으로 한 비(非)대중적인 음악이라는 점이 서로 다르다.
    당악은 고려 때 가장 많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는데, 현재는 보허자, 그리고 낙양춘(洛陽春) 두 곡만 남아 있으며, 이것마저도 완전히 국악화되고 궁중음악화되어 비대중적인 음악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악과 당악은 모두 국악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향악(鄕樂) 향악은 중국음악과 반대 개념의 우리나라 음악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아악과 당악을 제외한 음악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향악 역시 모두 우리나라에서만 생겨난 음악은 아니다. 중국의 아악과 당악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서역(西域)의 여러나라를 통해 들어왔던 음악도 향악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서역에서 수입된 외래 음악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음악화되었던 까닭에 향악에 포함시켰던 것이며, 오늘날에는 국악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2) 요즈음의 분류방법(2분법)
    요즈음은 일반적으로 정악과 민속악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이 방법은 서양음악을 클래식과 팝음악으로 나누는 방법과 비슷하다.


    정악(正樂 : 아악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 아악은 넓은 의미의 아악이라고 함)

    정악은 '바른(正)음악'이란 뜻으로 궁중이나 상류 지식계급 층의 음악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기도 한다.

    정악

    1. 궁중음악
    예전의 아악(좁은 의미의), 당악을 포함하여 여민락, 정읍 등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모든 음악

    2. 풍류방음악
    양반, 선비사회의 사랑방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던 영산회상, 가곡, 가사, 시조 등과 같은 음악


    민속악(民俗樂 : 속악, 민악이라고도 함)

     

    음악..
    1.음악의 3요소 : 리듬.가락,화성
    2.빠르기표 : 라르고 - 아다지오 - 안단테 - 안단티노 - 모데라토
    - 알레그레토 - 알레그로 - 비바체 - 프레스토
    3.나타냄말
    - 칸타빌레 : [노래하듯이]
    - 돌체 : [부드럽게]
    - 그래지오조 : [우아하게]
    - 부릴란테 : [화려하게]
    4.춤곡
    - 왈츠 : 3/4 [오스트리아]
    - 미뉴에트 : 3/4 [프랑스]
    - 폴로네즈 : 3/4 [폴란드]
    - 마주르카 : 3/4 [폴란드]
    - 볼레로 : 3/4 [스페인] -- 플라멩고
    - 폴카 : 2/4 [보헤미아]
    - 탱고 : 2/4 [아르헨티나]
    - 삼바 : 2/4 [브라질]
    5.악기의 종류
    - 관악기 : 목관
    금관 - 호론/트럼펫/트럼본/[튜바]
    - 현악기
    - 타악기
    - 건반악기
    6.기악의 연주형태
    - 3중주 : 피아노3중주 -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현악 3중주 -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클라리넬3중주 -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 4중주 : 피아노4중주 - 피아노, 제1바이올린,비올라, 첼로
    현악 4중주 - 피아노, 제1바이올린,제2바올린,첼로
    목관 4중주 - 클라리넷,플루트,[오보에],[바순]
    - 5중주 : 피아노5중주 - 피아노,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현악 5중주 - 제1바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목관 5중주 - 클라리넷,플루트,[오보에],[바순],[호론]
    7.우리나라 음악
    1)민요
    - 경기도 민요 : 방아타령, 베틀타령,새야새야파랑새야,[닐리리아]
    - 황해도 : 몽금포 타령
    - 강원도 : 정선아리랑, 한오백년
    - 충청도 : 흥타령
    - 경상도 : 쾌지나 칭칭, 밀양 아리랑, 옹헤야
    - 전라도 : 강강술래, 육자배기, [새타령], 농부가
    - 제주도 : 오돌또기, 이야옹 타령
    2)주요음악인
    - 왕산악 : 고구려, 거문고(6현)
    - 백결 : 신라, 방아타령
    - 우륵 : 신라, 가야금 (12현)
    - 박연 : 조선세종, [아악]정리
    - 하한담 : 조선, 판소리 선구자
    - 심재효 : 조선, 판소리 6섯 마당
    3)근,현대의 음악인
    - 홍난파 : 봉선화,봄처녀,고향의 봄,사공의 노래,금강에 살으리랏다
    - 박태준 : 동무생각,오빠생각
    - 채동선 : 망향
    - 안익태 : 애국가
    - 김동진 : 가고파, 봄이오면
    - 금수련 : 그네
    - 윤용하 - 보리밭
    8.세계의 주요작곡가와 작품
    - 바하 : 브란텐부르코 협주곡/무반주첼로모음곡/G선상의 아리아
    - 헨델 : 메시아/

    - 하이든 : 교향곡의 아버지- 시계,놀람교향곡등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 모짜르트 : 피가로의 결혼/돈조바니/마적/레퀴엠(진혼미사곡)
    - 베토벤 : 오페라 [피델리오]

    - 베버 : 마탄의 사수
    - 로시니 : 세빌리아의 이발사, 윌리엄 텔
    - 슈베르트 : 미완성 교향곡/숭어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겨울 나그네/백조의 노래
    - 베를리오즈 : [표제음악]의 창시자
    - 멘델스존 :
    - 쇼팽 : 피아노의 시인 - 폴로네즈/마주르카
    - 슈만 :
    - 리스트 : [교향시]의 창시자
    헝가리 광시곡
    - 바그너 : [악극]의 창시자 - 트리스탄과 이졸다/니벨룽겐의 반지
    오페라 - 탄호이저, 로엔그리
    - 베르디 : 나부코/리콜레토/춘희/아이다/ 레퀴엠(진혼미사곡)
    - 스메타나 : [국민음악]의 아버지
    교향시 - 나의 조국
    - 요한시트라우스 : [왈츠]의 왕
    예술가의 생애
    - 브람스 :
    - 생상 : 동물의 사육제/삼손과 데릴라
    - 비제 : [카르멘]
    - 푸치니 : 라보엠/나비부인/토스카

    - 드뷔시 : [인상주의] 음악 창시
    - 시벨리우스 : 핀란디아
    - 거쉰 : 랩소디 인 블루
    9.서양음악 용어
    - 교향곡 : 4악장제, [소나타]형식, 최대규모
    - 교향시 : 19세기 [리스트]
    음악흐름의 바탕은 시상, 표제음악의 한 종류
    [단악장제]
    - 관현악 : 관악기+현악기+타악기
    - 협주곡 : 관현악 + 독주악기 - [카덴차]가 있다
    - 랩소디 : 일정한 형식 없고 환상적이면서 자유로운 곡
    리스트의 [헝가리광시곡]
    - [구상음악] : 자연의 구체적 소리를 녹음 편집 하거나 기계적 조작
    전자음악과의 혼합된 형태, [세퍼]주창
    - 녹턴 : [야상곡]
    - 레게 : [자메이카] 리듬앤드블루스
    - 무조음악 : 쇤베르크의 12음 음악
    조성거부/장조나 단조등에 의하지 않고 작곡
    - 오라토리오 : 종교적 악극, 성극
    헨델 [메시아], 하이든 [천지창조]
    - 오페라 : 희가극 - 희극 - 피가로의 결혼,세빌리아의 이발사
    정가극 - 비극
    오페레타 - 경가극
    악극 - [바그너]창시 - 트리스탄과 이졸데/니벨룽겐의 반지
    뮤직드라마..관현악으로 담화적 멜로디를 연주한다
    - 카논 : 어떤 성부의 멜로디를 다른 성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모방하면서
    뒤쫓아 간다
    - 카덴차 : 즉흥,기교,무반주. - [협주곡]에서
    - 표제음악 : 곡의 내용을 설명하고 암시한다.
    전원교향곡/사계
    - 푸가 : 대위법적 음악의 완전한 형식 [바하]
    10.우리나라 음악용어
    - 국악의 음계 : 궁상각치우/[평조],[계면조]사용
    - [내드름] : 내는 가락/처음 게시되는 부분
    - [다스름] : 연습곡
    - 더늠 : 판소리유파에 따라 계승되어 오는 특정한 대목 혹은 음악 스트일
    - 독공 : 득음하기 위한 발성훈련
    - [뜬쇠] : 남사당패 각 종목의 선임자
    - [꼭두쇠] : 우두머리
    - 뜬패 : 전문 예술인 집단
    - 두레패 : 직접생산자 집단 모임
    - 바디 : 판소리 한판의 전체적 짜임새
    어느 유파의 스타일
    - 3대 악성 : 박연/왕산악/우륵
    - 판소리 유파 : 동편제 - 씩씩,담담
    중고제 - 경기,충청
    서편제 - 부드럽고 애절
    - 향약 : 삼국시대 - 조선시대까지
    외래음악에 대해 기존 음악을 가리켜/아악과 당악에 대비
    - 아악 : 궁정용으로 쓰던 우리나라 고전음악
    고려예종때 송에서 받아들임
    조선시대 세종때 [박연]이 정리 - [여민락] - 용비어천가의 1-4장, 125장
    - 당악 : 당나라 음악
    아악이 궁중음악이라면 당악은 민속음악이다.

     

    국악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통론)

    국악과 화성

    국악 장단(리듬형)의 특징

    국악의 빠르기(Tempo)

    국악의 기준 음높이

    국악의 음계(선법)

    국악 악보

    국악 합주와 지휘자

    국악의 작곡자

    위대한 음악가 세종대왕


    국악곡과 연주형태

    흔히, 우리 한국 민족을 가리켜 슬픔과 한의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음악인 국악은 청승맞은 음악일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한마디로 잘못된 주장입니다.


    국악의 정악에는 슬픈 곡이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한 음악, 즉 슬픔도 결코 슬픔으로 표현하지 아니하는 음악이 바로 우리의 정악입니다. 그래서 정악곡은 계면조롤 된 곡 조차도 꿋꿋하고 화평정대한 느낌을 줍니다.


    반면 정악과는 달리 민속악에는 슬픈 느낌을 주는 곡이 대단히 많습니다.

    수심가, 육자배기, 흥타령...그리고 산조, 시나위...이러한 곡들은 정말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게 하고 애간장을 긁는 비곡(悲曲)들입니다. 그러니 이상한 것은 이러한 곡들은 슬픈 느낌을 주면서도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민족의 정서의 본질은 한이 아니라 흥(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심가나 육자배기같은 비곡을 들으면 신명이 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민족이 슬픔의 민족, 즉 염세적인 기질의 민족이었다면 어떻게 5천년동안 갖은 시련을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버틸 수 있었겠습니까?

    흥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한국민족의 기질은 낙천적인 기질인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 낙천적인게 문제가 될 정도입니다. 과거의 어려움을 너무 잘 잊으니까요. 진짜 슬픈 음악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같은 곡이라고 생각됩니다.

    눈보라치는 겨울, 실연당한 사나이가 정처없이 방랑길을 떠난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겨울나그네는 아무런 희망과 구원이 없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남도가락 흥타령은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면서도 아이고데고, 성화가 났네! 하면서 결코 정말에는 빠지지 않습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1. 국악과 화성

    '음의 높고 낮음의 조화'보다는 '음색의 조화'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우리 조상(동양인)들은 아무래도 화성을 소홀히 취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악에는 서양음악과 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화성이 없습니다. 단지, 가락과 가락이 만날 때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부차적인 의미의 화성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순전히 서양음악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악은 화성이 없는 원시 상태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논리는 정말 일방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음악인은 '국악은 화성이 없는 대신 리듬과 가락이 서양 음악보다 훨씬 잘 발달되어 있으므로 결코 서양음악에 뒤지는 음악이 아니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또 어떤 분은 '화성은 국악의 특징인 농현을 방해하는 요소이므로 오히려 화성이 불필요한 음악이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국악식 논리로 서양음악에 맞서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같아 객관적인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서양음악의 논리로도 무(無)화성의 국악을 옹호할 수 있는 객관적인 논리가 없겠느냐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혹시 그레고리안 성가를 아시는지요? 중세 서양의 기독교 음악말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 역시 무화성의 음악입니다. 그러나, 음악을 제대로 아는 분들 중에서는 무화성의 그레고리안 성가가 화성 음악보다 열등한(덜 발달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한 분도 없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독특한 양식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레고리안 성가에 화성을 붙이고 반주를 붙여 연주해 보세요. 더 좋은 음악이 되는가...


    우리 국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유니즌(unison)으로 된 합주음악인 '수제천'이나 '동동'같은 곡에 화성을 붙여 보세요. 색다른 음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더 나은 음악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국악은 화성을 향해 발전해 나가는(또는 발전해야 할) 과정의 음악이 아니라 이미 그자체로 완성된 음악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서양음악이 이 땅에 수입된 이후부터 대해 심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왔던 것 같습니다. 화성에 대한 지나친 숭배... 이것이 우리 전통 음악 발전을 크게 가로 막았던 것 같습니다.


    음악 교과서에도 아무런 비판과 단서도 없이 음악의 3요소는 '리듬, 가락, 화성'이라고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백대웅 교수 주장대로 화성이 없는 음악은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국악에 대한 열등 의식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성을 절대시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반대로 무시(배척)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수용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국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것은 새로 창작되는 신국악에 적용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화성법, 즉 '국악화성법'이 연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설픈 화성 수용은 오히려 국악을 망가뜨리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화성을 바탕으로 작곡한 신국악이 무화성이 전통 국악보다 훨씬 수준이 낮은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무화성이 음악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악음(樂音: 고른 음)은 자연배음(自然倍音)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령 솔(sol)이라는 음도 실제는 여러 음(자연배음)으로 이루어진 겹음(화성음)인 셈이니 유니즌은 엄격한 의미에서 무화성이 아니라 자연의 화성인 것입니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다'는 말의 의미가 갑자기 잡히는 듯 하군요. '인위적 화성이 있음은 곧 자연적 화성의 없음이요, 인위적 화성의 없음은 곧 자연적 화성의 있음이라!'

    이해가 가시는지요? 다소 궤변스러운 결론이 되겠지만 자연화성으로 된 우리 국악이야말로 우주적으로 열린 훌륭한 음악이 아니겠습니까? 이론가 법칙과 의해 만들어진 인공(인위)적 화성음악은 닫힌 답답한 음악이겠고...음악의 각자(覺者)가 된 기분입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2. 국악 장단(리듬형)의 특징

    국악의 장단은 서양 음악 장단(리듬)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중국, 일본과도 다릅니다. 대체적으로 국악 장단은 긴 것이 특징입니다(24박자로 기보되는 진양조 장단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긴 장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아리랑 같은 민요를 서양 5선보로 기보할 때 3박자로 기보하는 것보다 12박자로 기보하는 것이 더 정확한 기보가 됩니다. (그래야 노랫말이 더 잘 살아남)


    이것은 우리말 구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악 장단은 거의 예외없이 첫박이 센박(强拍)입니다. 세마치도 첫박이 장구장단으로 덩! 굿거리도 첫박이 장구장단으로 덩! 인데, '덩!'은 채편과 북편을 동시에 치는 합장단(合長短)으로 센박을 의미합니다. 반면, 국악에서 끝박은 여린박(弱拍)입니다. 이 역시 우리말의 특징에서 기인합니다(서양 음악은 정반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영어와 우리말은 어순(語順)부터 다를 뿐 아니라 영어에는 '전치사'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말에는 없으며 대신 '조사'가 있는데, 이러한 여러가지의 어학적 차이가 곧 음악적 차이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말이 다르면 음악도 다르다는 것인데, 이것은 말에서 음악이 발생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악곡 뿐만 아니라 기악곡도 그렇습니다(음악의 변천사를 보면 기악곡은 성악곡에서 비롯되었음. 특히 우리 국악에서 기악곡은 거의가 성악곡이 변한 것임). 예컨데 서양의 소나타 형식과 국악의 산조 형식을 비교해 보면 말의 구조와 음악의 구조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국악이 센박에서 시작해서 여린박으로 끝나게 되는 것은 우리말의 특징 때문이라고 했는데,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학교에 간다


    이 예문에 강세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예문에 음악을 붙이면 첫박이 센박이 되며, 끝박에 걸리는 '(ㄴ)다'는 종결형 어미에 해당하므로 약박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강세의 위치가 변할 수도 있겠지만)


    국악 장단의 또 한 가지 특징은 3박자 계통의 장단이 주종을 이룬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4박자 계통의 중국 음악과 전혀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 한 가지만으로도 국악은 결코 중국 음악의 아류가 아님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어떤 음악인은 2박자 계통의 장단은 본능적인 장단이며(맥박은 2박자 계통에 가까움), 3박자 계통의 장단은 문화적인 장단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3박자 계통의 장단이 주종을 이루는 국악은 우수하다는 논법을 내세우기도 했는데, 양쪽 음악의 우열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로의 특징을 찾아내는게 더 바람직하겠지요.


    그런데, 서양 음악 수입의 부산물로 생겨난 한국 가곡을 분석해 보면 이러한 국악 장단법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음악이라는 사실을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즉, 한국 가곡이 지나치게 서양 작곡기법에 의존하고 있는 비(非)한국적인 음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홍난파의 거의 모든 가곡 작품을 비롯하여 음악 애호가들의 많은 애호를 받고 있는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김동진의 가고파 등등...) 그러므로 한국가곡이 글자 그대로 진정한 한국의 가곡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말 가사의 특징에 맞는 장단법부터 충분히 검토되고 연구된 후 작곡이 이루어져야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국악 화성법 연구보다 훨씬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됩니다.


    국악 장단은 이처럼 독특하기 때문에 비슷한 음계를 쓰고 있는 이웃나라의 음악과 쉽게 구별이 됩니다. 아무튼, 독특한 국악 장단은 복잡미와 세련미에 있어서는 인도와 더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합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한국의 사물놀이패가 세계 타악기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바가 있습니다. 상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결론적으로 국악에서 장단에 대해서 만큼은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3. 국악의 빠르기(Tempo)

    국악(특히 정악)은 서양 음악에 비해 템포가 무척 느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서양 음악에서 아주 느린 Largo(라르고)의 1분간 메트로놈 속도가 대략 40정도인데, 국악곡 영산회상 상영산은 15~20정도 입니다. 두 배이상 느린 셈이지요. 그런가하면, 산조의 단몰이 악장은 반대로 서양 음악의 presto보다 빠릅니다. 결론적으로 국악의 템포 범위가 서양 음악보다 훨씬 넓다고 할 수 있겠는데,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 메트로놈의 템포 범위는 40~208정도이며, 국악의 템포 범위는 대략 15~230정도 입니다. (물론, 이 수치는 고정불변의 것은 아닙니다.)


    국악이 느린 것은 템포의 기준을 '호흡'에 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 서양음악은 '맥박'에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박(拍)을 beat, 또는 pulse라고 합니다. 두 단어 다 '고동(鼓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음악인은 국악을 폐부적(肺腑的) 음악, 서양음악을 심장적(心藏的) 음악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기막힌 정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폐부와 심장... 이것은 비단 음악에서만의 차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특징을 염두에 두고서 국악을 감상하신다면 느린 템포에 곧 적응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더욱이 요즈음처럼 빠른 시대에는 오히려 국악과 같이 느린 음악이 약(藥)이 될 것입니다. 생활도 빠르고 음악도 빠른 세상은 정말 사람 살 데가 못 될 것입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4. 국악의 기준 음높이

    상식적인 얘기지만, 서양음악에서는 440㎐의 음을 기준음고(표준음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1초동안 진동수가 440인 a(가)음을 기준음고를 정한 것이지요. 이 440㎐=a음을 국제고도(國際高度: international pitch)라고 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이것은 국제고도가 아니라 서양고도인 셈입니다.


    서양인들은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서 항상 자기네 것이 세계의 기준이며, 으뜸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디언들이 1만 5천년 동안이나 살아왔던 아메리카대륙에 대해서도 백인들은 그 대륙을 차지한 그 날부터를 아메리카 역사의 원년(元年)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인종만큼이나, 또 언어만큼이나 다종다양한 음악에 어떻게 국제고도란 것이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벨탑 붕괴로 인한 신(神)의 형벌과 은혜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라고 생각됩니다. 피아노가 악기의 왕이란 것도 순전히 서양음악적인 음악관(音樂觀)에서 생겨난 편견입니다. 피아노는 장점만큼 또 단점도 많은 악기이거든요.


    각설하고, 그럼 우리 국악에서는 기준음이 무엇일까요? 바로 '황종(黃鐘)'이란 음입니다. 그런데 국악에서 기준음인 황종은 크게 두 종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서양의 (다)음에 가까운 황종이고, 또 하나는 서양의 (내림마)음에 가까운 황종입니다. 앞의 것(c≒황)은 중국계 국악인 아악이나 당악의 기준음이 되며, 뒤의 것은 향악계 국악의 기준음이 됩니다. 그래서 국악기라도 편종․편경, 당피리 등은 향악기가 아니므로 으로 조율되며, 거문고나 대금같은 향악기는 으로 각각 조율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기준음 황종의 높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지만 이것은 우리나라가 과거에 중국의 영향권내에 있었으면서도 중국 음악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을 거부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름대로의 기준음인 을 사용해 왔던 것이지요.


    악학궤범에 의하면 기준음 황종은 잘 영근 기장알 1,200알을 담을 수 있는 부피의 대나무관(管)을 황종관으로 삼아 여기서 나는 음으로 정(定)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천생자연(天生自然)의 대나무에 천생자연의 물건을 담으면 근소한 차이의 길고 짧음과 용량(容量)의 많고 적음, 음의 높고 낮음, 중량의 가볍고 무거움이 모두 자연에서 나고 인공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중화음(中和音)이 나오가 대악(大樂)이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라고 합니다.


    다분히 철학적인 것 같습니다. 반면, 진동수까지 따져 기준음고를 정한 서양음악은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과학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음악은 철학적인 면과 과학적인 면 두 가지가 다 필요하지만 음악이 결국은 인간의 정서에 그 귀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좀 더 철학적인 면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나 판단됩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5. 국악의 음계(선법)

    아무리 국악에 대해 무지한 분이라고 할지라도 '궁상각치우'라는 5음 음계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음계와 선법은 그 개념상 구분이 애매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음계라는 용어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궁상각치우' 음계는 중국에서 들어온 것인데, 여러 예와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우리 조상들께서는 주체적 수용을 하여 한국식 '궁상각치우'를 만들어내었다고 합니다. (장사훈 교수의 주장). 이것을 알기 쉽게 5선보로 그려 보겠습니다.

    이와같이 (1)은 '솔'이 중심음이 되고, (2)는 '라'가 중심음이 되어 각각 다른 음계가 형성되는데, 앞의 것은 '평조' 음계, 뒤의 것은 '계면조'음계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 국악곡을 분석해 보면 이 두 가지 음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곡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각자 나름대로 체계화시킨 새로운 음계 이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인평 교수의 숫자 음계(선법) 등...)

    그러나, 문법을 몰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문학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듯이 음악 역시 그러하다고 생각됩니다. 즉, 음악학자가 아닌 이상 너무 이론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국악에서 평조음계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의 음계이며, 계면조는 애상적인 분위기의 음계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감상자에게 이론은 지나치게 독(毒)이 되지요. 감상자에게는 음악 그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요. 작곡가에게도 지나친 이론은 해(害)가 된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해박한 이론을 갖춘 작곡가는 작품을 잘 못쓰더군요.


    결론적으로 국악의 가락도 서양음악의 가락처럼 분명히 음계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론적으로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곳이 많은 것은 국악이 절대성 보다는 상대성이 강한 속성의 음악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국악 음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아록 싶은 분은 전인평 교수의 '國樂作曲入門(현대음악출판사)'과 백대웅 교수의 '한국전통음악의 선율구조(대광문화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국악이 5음음계의 음악이지만 그렇다고 항상 다섯개의 음만을 사용하는 음악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이 점은 서양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서양의 조성음악이 7음음계의 음악이지만 결코 일곱 개의 음만 사용하는게 아닙니다. 12음 모두가 다 사용될 수 있지요. 단지, 중점적으로 사용되는 음이 7음인 것이지요. 국악에서도 5음이 중점적으로 사용되고 (계면조에서는 3음이 중점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지만), 나머지 음들도 사용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7음음계의 조성음악보다는 5음음계의 우리 음악이 음정잡기는 더 까다롭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 만큼 도약 진행을 많이 하므로) 

     

     



    국악곡과 연주형태 6. 국악 악보

    '국악에도 악보가 있습니까?'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정말 한국인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한 마디로 우리의 국악 현실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질문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은 순서가 완전히 뒤바뀌어 우리 음악인 국악은 뒤로 제쳐 놓고 남의 나라 음악인 서양음악을 먼저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서양음악을 통해 음악에 입문(入門)하게 됩니다. 때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국악에 대해서 무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악 악보에 대해 무지함도 당연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서양의 5선 악보만 배워왔으니까요.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에는 국악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서 국악교육을 제대로 하는 학교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단소를 교육하는 학교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 바람에 우리 악보 읽기 교육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 음악의 훈민정음 정간보

    국악에 사용되는 악보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 중 서양의 5선 악보만큼이나 널리 사용되는 국악보가 바로 정간보(井間譜)입니다. 이 악보는 우물정(井)자 모양의 칸(間)에 율명(律名: 음이름)을 적어 넣는 악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정간보는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악보인데, 음의 높이와 길이를 동시에 나타낼 수 있는 유량악보(有量樂譜)로 동양 최초라고 합니다. 이 정간보가 발명됨으로 해서 우리는 요즈음도 500여년 전에 작고된 '여민락'같은 명곡을 감상할 수 있으니 정간보의 발명은 위대한 음악 혁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간보: 음악의 훈민정음이라고 할 수 있는 정간보,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의 전통 악보임.


    (2) 악보의 한계


    이처럼 음악을 기록할 수 있는 악보는 문자(文字)만큼이나 대단한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악보가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300년 전의 음악인 바하의 음악을 과연 감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악보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완벽한 것이 아닙니다. 악보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더 나아가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음들을 다 기록하기에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불완전한 것입니다. 극히 제한된 범위내의 음들만 기록이 가능할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악보는 계속 새롭게 보완(補完)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한계는 영원히 극복되지 못할 것입니다. 언어가 아무리 발달되어도 인간의 생각과 느낌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듯이...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는 악보로 옮길 수 없는 음악도 상당히 많은 것입니다. 특히, 즉흥성이 강한 음악이 그렇습니다. 우리 국악 중에서도 판소리나 시나위 같은 음악이 악보로 옮기기 대단히 곤란한 음악입니다. (꾸밈음이 비교적 적고, 현장성과 즉흥성이 적은 정악계통의 국악은 그렇지 않겠지만.) 이러한 음악은 악보로 옮기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옮겨도 모습은 있으되 생명이 없는 음악이 되고 맙니다. 마치 박제(剝製)된 새처럼.


    그래서 음악도 악보로 제대로 기록할 수 있는 음악과 그렇지 못한 음악으로 크게 양분(兩分)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국악은 정악을 제외하고는 후자, 즉 악보로 제대로 기록하기 곤란한 음악족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음악은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남실 수 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사실은 우리 국악에서 악보의 의미는 서양음악과는 조금 다릅니다. 즉, 국악에서 악보는 음악을(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음악의 윤곽을) 잊지 않기 위한 메모(memo)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훌륭한 음악은 국악처럼 제대로 악보로 기록이 안 되는 음악이라고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지만.) 도(道)를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이미 그것을 도가 아니라고 했듯이 음악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문자가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해도 대단히 중요한 것처럼. 다만, 악보를 너무 과신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3) 정간보와 5선 악보의 차이


    정간보나 5선보나 음악을 기록하는 악보라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점을 갖습니다. 그러나 국악과 서양음악이 다르듯 이 두 악보는 국악과 서양음악이 다른 것만큼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5선보는 음의 높낮이를 구별하기에 무척 편리한 악보입니다. 그래서 악보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최소한 어느 쪽의 음이 더 높고 낮은지는 음표의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ㄱ)보다는 (ㄴ)음이 더 높다는 것은 시력만 정상이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간보의 경우는 약간 사정이 다릅니다.

    이 경우 시력(視力)이 정상이라도 실력(實力)이 비정상이면 (ㄱ)음이 더 높은지, (ㄴ)음이 더 높은지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정간보는 한 칸에 음이름을 하나씩만 적어 넣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화음을 적어 넣을 수가 없습니다. (무화성의 전통국악에서는 화음 기보가 필요없긴 하지만.)


    반면, 정간보는 음의 길이를 읽는데는 5선보 보다 훨씬 편리한 악보 입니다. 정간보에서 한 칸은 무조건 한 박으로 세면 되니까요. 그러나 5선보에서는 무척 복잡합니다. 가령, 한 박 길이를 나타내는 음표의 경우 고정불변의 음표가 없이 박자에 따라 모두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4분음표(♩)라도 다음과 같이 박자에 따라 그 길이가 여러가지로 달라지는 것입니다.

    <♩의 길이 변화>


    이러하므로 숫자 계산에 약한 우리 한국사람들은 5선보에서 음표 길이를 익히는데 무척 애를 많이 먹게 됩니다.

    쉼표의 경우도 정간보쪽이 훨씬 편리합니다. 현재의 정간보에서는 △하나면 만사형통이니까요.


    (ㄱ)은 한박, (ㄴ)은 2박, (ㄷ)은 ½박을 쉬는 경우이지요. 그러니까 한 가지 모양으로 된 쉼표가 어느 위치에 놓이느냐에 따라 길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 5선보에서 쉼표는 음표만큼이나 복잡 다양합니다. 우선, 쉼표의 모양만 익히는데도 한참 걸립니다. 특히, 온쉼표와 2분쉼표는 초보자들에게 항상 혼란을 일으키는 쉼표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두 악보간의 우열이 아니라 특징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서양음악은 화성이 바탕이 되는 높낮이 중심의 음악이므로 5선보도 이러한 특징에 알맞게 만들어진 것이고, 국악은 리듬과 가락이 바탕이 되는 음악이니 정간보 또한 이러한 특징에 알맞게 각각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러한 차이는 음식물을 담는 식기(食器)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서양 식기는 대체적으로 넓적한 것이 많은 반면 우리 식기는 깊은 것이 많은데, 양식은 건조한 것이, 한식은 습한 것이 주종(主種)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식기는 음식물에 따라 그 모양이 결정되듯이 악보는 음악의 특징에 따라 그 성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악이 변하는한 악보도 계속 변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현대 서양음악에서는 매우 다양한 새로운 형태의 악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래서 5선보는 이제 고악보(古樂譜)가 되어가고 있을 정도입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7. 국악 합주와 지휘자

    국악 합주(오케스트라와 같은 개념의)에서는 한마디로 지휘자가 없습니다. 박이라는 악기를 치는 분이 지휘자 역할을 한다고는 하지만 시종일관 지휘봉을 휘둘러대는 서양 오케스트라에 비하면 집박은 지휘라고 할 수도 없지요. 그러므로 합주 단원들은 그야말로 눈치와 감(感)으로 음악을 맞추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국악은 박수(拍數)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템포가 느리고, 리듬 또한 무척 복잡하고 까다로운 곡이 많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국악 합주에사는 서로의 호흡과 템포를 맞추기 위해 본곡 연주에 앞서 별도의 곡을 연주하는데, 이것이 바로 '다스름(調音, 또는 治音)'이라는 곡입니다. (이 다스름은 독주같은 데서도 연주가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지휘자 없이 합주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피나는 훈련과 단원들간의 끈끈한 유대없이는 정말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의 우리 음악인들의 기량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시절에는 300명이 넘는 악사가 동원되어 대편성의 합주를 한 적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휘자 없이 어떻게 이런 합주가 가능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연습도 연습이겠지만 한국인 특유의 뛰어난 감이 이러한 연주를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런데, 요즈음 작곡된, 소위 신국악이라는 음악을 연주할 때는 서양 오케스트라처럼 지휘봉을 든 지휘자가 앞에 서게 되는데, 이것은 요즈음 국악 연주자들의 기량이 예전만큼 못하다는 점과 또 충분한 연습을 할 여유도 없이 많은 곡들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 현실적인 상황 등이 주된 원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것은 국악의 서구화의 한 단면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국악 합주의 묘미는 지휘가 아닌 집박에 있는 것 같습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8. 국악의 작곡자

    최근에 작곡된 신국악이 아닌 전통국악은 특정한 작곡자가 없습니다. 이 말은 국악은 작곡자가 없는 음악이란 뜻이 아니라 작곡자가 있지만 어느 특정한 개인에 의해 작곡된 음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전통국악은 오랜 세월을 통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거치면서 고쳐지고, 다듬어진 공동 창작의 음악인 것입니다. 그래서, 국악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며, 오랜 세월동안 변해왔고, 또 변해가고 있는 음악이므로 과거의 음악이면서 현재의 음악이며, 또한 미래의 음악, 즉 통시적(通時的)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전통국악을 '옛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 중의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바하나 모차르트의 음악이 옛 음악인 셈입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서양음악은 개인 창작의 음악이며, 그래서 일단 창작되면 고쳐지거나 다듬어질 수 없는 것이 원칙인 고정불변의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이 작곡했다고 하는 보태평과 정대업 같은 음악(오늘날의 종묘제례악)도 현재는 작곡 당시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의 음악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태평, 정대업은 이제 세종대왕 개인의 음악이 아닌 셈이지요. 이렇게 끊임없이 변해가는 전통국악을 철학적인 표현으로 '생성론적 구조의 음악'이라고도 합니다.


    국악곡의 형식 자체도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서양의 소나타 형식은 A에서 B로 갔다가 다시 A로 회귀하지만, 진양조에서 휘몰이 끝나는 국악의 산조는 A→B→C→D로 나아갈뿐 A로 결코 회귀하지 않습니다. 영산회상도 그래서 상영산에서 출발하여 다시 상영산으로 회귀하지 않고 군악에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전통국악은 서양음악에 비해 곡 수가 적습니다.(민속음악은 그렇지 않지만.)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음악을 한 묶음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전통국악은 별도의 작곡이라는 개념이 없이 연주와 작곡의 동시적인 개념에서 창작된 음악이므로 연주자와 작곡자가 분리되어 있는 서양음악에 비해 곡 수가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양 음악에서 연주자와 작곡자가 완전히 분리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지만.)


    전통국악에서 곡수가 적은 원인 중의 또 한 가지는 연주 쪽에 대한 큰 비중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유파(流派)가 생겨났던 것이며, 유파마다 연주법이 다르기 때문에 연주되는 곡은 실제 유파만큼 같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판소리 다섯마당도 실제로는 '5×유파수=곡 수'인 셈입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9. 위대한 음악가 세종대왕

    현재, 우리나라의 각 학교 음악실에 걸려있는 음악가 사진을 보면 바하, 모차르트, 베토벤 등 서양음악가 일색입니다. 드물게 우리나라 음악가 사진도 걸려 있긴 하지만 그 사진은 홍난파, 현제명 등과 같은 한국 국적의 서양 음악가 사진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음악가 사진은 전멸인 셈입니다. 정말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음악가를 외면하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 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는 내세울만한 음악가가 없기 때문에 바하나 베토벤을 우상으로 섬길 수 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습니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우리의 국악 역사 속에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음악가들이 많았습니다. 단지, 우리 후손들이 못나서 그런 분들을 알아 모시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지...

    특히, 판소리 쪽으로는 모차르트 이상가는 대천재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등.)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우리 국악 역사상 가장 큰 별은 세종대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서양의 독일 음악이 바하에서 비롯된다면 우리 한국음악은 바로 세종대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세종대왕은 위대한 음악가입니다.


    세종 실록에 의하면, 세종은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현악기인 금과 슬을 능숙하게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 후 임금으로 즉위하자 음악적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우리 국악 역사상 가장 찬란한 음악문화를 이룩하게 됩니다. 세종대왕의 주요 음악 업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중국계 음악인 아악을 박연으로 하여금 정리하게 하여 외래 음악 수용에 있어서의 주체성을 보여줌.

    ② 제례악(제사음악), 회례악(대신(大臣)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의식에 사용되는 음악)인 보태평과 정대업을 작곡하여 종래 중국계 음악 일변도에서 탈피하게 함.

    ③ 여민락을 작곡하여 음악을 통한 백성 사랑을 실천함. (비록, 여민락이 궁중에서만 연주되었지만.)

    ④ 동양 최초의 유량 악보인 정간보를 발명함.

    ⑤ 편종, 편경의 자체 생산을 가능케 함.


    물론, 이러한 훌륭한 음악 업적은 세종대왕 혼자만의 힘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세종대왕의 충신이었던 박연(1378~1458), 맹사성(1359~1438) 등과 같은 음악인들의 힘도 크게 한 몫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3대 악성(樂聖)중의 한 명인 박연은 대금의 명수였고, 세종대왕 밑에서 많은 음악활동을 한 분입니다. 특히, 박연의 음악에 관한 상소문은 그가 얼마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가를 생생하게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박연은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향악보다는 중국의 아악을 더 상위 개념의 음악으로 생각했던 사대적(事大的)인 음악관을 가진 분이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우의정 벼슬까지 지냈던 맹사성은 당시 향악의 최고 권위자 였다고 합니다. 임금은 충신을 만나야 하고, 신하는 성군(聖君)을 만나야 함은 음악사업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에 대해 더욱 감동적인 것은, 당시 대왕은 박연과 같이 중국사대주의적 음악관에 빠져 있었던 신하들에게 끊임없는 상소(上疏)를 받으면서도 결코 자신의 민족적인 음악관을 굽히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우리 음악 역사에 세종대왕 같은 음악가가 한 분만 더 계셨더라도... 우리나라 각 학교 음악실에, 아니 딴나라의 학교 음악실에까지도 우리의 위대한 음악가 세종대왕의 사진이 걸리게 될 날을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우리 후손들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국악곡과 연주형태 10. 국악곡과 연주형태

    우리 한국 사람은 절대적인 것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건을 사도 서너개, 또는 대여섯개 달라고 하지 정확하게 한 개면 한 개, 두 개면 두 개 식으로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즈음은 양상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이렇게 서너개, 또는 대여섯개를 달라고 하면 또 물건을 파는 가게 주인은 눈치껏 알아서 집어 줍니다. 더욱 심한 경우는 손님이 '두서너개'를 달라고 하는 경우인데, 이 때도 가게 주인은 능숙하게 알아서 잘 처리합니다.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그야말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지요. 서양인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일 것입니다.


    이성간에 연애를 할 때도 '싫고 좋음'의 감정표현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우리식 연애법입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갑돌이와 갑순이식의 비극적 사랑도 가끔 발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갑돌이 갑순이식 사랑은 무척 드문 경우이고 대부분은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부부가 되어 잘 먹고 잘 살았단다' 식으로 좋은 결과로 끝나게 됩니다.


    이렇게 완곡하고, 비(非)수학적이며, 은유적인 한국인의 기질은 음악의 연주 형태에서도 나타납니다. 국악곡은 서양음악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연주형태가 매우 애매모호합니다. 합주곡이 독주곡으로 연주되기도 하고, 성악곡이 기악곡으로 연주되기도 하는데, 서양곡에 비해 연주형태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국악곡을 통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져서 국악곡 중 최고의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산회상'의 경우는 연주 형태의 변화를 엄청나게 겪었던 곡입니다.


    조금 속되게 표현해서 국악에서는 곡 하나를 가지고 여러 연주형태로 삶아 먹기도 하고, 지져 먹기도 하고, 볶아 먹기도 하는 셈이죠. 서양 음악에서도 최근에는 어느 특정한 곡을 여러 연주형태로 편곡해서 연주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교향곡은 교향곡, 현악 4중주곡은 현악 4중주곡의 원래 연주 형태를 고수하는게 관례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연주형태로 편곡해서 연주해봤자 원곡만큼은 평가를 못 받습니다. 가끔 '무도회의 권유'처럼 원곡인 피아노곡 보다 편곡된 관현악곡이 더 높이 평가 받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러나, 국악에서는 연주형태가 달라져도 대등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렇게 국악곡에서 연주형태가 비교적 자유롭게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것을 싫어하는 한국인의 기질탓도 있지만 국악곡 자체의 음악적 특징에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예컨대, 국악곡에서는 합주곡이 독주곡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가장 빈번한데, 이러한 경우는 국악 합주곡의 각 파트가 독립된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국악은 화성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이 아니므로 합주곡에서 각 파트가 어느 특정파트에 매어 있지 않고 그 파트 나름대로 최대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가락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래서, 한 파트만 떼어서 연주하면 독주곡이 되고, 두 파트만 떼어서 연주하면 병주(2중주)곡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국악 오케스트라라는 각 파트의 개성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있으니 가장 민주적인 합주인 셈입니다. 더구나 각 파트가 개성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도 조화가 잘 되거든요. 

     

     재료에 따른 분류


    금 부(金部) 쇠붙이로 만든 악기

    편 종 | 특 종 | 운 라 | 방 향 | 자바라 | 나 발 | 징 | 꽹과리 

    석 부(石部) 돌을 깎아 만든 악기

    편 경 | 특 경

    사 부(絲部) 공명통에다 명주실로 꼰 줄을 얹어 만든 악기

    거문고 | 가야금 | 대 쟁 | 아 쟁 | 금 | 슬 | 향비파 | 당비파 | 월 금 | 해 금 | 와공후 | 수공후 | 소공후 | 양 금

    죽 부(竹部) 대나무로 만든 악기

    대 금 | 중 금 | 소 금 | 당 적 | 퉁 소 | 단 소 | 약 | 적 | 피 리 | 지 | 소

    포 부(匏部) 바가지로 만든 악기

    생 황

    토 부(土部) 흙으로 구워 만든 악기

    훈 | 부 | 나 각

    혁 부(革部) 통에 가죽을 씌워 만든 악기

    갈 고 | 장 구 | 좌 고 | 용 고 | 중 고 | 교방고 | 건 고 | 운 고 | 삭 고 | 뇌 도 | 뇌 고 | 영 도 | 영 고 | 노 도 | 노 고 | 진 고 | 절 고

    목 부(木部) 나무로 만든 악기

    태평소 | 박 | 축 | 어



    연주법에 따른 분류


    현악기 거문고 | 가야금 | 아 쟁 | 해 금 | 양 금

    관악기 대 금 | 소 금 | 퉁 소 | 단 소 | 피 리 | 태평소 | 생 황 | 나 발 | 나 각

    타악기 반주용 :장 구 | 좌 고

    농악용 : 꽹과리 | 징 | 장 구

    대취타용 : 자바라 | 용 고 | 징

    제례악용 : 박 | 축 | 어 | 특 종 | 편 종 | 특 경 | 편 경 | 절 고 | 진 고 | 노 고 | 노 도 |

    뇌 고 | 뇌 도 | 용 고 | 영 도



    글 : 임수철

    한국의 전통 음악은 지금에 '국악' 또는 '한국음악'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데 우리의 역사에서 생성되어 현재 남아있는 음악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 속에는 중국 쪽에서 들어온 음악이나 악기도 있고, 또 우리 민족이 직접 창작한 음악이나 악기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우리 것으로 수용된 것이기에 우리는 그 모두를 '전통음악', 또는 '한국음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전통 음악은 종적(從的)으로는 먼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의 큰 외국 음악과의 만남을 통해서 풍부해져왔고, 횡적(橫的)으로는 높은 왕실에서부터 낮은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 의해서 다양하게 발달되어 왔다.



    1) 과거의 분류방법(3분법)


    아악(雅樂) 중국 송(宋)나라에서 들어온 정악(正樂 : 아정(雅正)아고 정대(正大)한 음악)으로 조선시대에 박연이 정리했다고 하는 음악이다. 이 음악은 과거 우리나라 궁중의 각종 행사에 두루 쓰인 음악이었는데, 현재는 공자묘(孔子廟)에 쓰이는 제사 음악인 '문묘제례악'만 남아 있다.


    당악(唐樂) 당악 역시 중국(당(唐)나라, 송나라)에서 들어온 음악인데, 이 음악은 중국의 속악(俗樂) : 속된 음악, 대중음악이란 뜻)이다. 즉, 당악이나 아악이다 둘 다 수입된 음악인 것이다. 그러나 당악은 대중적인 음악이며, 아악은 공자의 예악(禮樂) 사상을 바탕으로 한 비(非)대중적인 음악이라는 점이 서로 다르다.

    당악은 고려 때 가장 많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는데, 현재는 보허자, 그리고 낙양춘(洛陽春) 두 곡만 남아 있으며, 이것마저도 완전히 국악화되고 궁중음악화되어 비대중적인 음악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악과 당악은 모두 국악으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향악(鄕樂) 향악은 중국음악과 반대 개념의 우리나라 음악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아악과 당악을 제외한 음악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지만, 향악 역시 모두 우리나라에서만 생겨난 음악은 아니다. 중국의 아악과 당악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서역(西域)의 여러나라를 통해 들어왔던 음악도 향악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서역에서 수입된 외래 음악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 음악화되었던 까닭에 향악에 포함시켰던 것이며, 오늘날에는 국악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2) 요즈음의 분류방법(2분법)

    요즈음은 일반적으로 정악과 민속악 두 가지로 분류한다.

    이 방법은 서양음악을 클래식과 팝음악으로 나누는 방법과 비슷하다.


    정악(正樂 : 아악이라고도 하는데, 이 때 아악은 넓은 의미의 아악이라고 함)

    정악은 '바른(正)음악'이란 뜻으로 궁중이나 상류 지식계급 층의 음악으로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기도 한다.

    정악

    궁중음악

    예전의 아악(좁은 의미의), 당악을 포함하여 여민락, 정읍 등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모든 음악

    풍류방음악

    양반, 선비사회의 사랑방을 중심으로 연주되었던 영산회상, 가곡, 가사, 시조 등과 같은 음악

    민속악(民俗樂 : 속악, 민악이라고도 함) 

     

     

    상고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 세 나라의 음악을 국악(Korean classical music)이라 한다. 곧 우리 민족의 고유성(固有性) 과 전통성을 지닌 민족의 음악이 우리의 국악이다. 국악이란 이름은 조선 말엽 고종때 장악원(掌樂院)에서 부터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외래 음악이 이 땅에 들어 오면서 서양음악에 대한 우리나라 고유한 음악이라는 뜻으로 국악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음악의 역사라는 것은 미술․문학․연극․무용 등의 예술문화는 물론 정치․경제․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음악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외부 세력의 침략과 끊임없는 항쟁으로 그 수난이 많았다 할 것이다. 더구나 고려․이조시대의 사대주의 사상에서 비롯된 역사의 어두운면에서 우리 음악은 너무나 고독했다. 당악이 들어오면 당악을 추종하고, 아악을 들여와 국가 대사에 사용하고, 향악보다 이들 음악만이 격조가 높은 양, 이것이 우리의 음악인 것처럼 착각하고 추종하여 번창 하였지만, 그 음악을 밑거름으로 더욱 우리의 음악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꽃피우려 했던 옛 음악인들이 있어 오늘날 우리의 음악을 알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외래의 그 어느 것보다 찬연한 음악으로 살아 있는 것이라 믿는다.


    긴 역사를 민족과 함께 생성되어 온 우리의 음악은 시대에 따라 아악(雅樂)․당악(唐樂)․속악(俗樂) 등의 명칭으로 분류된다. 향악이나 속악은 순수한 재래의 음악이라는 뜻이고, 주로 궁정이나 지식층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일반 민간에서 사용된 음악은 이 향악이나 속악의 범주 안에 들지 않는다. 고려시대는 향악 대신 속악이라는 말을 썼고, 조선시대엔 아악과 속악으로 크게 가르고, 속악은 당악과 향악을 동시에 지칭한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국악을 분류한다면 아악․당악․향악으로 가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겠다. 아악은 중국 송(宋)나라의 정악(正樂)을 말하는 것 으로 궁정에서 행하는 제사 및 연향(宴享)에 두루 쓰였다. 또한 당악이란 당나라 음악뿐만 아니라 송나라에서 들어온 중국의 속악을 총칭하는 이름이나, 그것을 한국식으로 고쳐진 동화(同化)되고 한국화된 것이 많기에 중국음악이라고 완전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이 당악에 대한 한국음악이 향악이라고 한다. 이 분류방법에 근래에는 판소리․산조․잡가․민요․농악 등을 묶어 민속악으로 그 분류에 넣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음악사를 상고시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갑오경장 이후의 근세의 음악으로 나누어 그 내용을 간략히 짚어 보기로 하겠다.

     

    근 세 1. 상고시대(上古時代)


    이전시대의 음악을 계승 발전시킨 삼국시대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가 제각기 고유한 국가체제와 문화를 형성하였던 3세기 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고구려에서는 거문고가 가야에서는 가야금이 창안되어 이 시대의 음악사를 주도했다. 또, 문화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 시대는 중국, 서역의 음악이 전래 되었고, 삼국의 음악이 중국, 일본에 진출하는 등 전례없는 국제교류시대가 전개되었다.


    고구려의 음악문화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일본서기(日本書記)』『수서(隋書)』등의 문헌자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악기 거문고는 『삼국사기』악지에 의하면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조하여 새악기를 만든 후, 이 악기를 위한 일백곡을 지어 연주를 하니 갑자기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므로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 붙였는데 훗날 '학'자가 빠지고 '현금(玄琴)', 즉 거문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연주되기 시작한 거문고는 독주 악기로, 또는 춤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음악사에 중요한 맥을 이루며 전승되고 있다. 또 중국 문헌인 『수서(隋書)』동이전에, 고구려에서는 오현금․피리․횡취(橫吹)․소(簫)․고(鼓) 등이 연주되었다고 전하는데, 일본에 전해진 군후, 횡적, 막목, 춤의 편성과는 달리 중국 전래의 외래악기가 포함된 것으로 고구려 음악의 전혀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이 밖에 서역에서 들어온 관악기 피리가 편성에 추가되므로써 풍부한 음향을 가진 새로운 고구려 음악이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서』와 『구당서(舊唐書)』등에는 중국 수(隋)와 당(唐)나라 때 중국 궁중에서 연주되던 각나라의 음악을 7부기(七部伎)․9부기․10부기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악이 포함되어 있어 이는 국제적인 음악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인 시기는 늦으나 5세기~6세기 사이에 중국 남송과 북위 등에 고구려악 못지 않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삼국 중에서 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되는 백제음악은 고구려 음악과 같이 군후․막목․횡적․춤의 편성으로 되어 있다. 특히 미마지(味摩之)가 오(吳)나라에서 배운 기악무(伎樂舞)를 일본에 전한, 이 기악의 가면은 일본 여러 절에 지금까지 보관 되고 있다. 이기악은 산대도감(山臺都監) 놀이 및 봉산 탈춤과 같은 가면무라고 한다.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국내에서는 고(鼓)․각(角)․공후․쟁․우․지․적(笛) 등 일곱가지 악기가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는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과 유사하다. 한편, 백제의 가요로 유명한 정읍사(井邑詞)가 있고, 곡목만 전해지는 방등산․무등산․지리산 등이 있다.


    신라의 음악문화는 삼국 중 중국과의 국제교류가 가장 저조했다. 가야국의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우륵(于勒)은 가야금을 위해 12곡의 가야금곡을 지어 가야금 시대를 열었다. 우륵이 지은 12곡의 가야금 곡의 제목은 대부분 현재 경상남북도의 여러 지명(地名)과, 이밖에 탈놀이 중의 사자춤과 관련이 있을 듯한 <사자기>라는 곡명, 구슬던지기 놀이의 일종인 <보기(寶伎)>라는 곡명으로 되어 있어 우륵이 향토색 짙은 각 지역의 음악 및 민간에 전승되는 놀이 등을 주제로 가야금곡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6세기 경에 신라에 수용된 가야금은 신라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신라악은 대부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편성이다. 통일 전의 <신열악>․<사내악>․<미지악> 등 고악(古樂)은 가야금을 수용한 이후, 곡이 세련되고 아정한 음악으로 바뀌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신라 음악사를 보면, 조상제사, 연희 등에 소용되는 음악을 위해 둔 것으로 해석되는 '음성서(音聲署)'라는 국가음악기관을 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근 세 2. 삼국시대


    이전시대의 음악을 계승 발전시킨 삼국시대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 가야가 제각기 고유한 국가체제와 문화를 형성하였던 3세기 경부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고구려에서는 거문고가 가야에서는 가야금이 창안되어 이 시대의 음악사를 주도했다. 또, 문화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이 시대는 중국, 서역의 음악이 전래되었고, 삼국의 음악이 중국, 일본에 진출하는 등 전례없는 국제교류시대가 전개되었다.


    고구려의 음악문화는 고구려 고분의 벽화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일본서기(日本書記)』『수서(隋書)』등의 문헌자료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악기 거문고는 『삼국사기』악지에 의하면 진(晉)나라에서 보내온 중국의 칠현금을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외형은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조하여 새악기를 만든 후, 이 악기를 위한 일백곡을 지어 연주를 하니 갑자기 '검은 학'이 내려와 춤을 추므로 '현학금(玄鶴琴)'이라 이름 붙였는데 훗날 '학'자가 빠지고 '현금(玄琴)', 즉 거문고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유래로 연주되기 시작한 거문고는 독주 악기로, 또는 춤 반주 악기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현재까지 우리 음악사에 중요한 맥을 이루며 전승되고 있다. 또 중국 문헌인 『수서(隋書)』동이전에, 고구려에서는 오현금․피리․횡취(橫吹)․소(簫)․고(鼓) 등이 연주되었다고 전하는데, 일본에 전해진 군후, 횡적, 막목, 춤의 편성과는 달리 중국 전래의 외래악기가 포함된 것으로 고구려 음악의 전혀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이 밖에 서역에서 들어온 관악기 피리가 편성에 추가되므로써 풍부한 음향을 가진 새로운 고구려 음악이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서』와 『구당서(舊唐書)』등에는 중국 수(隋)와 당(唐)나라 때 중국 궁중에서 연주되던 각나라의 음악을 7부기(七部 伎)․9부기․10부기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고구려악이 포함되어 있어 이는 국제적인 음악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지리적인 조건으로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인 시기는 늦으나 5세기~6세기 사이에 중국 남송과 북위 등에 고구려악 못지 않게 소개되기도 하였다. 삼국 중에서 일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측되는 백제음악은 고구려 음악과 같이 군후․막목․횡적․춤의 편성으로 되어 있다. 특히 미마지(味摩之)가 오(吳)나라에서 배운 기악무(伎樂舞)를 일본에 전한, 이 기악의 가면은 일본 여러 절에 지금까지 보관되고 있다. 이기악은 산대도감(山臺都監) 놀이 및 봉산 탈춤과 같은 가면무라고 한다.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국내에서는 고(鼓)․각(角)․공후․쟁․우․지․적(笛) 등 일곱가지 악기가 사용되었다. 이들 악기는 중국 남조의 청악(淸樂)과 유사하다. 한편, 백제의 가요로 유명한 정읍사(井邑詞)가 있고, 곡목만 전해지는 방등산․무등산․지리산 등이 있다.


    신라의 음악문화는 삼국 중 중국과의 국제교류가 가장 저조했다. 가야국의 성열현(省熱縣) 사람인 우륵(于勒)은 가야금을 위해 12곡의 가야금곡을 지어 가야금 시대를 열었다. 우륵이 지은 12곡의 가야금 곡의 제목은 대부분 현재 경상남북도의 여러 지명(地名)과, 이밖에 탈놀이 중의 사자춤과 관련이 있을 듯한 <사자기>라는 곡명, 구슬던지기 놀이의 일종인 <보기(寶伎)>라는 곡명으로 되어 있어 우륵이 향토색 짙은 각 지역의 음악 및 민간에 전승되는 놀이 등을 주제로 가야금곡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6세기 경에 신라에 수용된 가야금은 신라에서 크게 번성하였다. 당시 신라악은 대부분 가야금과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편성이다. 통일 전의 <신열악>․<사내악>․<미지악> 등 고악(古樂)은 가야금을 수용한 이후, 곡이 세련되고 아정한 음악으로 바뀌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또한 신라 음악사를 보면, 조상제사, 연희 등에 소용되는 음악을 위해 둔 것으로 해석되는 '음성서(音聲署)'라는 국가음악기관을 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근 세 3. 통일신라시대

    이 시대의 음악문화는 불교음악이 본격적으로 전래 되었으며, 궁중에서는 삼현삼죽(가야금․거문고․비파․대금․중금․소금)이 주축을 이루는 향악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신라고유의 향토음악 향악은 삼현삼죽과 박판(拍板)․대고(大鼓)․가(歌)․무(舞)로 이루어져 훨씬 다양하고 화려해졌다. 이는 서역의 악기 향비파, 당나라의 악기 박판․대고 등을 복합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상류사회 지식계층에는 거문고를 중심으로 한 금가(琴歌)의 문화가 맥을 이루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금가인 <풍입송>류의 음악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민간에서는 고대의 제천의식을 수반했던 국중대회의 전통이 팔관회(八關會)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한 이 시대의 특징으로 범패를 들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의식음악으로 830년 신라의 진감선사가 당나라에서 배워 옥천사에서 가르쳐 불교음악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신라의 향가는 진성여왕 2년(888)때 위홍과 대구화상이 편찬한 삼대목이란 향가집은 전해지지 않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처용가, 헌화가, 서동요 등 10여곡이 전해지고 있다.

     

     

    근 세 4. 고려시대


    고려시대의 음악사는 의종말년(1170)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는 고려조는 불교를 숭상하여 불교적인 행사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고, 전통적인 무격의식과 관련되어 면면히 이어온 것도 있다.


    전기는 향가와 화랑의 전통, 팔관회와 연등회 등 통일신라의 유풍이 강하게 전승되는 한편, 중국으로 부터 아악이 전래되어 향악, 당악, 아악의 전통이 정립되었다. 종묘 사직 등 국가의 중요한 제사에 사용된 중국 고대의 의식음악인 아악은 금․석․사․죽․포․토․혁․목의 팔음(八音)악기를 당상악(堂上樂;登歌)과 당하악(堂下樂;架)으로 구분 배치하여 율려(律呂)에 맞게 교대연주하는 독특한 음악이다. 뿐만아니라 여기에 악장과 춤이 반드시 따르는 악, 가, 무 총체의 음악으로서 동양에서는 일찍부터 가장 이상적인 음악으로 인식되어 왔다.


    당악은 악기나 춤에 있어서도 당악기․향악기 및 당악정재․향악정재라는 구분이 생겨나게 된다. 당악정재(唐樂呈才)는 방향․비파․생․당적․피리․장구․박 등이 당악기 반주 및 순한문으로 된 송사(宋詞)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당악의 핵심을 이룬다. 송나라에서 들어온 교방악(敎坊樂)․사악(詞樂)과 원나라의 일부까지를 포괄한 중국의 속악을 통칭한 당악은, 향악과 양립하여 쌍벽을 이뤄 좌우로 구분(양부악(兩部樂); 좌방악(左坊樂) - 당악, 우방악(右坊樂)-향악) 되었다.


    고려의 향악은 향악기 및 사뇌․삼국악․양부악의 전통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통일신라의 향악을 계승하였다. 중엽에는 동래에 귀양살이를 하던 중 거문고를 어루만지며(撫琴) 노래하였다는 <정과정(鄭瓜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곡(琴曲)이 출현, 이는 우리말 가사를 가진 조선조의 <진작(眞勺)>으로 이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후기에 들어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유풍이 점차 사라지고, 아악의 전통도 주변 정치상황에 기인하여 문란해졌다. 이 시기 음악문화는 전기에 수입된 아악과 당악이 고려 후기의 혼란기를 통해서 점차 쇠퇴해 가는 일면과 이런 사회상을 반영한 새로운 노래들이 대두된 것이 또한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당악은 쟁과 대고 대신 대쟁과 아쟁, 교방고가 쓰이고 새롭게 퉁소가 사용된다.


    고려후기의 향악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별곡(別曲)'의 출현이다. 별곡은 8장으로 된 <한림별곡>이나 13장으로 된 <청산별곡>의 경우에서와 같이, 여러장으로 된 긴 가사가 1장의 음악으로 반복되는 유절 형식의 장가(長歌)이다. 그외 <만전춘> <이상곡> <쌍화점>이 있다. 이러한 고려의 속악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이르러 그 가사가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는 이유에서 잡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그 음절은 조선 초기의 궁중음악에 차용됨으로써 그 음악적 내용을 후대에 전하였다. 의종이 무신(武臣)들에 의해 시해(1173)된 사건을 계기로 여러차례의 외침과 장기간의 천도로 악공이 흩어지고 아악기 손실 등 그 전승에 타격을 입어, 1371년, 공민왕이 아악서(雅樂署)를 신설, 아악복구작업을 일으켰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근 세 5. 조선시대


    고려 때와는 달리 불교 대신에 유교를 국교로 삼은 조선은 예악(禮樂)을 존중하여 이를 정치, 교육의 근본 이념으로, 건국 초에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를 설치하면서 조선조의 음악을 관장하기 시작하였다.


    1392년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까지 전기의 특색은, 숭유(崇儒)불교억제정책으로 연등회와 같은 불교관련 행사의 폐지, 아악의 일신 그리고 건국 개업을 칭송하는 <봉래의> <발상> <보태평> <정대업> 등 신악(新樂)의 창작을 꼽을 수 있다. 또한 음악제도 보존을 위해 성종 24년『악학궤범』9권 3책의 형태와 같은 악서가 발간된 것이다. 『악학궤범』은 음악역사 서술을 생략하고, 12율의 결정법, 등가악과 헌가악의 중심음 사용법, 악기 진설법, 춤의 진퇴작변(進退作變), 악기제조법과 조현법 등 음악의 실용성을 광범위하고 상세하게 기술하는 데 치중하였다.


    세종에 이르러 박연, 남급, 정양, 맹사성과 같은 이론가에 힘입어 음악 사업을 활발하게 벌여 아악의 부흥, 향악의 창작, 악보 창안, 간행을 하였다. 아악기 제작으로 악기를 자급자족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는데, 당시 중요한 악기제작으로 편경(編磬)과 편종(編鐘)을 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간보(井間譜; 매정간이 시간단위를 표시하는 유량악보) 창안 및 악보출간을 들 수 있는데, <정대업> <보태평> <치화평> <취풍형>등의 신악이 이 기보법에 의해 악보화되었다. 이는 다른 기보에 비해 싯가(時價)가 분명한 점이 장점이다.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는 속악보는 용비어천가를 가사로한 여민락 만. 문묘악 그리고 세조실록 악보에 전하고 있는 정대업․보태평 등이다. 성종대에 차츰 당악기는 향악에 편성되는가 하면 악기 개량도 보인다. 이러한 악기들은 박(拍), 월금(月琴), 당비파, 장고, 해금, 아쟁, 당적, 당피리, 태평소 등이다.

    향악은 『대악후보』 『시용향악보』 및 『금합자보』에 기보되었고, 특히 직업음악인이 아닌 선비들간에 애탄(愛彈)되었던 금곡 『금합자보』의 첫머리에 실린 평조의 <만대엽>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평조, 우조, 평조계면조, 우조계면조의 <중대엽>과 <삭대엽>을 파생하였다.


    광해군에서 고종말 (1910)까지의 조선후기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풍류음악의 발전, 일반 백성들의 생활감정을 표현한 민속음악의 발흥, 아악의 쇠퇴 등을 가장 두드러진 양상으로 꼽을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해 단절과 복구의 격동을 겪어 연향악 등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종묘제례악>은 점차 향악적인 색채를 상실하게 되어 향악도 아악도 아닌 독특한 음악으로 변모하여 등가 및 헌가에 향비파, 가야금, 거문고 등의 향악기들이 편성된 조선 전기와 달리 향악기들은 헌가에서 빠지는 등 차츰 향악의 요소가 배제되었다.


    임금의 거동에는 여러 형태의 고취악이 연주되었는데, 이는 전정헌가(殿庭軒架), 전정고취(殿庭鼓吹), 전부고취(前部鼓吹), 후부고취(後部鼓吹)등을 말한다. 행례에 사용되던 음악은 대개 여민락 만, 여민락 영, 유황곡, 정동방곡, 낙양춘, 보허자 등의 곡을 들 수 있다. 전정헌가와 전정고취가 전․후부고취와 다른점은, 전자는 거문고, 가야금 등 놓고 타야 되는 악기와 편종, 편경, 건고, 응고, 삭고 등 들고 다니기 어려운 악기로 편성되어 있어 일정한 장소에 위치하여 연주하는 형태이고, 후자는 행악(行樂), 즉 행진할 때 연주되는 음악형태로 주로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거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악기들이어야 된다.


    아정한 음악 또는 담백하고 복잡하지 않은 정악이라는 음악이 있다. 이는 전문음악이 아닌 선비들의 음악이라는 점에서 '금가'와 통한다. 정악의 또다른 뜻으로 그 명칭이 음률로 지칭되었던 예와 같이 노래를 수반하지 않는 기악곡을 가리키며, <영상회상> <여민락> <보허자> 등이 이 음률의 대표적인 곡에 든다.


    영조 무렵에 고개를 든 판소리(타령 또는 잡가)는 문헌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에 춘향가 200구(句)가 있고, 송만재(宋晩載:1769~1847)의 판우회에는 12마당이 들어있다. 그 중 현재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박타령), 수궁가(토끼타령; 별주부전), 적벽가(화용도)의 다섯마당만 전하고 배비장전 이하의 7곡은 가사 또는 곡을 잃었기 때문에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창자(唱者)와 고수(鼓手)와 함께 긴 이야기를 소리와 몸짓, 아니리(말체)로 끌어 가며 청중을 울리고 웃기는 대중음악이다. 소리나 아니리의 여러가지 표현에 맞는 동작을 취하는 것을 발림(科)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수가 북을 치며 "좋지", "얼씨구" 등 감탄사나 흥을 돋구는 말들을 간간히 하는데, 이것을 추임새라고 하며, 이는 장단을 정확하게 치는 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판소리 초창기 인물로 우춘대(禹春大)를 비롯하여 권삼득(權三得), 모흥갑(牟興甲)등을 꼽을 수 있고, 그 후에도 박유전(朴裕全), 염계달(廉季達) 등 헤아릴 수 없는 명창들이 많이 있다.


    이 판소리 외에도 조선후기의 민속악은 많은 분야가 새로 생겨났다. 즉, 서울지방의 잡가(12잡가), 절간에서 타락한 우바새(男)나 우바이(女)들이 절간으로 혹은 민가로 돌아다니면서 재주를 피우고 소리를 하는 사당패 음악, 남도 무악계의 시나위와 이 시나위에서 파생되어 점차 체계를 잡은 산조(散調) 등이 있다.


    그외 별곡과 함께 장가에 속하는 노래로 단가(短歌)인 가곡과 대조를 이루는 가사가 있다. 이는 음악중심인 가곡과 달리 사설이 중심이 되는 노래다. 시절가라고도 하는 시조는 가곡의 사설을 차용하지만 음악의 형식에 있어서 가곡처럼 5장이 아닌 3장으로 되어 있고, 1장의 박자수도 가곡보다 적어서 가곡을 단순화한 것이 바로 시조라 할 수 있다.

     

     

    근 세 6. 근세

    고종31년 갑오경장(甲午更張)이후 제국주의의 간섭과 침략으로 대한제국은 급속도로 붕괴의 과정을 밟게 되고, 이후 한일합방과 일제 식민지시대로 접어들면서 음악문화도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던 궁중음악은 왕실의 몰락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걸어야만 했으며 궁중음악에 종사하던 많은 음악인과 궁중연회에 참여하였던 무기(舞伎)들은 생업을 바꾸거나 새로이 생겨난 공연장에서 공연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는 왕실을 위한 의식음악(연향, 조회, 동가(動駕), 군례(軍禮)의 중단, 제례음악의 중지, 궁중음악인의 감소를 가져왔다. 갑오경장 직후만 해도 772명이나 되던 악사들은 차차 문화 말살정책으로 1917년에는 겨우 50여명만이 남게 되었다. 서양음악이 들어왔는가 하면 서양식 군악대가 창설되고 국악은 또다시 수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조선조 음악이 공연예술로 전환되는 시대적 변천과정을 겪으며, 『조선악개요(朝鮮樂槪要)』 『조선아악요람(朝鮮雅樂要覽)』 등 여러가지 악서의 출판, 경종보 대금보 피리보 당적보 해금보 아쟁보 단소보 현금보 등의 악보제작과 오선보로의 채보 음반취입 등의 작업이 이루어져 조선조의 음악전통이 현대로 전승되는 과도기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이왕직 아악부(雅樂部)의 전통은 해방 이후 후계자 양성을 위한 구황궁아악부로 존속하다가 1950년 국립국악원의 창설로 그 맥을 이었다. 조선조 중 상류층에서 애호되던 정악도 왕조의 몰락과 신분제도의 붕괴로 크게 위축되었을 뿐만아니라 새로운 공연형태를 통해 대중에게 파고들기 시작한 민속악에 밀려나는 위기를 맞아, 정악 애호가들이 정악의 융성을 통해 전통문화를 계승코자 1909년에 <조양구락부(調陽俱樂部)>를 결성하게 된다. 이는 최초의 사설의 음악기구라는 역사적 의의와 전통음악과 양악을 동시에 교육시키는 음악교육기관으로 평가된다.


    잡가는 오늘날 12잡가로 알려진 긴 잡가와 빠른 휘모리 잡가가 주류를 이룬다. 12잡가는 <유산가>, <적벽가>, <평양가>, <달거리>, <십장가>, <방물가>, <형장가>, <출인가> 등이며 휘모리 잡가는 <만학천봉>, <곰보타령>, <병정타령>, <맹꽁이타령>, <한잔 부어라>, <순검타령> 등이 있다. 특히 서울에는 잡가를 잘 부르는 '사계(四契)축 소리꾼'과 선소리를 잘 부르는 '오강(五江)의 소리꾼' 들이 있어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서울 노래의 맥을 이어 주었다.


    창극은 판소리의 새로운 변형으로서 현대국악사에 큰 의미를 지닌다. 판소리를 각 등장 인물별로 그 역을 분담하여 분창하는 양식으로 출현하였다. 이는 외래 공연양식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이 시기의 사회변화상을 반영하고 있다. 창극은 최초의 서양식 원형극장인 원각사에서 첫 선을 보였다. 판소리는 창극에 밀려 고유의 음악적 발전은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성악연구회> 결성 이후 판소리 명창들은 대규모 창극공연과 판소리 공연활동을 벌임으로써 남도음악의 전승을 공고히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에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1960년에 접어 들면서 국악원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활발해져 중앙의 대소 연주를 비롯, 지방순회연주, 국외의 파견 연주, 국가 의식의 연주악, 문묘 종묘 등 연례적인 제악 연주 및 TV 라디오 방송을 통한 각종 연주회를 연 백회이상 실시하여 국악 보급 활동에 전력을 다했다. 국립국악원은 아악이나 창작 국악 뿐만 아니라 민속악(民俗樂)부분, 즉 판소리 산조(散調) 민요(民謠) 민속무용(民俗舞踊)까지도 포괄한 범국악(汎國樂)의 종가(宗家)로 군림해 왔다.


    현재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노력들이 다양한 곳에서 벌여지고 있다. 국악인들의 끈질긴 집념과 60년대의 탈춤부흥운동, 70년대의 마당극, 풍물, 마당굿, 대동놀이 등 연희성을 띠는 연행예술운동의 진행으로 우리 음악의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되었다. 풍물의 대중화는 서양음악에 밀리는 국악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또한 김덕수 사물놀이패 등 우리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우리 국악을 세계속에 독특하고 훌륭한 음악으로 인정받게 하였다. 방송매체에서도 국악의 이론 등 다채로운 공연을 소개하고 있고, 이러한 폭넓은 활동은 현재 국악의 재평가, 정립으로 새로운 시도를 도모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 국악을 활성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모습은 국악의 해를 맞아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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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음악평론가협회 편, 음악평론, 문원문화사, 서울

     

    2005.11.24 08:52 |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