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질문하기

질문
666표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 및 사진 필요

666표에 대한 짐승의 숫자에 대한 개념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지혜로운 자는 그숫자를 세어보라 그 숫자는 사람의 수라고 하는데 그것이 이해가 않되고, 앞으로 침을 통하여

우리 사람의 몸 일부분에 그것을 맞는 날이 온다고 하는데 ... 그 칩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금바울 | 2012.10.23 21:20 수정됨 | 신고
  • 답변 7
  • 조회 0
연관 검색어

7개의 답변

답변
  • 짐승의 정체를 잃어버린 현대 기독교회




    짐승의 표에 대한 일반인들의 견해

    최근에 나는 요한계시록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그 곳에 모인 각종 교파의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서를 나누어 주었다. 그 때에 내가 받은 답변들은 대개 비슷한 내용들로서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짐승의 표는 식품의 가격란에 인쇄되어 있는 컴퓨터 바코드입니다."
    "짐승의 표는 앞으로 발행될 세계적인 크레딧카드 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아무도 매매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짐승의 표란 장차 전 세계를 통제할 정부의 컴퓨터 번호라고 믿습니다."
    "짐승은 벨기에에 있는 컴퓨터이고, 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질 666이란 숫자 입니다."
    "나는 그것이 컴퓨터와 관련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짐승은 사람들의 모든 사항을 간섭할 세계적 통치권자일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현재 진행중인 컴퓨터 시스템일 것입니다."


    짐승의 표에 대한 목사님들의 견해

    나는 각 교파에서 일하시는 목사님들은 짐승의 표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실까 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여러 교회 목사님들에게 직접 전화해서 그 분들의 의견을 물어 보았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화는 "짐승의 표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목사님들의 답변을 간추린 내용이다;


    A 교회 목사님
    질문: 짐승의 표란 무엇입니까?
    답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은 정부차원 의 기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질문: 컴퓨터 같은 것 말인가요?
    답변: 아마 그렇겠지요.
    질문: 목사님의 견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답변: 아니요.


    B 교회 목사님
    질문: 짐승의 표란 무엇입니까?
    답변: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사람을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질문: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3장에 짐승이 누구인지 좀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답변: 아니요.


    C 교회 목사님
    질문: 짐승의 표란 무엇입니까?
    답변: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은, 요한계시록은 역사적인 내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계시록에 나와 있는 많은 표상들과 상징들은 다니엘서에서부터 왔는데, 그러한 것들을 우리는 이미 지나간 역사적인 사실들로 해석해야 합니다.
    질문: 그런데 목사님,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표는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예, 요한계시록에는 역사적 사실 이상의 것들이 담겨져 있는 것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요.
    질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짐승은 컴퓨터일 것이라고 믿는 견해에 대해서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그것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생각입니다.
    질문: 그렇다면, 도데체 그러한 견해가 어디에서 왔단 말입니까?
    답변: 물론, 그것은 비밀 휴거설에 관한 공상 소설을 쓴 "할 린제이" 때문이지요. 당신도 그의 소설을 읽어보았다면 알겠지만, 그가 성경 구절을 계속해서 잘못 인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D 교회 목사님
    질문: 짐승의 표란 무엇입니까?
    답변: 저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이 컴퓨터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그것에 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해 주실 수 있나요?
    답변: 그냥 저는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 컴퓨터로부터 모 든 사람들이 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목사님의 생각에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전부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예.


    E 교회 목사님
    질문: 짐승의 표란 무엇입니까?
    답변: 장차 모든 사람들을 통제할 세계정부 입니다.
    질문: 어떤 세계적 지도자인가요?
    답변: 아직은 잘 모릅니다.
    질문: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일 것이라고 말하던데,
    정말 그럴까요?
    답변: 예, 그럴지도 모르죠. 현재 벨기에에는 "짐승"이라 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가 있습니다.
    질문: 약간 혼동이 생기는데, 조금 전에는 짐승이 사람일거 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짐승이 벨기에에 있는 컴퓨터일 가능성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답변: 저는 양쪽 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할 린제이의 책을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답변: 읽었습니다.
    질문: 그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변: 저는 그의 견해를 상당히 옳다고 생각합니다.


    F 교회 목사님
    질문: 짐승의 표란 무엇입니까?
    답변: 저는 다른 목사님들과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대부분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에 관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은 로마 교황권이며, 짐승의 표는 문자적인 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예, 저도 목사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예수 재림 직전에 등장하는 두번째 짐승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답변: 글쎄, 모르겠는데요.
    질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그것이 컴퓨터가 될 수 있을까요?
    답변: 아니요.
    질문: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것을 컴퓨터라고 생각할까요?
    답변: 왜냐하면 그들은 짐승의 표 장이라고 불리우는 요한 계시록 13장 예언의 의미를 성경 밖에서 찾아내려 고 애쓰기 때문이죠.


    현대 개신교회의 창시자인 종교개혁자들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에 대하여 그토록 분명한 견해를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왜 기독교회가 짐승의 표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확실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일까? 비록, 마지막으로 통화한 목사님이 짐승의 표가 마지막 때에 관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그 목사님의 답변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짐승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요한계시록 13장 예언의 의미를 성경 밖에서 찾아내려고 애쓰기 때문이죠."

     

    짐승의 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


    짐승의 표....... 말만 들어도 스산한 기분이 들게 하는 단어이다. 지구 종말의 마지막 독재 세력으로서 전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666에 대한 관심이 꽤 높은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들 나름대로 세상 종말의 시나리오에 맞추어서 적용하며 성경의 표현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요즈음에 만들어진 헐리웃의 영화들 가운데 짐승의 표 666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 몇 편의 영화들이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짐승의 표란 과연 무엇일까? 너무나 서로 판이하게 다른 해석들을 보고 들으면서, 과연 참된 성경적인 해석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는 짐승의 표에 대한 정체를 우리가 정말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는 것일까? 한마디로 잘라 대답한다면 "물론 할 수 있다"이다. 그 이유는 계시록 자체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기록하여 경고하셨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성경적인 해석을 알아 낼 수가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성경 자체가 그 예언을 해석하도록 하는 것이다. 지난날에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내려놓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맞추어 나가는 방법 택하는 것이다. 짐승의 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함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지나가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다. 이 점들은 독자들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겠다.

     

     1. 첫째로는, "짐승의 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 전에 그 표를 강요하는 짐승의 세력이 누구인지 그 짐승의 정체에 대하여 이해하는 일이다. 짐승의 정체에 대한 성경의 설명은 무시하고 짐승의 표를 강요할 세력에 대하여 마음대로, 또는 가상적으로 시나리오를 만드는 일은 비 성서적일 뿐만 아니라 상식적인 논리에도 맞지 않는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성경이 짐승을 누구로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짐승의 정체에 대한 예언에 나타나는 그 아홉 가지의 특징을 살펴보면 아무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정확하게 짐승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2. 두번째는, 짐승의 표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견해들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들이 종교개혁 사업을 할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문제를 성경적으로 이해한 것이 큰 힘을 주었지마는 또한 못지않게 그들의 개혁 사업에 힘을 가한 것은 그들이 이해한 짐승에 대한 성서적인 이해였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이 이 짐승의 정체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우리 선조들의 영감과 지혜를 배우는 확실한 길이다, 개신교회가 현재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 대 부분의 원칙들이 종교 개혁자들에게서 배워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3. 세번째는,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이 그 짐승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짐승 자체는 과거에서 부터 계속 존재해 오고 있는 한 세력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며, 나중에 나온 다른 한 세력이 그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주고 또한 표를 만들어 강요하는 일을 행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짐승을 미래에 나타날 어떠한 새로운 미지의 세력으로만 보려고 애쓰는 것은 성서적인 이해일 수가 없다.

     

    4. 네번째로, 컴퓨터의 바코드가 짐승의 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계시록 13장 자체가 짐승은 사람이며 또한 그 짐승의 표 666은 그 사람의 이름(혹은 공식 명칭) 속에 들어 있는 숫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사람이 아닐 뿐더러, 성경이 설명하고 있는 그 짐승의 정체에 대한 아홉 가지 특징 중 그 어느 하나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5. 다섯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 음모가 있다. 그것은 종교 개혁이 시작되자 성경만을 기초로 시작되는 개혁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다시 말하자면 개혁자들이 이해하고 있는 짐승과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한 진리를 뒤엎기 위하여, 이 짐승의 세력을 과거에 있다가 없어진 어떠한 세력이라고 해석하는 과거주의 해석법과, 또한 이 짐승이 앞으로 미래에 나타날 어떠한 신비한 세력이라고 말하는 미래주의 해석법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을 펼쳐온 알카잘 신부와(과거주의 해석법), 리베라 신부(미래주의 해석법)의 주장들이 요즈음에 와서는 개신교회들의 선조들인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을 뒤집어 엎고 나서 오히려 개신교회 안에서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퍽 궁금하다. 이번 호의 성경 예언 연구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성경의 예언을 해석하는 원칙과 합리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 예언은 우리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벧후 1:19) 읽는 모든 이들이, 짐승의 정체와 짐승의 표에 대하여 더 이상 의심 없는 확실한 성서적 이해를 갖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은 하나님의 권위를 완전하게 파괴하려고 노력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 13:1-7에 상징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을 주의 깊게 읽어보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요한계시록 13:1-7)

     

    위의 성경절이 뜻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하나님과 그분을 따르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용은 옛 뱀 즉 사단을 뜻한다(계 12:9). 짐승의 권세가 지구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만큼 강성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들의 이마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받게 된다(계 13:16). 이때 그 표를 받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 14:9-10에 묘사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또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요한계시록 15:1에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짐승의 정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게 부어지는 재앙과 고통이 요한계시록 16장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여기서 재앙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거론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 모두의 영원한 생명과 죽음이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짐승의 정체에 대해서 얼마나 열심히 연구해야만 할 것인가!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얼마나 진지하게 연구 해야만 할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한한 어떠한 추측이나 상상도 허용되어서는 않된다. 우리 모두는 위험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해 해야만 한다.

     

    많은 목사들이 이점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자신의 운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짐승이나 그 표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많은 목사들은 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짐승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우리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고 복잡한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짐승의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하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짐승의 위험에 대해서 경고해 주셨다. 짐승에 관한 문제는 우리의 생과 사를 결정할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짐승의 정체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므로 그냥 덮어두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은 마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러분들이 짐승의 표를 받으면 지옥불에 던지울 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나쁜 것이긴 하지만,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구태어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가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경고하시는 것이다.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도 역시 피할 수 있다

     

    상징적으로 묘사된 짐승
    •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고,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것이어야 한다. 짐승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예언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3:1-7에 나오는 짐승의 모습은 매우 이상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러가지 동물들의 복합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되며 상징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표범의 몸과 사자의 입과 곰의 발을 가지고 있는 동물을 본적이 있는가? 성경의 예언은 상징과 표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표현된 짐승을 통하여 어떤 무엇을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 짐승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추측이나 상상을 통하여 짐승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해서는 않된다.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 해석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성경 속에는 예언을 풀 수 있는 열쇠들이 이곳 저곳에 담겨 있다.

     

     물이 상징하는 의미
    • 짐승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된 표현은 모두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예를 들면, 짐승이 나타나는 장소로 표현된 물(바다)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성경은 성경 자체가 설명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요한계시록 17:15에서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천사가 내게 말하되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이와 같이, 예언에 나타난 상징적인 표현인 물(바다)을 백성 또는 사람들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에 나타난 물의 의미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성경 속에서 설명해 놓으셨다. 성경에서 물이 예언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었을 때에는 항상“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짐승들
    • 그러면 짐승과 관련하여 사용된 다른 상징적인 표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짐승의 정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 있는 다니엘서로 돌아가서 성경절과 성경절을 서로 비교하는 일이 필요하다. 성경을 연구해 본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이 둘은 손과 장갑처럼 서로 들어맞게 되어 있다. 다니엘은 요한이 받았던 계시와 유사한 계시를 보았다. 다니엘 7:2-3에 있는 장면을 살펴보자: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다니엘은 요한이 보았던 것처럼 상징적인 바다(물)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는 대신에
    네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앞에서 이미 물은 백성들이나 사람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짐승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이 성경을 설명한다는 원칙을 잊지말라. 다니엘 7장 17절에 정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어떠한 의심이나 의문을 제기할 여지없이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다. 예언에서 짐승들은 국가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신뢰해야만 한다. 오늘날, 독수리가 미국을 대표하고, 곰이 옛 소련을 대표하는 짐승으로 사용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오래 전에 다니엘을 통하여 장차 세상에 나타날 국가들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짐승들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에 대한 설명을 다니엘 7:33에서 좀더 자세하고 하셨다: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만일 네째 짐승이 역사에서 네번째 제국을 대표한다면, 나머지 세 짐승, 즉 첫째, 둘째, 셋째 짐승은 첫째, 둘째, 셋째 제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서 잠깐 멈춰서, 다니엘 시대로부터 오직 4개의 큰 제국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짐승에 관한 예언의 해석이 좀더 간단하고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다니엘 시대로부터 4개의 대 제국이 떠올랐다가 사라져간 역사를 되돌아 보면, 다니엘의 예언과 세계사를 잘 접목시킬 수 있다. 이들 제국의 이름이 다니엘서의 다른 곳에서 여러번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니엘 8:20-21과 다니엘 11:2에서 제국의 이름들이 나타나 있다. 또한 다니엘 2장에서는, 4개의 제국이 바벨론의 왕인 느브갓네살의 꿈에 나타난 거대한 신상에서 4개의 서로 다른 금속 종류로 상징되어 있는데, 그 이름은 바벨론, 메데 페르시아(메데 바사), 그리스(헬라), 그리고 로마이다. 바벨론은 메데와 페르시아의 동맹군에게 멸망당하고, 메데 페르시아는 그리스(헬라)에게 망하였으며, 그리스는 로마에게 멸망당했던 역사를 우리는 세계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사에 나타난 4개의 제국들
     

    (이 부분은, 생애의 빛에게 발간하는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2호에 기재한 다니엘 2장의 금신상에 대한 예언 해석을 공부한 다음에 읽으시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살아남는 이들 2호를 원하시는 분들은 생애의 빛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 7장의 첫번째 짐승

    첫번째 짐승은“사자와 같은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다니엘 7:4. 다니엘 2장에 나오는 신상에 관한 예언에서 바벨론은 금으로 만든 머리로 상징되었다. 바벨론을 사자와 금으로 묘사한 것은 매우 적절한 상징을 사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벨론은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면, 사자에 독수리의 날개가 달려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독수리 날개는 성경의 예언에서 신속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하박국 1:6-8). 세계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바벨론이 매우 신속한 속도로 세계를 재패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두번째 짐승

     • B.C. 606년부터 B.C.538년까지, 바벨론은 굉장한 세력을 온 세계에 행사하였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났다. 다니엘이 보았던 두번째 짐승이 일어났던 것이다:“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다니엘 7:5. 바벨론은 B.C.538년에 메데-페르시아(메데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서 순식간에 무너졌는데, 이로서 두번째 대 제국이 등장하게 되었다.

    곰의 모습이 묘사될 때, 몸의 한쪽이 들린 것으로 표현된 것은 메데보다 페르시아의 힘이 강했던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 두개의 강대국은 서로 힘을 합해서 세계를 지배했었다. 곰의 입에 물고 있는 세개의 갈빗대는 대제국을 구성하고 있던 세개의 지역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벨론, 리디아, 이집트.

     

    셋째짐승

    • 역사의 주인이 바뀌는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B.C.331년, 메데와 페르시아가 무너지고 세번째 제국이 등장했다. 다니엘의 예언은 이 사건을 이렇게 표현하였다:“다른 짐승 곧 표범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가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다니엘 7:6. 지나간 세계 역사는 메데-페르시아의 뒤를 이어서 군림하는 초강대국으로써, 그리스를 지목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의 동쪽으로부터 서쪽까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발아래에 굴복시켰다.

    표범이 가지고 있는 네 날개는 알렉산더 대왕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세계를 점령해 나간 모습을 상징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25세 때에 그리스의 왕이 되어서 8년만에 세상을 정복하였으며, 인도의 간지스 강까지 가서 더 이상 정복할 나라가 없다고 하여 강을 바라보면서 말잔등에서 울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정복하였지만 자기 자신을 올바로 절제하지 못했다.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술로 인한 방탕함으로 인하여 절명하였다. 그의 죽음과 동시에, 그리스는 알렉산더 휘하에 있던 네명의 장군(탈러미, 캇산더, 리시마커스, 셀류커스)에 의해서 4개의 국가로 분리되었다. 표범의 머리가 넷으로 상징된 것은 알렉산더의 제국이 4개의 국가로 나뉘어질 것이라는 운명을 묘사한 것이다. 이로써, B.C.168년에 그리스 제국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짐으로써, 예언에 나타나 있는 세번째 짐승까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무서운 네번째 짐승

    •  다니엘 7:23에 나오는“네번째 짐승은 땅의 네째 짐승인데”라는 네번째 짐승에 대한 예언에 우리 모두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한다. 다니엘은 그의 계시 가운데서 바다로부터 올라오는 첫째, 둘째, 셋째 짐승을 모두 보았지만, 어떤 짐승도 네번째 짐승처럼 무섭고 놀랍지는 않았다. 성경은 네번째 짐승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 본 네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다니엘 7:7

    우리는 이미 네째 짐승은 철의 군주국가인 로마를 가리킨다는 사실을 배웠다. 오늘날에도, 로마가 잔혹한 압제와 강력한 힘으로 세계를 주름잡았던 흔적과 역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처럼 강력했던 국가도 정해진 운명의 시간이 되자, 열 조각으로 나뉘어졌던 사실을 다니엘 7:24에서 보게 된다:“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뿔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해석해 주셨다. 역사는 로마가 열개의 분리된 국가로 나뉘어졌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열나라

    •  유럽의 북쪽으로부터 여러 부족들이 로마가 약해진 틈을 타서 공격해 내려와서 서부 유럽 지역을 휩쓸었으며, 결국 로마는 열 조각으로 분리되게 되었다. A.D.476년에 로마가 멸망하게 됨으로써, 예언은 다시 한번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이로써, 다니엘 2장의 거대한 금신상의 열 발가락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A.D.476년에 로마를 분열시킨 열개의 부족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앵글로 색슨, 프랑크, 알레마니, 벌건디언, 반달, 수에비, 동고트, 서고트, 헤룰리, 롬바르드. 이들 중의 7부족은 오늘날까지 현대 국가의 형태를 유지한채 존재하고 있다. 이들 일곱 부족은 유럽 지역에서 아직도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현대국가로서 살아남았으며, 나머지 세 부족은 역사의 장에서 사라졌다.

     

    작은 뿔 = 적 그리스도 세력

    • 지금까지 설명한 4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이해했으면, 다음에 나오는 예언으로 넘어갈 준비를 갖춘 것이다. 다니엘에서 작은 뿔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자. 다니엘 7장은 작은 뿔의 정체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다니엘 7:8, 24-25는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또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들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다니엘 7:8.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다니엘 7:24-25. 여기서, 우리는 매우 조심스럽고 주의깊게 이 예언에 접근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 작은 뿔의 세력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에 있어서 추호의 실수나 잘못을 범하면 안되는데, 그 이유는 작은 뿔은 역사 속에서 활동해온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니엘서의 예언 가운데에 기록되어 있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9가지 특징들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에 설명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특징들은 우리 모두에게 이 문제에 대해서 확고부동한 확신을 줄 것이다. “작은 뿔”에 대해서 말해주는 예언과 역사는 우리 모두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해서 상상하거나 추측할 여지를 완전하게 없애준다.

     

    작은 뿔의 정체를 밝혀주는 9가지 증거

     

     첫째: 작은 뿔이 등장하는 지리적인 위치는 서부 유럽이다. “열 뿔이 있으므로 내가 그 뿔들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among them) 나더니.”다니엘 7:8. 무엇보다도 작은 뿔은 열 뿔 가운데서 나타나야 한다. 그러므로 작은 뿔은 지리적으로 서부 유럽에서 나타나야만 한다.

    둘째: 작은 뿔은 열 뿔보다 조금 늦게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작은 뿔은 이미 존재하는“열 뿔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열 뿔(국가)이 A.D. 476년에 일어났으므로, 작은 뿔은 열 뿔이 나타난 잠시 후에 그 세력을 얻어야 한다.

    셋째: 작은 뿔이 강성해졌을 때, 그것은 세 뿔(세 국가)을 뿌리채 뽑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다니엘 7:8은 이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넷째: “작은 뿔에는 사람(a man)의 눈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다니엘 7:8. 이것은 어떤 한 사람(a man)이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다섯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다니엘 7:24. 이것은 작은 뿔이 먼저 일어났던 정치적인 왕국들과는 다른 종류의 세력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여섯째: 다니엘 7:25절의 앞부분에서 작은 뿔에 대한 또 한가지의 특성을 공개하고 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요한계시록 13:1-7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한 예언인데, 거기에는 작은 뿔의 이러한 특성이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요한계시록 13:5. 성경에서“참람된”이라는 말은, 자기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누가복음 5:21)과,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 놓는 것(요한복음 10:33), 이 두가지 경우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자신과 하나님이 하나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참람되다고 말하면서 향하여 돌을 던지려고 하였다(요한복음 10:30-33). 또한 예수께서 문둥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죄를 사하는 권세를 나타내시자 예수께 참람되다는 말을 하였다(마가복음 2:5-7). 물론 예수께서는 참람된 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한다면, 그에게야 말로“참람”이라는 말이 적용되어야 한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세력이“하나님을 대적하고 참람된 말을”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곱째: 다니엘 7:25에는 적그리스도 세력에 대한 또 하나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괴롭게 할 것이며.” 작은 뿔은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력을 의미한다.

    여덟째: 다니엘 7:25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을 보게 된다: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작은 뿔이 하나님의 법을 변경할 것이라는 예언에 대해서 주의를 집중시켜 보자. 작은 뿔의 이러한 움직임은 하나님의 법이 어떤 인간들에 의해서 변경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아홉째: 작은 뿔에 대한 마지막 증거로서 다니엘 7:25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작은 뿔이 지상에서 정확하게 얼마나 오랫동안 권세를 누릴 것인지에 대한 예언적인 기간이 나타나 있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여기서 우리는 매우 이상한 표현을 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기간적인 예언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으로써, 성경 자체에서 이 기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찾을 수 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낮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요한계시록 12:14. 이 예언과 동일한 예언이 같은 장의 조금 위에 나와 있는데, 여기서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말 대신에 일천 이백 육십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 있더라.”요한계시록 12:6. 이 두 성경절을 비교해 보면, 이 두 예언적인 기간이 정확하게 같은 기간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과 동일한 기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다니엘 11:13에 나오는“몇 때 곧 몇 해 후에”라는 말씀에서, “때(time)”는“해(year)”를 의미하는 상징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년+2년+반년, 즉 3년 반이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일이며, 또한 이것은 3년 반을 가리키는 예언적인 기간이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1260일(물론, 이것은 성경의 유대력에서 1년은 360일 임을 근거로 한 것임).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예언 해석의 원칙을 적용해야만 하는데, 그것은 하루=일년이라는 상징적 + 기간적인 예언에 대한 해석 법칙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루는 일년을 대표한다고 말씀하셨다:
    “일일이 일년이니라.”에스겔 4:6.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민수기 14:34. 이러한 법칙은 어떤 정해진 예언적 기간이 상징으로 되어 있을때 반드시 적용해야 하는 예언 해석 원칙이다. 그러므로 작은 뿔이 큰 권세를 가지고 성도를 핍박하는 기간으로 예언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26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한 때와 두 때와 반 때=3년 반=1260일은 모두 1260년을 의미하는 예언적인 기간 임).

    예언 해석을 위한 3가지 원칙

    1. 성경은 성경을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알고자 하는 예언의 상징적 표현이나 비유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가를 찾아보고, 기도와 상식적인 판단을 통하여 그 의미를 파악한다.

    2. 예언을 나타내고 있는 표현이 상징인지 또는 실제인지를 전후 문맥을 통해서 구별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상징일 경우에는 그 의미를 풀 수 있는 열쇠들을 성경 안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3. 성경에서 기간을 나타내는 예언은, 하루는 상징적으로 일년을 의미한다.

     

     

    예언에 나오는 상징과 그 의미

    여자: 하나님의 교회 - 호세아 2:19-20, 이사야 54:1-8, 에스겔 16:8-14,
    예레미야 6:2, 고린도후서 11:2, 에베소 5:21-23

    한 때: 일년 - 다니엘 11:13;4:16, 32
    마흔 두달 1260년 민수기 14:34, 에스겔 4:6(기간을 나타내는 예언에서 상징적 하루는 일년이므로, 42달=3년 반=한 때와 두 때와 반 때=1260일은 모두 1260년을 나타냄)

    물: 사람들, 백성들 - 요한계시록 17:15

    바람: 전쟁 - 예레미야 25:32-33; 49:36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 요한복음 1:29

    용, 옛뱀 마귀, 사단 - 요한계시록 12:9

    짐승,뿔 나라, 세력, 왕권 - 다니엘 7:17, 24

    독수리: 날개 신속함 - 하박국 1:6-8

     

    작은 뿔이 카톨릭 교회인 9가지 이유

     

    예언의 정확한 성취

    다니엘 7장에서 작은 뿔의 세력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이 9가지의 특징을 모두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세력을 찾아야만 한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에 대한 9가지 특징을 모두 만족시키는 세력은 역사를 되돌아 볼 때에 오직 한 세력 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 7장에서 작은 뿔에 대한 세력을 연구하는 사람마다 모두 동일한 결론을 얻을 수 밖에 없도록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을 기록해 놓으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성경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마다 작은 뿔의 정체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정확한 이해를 소유하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오직 카톨릭 교회만이 모든 면에서 다니엘 7장에 나타난 작은 뿔의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카톨릭 교회의 과거 역사를 비교해 보면, 하나님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카톨릭 교회를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로 지목할 수 밖에 없는 9가지 증거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자:

     

    작은뿔: 로마 카톨릭 교회 - 그 이유 9가지

    첫째 증거: 카톨릭 교회가 생성된 지리적인 위치가 정확하게 예언과 일치한다. 교황권은 서부 유럽에서 발생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시에서 일어났다.

    둘째 증거: 카톨릭 교회가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역사적인 연대가 정확하게 예언과 일치한다. 카톨릭 교회는 로마 제국이 열 나라로 나누어진 A.D.476년 이후에 출현하였다. A.D.538년에 저스티니안 황제는 로마 교회(Church of Rome, 카톨릭)에게 막강한 권세(종교, 정치, 군사)를 주기로 선포하였는데, 이것은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서 그 연대가 증명될 수 있다.

    셋째 증거: 교황권이 일어났을 때, 교황권은 로마 제국이 열 뿔(열 나라)로 분리되면서 일어난 열 뿔 중에서 특히 세 뿔(세 나라)들에게 강력한 반대를 받았는데, 그들은 아리안 족인 동고트, 헤룰리, 반달족이었다. A.D.538년, 저스티니안 황제가 포고령이 발표된 즉시, 로마 교회의 군대는 이 세 국가를 뿌리채 뽑아버림으로써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시켰다.

    넷째 증거: 카톨릭 교회는 피라밋 형태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교회로서, 교황을 최고의 위치로 섬기고 있다.

    다섯째 증거: 교황권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정치적인 왕국들과는 다른 종류의 권세를 가지고 있었다. 교황권은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조직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전에 있던 어떠한 제국들과도 다른 종류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여섯째: 여섯번째 특징은“지극히 높은 자”(하나님)에 대하여“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것이다. 과연, 교황권은 이러한 작은 뿔의 특징을 만족시킬까? 카톨릭 교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카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크고 참람된 말을 들어 보라. 로마에 있는 교황권에서 발행했으며, 카톨릭 교회 백과사전에 의해서 인정받고 있는 책인 Prompta Bibliotheca Cononica Juridica Moralis Theologica 에 기재되어 있는 루실 페라리스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교황은 너무나 위엄이 있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교황은 지상에서의 하나님이시며, 왕중의 왕이시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Vol. VI, p.25-29. “성경에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모든 명칭들과 그분이 최상권에 관한 모든 것들은 모두 다 교황에게도 적용된다.”Bellarmin, On the Authority of Councils Vol. 2. 이 외에도 성경에 참람되다고 선언하는 수많은 주장들이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속에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러한 교황권의 주장이야말로 작은 뿔에 대한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일곱번째 증거: 우리는 지나간 역사 속에서 교황권이 수백만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순교시켰던 무서운 역사의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에 대한 역사적인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수백만명의 성도들이 교황권에 의해서 주도된 종교 재판을 통하여 잔혹하게 죽어 갔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천주교회의 한 주교에 의해서 기록되었으며, 카톨릭 교회의 인가를 얻어서 출판된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카톨릭 교회는 ... 무서운 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오류와 직면하게 되면, 교회는 힘과 육체적 형벌과 고문의 수단을 사용해야만 한다. 교회는 종교 재판과 같은 재판정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국가의 법이 교회를 지원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 특히, 교회가 16세기 때에 개신교도들에게 행하였던 것과 같은 것들이 재현되어야 한다 ... 프랑스의 프란시스 1세와 헨리 2세 그리고 영국의 메리 튜더 왕가 당시에, 교회는 이단자들을 고문하였다.”The Catholic Church, The Renaissance and Protestantism, pp. 182-184.

    우리는 카톨릭과 개신교회 양측의 역사가들로부터, 교황권이 개신교도들을 고문하였던 이같은 종류의 기록들을 수없이 얻을 수 있다. 이제, 다니엘 7:25에 나오는 작은 뿔에 대한 예언의 완벽한 성취를 입증하는 여덟번째 증거로 넘어가 보자.

    여덟번째 증거: 다니엘 7:25는 작은 뿔이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시키는 시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작은 뿔에 대한 이 예언을 교황권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 문답과 교리 책에서 두번째 계명을 제거하였는데,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두번째 계명은 그들이 숭배하는 마리아 상이나 각종 성자들의 상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2번째 계명을 빼어버리는 대신에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으로써, 10개의 계명을 가진 십계명의 형태만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십계명을 이렇게 변경시킴으로써, 카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십계명에는 우상 숭배에 대한 계명이 없고, 대신에 탐심에 대한 계명이 두개로 늘어났다. 교황권이 이토록 하나님의 법을 변경시키고자 노력했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법은 변경되지 않은채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하나님의 법은 결코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아홉번째 증거: 다니엘 7:25는 작은 뿔 세력이 1260년 동안 지상에서 권세를 휘두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도 교황권에게 정확하게 이루어졌는가? 이 예언의 성취를 확인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지나간 역사를 들추어 보아야만 한다. A.D.538년, 저스티니안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교황권에게 막대한 권세가 부여되었다. 이 때부터 1260년의 시간을 내려가면 1798년이라는 역사적인 해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 해에 프랑스의 버티어 장군은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가서 교황을 그의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교황은 프랑스의 감옥에서 병으로 죽었으며, 교회의 모든 재산은 몰수되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결코 로마 교회의 차기 교황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당시, 온 세상은 카톨릭 교회가 이제는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A.D.538년으로부터 시작된 1260년의 예언은 A.D.1798년에 교황과 로마 교회가 붕괴됨으로써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로마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 정치적, 종교적 권세를 잃어버렸다. 이리하여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에 관한 9가지 예언이 도무지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카톨릭 교회에게 성취된 모습을 확인하였다. 작은 뿔에 대한 9가지 예언을 정확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세력은 오직 카톨릭 교회 외에는 없다.

     

    작은뿔과 요한계시록의 짐승은 동일한 세력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작은 뿔에 대한 예언을 공부하면서,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동일한 세력인가? 아니면 서로 다른 세력을 말하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이상하고 복합적으로 생긴 짐승을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13:1-2에는 표범의 몸과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는 이 짐승의 모습이 나오는데, 5절에는 다음과 같은 눈에 익은 표현이 나온다:“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도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절의 나머지 부분을 계속해서 읽어보자.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42달 동안 권세를 휘두를 것이라는 이야기는 우리들이 다니엘 7장에서 배웠던 기간 예언에서 공부했던 것이 아닌가? 한 때 두 때 반 때=3년 반=42달=1260일, 그런데 기간을 말하는 예언에서 하루는 일년이므로 1260일은 1260년으로 해석해야 되는 예언 해석 원칙이 기억나는가? 마흔 두달은 1260년에 대한 다니엘 7장의 예언과 동일한 예언이다. 7절에는, 짐승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또 다른 정보가 나와 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이 짐승 역시 성도들을 핍박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과 다니엘 7장의 작은 뿔은 동일한 세력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니엘 7장에 작은 뿔로 상징된 세력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상한 짐승으로 상징된 것이다. 사용된 상징이 다를 뿐이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다니엘 7장의 작은 뿔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짐승은 모두 교황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황권이 중세기의 1260년 동안에 지상에서 그 권세를 휘두르는 모습을 작은 뿔과 이상하게 생긴 짐승의 모습을 통하여 그려놓으셨다.

    요한계시록 13:3에서 우리는 작은 뿔과의 또 하나의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우리가 앞에서 배웠던 것처럼, 1260년의 예언이 끝나는 시점인 A.D.1798년에 교황권은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즉, 프랑스의 버티어 장군은 교황을 사로 잡아서 파리 감옥에 투옥시킴으로써, 교황은 거기서 옥사하였다. 그 때, 온 세상은 교황권은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3:3은“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라고 말함으로써, 1798년 이후의 교황권의 부활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이 예언대로 교황권의 죽었던 상처는 나았고, 온 세상은 교황권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고 있다. 이 예언은 우리들의 눈앞에서 지금 너무도 분명하게 성취되고 있지 않은가!

    1929년, 이태리의 뭇솔리니 총통은 카톨릭 교회가 과거에 몰수당했던 재산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화친 조약에 서명한 문서를 교황에게 주었다. 이로써 교황은 다시 한번 권세를 잡을 수 있게 되었으며, 바티칸 시는 정치적으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회복하였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교황권의 영향력은 놀라운 속도로 증가되어 왔다. 그리하여 지금은 교황이 거의 모든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문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막후에서 행사하고 있다. 몇해 전에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는 대 사건이 있은 후, 미국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인 타임지는 레이건 대통령과 교황의 사진을 표지에 실으면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교황과 미국 정부가 막후에서 일했던 내용을“거룩한 동맹”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 하였다. 이제는 아무도 교황권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들은 바티칸에 그들의 정치적인 대표자들을 주재시키고 있다. 교황권이 세계정세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력들이 각종 주요 신문의 표지 기사로 등장하고 있다. 교황이 말하는 거의 모든 메세지들이 온 세상에서 인쇄되며 전파되고 있다. 수억의 사람들이 교황을 오늘날의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다. 죽게 되었던 상처가 분명히 낳았다. 지금, 온 세상은 짐승의 뒤를 따르고 있다

     

    용과 여자

     

     도대체, 짐승은 어디에서 그러한 권세를 받았는가?

      누가 작은 뿔에게 1260년 동안 성도들을 핍박할 수 있는 권세를 주었는가? 요한계시록 13:2은 우리에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보여준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짐승에게 주었더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다는 말에 주목해보자. 그런데 용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2:7-9에 용으로 상징된 정체가 나와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는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deceive, 기만하다)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용=옛 뱀=마귀=사단)

    물론, 용은 사단 자신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단은 언제 그리고 어떻게 온 세상을 기만하였는가?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났을 때, 이 지구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장차 태어날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두 사람은 누구였는가? 물론 아담과 하와였다. 사단이 뱀으로 가장하여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임으로써, 사단은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로 구성된 온 세상을 기만하였으며, 그 결과 이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단은 자신의 권세를 어떤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 것이다. 선과 악의 대쟁투는 하늘에서 시작되었지만, 에덴 동산을 통하여 그것은 이 지구로 옮겨지게 되었다.

     

     여자와 원수가 되는 사단

    에덴 동산에서 인간이 타락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범죄에 가담한 범죄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 창세기 3:15에서, 우리는 뱀 곧 사단(용)에게 선언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리라.”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긴 예언으로써, 용과 여자 그리고 용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펼쳐지는 치열한 투쟁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예언에서 여자(woman)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는가? 성경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된“여자”는 언제나 참 교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을 내가 멸절하리니.”예레미야 6:2. 여기서 시온은 누구를 뜻하는가?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이사야 51:16. 신약에서도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고 있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린도후서 11:2. 그러므로 에덴 동산 이후부터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단의 세력과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항상 치열한 대쟁투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지금까지 항상 두 진영이 존재해왔다. 지금도 용과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과 그분을 따르는 백성들을 향하여 공격하고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오류, 그리고 사단과 하나님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격렬한 투쟁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한다.

     

     두 진영

    하나님과 사단은 지구에 살고 있는 각 개인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아담의 자녀들을 통해서 후세에 계속해서 존재할 두 무리의 투쟁을 볼 수 있다. 가인은 용의 진영에 속하였음이 그의 생애를 통해서 드러났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방법 대신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을 고집하였다. 아벨은 하나님의 진영에 속한 자였으며, 그의 생활이 너무도 의로웠기 때문에 가인은 마침내 그의 아우를 살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두 아들에게 각각 양을 잡아서 희생 제사를 지내도록 말씀하셨지만, 가인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물 대신에“땅의 소산”(곡식과 채소 등)으로 제물을 삼았다. 앞으로 함께 공부하겠지만, 가인의 이러한 특성은 세대를 내려오면서 짐승의 변치 않는 특성으로 나타났다. 가인은 하나님의 분명한 진리 대신에 자신이 고안한 위조물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는데, 가인의 이러한 특징은 용의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전수되어 내려왔다.

    가인의 후손들로 인해서, 세상은 너무도 타락하게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밖에 없으셨다. 그러나 홍수 이후, 또 다시 두 진영이 나타났다. 용의 추종자들은 바벨에 모여서 하늘에 닿을 수 있는 거대한 탑을 건축함으로써, 하나님께 도전하고자 하였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계획은 실패하였으며, 바벨탑이 세워졌던 장소에는 후에 바벨론이라는 대제국이 세워졌다. 바벨론은 세계를 지배하는 대제국 중에서 역사에 나타난 첫번째 대제국이 되었다(B.C. 606년). 바벨론 시대 초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바벨론에서 불러내서 그를 가나안으로 보내셨다.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이 잘못된 오류와 풍습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용과 태양 숭배

    용의 진영에 대한 역사를 연구하여 보자. 바벨론은 지상에 세워진 용의 첫번째 수도였다. 바벨론에서부터, 이방 종교가 태양 숭배의 형태로 일어났다. 바벨론 사람들의 종교였던 태양 숭배는 참람된 우상 숭배이며, 부도덕함과 혼잡한 의식이 가득차 있었다. 바벨론이 메데-페르시아(메데 바사)의 연합군에 의해서 멸망되었지만, 메데와 페르시아에서 흥왕하였던 태양 숭배 종교는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메데와 페르시아 역시 용의 사령부로 전락하였다. 바알(태양신의 이름) 숭배는 바벨론 때와 마찬가지로 메데, 페르시아를 장악하였다. 메데-페르시아가 멸망하고 그리스가 패권을 잡았지만, 여전히 태양 숭배는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갔다. 그리스가 무너지면서, 로마 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으로 들어섰지만, 여전히 태양 숭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미뜨라 교와 태양 숭배는 로마 제국 당시 전국적으로 편만해 있던 이방 종교 였다. 바벨론 시대부터 로마 제국 시대까지, 용은 태양 숭배 사상을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세계를 통치하는 동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여자의 후손이 로마 제국 시대에 이 지상에 나타났다. 창세기 3:15에 기록되어 있는, 여자의 후손과 용의 후손 사이의 적대감(enmity, 원수)에 관한 예언을 기억하는가? 요한계시록 12:1에 상징되어 있는 여자의 모습은 참된 교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경에서 여자는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순결한 여자는 참 교회를 상징하고, 타락한 여자(음녀)는 잘못된 거짓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자의 후손

    요한계시록 12:1에 나와 있는 여자는 순결한 진리를 보존하고 있던 참 교회 즉, 사도시대의 교회를 대표한다. 여자의 머리에 쓴 면류관에 달린 열 두 별은 12제자를 의미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장면을 살펴보자. “이 여자가 아이를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요한계시록 12:2-5. 자, 여기에 나오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만국을 다스리고,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간 남자 아이는 오직 1명 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다른 사람일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 탄생하셨을 때, 그를 죽이려 하였던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 모두가 잘 아는대로, 로마 제국의 왕인 헤롯이다. 헤롯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유대 나라에 있던 2살 이하의 모든 아이들을 살해하였다.

    여기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는 로마 제국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단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상징인“붉은 용”을 사용하고 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 위해서 로마 제국과 너무나 긴밀하게 함께 일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은 사단과 동일한 상징을 사용하여 묘사되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살인 명령을 피하기 위해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이집트로 도망하였다.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가한 사단의 치명타는 일요일 아침에 예수께서 죽음의 굴레를 부수고 부활하심으로써 실패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40일 후,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 올리워져 가심으로써, 예언의 말씀을 완전하게 성취시켰다.

    용이 그리스도를 향한 그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그는 그의 분노를 초기 그리스도 교회에 돌렸다. 요한계시록 12:13에서 우리는,“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라는 핍박의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당시, 세상에는 오직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으므로, 사단은 그들을 핍박함으로써 완전하게 박멸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황제의 극렬한 핍박 하에서 순교자의 길을 걸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복음의 불은 점점 더 크게 타올랐고 퍼져나갔다. 수없이 죽어간 순교자들이야말로 참된 여자의 후손들이었다. 한 사람이 순교했을 때, 수백명의 영혼들이 그가 남기고 간 자리를 채웠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성문앞에서도 복음을 전하였다. 로마는 점점 더 쇠약해 짐에 따라서, 용의 후손이 나타날 시간이 점점 더 가까워졌다.

     

     용의 후손

    수세기 동안, 사단은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을 통하여 여자의 후손인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하나님의 진리를 짓밟고 박멸시키기 위해서, 온갖 박해와 핍박을 자행하였지만, 결국 사단은 실패하였다. 그리하여 사단은 힘을 이용한 작전을 사용하는 대신에 전략적이고 기만적인 작전을 펼치기로 결정하였다. 사단은 고대 바벨론부터, 메데-페르시아, 그리스를 통하여 로마 제국까지 전수되어 내려온 이교의 가르침을 그리스도 교회의 가르침과 섞어놓고자 하였다. 사단은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을 기만 속으로 몰고 가고자 하였다.

    용의 후손 즉, 사단의 후손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그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3:1-2. 여기에 나오는 짐승이 사자, 표범, 곰, 그리고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이상한 동물의 복합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황권을 상징적으로 묘사하시면서, 과거에 지나간 이교 제국들의 모습에서 각각 일부분을 취하여 짐승 전체의 모습을 만드셨다. 교황권이 복합적인 동물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짐승으로 묘사된 이유는,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의 부요함, 권력, 힘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특성들을 교황권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 설명(다니엘 7장 참조, 살아남는 이들 3호)

    1. 모습: 다니엘 7장에 나오는 4가지 짐승 즉, 사자, 곰, 표범 그리고 무섭고 놀라운 짐승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 즉, 사자의 입, 곰의 발, 표범의 몸, 일곱 머리, 열 뿔은 4가지 짐승의 특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의미함.

    2. 일곱 머리의 구성: 사자(바벨론) 머리(1개)+곰(페르시아) 머리(1개)+표범(그리이스) 머리(4개)+무섭고 놀라운 짐승(로마) 머리(1개)=일곱 머리

    3. 열 뿔의 위치: 다니엘 7장에 있는 무섭고 놀라운 짐승(로마)의 머리에 있던 열뿔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

    4. 열 면류관의 위치: 열 뿔 위에 열 면류관이 있음

    사단은 교황권에게 어떤 권위를 주었는가? “용이 자기의 능력과 그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요한계시록 13:2. 사단은 A.D.330년에 로마 제국의 콘스탄틴 대제를 통하여 교황에게 로마 시 전체를 양도하면서 보좌를 내주었다. 우리는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을 카톨릭 교회에서 나온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마 황제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었다. 황제는 교황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권좌를 소유할 수 있도록 로마 시를 교황에게 넘겨주었다. 그리하여 교황은 모든 인간들의 권위로부터 세상 끝까지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Papal Rights and Privileges, pp.13.

    “A.D.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틴노플로 이전함에 따라서, 사실상 유럽의 서쪽에 있는 교회들은 황제의 권력의 영향력 밖으로 벗어났으며, 교회 자체의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교황이 로마 황제의 권좌를 물려 받음에 따라서, 교황은 서쪽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되었으며, 영적인 지도자 뿐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추대받았다.”
    The Rise of the Medieval Church, pp. 168. 이러한 역사의 기록은 교황권이 어떻게 사단이 주는 권좌에 앉을 수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단은 로마 제국의 황제를 통하여 교황권에게 그의 권세를 주었다(공식적인 선언은 A.D. 538년에 있었으나, 사실상 A.D. 330년부터 그러한 인정이 시작되었다).

    로마 제국이 가지고 있던 권세와 보좌는 어디로부터 얻은 것인가? 그리스로부터 얻은 것이다. 그리스는 어디에서 권세와 힘을 얻었는가? 메데-페르시아로부터 얻었다. 메데-페르시아는 어디에서 얻었는가? 바벨론으로부터 얻었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어디에서 권세를 얻었는가? 용으로부터 얻었다. 바벨론에서부터 시작된 태양 숭배가 계속해서 대제국들에게 전수되어온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라. 사단은 대제국들에게 태양 숭배 사상을 접목시킴으로써, 대제국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짐승)에게 주었더라”라는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라(요한계시록 13:2). 하나님께서 짐승의 권세에 대하여 경고하시는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짐승의 뒤에는 용이 서 있기 때문이다.

     

     이방 종교의 가르침이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속으로!

    어떻게 이방 종교의 교리가 교황권이 이끄는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속으로 들어갔을까? 사단은 진리를 위조하는 일과 진리를 오류로 대치하는 일에 명수이다. “위조와 대치”야말로 사단이 관여하는 모든 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증거이다. 용의 후손으로 등장한 짐승의 세력인 교황권의 가르침 속에는 진리가 이방 종교의 오류에 의해서 대치되거나 위조된 것들이 많이 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행하였던 것처럼, 교황권도 하나님의 계명(명령)을 다른 것으로 대치하였다. 태양 숭배에 관련된 많은 관습들이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왔다. 교황권은 당시 수많은 이방 종교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 각종 이방 종교의 가르침을 그리스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방 종교에서 섬기는 우상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베드로, 마리아, 그리고 각종 성자들의 상을 교회 안에 만들어 놓음으로써, 이방 종교인들로 하여금 호의를 느끼도록 유도하였다.

    어떻게 이방 종교의 관습이 교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예로서 크리스마스의 경우를 살펴보자.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관습이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아는가? 크리스마스를 축제일로서 준수하는 관습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12월 25일은 예수께서 태어나기 수백년 전부터 축제일로 지켜졌다. 그 당시, 이방 종교인들은 태양을 숭배하였다. 그들은 12월에는 낮의 길이가 점점 더 짧아지는 것을 보면서, 태양이 그들로부터 멀어진다고 생각하였다. 태양이 그들을 완전히 떠나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도하면서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러다가 25일이 되면, 태양이 자신들에게 좀더 가까워지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태양이 다시 태어났다”라고 말하면서, 12월 25일을 태양 또는 태양신의 출생일로 불렀다. 이렇게 시작된 12월 25일이 나중에는 이방 종교인들에게 커다란 축제일이 되었다.

    교황권이 이방 종교인들의 축제일을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기 전까지, 태양 축제일은 이방 종교인들에 의해서만 지켜지던 날이었다. 그러나 교황권은 이방 종교인들의 신인 태양(SUN)의 축제일을 하나님의 아들(SON)의 탄생일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옥스포드 대학의 헬라어 교수인 길버트 머레이 박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이방 종교인 미뜨라(Mithraism) 종교인들이 매우 많이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하게 되자, 그들은 성경적인 안식일(Sabbath) 대신에 그들의 태양일(Sun-day)을 준수하자고 압력을 가할 수 있었으며, 태양의 출생일인 태양일(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준수하자고 주장할 수 있었다.”
    History of Christianity in the Light of Modern Knowledge Chapter III.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실제 탄생일을 모른다. 12월 25일이 교회에서 준수되고 있는 이유는 태양 숭배의 축제일을 교황권이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교황권이 채택하였던 태양의 축제일이 개신교회에까지 그대로 전수된 모습을 보면서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부활절(Easter)은 어떤가? 부활절은 오늘날 거의 모든 현대 교회들 가운데서 지켜지고 있는 준수일이다. 그러나 역사는, 부활절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방인들 사이에서 준수되던 축제일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절 일요일(Easter Sunday)이 5주일에 한번씩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5주일이라는 간격이 천체의 움직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항상, 부활절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춘분) 이후의 첫번째 만월(full moon) 바로 다음에 오는 일요일에 준수되고 있다.

    이방 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태양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지점에서 비추는 이른 봄이 되면 모든 만물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재생산 활동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한 날을 지정하였는데, 그 날은 특별히 자연계에 새로운 생명과 성장을 가져다주는 이쉬타 신(Ishtar, 생산과 생식의 신)을 위해서 제정되었다. Easter(이스터, 부활절)라는 단어는 Ishtar(이쉬타) 라는 신의 이름으로부터 유래된 단어이다. 교황권이 부활절(Easter)을 채택함으로써, 교회는 이쉬타 신의 숭배를 기념하게 되었다.

    수많은 그리스도 교회의 평신도들은 부활절 토끼(bunny rabbit)나 부활절 달걀(Easter egg)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의아해하고 있다. 물론, 아무런 상관도 없다. 토끼는 이교도들에 의해서 이쉬타 신을 경배하는 날의 상징으로 선택되었는데, 그 이유는 토끼는 매우 왕성한 생식 활동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달걀 역시 풍부한 생식과 증식의 상징으로서 취급되었다. 이교도들 사이에서, 그 날은 매우 부도덕한 성행위를 갖는 날로 인식되었다.

    교황권이 발전하는 동안, 교회는 이쉬타 신의 경배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서, 그 날을 부활절(Easter)이라고 불렀다. 이쉬타 신의 날과 함께 토끼나 달걀 같은 상징물들도 받아들임으로써, 그 날이 이교도들에게서 유래되었다는 증거를 오늘날까지 남기고 있다. 이러한 예증들은 단지 사단이 어떻게 이교도의 사상과 관습을 그리스도 교회에 이끌어 들였는가를 보여주는 일면에 불과하다. 교황권이 흥왕하게 되면서, 비성서적인 가르침과 관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교황권은 그 권세와 기만적인 술책으로 교회를 주도해 나갔으며, 참된 진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여자의 후손들을 박해와 핍박으로 박멸하고자 하였다.

    여기서, 우리들의 마음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면에서 성경이 말하는 참된 가르침을 충성스럽게 따르고 있는가? 만일 인간의 전통과 이교도의 관습이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그렇게 쉽게 들어왔다면,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다른 가르침들은 하나님의 진리로서 확신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들은 비록 그것들이 이교도들의 관습에서 유래된 잘못된 것들이 섞여 있긴 하지만, 하나님의 계명과 직접적으로 어긋나는 것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절과 탄생일을 반드시 준수하라는 하나님의 계명(commenments, 명령)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탄생을 일년 중 어떤 시기나 날짜에 기념하거나 준수할 수 있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떤 정확한 가르침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그리스도 종교의 심장부를 강타한 이교도의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님의 계명(명령)과 분명하게 어긋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지나친 염려를 나타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태도는 교회 안에 불필요한 불화와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교황권의 권세가 날로 커짐에 따라서,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 포함되어 있는 몇몇 핵심적인 진리들을 거짓 교리로 대치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부디, 우리 모두의 영적 눈이 열려서, 사단의 위조물들을 정확하게 분별하여서 하나님의 진리에 충성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짐승의 숫자와 표 - 666 

      

    666

    짐승의 세력을 나타내는 면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와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요한계시록 13:16-18. 지금까지 우리는 짐승의 세력(작은 뿔)을 나타내는 9가지 예언과 교황권에 대한 그것의 적용에 대해서 공부하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짐승의 이름과 숫자를 설명함으로써,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은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10번째 증거

    요한계시록 13:17-18에 근거하여 볼 때, 논리적으로 우리는 짐승의 이름의 수는 결국 사람의 수와 같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그러므로 짐승의 이름=짐승의 이름의 수=짐승의 수=한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 여기서 한“사람(the number of a man)”이란 누구인가? 의심할 여지없이, 짐승의 세력을 주도하는 최고 우두머리를 의미한다. 다니엘 7:8과 요한계시록 13:5에서도, 작은 뿔과 짐승을 각각“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가진 한“사람(the number of a man)”으로 지목하고 있는 점을 기억하라. 고대로부터 사람의 이름의 수를 계산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각 알파벳마다 고유 숫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 알파벳의 숫자들을 모두 합하면,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수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방법을 교황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톨릭 교회의 머리인 교황의 공식 칭호를 알아야만 한다. 또한, 짐승의 이름을 대표하는 한 사람의 수(the number of a man)는 당연히 그 조직의 최고 지도자의 공식 칭호의 수이어야 한다.

    교황에게는 라틴어로 된 공식 칭호가 있는데, 이것은 카톨릭 교회가 교황에게 부쳐준 이름이다. 우리는 교황의 공식 칭호를 카톨릭 교회에서 발행한 출판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15년 4월에 발행된
    Our Sunday Visitor 라는 이름의 카톨릭 주간지에서, 우리는 교황이 쓰는 삼층관에 새겨진 공식 칭호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카톨릭 주간지에 실렸던 원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Vicarius Filii Dei, 이것은 라틴어인데,‘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Vicar of the Son of God)’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지상에 있는 교회는 지상에 있는 지도자(head)를 가져야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기 전에 베드로를 당신의 대표자로 지정하셨으며, 교회의 머리인 교황에게는‘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 of Christ)’라는 직위를 주었다고 믿는다.” 또한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에는“Vicar of Christ(그리스도의 대리자)”에 대해서“8세기부터 시작된 교황의 특별 칭호”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현재, 교황이 쓰고 있는 삼층관에는 라틴어로 된 직함(칭호)이 새겨져 있지 않지만, 새로 즉위하는 교황의 대관식 때에 이 직위를 받게 된다.

    자, 이제 짐승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수를 계산해 보자. “Vicarius Filii Dei”라는 이름의 각 라틴어 철자가 가지고 있는 숫자의 합을 계산해 보면, 우리는 666이라는 실제 숫자를 얻게 된다. 아래와 같은 계산법을 사용하여서 교황의 공식 직함(official title)를 계산하면, 정확하게 666이 나온다.


    V

    5

    I

    1

    C

    100

    A

     

    R

     

    I

    1

    U

    5

    S

     

     

     

    F

     

    I

    1

    L

    50

    I

    1

    I

    1

     

     

    D

    500

    E

     

    I

    1

     

     

    TOTAL

    666

    어떤 사람은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오직 이것에만 의존해서 교황권을 짐승의 세력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교황권이 짐승의 세력임을 증명하는 10개의 증거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 계산 결과를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나머지 9 예언들이 너무나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교황권을 짐승(작은 뿔)으로 지목하고 있다. 성경이 짐승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기록해 놓은 10개의 예언들이 모두 교황권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을 보면서 엄숙함을 느끼지 않는가? 성경과 역사에 나타난 인물이나 세력 가운데, 과연 어떤 것이 지금까지 연구한 10가지의 예언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가? 오직 교황권 이외에는 어떤 것도 10가지 예언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한다. 교황의 공식 칭호와 짐승의 수인 666과의 정확한 일치는 이미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확인된 사실 위에 하나의 증거물을 더 올려놓는 것에 불과하다.

     

    짐승의 표 = 최고의 기만

    이제, 짐승의 세력에 대한 문제에서 가장 절정에 속한 것을 연구해보자. 앞에서, 우리는 짐승의 세력이 하나님의 진리를 위조한 거짓 가르침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왔던 것을 배웠다. 거짓 가르침은 항상 하나님의 진리와 이교 사상의 혼합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성경에서는“바벨론”즉 혼잡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표현되고 있다.

    교황권은 하나님의 진리를 위조한 거짓 가르침들을 만들어 냈는데, 그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인간의 전통을 따르는 것, 침례 대신에 세례를 받는 것, 예수 그리스도 대신에 인간을 중보자로 믿는 것, 성만찬 예식 대신에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믿는 예식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영원 불변한 법 대신에 변경된 법을 지키는 것, 죽음 대신에 연옥을 믿는 것, 하나님의 인 대신에 짐승의 표.

    위에 언급한 여러가지 위조 가르침들 가운데, 짐승의 표에 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보자. “만일 누구든지 짐승에게 경배하고 ... 이마(forehead)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요한계시록 14:9-10. 이 성경절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표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하며, 그것을 피하는 방법 또한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해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짐승의 표는 언제나 하나님의 인과 반대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짐승의 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7:2-3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짐승의 표와 마찬가지로 앞이마(forehead)에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두가지 즉,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는 위치는 둘 다 앞이마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무엇이 하나님의 인(the seal of God) 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면,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를 식별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인(the seal of God)

    인(seal, 도장, 봉함)이란 법적인 문서와 관계있는 용어이다.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는 항상 그 문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의 인이 찍혀져야 한다. 각국의 정부마다 법적인 문서에 찍을 수 있는 인을 가지고 있다. 인을 찍는 목적은, 인이 찍혀진 문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특히, 국회에서 통과된 나라의 법규문에는 반드시 국가 수뇌인 대통령의 인이 찍혀져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법조항의 권위와 집행력을 대통령이 보장하기 때문이다.

    인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1) 통치자의 이름, 2)통치자의 칭호, 3)통치 구역. 미국 대통령의 인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살펴보자: 빌 클린턴(통치자의 이름), 미합중국(통치 구역), 대통령(통치자의 칭호). 대통령의 인이 어떤 공식 문서에 찍힐 때, 그것은 대통령의 권위에 의해서 실시될 것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만일 어떤 관계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어떻게 찍혀지는가? 이사야 8:16을 함께 읽어보자:“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seal)하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은 제자들, 즉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에게 봉함된다(인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이 제자들의 어디에 봉함(인)될까? 히브리서 10:16은 율법이 봉함되는(인쳐지는) 장소를 말해준다:“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바로 이것이, 새언약 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봉함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사실을, 성경은 이마에 기록되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음이 어디 있는가? 우리의 마음과 양심은 이마, 즉 두뇌의 앞부분인 전뇌에 있다. 이마에 있는 전뇌에서는 이성적인 의지와 판단을 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잠언 7:2-3은 이 문제에 대해서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하나님의 법을“네 손가락에 매며 네 마음 판에 새기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마음과 손(순종)에 의해서 준수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법이 인쳐지는 장소는 그분을 충성스럽게 따르는 자들의 이마(마음)와 손(순종)에 새겨지게 된다.

     

    하나님의 권위의 표

    세상 법이 최고 통치권자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 중에서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인의 역할을 하는가? 우선,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포함하고 있는 율법을 찾아보자. 한 국가의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에 의해서 권한을 수행한다. 하나님께서도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의 권한에 근거해서 당신의 권위를 주장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10:10-12을 읽어보자:“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있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는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또한 시편 96:5에 나오는 말씀을 보라:“만방의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니라.” 이사야 40:25-26에 역시 하나님의 창조와 권위를 증거하고 있다;“거룩하신 자가 가로되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참 하나님을 구별하는 한 가지 놀라운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창조의 권능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진리이고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창조에 근거하여서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권능을 사람들이 언제나 기억함으로써,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창조를 기념하는 기념일과 표징을 태초의 창조 주일에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안식일은 하나님과 다른 잡신들을 구별케 하는 창조의 권능을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율법 속에 들어 있는 인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율법 중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일까? 인에는 반드시 통치자의 이름과 직위와 통치 구역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기록하여 주셨던 영원불변의 십계명을 살펴보면, 오직 한 계명이 인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을 구성하는 3가지 요구 조건들이 한 계명 안에 모두 들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십계명의 중심부에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기념하는 법이 있는데, 그 계명에는 인의 3가지 구성요소가 들어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1. 통치자의 이름)의 안식일인즉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2. 통치 구역)에 모든 것을 만들고(3. 창조주, 통치권자의 직위), 제칠일에 쉬었음이라.”출애굽기 20:8-11.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인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며, 지구를 통치하는 유일한 신이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당신의 인을 기록해 놓으심으로써, 나머지 모든 계명도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여러분 중의 어떤 분들은“안식일이 정말 하나님의 인 인가요?”라고 질문할 것이다. 에스겔 20:12는 그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하고 있다.“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당신 자신의 표징(sign)이라고 칭하셨다. 그런데 표징(sign)과 인(seal)은 동일한 것인가? 로마서 4:11은 인과 표징이 동일한 것이며, 성경에서 이 둘은 서로 호환성 있게 사용되고 있는 표현임을 말해주고 있다:“저가 할례의 표(sign)를 받은 것은 무 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seal)친 것이니.” 인(seal)=표징(sign).

     

    인(seal)과 표(mark)의 비교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비교 분석해보자. 이 둘은 서로가 완전히 대조적인 것들이다. 요한계시록 14:9-10에 나오는 세째 천사 기별 속에는 짐승의 표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계속해서 12절부터는 또 다른 무리가 설명되고 있다:“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결론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결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인을 포함하고 있는 십계명은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책이 될 것이다. 특히, 하나님의 인은 안식일이므로, 짐승의 표는 안식일과 정반대로 대조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짐승의 표는 무엇인가?

     

    율법을 변경시키기 위한 시도들

    짐승의 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교황권의 행적이 묘사되어 있는 다니엘 7:25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이미 앞에서, 우리는 교황권이 2번째 계명을 없애고, 10번째 계명을 둘로 나누어 그것을 카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로 만들었던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렇게 해서 카톨릭 교회가“법”을 변경시켰던 사실은 입증되었다. 그런데“때”도 변경시켰는가? 십계명 중에“때”를 가르키는 계명이 있는가? 4째 계명이 유일하게 시간(때)와 관련된 계명이다. 교황권이“때”를 나타내는 안식일 계명도 바꾸었을까? 그렇다! 매우 희안한 과정을 거쳐서 안식일을 변경시켰다.


    앞에서 배운 바와 같이, 이교도들은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예배일로 준수하던 날은 주일 중 첫째 날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예배일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그 날을 태양일(Sun-day, 일요일의 기원)이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인들은 7째날인 안식일을 준수하였으며, 이교도들은 첫째날을 준수하였다. 그러나 로마 황제인 콘스탄틴 대제의 임기 동안에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콘스탄틴 황제가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함으로써, 그를 따르던 수많은 이교도인들이 그리스도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의 집권을 안정시키고, 이교도인들의 호감을 사며, 또한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시키기 위해서, 태양 숭배자들이 하던 여러가지 관습과 의식을 그리스도 교회에서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과 같은 것들이 바로 이때에 시작된 관습들이며, 일요일 예배 전통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예배의 편리함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교도인들에게 일요일에 예배드릴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그리스도인들도 그날에 함께 예배드리라고 포고령과 함께, 일요일 예배가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시작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콘스탄틴 황제는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첫번째 법령을 만든 사람이 되었다. 교황권은 일요일 휴업령이 온 교회와 세상에 퍼질 때까지 계속해서 일해왔다. 교황권의 적극적인 지지와 후원이 없이는 일요일 예배 전통이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인 증거들

    세상 역사가들이 안식일의 변경에 대해서 제시하는 증거들을 살펴보자. 여러분 자신의 눈으로 변경된 역사를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 것이다. 유명한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에는 일요일(Sunday)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콘스탄틴은 일요일 준수를 위한 첫번째 법령을 만든 사람인데, 그는 로마 제국 전체를 통하여 정규적으로 축하되어야 되는 날로서 일요일을 지정하였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헬라어 교수인 길버트 머레이 박사는 일요일 준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미뜨라 신은‘무적의 태양’이고, 태양은‘충성스런 별’이었기 때문에, 미뜨라 교도들은 지상에서 미뜨라 신의 대리자로서 일할 수 있는 왕을 찾게 되었다 ... 그들의 눈에는 로마 황제야말로 그들이 찾는 참된 왕으로 보였다. 그리스도 교회와 날카로운 대립 관계에 있던 미뜨라 교도들에게 있어서, 로마 황제는 거룩한 신의 은총을 지닌 자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군대와 민간 기관에서 일하고자 하는 미뜨라 교도들의 지원이 넘쳤다 ... 이러한 분위기는 그리스도 교계로 하여금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서 태양의 출생일인 12월 25일을 준수할 것에 대한 미뜨라 교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History of Christianity in the Light of Modern Knowledge.

    윌리암 후레드릭 박사 역시 동일한 역사적 진리를 증거하고 있다:“이방인들은 태양을 숭배하는 우상 숭배자였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가장 거룩한 날이었다.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교회는 일요일을 쉬는 날로서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이방인들의 예배일을 그리스도 교회의 예배일로 채택하던지, 아니면 이방인들로 하여금 예배일을 안식일로 바꾸도록 해야만 하였다. 교회가 이방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예배일을 안식일로 바꾸도록 만드는 것은, 이방인들을 공격하는 일이 될 뿐 아니라, 교회 자신에게도 거침돌이 되는 일이었다. 교회는 이방인들이 자신들의 예배일을 그대로 지킬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좀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Sunday and Christian Sabbath, pp. 169.

    그리스도 교회가 이방인들의 태양일(Sun-day)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에 대해서
    The North British Review 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이방인 이웃들과 동포, 그리고 애국자들은 편의상 일요일을 주의 날인 안식일로 만드는 일에 연합 하였다 ... 사실, 일요일이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 날로 확고하게 되었을 때까지, 교회는 일요일 예배를 채택하지 않았다.”Vol. XVIII, pp. 409.

     

    카톨릭 교회의 동의

    다니엘 7장은 교황권이“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데, 과연 교황권은 안식일의 변경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매우 공정하게 취급해야만 하므로, 여러 분야의 사람들로부터 증언을 들어야 한다. 다음에 소개하는, 카톨릭 교회에서 잘 알려진 권위 있는 저자들의 글은 카톨릭 교회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유대인의 안식일인 제칠일 안식일을 주일 중 첫째날로 변경한 후에, 교회는 일요일을 주의 날로서 거룩하게 지켜야 된다는 내용으로 3째 계명을 만들었다.”
    Catholic Encyclopedia, Vol. IV, pp. 153.

    “주의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하라는 말이 성경에는 전혀 없다. 우리는 이러한 변경이 교회의 전통에 의해서 지금까지 내려온 사실을 알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수많은 개신교인들에게 느끼고 있는 비논리적인 점이다. 그들은 오직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도, 카톨릭 교회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변경된 주의 날을 일요일로 지키고 있다.”
    Salvation History and the Commandments, pp. 294, 1963 edition.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을 일곱째 날에서 첫째날로 변경시켰다 ... 카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축제일로서 토요일보다 일요일이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This is Catholicism, 1959 edition, pp. 325.

    킬겔런과 위버의 저서인
    Life in Christ 에 실려 있는 천주교회의 1958년도판 교리문답에는 다음과 같이 천주교회의 신앙을 소개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왜 교회는 주의 날을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켰는가? 그리스도께서 교황에게 주신 묶거나 푸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교회는 주의 날을 일요일로 변경시켰다.”pp. 243.

    스테판 키넨의 저서,
    A Doctrinal Catechism 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실려 있다:“질문; 교회가 축하의 개념을 새로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대답; 만일 교회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면, 모든 현대 종교인들이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것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에게 그러한 권한이 없다면, 교회는 토요일 준수를 성경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요일 준수로 대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대체”라는 말을 주목해야 된다. 예로부터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거나 위조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여 왔다.

    카톨릭 교회의 기본스 추기경은 그의 저서,
    The Question Box, pp. 179에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하였다:“만일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유일한 안내서라면, 유대인과 함께 토요일을 준수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이다 ... 성경을 자신들의 유일한 선생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 일관성이 없게 카톨릭 교회가 만든 전통을 따른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존 오브리엔은 그의 저서,
    Understanding the Catholic Fath, p. 13(1955년도판)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성경은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카톨릭 신자들이 행하고 있는 종교적 행습 역시 지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일요일 예배 전통이나 그 날에 불필요한 노동을 삼가하는 전통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개신교회 형제들도 일요일 준수 문제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강조를 하고 있지만, 성경의 어느 곳에도 일요일을 주의 날 즉, 안식일로 지적하고 있지 않다. 교회 역사의 초기에, 교회는 의도적으로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경되었다고 가르쳤다.”

    미국에 있는 Redemptorist 대학의 학장인 엔라이트 주교는 개신교회에게 다음과 같은 강력한 도전을 던졌다:“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로 바꾼 것은 카톨릭 교회였다. 일요일을 준수하라는 명령과 제7일인 안식일에 노동하라는 명령이 파문의 위협 하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달되었다. 개신교인들은 성경의 존엄성을 크게 인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요일을 안식일로 인정함으로써, 카톨릭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다. 성경은 말하기를,‘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가,‘아니다. 주일 중 첫째날인 일요일을 지키라.’라고 말하자, 모든 사람들이 거룩한 카톨릭 교회의 명령에 경건하게 순종하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이 도전에 대답해야만 한다. 여러분들은 누구에게 순종하겠는가? 대주교인 C.F. 토마스가 안식일의 변경에 대해서 하고 있는 말을 들어보라:“물론, 카톨릭 교회는 안식일이 자신들에 의해서 변경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카톨릭 교회의 행위는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권세와 권위를 상징하는 표(Mark)이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쟁점이 분명해졌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권위에 대한 증표로서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당신이 참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신다. 그러나 카톨릭 교회는“아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말라. 주일 중 첫째 날을 지켜라. 우리가 그것을 변경시켰다. 이러한 변경이야말로 카톨릭 교회의 권위가 하나님의 법과 그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표(Mark)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의 표는 제칠일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주의 날로 지키는 것을 말하는데, 왜냐하면 일요일 예배는 짐승의 권세가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십계명에서 4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의 통치 권한과 통치자의 이름, 통치 구역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인의 역할을 하는데, 교황권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대체함으로써, 일요일을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표로서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온 세상은 교황권이 변경시킨 위조물을 따라서 움직여지고 있다. 우리 각자의 앞에는 하나님의 권위와 짐승의 권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되는 결정이 놓여 있다.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그분의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거짓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카톨릭 교회가 세워놓은 짐승의 권위를 인정할 것인가? 오직 두 길만이 있을 뿐인데, 그 두길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하나님과 용, 진리와 오류, 성경과 전통. 성경은 짐승의 표를 피하는 방법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4장 11절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12절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만이 짐승의 표를 피할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 속에는 안식일 계명이 4번째 계명으로 들어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권위를 증거하는 그분의 인이 찍혀져 있다. 짐승은 바로 이 4째 계명을 변경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하나님의 권위보다 높은 곳에 두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짐승은 십계명에 있는 하나님의 인을 짐승의 표로 대체시키는 놀라운 기만을 시도해 왔다.

    1956년에 발간된 카톨릭 종교를 소개하는 서적으로 카톨릭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The Faith of Millions 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록을 담고 있다:“성경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을 안식일로서 증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을 교회가 아닌 성경에만 두고 있다고 공언하는 개신교인들이 일요일을 예배일로서 준수하고 있는 현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이다. 그것은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관한 이러한 변화는 개신교 주의가 태어나기 이전인 15세기경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때부터 일요일 준수 전통이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다. 일요일 준수 전통이 성경이 아닌 카톨릭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전통은 계속해서 전수되었다. 마치 집을 도망나간 아이가 주머니 속에 어머니의 사진이나 머리카락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일요일 준수는 카톨릭 교회를 버리고 떠난 모든 비카톨릭 교회들로 하여금 어머니 교회인 카톨릭 교회를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오래 전에 기본스 추기경은 안식일에 관하여 직면하게 되는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요약적인 말을 하였다:“논리와 이성은 우리들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즉, 개신교주의와 토요일의 신성성을 지키든지, 아니면 카톨릭 정신과 일요일 신성성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이 둘 사이에는 어떠한 타협도 불가능하다.”
    Catholic Mirror, 1893년 12월 23일.

     

    개신교회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분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사실에 대해서 여러 개신교단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개신교회들로부터 직접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안식일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정직한 의견을 들어보자. 다음에 소개할 인용구절들은 개신교회 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변인들의 글이다.

    침례 교회: 침례 교회의 교회 수칙을 작성한 에드워드 히스콕스 박사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 이 침례 교회의 지도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과거부터 지금까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이 존재해왔는데, 그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식일이 제7일로부터 제1일로 옮겨졌다는 말을 한다 ... 그러한 변경에 대한 말이 성경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신약 성경에는 없다. 전혀 그러한 말을 발견할 수 없다 ... 물론, 나는 일요일이 그리스도인의 초기 역사에 있어서 종교적인 날로 변경된 사실을 역사적인 기록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이교도들의 표이며, 태양신의 이름과 관련있는 일요일이 교황권의 배도에 의해서 안식일로 채택되었는데, 그것이 개신교회의 거룩한 법까지 전수된 사실은 정말 슬픈 사실이다!”1893년 11월 13일자 뉴욕 신문.

    장로 교회: 장로 교회에서 나온 서적인 Christian at work 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발견하게 된다:“어떤 사람들은 사도들이 그러한 명령을 전혀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의 명령이라는 이유 하에 일요일 준수 전통을 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 우리가 성경을 최상의 권위로 인정한다면, 안식일 준수자들이 진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Ed. 1883년 4월 19일.

    감리 교회: 감리 교회 신학 개요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유아 세례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확실성이 없으며 ... 주일 중 첫째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대한 어떠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

    회중 교회: 회중(Congregational) 교회의 W.D. 데일 박사는 그의 저서 십계명 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아무리 우리가 일요일을 엄숙하고 굳건하게 지킨다고 하여도,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특별하고 거룩한 계명으로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다. 일요일을 준수하면서 계명을 지킨다고 내세울 수 없다 ... 일요일을 범함으로써 어떤 형벌을 받는다는 기록이 신약 성경에 단 한 줄도 나와 있지 않다.”

    루터 교회: Augsburg Confession of Faith 에 나타나 있는 루터 교회의 입장을 살펴보자:“주일(일요일)의 준수에 대한 내용을 하나님의 계명에서 발견할 수 없다. 그것은 다만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다.”

    감독 교회: 감독 교회의 대변인인 닌덜은 그의 저서 the History of Christian Religion and Church, pp. 187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모든 다른 축제처럼, 태양일 축제(festival of Sunday)도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다. 그것은 사도들의 거룩한 명령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며, 초기 기독교회가 안식일의 법을 일요일로 옮김으로써 생겨난 것이다.”

    클로비스 챠펠의 저서인
    Ten Rules For Living 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안식일이 유대인들이 지키던 안식일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이 지켜온 안식일은 주일 중 일곱번째 날이고,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은 첫째 날이다. 우리가 일곱째 날 대신에 첫째 날을 지키는 이유는 어떤 계명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이 일곱째 날에서 첫째 날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회 당시에 예수의 부활을 기념한다는 이유하에 주일 중 첫째 날에 예배드리는 전통이 시작되었다. 또한 일요일 예배 전통은 국가가 일요일을 법적 휴일인 휴식의 날로 정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A.D. 321년에 이러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은 명백한 계명에 근거해서 준수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의해서 강요될 짐승의 표

    위에 제시한 것 외에도, 수십개의 다른 기독교단의 기록을 제시할 수 있지만, 지면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여기서 줄이기로 하겠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서, 여러분은 자신들의 개인적인 답변을 준비하였는가? 앞에서 공부한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해보자: 1)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일을 변경시키려고 하는 세력이 예언 가운데에 나와 있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였다. 2) 또한 역사는 그 세력이 안식일을 변경시킨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3) 짐승의 세력은 자신이 안식일을 변경시켰던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4) 개신교회 또한 안식일의 변경을 시인하였다. 이보다 더 많은 증거와 자료를 필요로 하는가? 이제는, 여러분들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진리를 위해서 희생과 헌신의 결정을 할 것인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안식일이 그분께 대한 순종의 표로서 드러나게 될 때가 점점 더 가까워오고 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잇슈가 결정적으로 제시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든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든지를 결정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지상에 있는 정부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강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요한계시록 13:16

    국가에 의해서 이러한 법령이 내려질 때까지 어떤 사람도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다. 참된 안식일과 거짓 일요일 예배가 그 정체를 온 세상에 드러낼 때에, 모든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참 안식일을 마음과 손으로 지킬 것인지, 아니면 교황권이 만들어 놓은 위조 안식일을 지킬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국가의 영향력과, 교황권에게 충성의 표를 던지는 세상 정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한다.

     

     예언에 나탄난 미국과 교황의 관계

    (미국에 대한 예언은
    살아남는 이들 5호에 매우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으니, 함께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인치고 자신이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부하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본적이 없다. 미국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같은 자유를 세계 어디에서도 >틤?수 없다. 여러분은 미국이 왜 이러한 자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자유 미국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세력과 미국의 출현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다.

    여러분들은“어떻게 교황권의 세력과 미국의 등장이 관계있는가?”라고 질문할 것이다. 유럽에서 있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짐승의 핍박으로 인하여, 미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게 되었다. 미국인들의 조상은 교황권의 종교적인 핍박 때문에 예배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유럽으로부터 그 당시 신세계였던 미국으로 도망왔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부터 그 당시의 역사적인 장면을 찾아보자. 요한계시록 13:1-10은 큰 세력으로 일어나는 교황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0절에는, 교황이 프랑스 혁명정부군에 의해서 포로로 사로잡혀서 죽는 모습이 나온다(1798년).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요한계시록 13:10. 바로 다음에 요한은 두번째 짐승을 계시 가운데서 보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요한계시록 13:11. 여기에 나오는 두번째 짐승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분석하여 보자. 이 짐승의 권세를 조명해주는 몇가지 요소들이 나타나 있다.

     

    1. 두번째 짐승이 나타나는(coming up) 시기는 첫번째 짐승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던 시대이다. 프랑스 혁명정부의 버티어 장군이 교황을 사로잡았을 때에 교황권(첫번째 짐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는데, 요한은 이 사건 이후에 두번째 짐승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1798년 무렵에 두번째 짐승의 세력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2. 두번째 짐승은 땅으로부터(out of earth) 올라온다. 첫번째 짐승이 물에서 올라오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두번째 짐승은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언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물”과“땅”의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 17:15에서, 물은 사람들과 국가들을 상징한다는 성경의 해석을 발견하게 된다.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첫번째 짐승이“물”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첫번째 짐승은 백성과 사람들이 이미 많이 있는 곳에서 나타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땅”은“물”과 대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두번째 짐승이“땅”에서부터 올라온다는 것은, 두번째 짐승은 기존의 백성이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이 국가는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으며, 첫번째 짐승이 가졌던 왕관(crown)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국가의 평화로운 양의 모습과, 왕관을 쓰고 있지 않은 모습은, 이 국가는 왕권을 휘두르는 세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두번째 짐승이 어린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이 국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태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성경에서“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국가는 군국주의나 독재주의를 주장하지 않는 나라이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번째 짐승의 성격에 대한 묘사는 이 국가가 평화스럽고 기독교 정신이 충만한 자유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두번째 짐승의 정체

    이제, 우리는 두번째 짐승의 정체를 역사 가운데서 찾아낼 수 있다. 지나간 역사를 통하여 위의 3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국가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 미합중국은, 첫번째 짐승이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던 해인 1798년 무렵에 나타난(coming up)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은 이 무렵부터 세계적인 세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역사가들이 미국의 등장에 대해서 기록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증거 하는듯한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예언에 따라서, 미국은 당시 문명 세계가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 않은 장소인 신세계에서 태동하였다. 미국은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한 형태의 헌법을 만들었으며, 개신교주의와 공화주의라는 두 가지 위대한 원칙을 가지고 출범하였다. 교회와 국가를 법에 의해서 완전하게 분리시킴으로써, 종교와 국가가 서로 간섭하거나 핍박하지 못하게 하였다. 미국의 건국자들인 청교도들은 종교적인 박해를 피하고, 양심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신대륙을 찾아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종교가 국가의 권력을 빌려서 신앙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을 매우 반대하였던 사람들이었다.

    1754년, 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위대한 부흥 설교자였던 요한 웨슬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첫번째 짐승을 교황권이라고 해석한 다음, 두번째 짐승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영감적인 기록을 남겼다. “또 다른 짐승은 이제 곧 나타날 것이지만,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두번째 짐승은 42달의 끝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New Testment with Explanatory Notes, pp. 427. 여기서, 우리는 요한 웨슬리가 곧 나타날 한 국가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오직 미국만이 요한 웨슬리가 기다리던 국가의 조건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미국의 예언에 대한 연구를 여기서 중단해서는 안 된다. 요한계시록 13장 11절 뿐만 아니라 12절도 미국에 대한 예언의 계속이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lamb)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요한계시록 13:11-12. 12절은 미국의 모습이 어린 양 같은 모습에서 용처럼 말하는 모습으로 변할 때가 있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하나님의 예언은 미국이 사람들에게 경배할 것을 강요하는 세력으로 둔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요한계시록 13:14-17

    한 국가는 법을 통하여 말한다. 미국이 종교적인 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박해를 가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가? 또한 미국이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방식의 예배를 강요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은 미국의 그러한 변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미국은 짐승의 우상(image) 즉, 교황권을 닮은 어떤 세력을 만들 것이다. 중세기 때에 교황권이 국가의 권력을 등에 업고서 막강한 세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교회와 국가가 연합하면 종교적인 법을 강요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모습은 교황권을 매우 흡사하게 닮은 모습이 된다.

    요한계시록에 오해할 수 없는 언어로 예언되어 있는 것처럼, 미국은 마침내 짐승의 표를 강요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보면, 거짓 안식일이 짐승의 세력에 의해서 세워진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을 지키는 대신에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교황권의 권위에 충성을 바치는 표가 된다. 결국, 미국은 일요일 예배를 강요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예언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데, 지금 현재 미국의 정부와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점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건국 당시에만 해도 미국에서 카톨릭의 영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청교도들은 카톨릭의 핍박을 피해서 조국과 재산을 버리고 신대륙인 미국을 찾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카톨릭 교회는 그들에게 있어서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미국이 레이건 대통령 때에는 바티칸에 대사를 보내게 되었으며, 구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 과정에서 교황권과 극비리에 동맹하였던 것이 타임지에 대서특필 되었을 정도로 변하고 있다. 미국에서 카톨릭 교인수는 어떤 단일 기독교 교단의 교인수보다 압도적으로 많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미국회의 의원 가운데 카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범죄가 크게 범람함에 따라서, 미국 정부는 국민들을 지도하고 교육시키는 면에 있어서 종교의 영향력을 크게 필요로 느끼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종교와 국가 권력의 연합을 이룩하는 데에 결정적인 동기가 될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국회의원과 대통령 출마자들은 크리스챤 콜리션이라고 불리우는 기독교 연합체가 국민들에게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하려고 애쓰고 있다. 199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크리스쳔 콜리션이 지원했던 거의 모든 의원들이 상, 하원 선거에서 낙승을 거두었던 사실이 신문과 방송에서 크게 보도되었다. 이와 같이,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의 종교 단체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날로 증가되고 있는 모습은, 미국의 변신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성취가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일요일 예배를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믿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예언은 그 예언이 당대에 사는 사람들의 눈앞에서 성취되는 순간까지는 아무도 그것을 실감하거나 느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그 예언이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일요일 예배에 대한 기초가 이미 놓아져 있다. 모든 국가에서, 일요일은 휴일로서 법제화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 준수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종교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 남부에서는 일요일에 상점 문을 열지 못하게 하는 법을 구체화하는 움직임이 있으며, 죠지아 주 같은 곳에서는 일요일에 술을 팔지 못하는 법이 실시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17에는 짐승의 표가 매우 강압적인 경제적인 제재와 함께 강요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일요일 휴업령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법원은 일요일에 휴업해야 된다는 법령이 합법적이고 공정한 법이라는 견해를 나타내 왔다. 이러한 대법원의 견해는 모든 주에서 일요일 휴업령을 제정할 수 있는 문호를 열어놓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견해는 개인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서 침해당하게 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대다수의 국민과 국가의 유익을 위해서는 소수가 양보해야 된다는 논리로서 일요일 휴업령이 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도덕과 범죄가 날로 악해져 가는 현상태에서, 일요일 휴업령은 청소년과 국민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옮길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은 처음에는 매우 유연하고 탄력성 있게 시행될 것이지만, 점차적으로 강력한 성격을 드러낼 것이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 예언에 따라서, 일요일 휴업령은 미국에 의해서 주도될 것이다. 결국, 안식일에 대한 쟁점은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일요일 예배와 토요일 예배 중에서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다. 짐승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 안식일을 범하기로 선택하는 자들에게 찍혀질 것이다. 일요일 예배를 지지함으로서, 교황권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게 되며, 하나님의 창조와 권위를 상징하는 제칠일 안식일에 대한 거절을 표시하게 된다.

    결정해야 할 시간

    어떤 사람은 이러한 질문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욱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예언의 성취 직전에 살고 있다. 안식일 준수의 문제에는 나와 여러분들의 영생이 걸려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사단의 최후의 대쟁투에서 누가 사람들의 인정과 순종을 받는가에 대한 문제도 걸려 있는 것이다. 안식일에 대한 문제는 생활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초월하는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직접 기록한 십계명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마지막 시대에 안식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순종과 사랑을 시험하는 테스트가 된다.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야고보 4:17

    사단은 마지막 시대의 대쟁투를 위해서, 수세기 전부터 준비해 왔다. 사단은 교황권을 통하여 중세 시대에 이미“때와 법을 변개”시킴으로써, 온 세상을 깊은 기만 가운데로 몰고 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통하여 사단의 그러한 계획을 폭로하셨으며, 미국의 출현과 변신에 대한 예언을 주셔서, 하나님의 성도들로 하여금 피할 길을 예비하여 주셨다. 지금 온 세상은 두 개의 깃발 아래로 나누어지고 있다. 역사를 통하여 사단과 그리스도 사이에 벌어졌던 대쟁투가 이제는 그 마지막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종교통합 운동에 의해서, 모든 교단들이 진리를 타협하면서 하나로 뭉쳐지고 있다. 이렇게 뭉쳐지고 있는 교단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에 대한 불순종이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또 한 무리가 다른 깃발 아래로 몰려들고 있는데, 그들은“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로서 구별되고 있다(요한계시록 14:12). 시험이 심각해지면 질수록, 각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과 사람의 전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인을 받든지, 짐승이 만들어 놓은 거짓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짐승의 표를 받든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요한계시록이 제시하고 있는 마지막 투쟁은 짐승의 표를 받을 자들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 사이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지금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때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 영문 성경역

     

    미국의 출현과 운명 (1부)


    앞의 기사에서 우리는, 요한 계시록 12장이 말하고 있는 용의 핍박으로 부터 교회를 도와주는 “땅”과, 또한 13장이 말하고 있는 땅에서 올라오는 새끼 양 같은 짐승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이 사실을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계시록 13장의 예언을 좀 더 자세하게 살피는 일이 필요할 것 같다. 요한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등장하는데, 첫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부터 올라오고, 이 첫번째 짐승이 깊은 상처를 받을 무렵에 두번째 짐승이 출현하는데, 두번째 짐승은 땅에서 부터 올라온다. 이 두 짐승의 정체와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가 요한계시록 예언 해석의 핵심이다.

    첫번째 짐승은 누구인가?

    이 첫번째 짐승은 표범의 몸과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으며 용으로 부터 그 권세와 능력을 받는 괴상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짐승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열 뿔 위에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상징되어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모든 성경 예언은 성경 자체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인간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석한 설명들은 제 각기 다를 뿐더러 신빙성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열쇄들을 발견해 냄으로 성경이 성경을 풀도록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 중 다니엘서 7장은 이미 바다에서 부터 올라오는 사자와 곰과 표범같은 짐승들과 용과 같은 짐승에 대하여 예언하고 설명하여 두었다 (살아남는 이들 3호 참조). 그들은 바벨론과 메데 페르샤와 그리스와 로마 나라인 것을 성경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그 네 짐승들의 머리들을 세어 보면 모두가 합해서 일곱이었다. 바벨론을 상징했던 사자의 머리가 하나요, 페르샤를 상징했던 곰의 머리가 하나요, 그리스를 상징했던 표범의 머리는 나누어진 네 지역을 나타내기 위하여 네 개를 가지고 있었고, 네번째 로마를 상징하는 무서운 짐승의 머리가 하나, 그래서 도합 일곱이었다. 그런데 흥미있는 사실은 요한 계시록 13장에 출현하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머리가 입곱이요 네번째 로마 나라가 가졌던 열뿔도 같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열 뿔은 두달 전에 본 월간지(3호 참조)에 게재된대로 로마 제국이 열국으로 분열된 사실을 가르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요한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어느 머리중 하나에게가 아니라 바로 열뿔 위에 면류관이 씌어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짐승의 출현 시기를 알려 주시는 비밀 암호로서 그것은 로마가 몰락하면서 열뿔로 나누여지는 과정과 시기에 시작한다는 뜻이다. 바벨론 시대가 아니고 페르샤나 헬라 시대나 로마의 전성기 시대도 아닌 열국 분열시기에 시작하는 세력인 것을 암시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이상한 짐승의 모습이 네 짐승의 복합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각 짐승들, 바벨론과 페르샤와 헬라와 로마의 부요함과 그 권력과 힘과,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했던 특성들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는 뜻이며, 그 모든 세력들이 지배했던 모든 지역을 다 포함하여 권세를 누릴 것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이 표범과 같은 짐승이 하는 일과 그 성격을 살펴 보면 그 정체를 우리는 곧 파악 할 수 있게 된다.
     

     
     

    1. 그는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용 같은 나라로 상징된 이교 로마 나라로 부터 받는다 (계 13:1,2).


    2. 그가 경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종교적인 세력인 것을 알 수 있고, 온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계 13:3,4).


    3 참람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요한 계시록 13:5,6). 성경에서 참람됨이란 다음의 두 가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a. 자기가 죄를 용서 한다고 주장 하는것 (눅 5:21).
       b.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 하는 것 (요 10:33).


    4. 이 세력은 42달, 즉 1260년 동안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다 (계 13:5).
    * 서기 538년에 로마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의 교회 감독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는 조서를 내리고 군대를 사용할 권한을 부여한 후 부터, 교회의 교황권은 1798년 불란서의 버티어 장군이 교황을 포로로 잡아 갔던 해까지 예언대로 1260년간 큰 권세를 행사 하였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 하였고 그 기간 동안 거의 일억에 가까운 숫자의 그리스인들이 순교를 당했다.


    5. 이 세력은 하나님의 성도를 핍박한다 (계 13:6,7).


    위에 열거된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그 세력은 다름이 아닌 로마 교회의 교황권임에 틀림이 없다. 말틴 루터를 포함하여 유수한 종교 개혁자들인 멜랑톤, 니콜라스 리들리, 쟌 베일, 라티머, 크래머, 쟌 낙스 등등 많은 개혁자들이 요한 계시록 13장의 첫 짐승은 다름아닌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르쳤었다. 그러나 로마 교회의 감독제로 시작되었던 교황권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는 교황 자기 자신도 칼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삽입하여 두셨는데, 그것이 바로 1260년 박해 기간이 끝나던 해에 성취된 일이었다. 요한 계시록 13;10은 다음과 같이 예언 하였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그 예언대로 1798년에 교황 피우스 6세가 포로되어 가서 죽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교황권이 그대로 그렇게 끝날 것이 아니라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낫게 될 것이며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를 따를 것이라고 예언하여 두었다 (요한 계시록 13:3).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그 예언의 성취를 보고 있지 않는가! 1929년도의 라테란 조약을 기점으로 그 상처가 회복되면서 교황이 가는 곳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며 존경하며 환호하고 있는가! 그의 인기가 하늘을 충천하여 올라만 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너무나도 정확한 성서 예언의 성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짐승은 누구인가?
     

    그런데, 괄목할만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점에, 다시 말해서 교황권이 상처를 받게 되는 그 시점에, 인구가 많지 않은 땅에서, 새끼 양같은 모습 곧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의 정신을 가지고 등장하는 다른 한 짐승이 올라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짐승은 교회를 핍박으로 부터 도와 주는 모습으로 12장에서 언급되었던 그 세력이다.


    이러한 부인 할 수 없는 지리적이고 시기적이며 특성적인 정확한 묘사와 암시들을 가지고서 우리가 어찌 계시록 13장 11절에 나타나는 새끼 양같은 짐승을 미국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있겠는가? 지성과 양심을 가지고 편견없이 열린 마음으로 살피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경에 나타난 미국에 대한 예언에 대하여 의심없이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의 출현에 대한 예언과 성취를 다시 요약하여 보자면 다음과 같다.

     


    출현하는 위치 : 성경은 이 짐승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하였다 (요한 계시록 13:11). 모든 다른 짐승들은 물에서 올라 왔는데, 요한 계시록 17:15은 물을 백성과 방언과 열국들이라고 해석해 주고 있다. 그 이전 제국들은 인구가 많이 밀집한 지역들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 짐승은 인구가 별로 없는 지역에서 일어 나는데, 땅은 물의 반대이므로 광야와 같이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곳을 상징한다.


    이 짐승이 올라 온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를 살펴 보면 “자라나다”, 혹은 “식물처럼 솟아 올라오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 씌어져 있다. “옛 세계를 새 세계와 비교함“이란 책 p.462에서 G. A. Townsend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미국은 그 공허한 곳으로 부터 나아오는 신비함이 있고, 마치 씨앗이 조용히 자라 큰 제국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850년도에 유럽의 알려진 신문이었던 The Dublin Nation지는 미국이 “서서히 조용한 땅에서 올라와 매일 그 힘과 세력을 더해 가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출현하는 시기 : 이 짐승은 요한 계시록 13장 첫 부분에 나오는 표범처럼 생긴 짐승이 사로잡힘을 당하는 시기에 올라온다 (요한 계시록 13:10,11). 교황권이 1798년도에 불란서에 의하여서 깨어지는 일을 당했기 때문에 두번째로 올라오는 이 짐승이 1798년도를 전후로 일어 나야 하는데, 미국의 건국 시기는 이 예언을 적중 시키었다. 요한 웨슬레는 1760년도에 계시록 13장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새끼양같은 짐승)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 그러나 올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 그는 첫번째 짐승의 42달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17th ed., 704). 얼마나 놀라운 해석이었는가!

    출현하는 방법 : 요한 계시록 13:11은 이 짐승이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새끼 양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우선 어리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력인 것을 말한다. 두 뿔을 가지고 있는데, 이 뿔들에는 왕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왕권이 없는 나라이며 오히려 두 세력이 서로 조화되어 운영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것은 사법 기관과 입법 기관이 서로 견제하며 통치하는 나라인 것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린 양은 천진난만함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이전 유럽의 폭정과 핍박에 비추어 얼마나 대조적인가! 거기에는 압박과 독제가 없고 자유가 있는 것이다. 또한 양은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복음 1:29에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1:28).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밑에 기록되어 있는 Emma Lazarus 의 글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초청의 말씀과 아주 비슷한 내용인 것을 보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 저곳을 쳐서 점령했던 그리스의 청동구리와 같은 모습이 아닌, 여기 바닷가 해지는 어구에, 불타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강력한 여인이 있으니 그 이름은 방황하는 자들의 어머니라. 그 여인의 등대같은 횃불은 온 세상을 환영하듯이 조명하고 있고, 그의 미소는 다리로 연결된 두 도시를 주장하고 있다. 그의 입술은 ‘고대의 나라들아 너희의 장식된 허세가 무엇이냐’라고 말하는 듯하다. ‘너희의 지치고 가난하며 자유를 숨쉬기 위하여 갈망하는 자들을, 너희의 거절하여온 항구들로 부터 보내어 내게 달라. 집이 없는 자들을 물 건너 내게 보내어라. 나는 내 횃불을 황금의 문 옆에 높이 들리라!”


    어린양! 미국을 위한 얼마나 걸맞는 상징인가!
     

    그러면, 1798년도를 전후로 하여 인구가 별로 없는 곳으로 부터 왕권이 없이 민주 공화정치를 구현하며 기독교 정신을 가지고 자유와 천진스러운 성격을 띄고 새끼 양처럼 일어 난 나라가 과연 어느 나라인가? 미국 이외에 또 어느 다른 나라가 이 예언에 들어맞는 성격을 가지고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핍박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출하고 성경의 복음과 진리를 세상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미국을 세우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미국의 운명을 성경에 미리 예언하여 두셨다.


    그런데, 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우리는 미국에 관한 성경 예언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미국이 새끼양처럼 올라왔는데, 용처럼 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새끼양처럼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요한 계시록 13:11.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 미국이 양같은 정신을 버리고 옛날 유럽의 압박의 정신으로 돌아가 핍박하는 세력으로 결국은 변모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 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요한 계시록 13:12-17
     

    엄청난 예언이 아닐 수가 없다. 바로 이 예언이 미국을 통하여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미국이 머지않은 장래에 종교의 힘을 가지고 사람들을 강제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며, 먼저 나온 짐승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미국의 국민들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를 막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여서 종교적인 강제성을 입법화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앞으로 다시 중세기의 핍박이 이 세상에서 잠간 동안 재현 될 것이며, 바로 미국이 그 선봉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밝은 약속이 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33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

    미국이 미래에 행할 일들에 관해서는 다음에 이어지는 제2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남는 길은 성경, 오직 성경대로만 믿고 사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이 종말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특별히 함께하시도록 기도하여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용처럼 말하는 둘째 짐승, 미국 (2부)



    미국의 출현과 미국이 장차 세계적인 초강대국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 해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여년 전에 처음 시작되었다. 종교개혁자이며,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러는 미국이 건국되기 전에 이미 두번째 짐승의 출현을 정확하게 예고하였다. 1760년경, 그는 1260년간의 교황권의 권세가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번째 짐승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하였다. "새끼 양같은 두번째 짐승이 아직 이르지 아니했지만, 그러나 올 날이 결코 멀지 않았다. 그는 첫번째 짐승의 42달 기간이 끝나는 시기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17th ed., 704.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 해석인가! 그는 미국이 건국되기 이전에 죽어서 자신의 예언 해석이 성취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그가 남긴 해석은 지금까지 남아서 놀랍도록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다. 요한 웨슬리의 예언 해석은 그 이후 더욱 발전되어서, 1890년경에는 J.N. 앤드류스 목사에 의하여 두번째 짐승의 정체는 바로 미국이며, 미국은 장차 온 세상을 향하여 용처럼 말하는 존재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 해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은 아직도 인디언과의 내전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고, 또한 미국 내의 기독교계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반 천주교회 분위기로 인하여 앤드류스 목사의 예언 해석은 일반 기독교회에게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은 청교도적인 정신이 투철하던 때였다. 교황권에게 쫓겨서 고향 땅인 유럽을 등질 수 밖에 없었던 미국인들은, 앤드류스 목사에 의하여 미국이 두번째 짐승으로 지목되자, 그의 예언 해석을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요한 웨슬리와 앤드류스 목사의 예언 해석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는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 해석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건국 당시만 해도 미국은 세계에서 미미한 존재였다. 아무도 미국이 장차 용처럼 말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1,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온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이 몰락한 후부터는 온 세상을 향하여 "용처럼 말"하기 시작하는 초강대국 미국에 대하여 어떤 나라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나님의 예언이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게 성취되는 모습을 보노라면, 엄숙한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한 가지 두렵고 놀라운 사실을 미국에 관한 성경 예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미국이 새끼양처럼 올라왔지만, 종국에는 용처럼 말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새끼양처럼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하나님의 예언은 미국은 결국 새끼 양같은 정신을 버리고 중세기 때에 교황권이 유럽을 압박하던 그 정신으로 돌아가서 결국에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첫번째 짐승과 두번째 짐승이 협력하여 핍박을 가하게 되는 장면을 주의 깊이 살펴 보도록 하자;
     

    “저(두번째 짐승, 미국)가 먼저 나온 짐승(첫번째 짐승, 교황권)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첫번째 짐승, 교황권)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 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첫번째 짐승, 교황권)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육이니라.” 요한 계시록 13:12-17
     

    엄청난 예언이 아닐 수가 없다. 바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예언이 군사 및 경제 대국인 미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미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강압적 방법으로 사람들을 종교적으로 강제하는 일을 할 것인데, 먼저 나온 첫번째 짐승(교황권)을 위하여 일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과거 중세기 때에 교황권이 당대의 최고 강대국이었던 로마 황제와 손을 잡고 하나님의 참 백성을 핍박했던 것처럼,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과 손을 잡고 다시 중세기의 핍박을 재현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선지자 다니엘은 이 마지막 시대의 핍박을 "또 환란이 있으리니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란일 것이며"라고 기록하였다(단 12:1).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짐승의 표가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사건이 소개되었고,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핍박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한 무리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는데, 그들이 바로 14400인에 대한 예언이다. 짐승의 세력에 맞서서 승리하는 144000인, 그들은 누구인가? 계시록 14장의 후반부에는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그의 표를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체가 소개되어 있는데, 바로 그것이 14400인들의 특성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참 백성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은 "인내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투쟁은 "누가 참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쟁점으로 모아지게 된다.

     

    로마 천주교의 성경과 달리하는 교리


    다니엘서의 예언을 보면 법왕권(작은 뿔로 표상됨: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 33, 52호 참조할것) 이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단 7:25)라고 되어있다. 성경의 어떤 진리들을 변경시켰는지를 살펴보자.

    1. 교황권은 교황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거나 동등시하는 주장을 한다.


    “교황은 너무 존엄하고 높기 때문에 단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천주교회 백과사전에 기록된 “교황”에 대한 정의(교황 레오 13세의 말 중에서 발췌)
    “교황들은 이 지구상에서 전능한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 1894년 6월20일 교서 중에서
    “교황은 하늘의 왕, 지상의 왕, 연옥의 왕으로서 삼층 면류관을 쓴다.” Feraris저, Prompta Bibliotheca 제 6권, p. 26 (바티칸에서 발행한 공식 서적)
    “성경에서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모든 명칭들과 그분의 최상권에 관한 모든 내용은 모두 다 교황에게도 적용된다.” Bellarmin, Authority of Councils, 2권 17장
    “우리(주: 교황들)는 이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7/20, 1894.
    “교황은 너무나 위엄이 있고 지고하기 때문에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인 동시에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다. 교황은 지상의 하나님이시며, 왕중의 왕이시고, 최고의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 Prompta Bibliotheca, vol. VI, p. 25-29.

    2. 교황권은 자신들이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참람된 주장을 한다.


    “하나님 자신도 신부들이 용서해 주거나 용서하기를 거절하는 사제들의 판단에 따라서 행하시며, 신부들의 선언이 선제한 후에야 하나님께서 그것에 의해 판단하신다.” 신부의 존엄성과 의무들, 12권, p. 27
    “교황은 그의 권세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수 있고 땅 위의 대리자로서 그는 그의 양들을 매고 푸는 가장 큰 권세를 가지고 행동한다.” Ford, p.151
    “용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주 신부들에게 죄를 고백해야만 하는 것이다.” 1984년 12월 11일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137페이지에서

    3. 교황권은 종교 암흑시대 동안에 십계명을 변경시켰다.


    카톨릭 교회는 자신들의 교리문답과 교리책에서 두번째 계명을 삭제하였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에 기록되어 있는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두번째 계명은 그들이 숭배하는 마리아 상이나 각종 성자들의 상을 정죄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계명을 빼버리는 대신에 열번째 계명을 둘로 나눔으로써, 10개의 계명을 가진 십계명의 형태를 유지시켰다.

    또한 네번째 계명인 제칠일 안식일(토요일)을 제일일(일요일)로 변경하여 준수하도록 하게 하였다. “카톨릭교회는 안식일을 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서 첫째 날인 일요일로 변경시킨 후,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고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고 명하였다” 카톨릭 사전 4권, 153.

     

    짐승의 우상이란 무엇인가?


    짐승의 우상은 멋있게 보인다. 그것은 도덕적이고 올바른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것이 마지막 시대에 대다수의 사람이 미국에 짐승의 우상을 세우는 일에 동의하게 되는 이유이다.


    킹 제임스 성경을 보면, 성경 요한 계시록 13:14,15 에 기록된 "우상"이란 단어가 영어로 "Image", 곧 "형상"이라는 뜻으로 쓰여졌는데, 이것은 어떤 것을 매우 흡사하게 닮았다는 것을 말한다. 계 13:14,15 에는 첫 번째 짐승을 위하여 만들어진 한 우상(image, 형상)이 등장하는데, 이 우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일에 사용될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우상의 정체에 대한 두가지 힌트
    1) 우상은 첫번째 짐승을 위하여 만들어진다
    2) 우상은 첫번째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았다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은 첫번째 짐승을 위하여 만들어지는데, 그 모습(image)은 첫번째 짐승의 특성과 행적을 닮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번째 짐승과 그가 한 행적

    이 첫번째 짐승은 표범의 몸과 곰의 발과 사자의 입을 가지고 있으며 용으로부터 그 권세와 능력을 받는 괴상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짐승은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며, 그 열 뿔 위에 면류관을 쓰고 있다고 상징되어 있다. (살아남는 이들 48호, 52호를 참조할 것) 이 이상한 요한 계시록 13장의 짐승은 그의 머리 중 어느 하나에게가 아니라, 바로 열뿔 모두 위에 면류관이 씌어져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데,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짐승의 출현 시기를 알려 주시는 비밀 암호로서 그것은 로마가 몰락하면서 열뿔로 나누여지는 과정과 시기에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 표범과 같은 짐승이 하는 일과 그 성격을 살펴보면 그 정체를 우리는 곧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역사에 나타난 첫 번째 짐승의 행적
     
    1) 그는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용같은 나라로 상징된 이교 로마 나라로부터 받는다 (계 13:1,2).
    2) 그가 경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종교적인 세력인 것을 알 수 있고, 온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계 13:3,4).
    3) 참람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요한 계시록 13:5,6). 성경에서 참람됨이란 다음의 두 가지를 주장하는 것이다. a. 자기가 죄를 용서 한다고 주장 하는 것 (눅 5:21). b.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 하는 것 (요 10:33).
    4) 이 세력은 42달, 즉 1260년 동안 지배하는 권세를 가진다 (계 13:5).
    5) 이 세력은 하나님의 성도를 핍박한다 (계 13:6,7).

    위의 사실들을 미루어 보아, 그 세력은 다름이 아닌 로마 교회의 교황권임에 틀림이 없다. 말틴 루터를 포함하여 유명한 종교 개혁자들, 멜랑톤, 니콜라스 리들리, 쟌 베일, 라티머, 크래머, 쟌 낙스 등등의 많은 개혁자들이 요한 계시록 13장의 첫 짐승은 다름아닌 교황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가르쳤었다. (더 자세한 연구를 원하면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48호, 52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요약


    1) 첫번째 짐승(교황권)이 갖고 있던 세력은 정치-종교적 세력이었다.
    2) 교황권은 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자기들의 종교를 강요하고, 자기들의 종교를 믿지 않는 참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였다.
    3) 마지막 시대에 형성되는 짐승의 우상도 첫번째 짐승의 모습(image)을 닮아서 정치적 힘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믿는 종교적 교리나 가르침을 강요할 것인데, 이를 거절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가혹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짐승의 우상을 세운다는 말의 의미 =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에 교황권이 로마 제국의 권력과 손을 잡고 자신들이 강요하는 교리를 거절하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던 것처럼, 미국의 개신교회가 미 정부의 권력과 손을 잡고 중세기 때에 교황권이 행했던 종교적 핍박의 모습(image)을 재현할 것이라는 뜻이다.

    사단이 짐승의 우상을 세우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

    1) 종교 연합 운동 : 개신교회와 교황권의 연합운동은 이미 오래 전부터 추진되어 왔다. 벌써 오래 전에 주요 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보자. "교황권의 요구에 따라, 200여 종파의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각기 다른 전통을 가지고 분리되어 있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교황과 함께 기도하고자 트리니티 대학의 예배실에 모였다. 국제 교회 협의회의 총무인 클레이너 랜달 씨는 '거기서 교황이 개신교도들과 함께 칼빈파의 찬미가와 찰스 웨슬러의 찬미를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한 -이 사실은 우리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고 덧붙였다" 1979년 10월 8일자 워싱턴 포스트지.


    종교 연합 운동은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것은 오래 동안 성공리에 추진되어 왔고, 거의 대부분의 종파가 가입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믿는 신조와 교리의 차이로 인해 이러한 종교 연합에 참여하지 않는 어떤 교파나 그룹이 있으면, 그 종파에게 핍박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
     
    2) 교회와 국가의 연합 : 종교연합운동의 정신에 깊이 젖어있는 사람들은 강력한 기독교 정치 단체를 구성하여, 도덕적으로 피폐해진 사회와 국가에 다시 기독교적 정신을 불어넣고, 미국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하실 수 있는 국가로 만들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단체들이 미국의 기독교 극우 보수파 단체들이다. 그들이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종교적 성향을 띤 법안을 입법화하거나 교회와 정치에 대한 분리의 벽을 허물어뜨릴 수 있는 헌법의 재해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지지하는 특정한 정치인들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국회의원들에게 강력한 로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개신교가 미 정부의 권력과 손을 잡고 자신들이 믿는 특정 교리를 일반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 신앙적 양심 때문에 그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핍박이 가해지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단은 이러한 기독교계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미국을 강력한 기독교적 헌법을 가진 용같은 짐승으로 키우기 위하여 최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미국에 있는 개신교회 단체들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주목해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


    "알라바마주와 메릴랜드, 그리고 많은 다른 주들에서는 지금, "과연 종교적인 기념비를 공공 건물이나 장소에 세우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치열해 지고 있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기념비는 괜찮지만, 문제는 어떤 종교의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제 미국은 종교적인 문제를 정치적인 이슈로 밀어부치는 데 성공하였고, 국민들의 종교적 관심도도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과거에 없었던 것 같다. 이제는 짐승의 우상이 거의 세워지는 시대에 들어선 듯하다." 2003년, 9월 30일, U.S.A Today에 실렸던 기사

    - CNN, Gallup 여론 조사 -
    1. 미국 돈 동전에 쓰여진 "In God we trust"라는 문구를 좋게 생각하는가? 예: 90% 아니오: 8%
    2. 초 교파적인 기독교 예배 행사를 공립학교에서 여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가? 예: 78% 아니오: 21%
    3. 성경 십계명 비를 공공 건물이나 장소에 세우는 것을 찬성하는가? 예: 70% 아니오: 29%

     

    핍박하는 자와 핍박 받는 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성경 가방을 손에 들고, 혹은 비싼 반지를 낀 손에 무게있는 까만 가죽 성경과 찬송가를 든 채.... 주일이면 가족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갈 때는 좋은 인상 (부자이며 아름답고 그리고 똑똑하며 믿음 좋다는 인상) 을 끼치기 위해 가장 아름다운 옷을 차려 입고, 될 수 있으면 앞자리에 앉습니다. 때로 주일학교 교사를 맡아 가르치는 봉사도 하고, 혹은 성가대에 들어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찬양도 합니다. 손을 흔들며 하는 찬양 예배시간, 부드러운 반주와 리듬에 맞추어 노래하다 보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감격에 빠지기도 하고, 통성기도 때에 제일 큰 소리를 내어 하기도 합니다. 목사님을 도와 심방도 열심히 가고, 새벽 기도회에는 빠지는 적이 없고, 가족의 무사와 안일을 위해 연금도 많이 드리며 교회 봉사 활동과 선교 활동에도 남 다른 열심을 보입니다. 이쯤 되면, 이 사람의 신앙 상태에 대해 나무랄 것이 아무 것도 없겠지요? 정말 그럴까요? 계속 들어 보기로 하지요!

    그런데 예배시간이나 구역반 예배 때 자기 남편이나 아내가 기도를 맡았는데, 잘 하지 못하고 떠듬거리거나 유창하지 못한 기도를 드립니다. 얼마나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하는지......신앙있는 가문의 인상을 평가 절하시키는 태도에 신경질이 납니다. 돌아오는 길에 던지는 퉁명스러운 한 마디... "당신 믿은 지가 얼마인데 그 기도가 그게 뭐야! 나 원 참 부끄러워서..."

    그 날 설교 시간에 특별히 목사님께서 교회에서 라이벌 관계인 아무개 장로 혹은 아무개 집사의 이름을 들어가며 칭찬을 하십니다. 갑자기 속에서 열이 나며 생각이 뒤엉키는 바람에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목소리가 점점 멀리 사라지는 듯 합니다. "아니 목사님이 하필이면 그 장로, 그 집사 칭찬을 하시다니...내가 그 사람보다 모자라는 게 뭐 있다고...앞으로 교회에서 내 영향력을 더 펼치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겠군!..."

    교회 주보에, 특별한 사회 봉사활동을 벌인 아무개 집사의 동향이 실렸습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드린 많은 연금과 사회에 베푼 선행과 기부금이 모든 교인들의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칭송을 받는 그 집사를 보며 예배시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제직 회의 때, 교회를 위하여, 굉장한 지지를 받을 만 하다고 느껴지는 훌륭한 의견을 제시했건만, 제직 위원들이 별로 나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어떤 장로가 의의를 제기하며 무시하는 발언을 합니다. 없신여김을 받았다는 생각에 속으로 내심 불쾌합니다. 기회가 다시 주어지면 의의를 제기했던 그 장로에게 멋진 반격을 하리라 마음속으로 벼릅니다.

    구역반을 위하여 준비하는 회의시간이었습니다. 으레히 구역장인 내가 모든 것을 잘 관활하고 통솔하건만, 별 지도력도 없어 보이는 새 교인이 참석해서 구역 예배를 위한 건설적인 의견이 있노라고 하며 열렬히 자기의 의견을 내세웁니다. 버릇없다는 생각이 스치며 앞으로는 잠잠하도록 만들어야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예배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속에서, 설교 시간에 끄떡거리며 졸던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는 늘 혼벼락을 맞습니다. 믿음이 없고 영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닙니다.


    마음 속에 일어나는 육신적인 욕망들 - 좋은 평판과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 교회에서 최상권을 잡고 싶은 욕망, 칭찬과 높임을 받으려는 욕망, 자기의 영향력과 주관을 실현시키고 싶은 욕망,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고 싶은 욕망, 경쟁에서 으뜸이 되고 싶은 욕망 - 들을 아름다운 모습과 경건한 태도로 포장을 한 채...

    그것이 진정으로 창조주를 경배하고 섬기려고 드리는 예배라기보다는 자신의 의견과 평판을 더 사랑하고, 자신을 섬기는 예배가 되는 줄도 모른 채...그리고 신앙은 책갈피 속에 끼워 놓았다가 일주일에 한번씩만 꺼내는 장식품 쯤으로 생각한 채...그리고 그런 신앙 태도가 얼마나 많은 교우들을 혼란가운데 빠뜨리는 줄도 모른 채...그리고 예수님의 참된 온유와 겸손과 사랑의 정신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지배하고 핍박하는 "용"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도 모른 채...그래서 자신이 이사야서에 표현된 "성전 마당만 밟는 사람들"의 존재가 된 줄도 모른 채...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신앙은 곧 삶


    신앙은 매일의 삶속에 스며들어 있어야 합니다. 화판에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물감이 칠해져 있듯이, 생활속에 그렇게 가끔씩 나타나는 것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화판 전체가 온통 아름다운 물감으로 채색되듯이, 신앙은 먹을 때, 입을 때, 말할 때, 숨쉴 때, 그리고 사는 전체의 삶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좋은 그리스도인이었는데, 장사할 때는 비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훌륭한 교인이었는데, 가정에서는 비 교인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주장대로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남을 누르고 핍박하는 사람이 됩니다. 자기 뜻대로 성사되지 않으면 못마땅해서 기분이 상하는 사람은 결국 남을 해치고 핍박하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의 나라의 원칙
       

    예수께서 하시는 구속 사업에는 강제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하여 어떤 압력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오로지 "사랑"뿐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성령의 감화 아래서 누구를 섬길지를 선택할 자유를 주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왕국에서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누가 크냐'는 논쟁을 벌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슬퍼하시며, 분개한 제자들을 불러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법정이나 회의나 입법 기관의 결정, 또는 세상의 위인들의 후원을 얻어 설립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간의 마음에 심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세력과 부와 교육은 지도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군중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상류 계급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지배하게 되어 있었으며, 하류 계급은 복종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종교도 또한 권력에 좌우되었습니다. 백성은 상부에서 지도하는 대로 믿고 행하도록 기대되었고, 인간으로서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권리는 전적으로 부인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이나 제사장의 의견을 따라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진리를 거절했습니다.

    세상 나라에서 지위는 권력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이와는 다른 원칙하에 국가를 건설하고 계셨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권력이 아닌 사랑과 봉사로 부르셔서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권력과 지위와 재능과 교육은 동료들에게 봉사할 큰 의무를 감당하도록 그들에게 주셨으며, 결코 그것을 사용하여 누구를 억누르거나 핍박하거나 학대하도록 고안하시지 않았습니다.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심령은 속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를 판단하거나 그의 의무를 규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에게 생각할 자유와 그가 깨달은 대로 행할 자유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오만한 압제도, 행동의 강제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빈곤을 맛보셨고, 우리를 위하여 극기하셨으며, 당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모든 사람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원칙은 그의 몸된 교회의 교인들이 행하여야 할 원칙입니다. 구원의 계획과 기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예수께서 끼치신 모본을 따르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여러분은 핍박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핍박받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을 미워하고, 모함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 보복하려고 벼르고 계십니까? 아니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사랑으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어떤 사람이 여러분과 신앙이 다를 때, 여러분은 그에게 역성을 내며 신앙을 강요하십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깨달을 때까지 오래 참으며 사랑으로 본을 보이십니까? 여러분의 의견이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때, 여러분은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없신여김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십니까? 아니면 나의 주장에 어떤 고칠 점이 있는지를 겸손하게 다시 반성하고 생각해 보십니까? 여러분이 교회에서 맡은 직책을 다른 교우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봉사하고 섬기기 위하여 사용하십니까? 아니면 교회를 좌지우지하고, 다른 교인들을 지배하며 다스리기 위하여 사용하십니까? 교회활동을 함에 있어, 자신이 중심이 되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하십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받아들이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어 협력하며 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고, 진정한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한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나중에 결국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고 핍박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그리고 예수님의 바른 정신, 곧 겸손하고 온유한 정신을 온전히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종교를 강요하는 일이 있을 때, 그 틀린 정신과 무리속에 다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핍박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핍박 받는 사람입니까?

     

    2006년 6월 6일 (화) 18:27   경향신문

    [월드리뷰] 神政으로 가는 미국

    〈김철웅/ 논설위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얼마 전 자신의 책 ‘강자와 전능한 신(the Mighty and the Almighty)’을 내면서 가진 인터뷰에서 음미할 만한 얘기를 했다. ˝“링컨은 ‘우리는 신의 편이 돼야 한다(We have to be on God’s side)’고 했지만 부시는 ‘신은 우리 편이다(God is on our side)’라고 말한다”
    는 것이었다. 둘은 비슷한 표현 같지만 들여다 보면 신에 대한 화자의 시선에 큰 차이가 있다. 올브라이트는 이렇게 링컨의 겸허한 신앙과 대조되는 부시의 신앙을 ‘종교적 절대주의’라고 비판했다. 올브라이트가 말한 기독교 절대주의, 기독교 근본주의에는 미국이 적으로 규정한 이슬람 근본주의에 못지 않게 독선적·광신적 성격이 내포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올브라이트의 평가대로 부시 대통령이 겸허한 신앙인은 못될지언정 독실한 기독교도란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젊은 시절 방황했던 그는 40대에 들어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회심(回心)했다고 한다. 부시가 2000년 공화당 예비선거 기간 중 가장 영향을 받은 철학자를 묻는 질문에 ‘예수’라고 대답했다는 얘기는 깊은 그의 신심을 반영한다.

    -부시 ‘기독교 절대주의’의 독선-

    이 신심이 종교적·이분법적 세계관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9·11 테러였다. 테러가 발생하자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세계를 선과 악으로 분류했다. 이 분류법에 따라 북한, 이란, 이라크는 ‘불량국가’ 중에서도 특히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악의 축’으로 지목되는 불운을 맞았다.

    미국이 급속히 ‘신정(神政)정치’로 접근하고 있다는 시각이 제시돼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최근 출간된 사회비평서 ‘미국의 신정정치(American Theocracy)’가 있다. 과거 공화당 정치전략가로 활약했던 케빈 필립스가 쓴 이 책은 ‘21세기의 미국’과 ‘신정정치’라는 상극적 요소를 결합해 미국 정치를 분석했다. 부시 대통령을 탄생시킨 기독교 우파가 공화당과 워싱턴 정가를 장악함으로써 미국이 신정정치로 접어들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다. 일견 황당하게 들리지만 5월 뉴욕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른 것을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미국이 신정정치로 향하는 조짐은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걸쳐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2000년 들어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뚜렷한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필립스에 따르면
    지금의 공화당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종교 정당’이며 부시는 그 창설자다. 9·11은 이라크의 석유에 오랫동안 눈독을 들이던 미국 석유기업들과 부시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그것은 부시가 ‘근본주의자’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 기회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우파 기독교인들은 종말론과 임박한 예수 재림에 대한 믿음, 중동에서 시작될 아마겟돈 전쟁에 한껏 고무된다. 2004년 대선에서 부시에게 투표한 유권자의 절반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고 답했다는 조사가 나와 있다. 또 최근 급성장한 보수적 침례교 종파는 정교분리를 부인하고 기독교 강령에 의거한 신정 정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을 정도다.

    물론 필립스의 논리는 반론을 불렀다. 워싱턴 포스트는 필립스의 분석이 공화당에 대한 환멸에서 나온, 빈약한 근거에 바탕한 억측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미국이 점점 더 종교적이 되어가고 있다는 관측만은 사실에 부합하는 것 같다. 지난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2%는 ‘대통령은 강한 종교적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1960년 조사에서 75%가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응답한 것과 정반대였다. 유럽에서 종교가 쇠퇴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적 교회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종교적 확신과 현실 혼동 폐해-

    이런 변화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 가장 큰 폐해는 종교적 확신과 현실정치를 혼동하는 것이라고 본다. 앞서 올브라이트는 부시 대통령의 절대주의적 신앙을 비판하면서 ‘종교적 견해의 정책화’를 경계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기독교 우파·근본주의자들은 진화론을 거부하고 지구온난화를 부정한다. 좌파적 환경운동은 자연을 신으로 치환하는 우상숭배라고 비난한다. 기후 변화도 신의 뜻에 의한 것이지 이산화탄소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은 우리 편”이란 오도된 믿음은 파국적 결과를 낳지만 사람들은 애써 이를 외면한다.

     

    십계명의 과 일요일 휴업령


    성경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주시지 아니하고는 아무 일도 행하시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 3:7)


    참으로 그러하다. 우리는 이 지구 역사상 가장 밝고 맑은 양의 빛을 받은 백성들이다. 우리들이 현 시대의 징조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 졸고 있다면 전혀 핑계할 수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다 하나님의 예언을 이해하거나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자기를 죄로부터 정결케 하며 성령의 지혜를 가진 자들만 예언에 관심을 가지며 또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의 다니엘서에 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그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삼십오 일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단12:10~13)


    마지막 날 사건의 예언들을 이해하는 자들이 따로 있다. 우리 주위에서 현재 중요한 예언들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영원한 일들에 관해 관심이 없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세상일에 빠져서 시집가고 장가들며 집을 짓고 돈을 버는 일에만 치중하고 있다.


    다니엘은 자기가 할 일을 한 후에 쉬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나중에 자기가 한 일의 업을 누리게 될 것이니 지금은 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기가 감당한 몫에 대한 보상을 마지막에 가서 얻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 자신도 채 이해하지 못한 채 잠을 자고 있는 바고 그 예언을 이해하고 그 예언들의 성취를 보고 깨달으며, 세상에 나가 외칠 자들이 마지막 시대에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결의 경험을 하는, 그래서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미국은 준비가 다 되어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사회의 타락한 도덕을 십계명의 표준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보수주의 성향의 기독교인들의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미국 캔사스 주 의회에서는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라는 의제를 표결하였다. 그리고 죠지아 주 의회에서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도 좋다고 인정하였다. 현재 미국 복음주의 파들은 공공장소에 십계명을 새긴 돌비들을 부착하자는 주장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는 마침내 2006년 올해 5월 7일을 십계명의 날로 제정하고 와싱톤 디씨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큰 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말씀해 주시지 않으신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다음 한 선지자의 영감의 말씀을 읽어보자.


    [오늘날 미국에서는 교회의 제도와 관습에 있어서 국가의 지지를 받으려는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바, 그것은 개신교가 로마교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일이다. 그뿐 아니라 개신교도들은 로마교가 유럽에서 잃어버린 최상권을 개신교 미국에서 회복하도록 문을 열어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운동에 더욱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일요일 준수, 곧 로마교가 만들어서 그의 권위의 표라고 주장하는 관습의 강요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사실이다. 오늘날 개신교회들에 침투되어 그들로 하여금 일찍이 로마교가 그들 앞에서 한 그대로 일요일을 존중하는 동일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은 로마교의 정신, 곧 세속적 관습과 일치되고, 하나님의 계명보다 사람의 유전을 존중하는 정신이다. 미구에 전개될 투쟁에 있어서 어떤 기관들이 이용될 것인지 이해하려면 로마교가 그와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과거에 어떤 수단을 이용했는지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된다. 법왕교와 개신교가 연합하여 그들의 교리를 반대하는 자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알고자 하면 로마교가 안식일과 안식일 옹호자들에 대하여 나타냈던 정신을 알아보아야 한다.] (The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573)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이 불신에 대하여, 강신술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심의 거룩한 율법을 멸시하는 일에 대하여 문울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계에 있는 죄악에 대한 무서운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급속히 퍼져가는 타락적 풍조가 소위 그리스도인 안식일(일요일을 가리킴)을 모독하는데서 기인된다는 것과 일요일 준수를 강요함으로 사회의 도덕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참된 안식일의 교리가 가장 널리 전파된 미국에서 특별히 강조된다.] (The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587)


    [성경상 안식일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성경에 이렇게 말했다”는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압제적인 법령을 의지할 것이다. 인기와 후원을 얻기 위하여 입법자들은 일요일 법령을 제정하라는 요구에 굴복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십계명의 조항들을 깨뜨리는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싸움터에서 진리와 오류간의 대쟁투의 마지막 큰 싸움이 전개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싸움의 결과에 대하여 확실히 모르도록 버려져 있지 않다. 모르드개의 시대에서처럼 이제 주님께서는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옹호하실 것이다.......로마 군대의 접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징조가 되었던 것처럼 이 배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가 이르렀고, 미국의 죄악의 잔이 찼고, 자비의 천사가 바야흐로 날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징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에 선지자들이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한 그 고통과 난관의 장면으로 돌입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50)


    일요일 휴업령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세력은 이미 사회의 관습이 되어버린 휴일제도인 일요일에 시민들을 쉬게 하자는 제의를 아주 쉽게 달성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국가의 헌법의 지지를 받아 강요하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옛날 콘스탄틴 황제 때에 내린 일요일 휴업령도 그 당시 이교도들의 휴일이었던 일요일을 쉬게 하는 법령을 내림으로 아주 손쉽게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옛날의 헌법은 국가의 왕이나 황제의 명령이었다. 또한 일요일 법령이 내린 이후에 거짓 소문들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일요일에 떡 방앗간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그 반죽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았다는 등의 괴 소문들이 퍼지며 일요일을 지키게 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서는 죽은 영들이 꿈에 나타나 일요일을 신성시해야 한다는 이상한 거짓 기적들도 꼬리를 물고 발생하면서 일요일 휴업령은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영감의 책은 그러한 일들이 우리 시대에도 반복되며 지구의 역사를 마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단은 두 큰 오류, 영혼 불멸설과 일요일 신성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의 기만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영혼 불멸설은 강신술의 기초가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로마교회에 대한 공명심을 일으킨다.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솔선하여 강신술과 손을 잡기 위하여 심연(深淵)을 넘어 그들의 손을 내밀고 또 그들은 큰 구렁텅이를 넘어서 로마교회의 세력과 악수하기 위하여 손을 뻗칠 것이다. 그와 같은 삼중 연합의 세력 아래 이 나라는 양심의 권리를 유린하는 일에 로마의 발차취를 따르게 될 것이다. 강신술이 오늘날의 유명 무실한 그리스도교를 더욱 잘 모방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큰 기만과 유혹의 세력을 갖게 된다. 사단은 현대의 감각에 맞추어서 스스로 변장한다. 그는 빛나는 천사의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강신술의 매개체를 통하여 이적들이 행해지고 병 고침을 받게 되고 부인할 수 없는 많은 기사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영들은 성경을 믿는 그들의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의 제도들에 대한 존중심을 표명할 것이므로 그들의 활동은 마치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처럼 인정될 것이다. 오늘날의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불신자들과의 한계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교회의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고 그들과 연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들을 하나의 단체로 연합시켜 강신술의 대열에 쓸어 넣음으로써 그의 사업을 강화시키고자 결심하고 있다. 이적이 참 교회의 분명한 표라고 자랑하는 법왕교도들은 이적을 행하는 이 능력에 쉽게 기만당할 것이며 진리의 방패를 버린 개신교도들 역시 미혹당할 것이다. 법왕 교도들과 개신교도들과 세속인들은 한결같이 경건의 능은 버리고 경건의 모양만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 연합을 온 세계를 교화시키는 큰 운동이요, 오랫동안 고대했던 복천년을 도래케 하는 운동이라고 볼 것이다. 사단은 강신술을 통하여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처럼 나타나서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 주고 새롭고 더욱 고상한 종교적 신앙을 제시해 주는 것처럼 공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파괴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그의 유혹은 무수한 무리를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부절제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고 방종과 투쟁과 유혈이 따르게 된다. 사단은 전쟁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의 가장 악한 감정을 자극하며 전쟁의 희생자들을 죄악과 유혈 속으로 영원히 쓸어 넣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적하여 싸우도록 자극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날에 설 준비를 갖추는 사업에서 떠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The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588)


    [미구에 하늘에는 이적을 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알려 주는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무서운 광경이 나타날 것이다. 마귀의 영은 땅의 왕들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속임수로 그들을 얽어매어 하늘 정부를 대적하는 그의 마지막 투쟁에 사단과 연합하도록 그들을 강요할 것이다. 그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통치자들과 백성들은 다 같이 속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라고 자칭할 것이며 구주께 속한 칭호와 예배를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병을 고치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성경의 증거와 반대되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노라고 공언할 것이다.] (The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623)


    2006년 5월 7일, 십계명의 날

    미국의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이 우리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한가지 일을 최근에 행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의 뒤통수를 친 일인데, 십계명을 기념하자는 “십계명의 날”을 제정한 일이다. 미국의 사회의 도덕을 개선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막자는 의도에서 기인된 운동으로서 마치 영감의 책에 기록된 장면들을 영화의 한편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런데 흥미 있는 일은, 하나님의 계명 중 하나를 로마교회의 제시에 따라 변경하여 지켜오던 개신교회는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계명의 권위를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일에 있어서 천주교회를 따라왔는데, 성경의 진리에 대한 서로의 차이들은 제쳐놓고 연합하자는 천주교회의 제의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단 말인가?


    십계명의 날! 정말로 기가막한 아이디어다. 누가 감히 그 좋은 제안에 반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도덕의 타락과 낙태의 죄와, 십계명을 공공장소에 걸지 못하게 하는 자유주의자들을 향한 미국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의 반기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국가를 위한 이 경건한 도덕 운동을 누가 감히 정죄할 것인가? 개신교회와 천주교인들이 연합한 이 운동에 유대교회도 감히 반대하지 못하고 연합하였다. 미국의 유명한 모든 목사들이 다 연합되어 있는데 어떻게 평신도들이 반대할 수 있겠는가? 물론 십계명을 지키케 하자는 데는 하자가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운동의 목표가 하나님의 계명을 폐하는 일을 국가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안식일을 바꾼 사람들이 헌법의 힘으로 넷째 계명을 범국민적으로 바꾸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들은 십계명의 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어떤 외형적인 표와 수단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형적인 수단이란 결국은 일요일에 모든 국민을 쉬게 하자는 일요일 휴업령으로 바뀔 것이 자명하다.


    십계명의 말을 5월 7일로 제정한 이유는 오순절과 가장 가까운 일요일이기 때문인데, 오순절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날이기도 하다. 첫 번째 기념일은 미국에서 거행하지만 이제 곧 세계적인 십계명의 날을 선포하겠다고 그들은 포부를 밝히고 있다.


    십계명의 날을 선포하는 목적을 주최 측은 다음과 같이 발표하고 있다.  


    1. 십계명 속에 들어있는 원칙들과 법칙들, 그리고 그 내용들의 최고적인 권위를 회복하기 위하여.

    2. 십계명 가운데서 발견되는 가치관에 우리의 굴복과 헌신을 나타내는 상징을 제공하기 위하여.

    3. 법을 어기는 일 없이 평화적으로 사회의 모든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회복하게 만드는 하나의 구조장치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4. 최고의 권위인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명에 충성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견해를 나타내는 기회를 주기 위하여.


    우리는 지금 해야 할 사업이 있다. 밖으로는 각 교파에 속해있는 신실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온전히 전하며 안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는 일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내적으로는 다가오는 환란을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환란을 준비하라

    하나님의 종 선지자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의 준비는 다음과 같은 경험이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경험 즉 사람들이 얻기를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는 한 가지 경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당하는 환난이 가벼운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그렇지 않다.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여도 그 시련의 크기를 여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 환난의 때에 각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이 거기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겔 14:20).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여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당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가 발을 붙일 어떤 곳이 있는지 찾는다. 그러던 중 어떤 죄된 욕망을 품게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와 분리되어야 한다. 우리의 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 자신을 당신께 연합시키도록 초청하시되 우리의 연약함을 당신의 능력에, 우리의 무지를 당신의 지혜에, 우리의 무가치함을 당신의 공로에 연합시키기를 간청하신다.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험들은 우리가 마땅히 배워야 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가르쳐 주는 학교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앞에 더욱 안이하고 즐거워 보이는 길, 곧 우리가 택하기를 좋아할 그런 길이 아니라 생애의 진정한 목적이 되는 길을 제시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품성을 그 거룩하신 모본을 따라 이루는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대리자들과 협력하는 일이 우리에게 부과되어 있다. 이 일을 게을리 하거나 지연시키는 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영혼을 가장 무서운 위험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 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하늘의 음성으로 이와 같이 크게 부르짖는 장면은 얼마나 두려운가. 사단의 분노는 그의 시간이 단축되어 감에 따라 격렬해진다. 그리하여 그의 기만과 파괴 행위는 환란의 때에 그 절정에 이를 것이다.] (The Controversy between Christ and Satan, 622~623)


    [주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신다. 온 하늘은 움직이고 있다. 온 땅의 재판장께서는 미구에 일어나셔서 그분의 모욕당한 권위를 옹호하실 것이다. 구원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율법을 존중하는 자들과 짐승의 표나 그의 우상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찍혀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시므로 그분의 백성들이 반대와 분노의 폭풍을 대항하여 설 준비를 갖출 수 있게 하신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사건들에 대하여 경고를 받은 자들은 다가오는 폭풍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주님께서 환란의 날에 그분의 성실한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게으르게 기다림으로써가 아니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열렬히 활동함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얽히도록 허용할 때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 사단은 주님의 백성들이 자비나 공의를 입지 못하도록 일들을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일요일 운동은, 오늘날 암암리에 그 길을 마련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문제의 진상을 숨기고 있으며,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류(低流)가 어디로 향해 흐르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 공언은 부드럽고 그리스도인답게 보이지만 그것을 말할 때는 용의 정신이 나타날 것이다. 그 무서운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들은 그들 앞에 중요한 사업이 있다. 지금은 우리의 능력의 팔을 붙들 때이다. 다윗의 기도는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 주님의 종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욜 2:17)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피할 희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들의 가장 심한 곤경에서 언제나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역사하셨다...... ”시편 기자는,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시험하는 진리가 모욕을 통해서 일지라도 앞에 제시되어 검토와 논의의 대상이 되도록 의도하신다.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되어야 한다. 모든 투쟁과 모든 비방과, 모든 중상은 의문을 일으키고 달리는 깨울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하나님의 수단이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451~453)


    말씀을 암기하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마12:50)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3:36)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라 그 곳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2:3~4)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119:10~11)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치 아니하였나이다” (시119:60)


    “주의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119:8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119:126~127)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잠28:9)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 (렘6:19)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의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게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화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행24:14~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티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10:16)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마15:13)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히3:18)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셨으며” (히4:4)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이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8~10)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8~9)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 (마24:15~16)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6:22)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국가개혁 운동들



    미국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요일 휴업 운동자들은 자신들을 도덕개혁 운동가들로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개혁 운동은 결국 미국의 수정헌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힘을 모으고 있다. 특별히 가톨릭의 종교적 신조들이 도덕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종교적 법률의 제정을 금지하고 있는 수정헌법에 1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헌법개정 운동을 통해 “종교적 법률 제정의 힘을 행사하는 국가적 개혁 운동이 완전히 발전하게 되면, 과거에 편만했던 것과 동일하게 이설을 용납하지 않는 편협한 정신과 압제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2보감, 319).


    “벌써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는 헌법개정 문제가 국가의 입법자들에게 역설되어 왔다.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문제는 국가적인 관심과 주요 문제가 되었다. 우리는 이 운동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을 잘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 앞에 있는 위험을 경고해 주도록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해 왔는가?”(2보감, 318) 깊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사들은 국가적인 개혁 운동을 너무 사소한 문제로 여겼기 때문에 거기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째 천사의 기별과는 전혀 다른 문제에 시간을 바쳐야 한다고까지 느끼게 되었다”(2보감, 321).

        

    그러나 지금은 위험한 시기이다. 만약 자유를 자랑하는 이 나라(미국)가 국가의 헌법 가운데 있는 모든 원칙을 희생시키며 종교 자유를 억압하는 법령을 제정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기만을 법으로 시행하려고 준비할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존자이신 하나님께 믿음을 가지고 저들의 탄원을 호소할 필요가 있다”(2기별, 370).

       

     “사단은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활동하고 있다. 헌법을 고쳐서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률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는 자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2보감, 352). 이미 “미국은  신교 자유와 공화 정치라는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허위와 기만을 선전할 준비를 갖추”(2보감, 150)고 있다.


    미국의 국가개혁 운동은 수정헌법의 정신을 거부하는 운동임

        

    미국은 1787년에 현재의 ‘연방 헌법’이 제정되었고 시대의 변천에 맞게 27개의 새로운 조항들이 추가되었는데 이것을 ‘수정헌법’ 또는 ‘수정조항’이라고 부른다. 1791년에 현재의 수정헌법 1조가 포함된 10개 조항이 첨가되었는데 이를 ‘권리장전’이라고 부른다. 그 이후에 여러 차례 첨가되어 현재 수정조항은 27개 조항이 된다. 이 수정헌법은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각 주에도 적용되는데 1868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14조에서는 주들이 “적법한 법적 과정 없이 누구의 생명, 자유, 재산도 박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주들이 수정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것을 담고 있는 것이다.


    수정헌법은 27개 조항 가운데 수정헌법 제 1조(종교,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및 청원의 권리)를 살펴보면 “연방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교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같이 이 “나라의 헌법에는 “국회는 종교의 설립이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지 못하며”, “합중국의 어떤 공직의 관리에 속한 자격으로 종교적 조건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쟁투, 442).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어 각 사람은 자기 양심의 명령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허용되었다. 공화 정체와 개신교의 원칙이 국가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쟁투, 441).


    그러나 미국 안에 있는 “개신교가 로마의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구렁을 넘어 손을 뻗게 될 때, 그가 강신술과 악수하기 위하여 심연(深淵)저편으로 건너갈 때, 이 삼중  연합의 영향 아래 우리나라가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속임을 퍼뜨릴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사단의 활동  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5증언, 451).



    십계명 조형물의 설치와 짐승의 우상과의 관계

       

    십계명 회복 운동에 숨겨져 있는 일요일 법령의 진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미국의 보수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을 기독교적 뿌리로 되돌리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이러한 노력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요일 성수 운동이다. 이들이 바로 미국의 국가개혁 운동의 선봉에 선 사람들이며 도덕개혁 운동을 통해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환원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 개신교의 도덕개혁 운동 가운데 가장 일요일 휴업령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일어나는 것은 명목상의 십계명 회복 운동이다. 그들의 주장은 십계명의 정신은 미국의 헌법의 제정과 법률발달과 법치주의의 실현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또한 명목상으로 미국 사회를 부도덕에서 건지자는 도덕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그것은 십계명을 수호하자는 운동이 아니라 이미 깨뜨린 율법을 영구히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영원히 못 박아 버리도록 하는 운동인 것이다.

        

    성경은 로마교가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단 7:25)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일은 지체하지 않고 추진되었다. 이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을 위해 점점 우상과 유물숭배의 풍습이 교회 안에 들어와 명목적인 그리스도교인이 증가되었다. 그리고 대회의에서 로마교회의 우상숭배가 체계를 갖춰 확립되었다. 로마교회는 그 신성 모독적 행위의 하나로 십계명에서 우상숭배를 금하는 둘째 계명을 삭제하고 숫자를 채우기 위하여 열째 계명을 둘로 나누었다 … “사단은 교회의 경건치 못한 지도자를 통하여 십계명 중의 넷째 계명을 짓밟고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옛적부터 있는 안식일을 폐하고 그 대신에 이교에서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로 지켜오던 축일을 내세웠다. 이러한 변경도 그 당초에는 공공연하게 추진된 것은 아니다. 처음 몇 세기 동안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참된 안식일을 준수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열렬하였고 율법이 변개할 수 없는 것임을 믿고 그 율법의 신성한 정신을 열심히 옹호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대리자들을 교묘하게 활동하도록 하였다. 사람들의 주의를 일요일에 집중시켜 그날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로 삼았다”(살아, 328).


    특별히 미국에 있는 기독교 연합세력들이 “세속적 권력을 가지고 종교적 의무를 강요하는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교회들은 스스로 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북미 합중국이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도록 강요하는 일이 된다”(쟁투, 448).


    십계명 조형물들과 관련된 헌법개정운동


    미국에는 법원 및 정부 의사당, 연방대법원 건물벽, 건물 곳곳에 십계명이 새겨져 있다. 또한 매우 흔하게 집 앞에 십계명을 새긴 간판과 같은 작은 조형물들을 볼 수 있다. 미국의 공공장소에는 약 4000여개의 십계명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보수적 기독교계의 지지를 기반으로 재선된 지난 2004년 말 공공장소에 십계명 조형물 전시를 허용해 달라는 청원서를 연방대법원에 제출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2005년 3월 2일부터 십계명의 공공장소 설치가 과연 위헌인가 합헌인가를 놓고 대법원 판사들 사이에 팽팽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 이것을 이른바 ‘십계명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궈온 십계명 논쟁은 정교분리 논쟁이기도 한 것이었다.


    미연방대법원이 십계명비를 설치하는 문제에 관한 소송건에 대한 심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십계명비 설치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의 릴레이 기도회 및  연방대법원 앞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십계명 석판을 들고 법안의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들을 열었다.


    [십계명 조형물 설치 지지를 호소하는 기독교인들 (그림파일1) ]

         

    이러한 가운데 작년 2005년 9월 3일에 은퇴한 대법원장 윌리엄 렌퀴스트가 2005년 6월 27일 연방대법원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통과시킨 두 가지 케이스에 대한   판시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1. 첫 번째 케이스는 텍사스주의 의사당에 설치된 십계명 조형물에 관한 소송 건이다.


    본 사건은 ‘Van Order v. Perry’(03-1500)라는 소송 건으로서 ‘Fraternal Order of Eagles’란 단체가 기증한 십계명 돌비가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의회 부지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 의회 부지에는 20에이커의 땅에 17개의 다른 기념물이 분산 되어 있으며 이 기념물은 사실상 종교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 전시의 합헌성을 제5고등순회법원에 의해 인정받은 바 있다. 그러자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이 주정부가 종교를 우선시함으로써 헌법을 위배하고 있다고 청구 소송을 제기함으로 심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시는 “택사스주의 의사당에 설치된 십계명 조형물은 온당하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 조형물은 독립선언서와 나란히 새겨져 있고 미국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중립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두 번째 케이스는 켄터키 주의 2개 카운티 법원의 벽에 설치된 두 개의  십계명에 관한 소송 건이다.


    본 사건은 ‘McCreary Country v. ACLU’(O3-1693)소송 건으로 켄터키 카운티 법원 벽에 걸려 전시되어 있는 십계명에 관련된 것이었다. 제6순회법원은 그 전시가 비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증거가 불충분하여 일차적으로 선전 효과가 있다고 판결했었다. 본 사건에 소송을 제기한 (의사당 광장의 십계명 철거를 요구한) 미국 시민자유연합(ACLU) 측은 “수정헌법 1조의 정교분리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십계명은 명백히 특정한 종교적 언급을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사는“2개의 카운티 법원에 설치된 십계명 비는 종교적이어서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방대법원이 판결한 두 가지 사건은 텍사스주와 켄터키주 정부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건국이념을 고려할 때 공공장소의 십계명비 설치는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대하여 시민자유연합 등은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한 미국의 헌법에 위배된다고 철거를 촉구함으로 발생된 것이었다.


    연방대법원이 금번 십계명 조형물 설치에 관한 심리를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미국은 너무나 크게 변질되었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다. 왜냐하면 미연방대법원은 2001년과 2002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심리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번 심리 결과 텍사스 주의 의사당 광장에 설치된 십계명을 중립적 성격이라고 규정한 것은 앞으로 모든 공공장소에서의 종교적 활동과 표현을 일부 용인해주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으며, 십계명을 옹호하기 위한 모든 형태의 집회를  용인하는 물고를 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사건은 일요일 휴업령을 추진하는 기독교 보수세력에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되었다.


    예언적 안목으로 볼 때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머지않아 십계명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킬 것이다. 연방대법원이 십계명 조형물을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과연 어떤 버전을 선택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십계명 영문판은 세 가지가 있다: 개신교, 천주교, 유대교 버전이 그것이다. 전문이 기재된 십계명을 정부가 사용하려 할 때는 어느 버전을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근년에 전시된 십계명은 손질한 버전이었다. 그것은 안식일을 제칠일로 말하는 문구가 삭제된 버전이었다”(미주 시조, 2005년 10월호 55).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계명 조형물 설치는 하나님의 율법을 변개코자 하는 운동이다. 개신교 정부가 종교계의 일반적인 신조인 일요일을 받아들여  제칠일 안식일 대신에 주일을 선택한 버전을 사용하여 법을 제정하려할 때 사실상 이것은 일요일 휴업령의 전초전이 되든지 아니면 사실상의 일요일 강제 경배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일요일 강제 경배령을 내리고자 하는 사단의 전략이 너무나 농후하게 배여 있는 이슈이다.


          * 현재 미국 전역 지방법원에는 10여건의 유사한 소송이 계류 중이다.


    [앨라배마주 주 법원 앞에 세워졌던 십계명 조형물(그림파일2)]

    2002년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 주 법원 앞에 로비 무어 대법원장 판사가 2.4톤짜리 십계명 조형물을 설치하였으나 시민단체가 특정한 종교를 선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여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었다. 이 사건은 2002년 11월 19일에 위헌으로 판시 되었고, 이 조형물을 한 달(30일) 이내에 철거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로비 무어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이유는 십계명은 미국의 도덕적 기초이며 연방대법원이 지난 50년간 공립학교에서 기도금지 및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의 도덕적 하락을 가져왔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그는 주법원의 대법원장직에서 쫓겨났으나 이일로 기독교계의 지지를 얻어 앨라배마주의 법무장관이 되었다. 그 일로 그의 인기는 연일 급상승해 2006년 주지사 선거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앨라배마주 하원의 수정헌법개정촉구 결의안 채택

    앨라배마 의회는 학교는 물론 공공건물에 십계명을 전시할 수 있도록 헌법의 수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므로 십계명에 대한 권리 주장을 거세게 펼치고 있다. 지난 2005년 10월 8일 학교와 공공건물에 십계명을 게시할 수 있도록 헌법수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미국의 도덕적 개혁의 일환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미국이 도덕적인가? 결코 미국은 도덕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화하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큰 부도덕과 부패의 소치일 뿐이다.


    십계명의 날 제정과 더불어 일어나는 일요일 준수 운동


    최근까지 미국에서 일어난 일요일 휴업 운동 가운데 가장 발전적인 것은 ‘십계명의 날’ 운동이다. 이 운동에 유대교와 천주교, 그리고 기독교와 ‘기독교 방송인국제연합’(NRB)이 연합하였다. 이들은 유대와 기독교적 뿌리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내어 걸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있었던 어떤 연맹보다도 규모가 크고 광범위한 호응을 얻고 있는 운동이다. 이것이 곧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기 위한 세력들의 연대인 것이다. 이들은 얼마 전에 ‘십계명 위원회’와 연대하여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을 “십계명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그리고 2006년 1월 10일 공식 성명을 발표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십계명의 날’ 운동이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는데 성공적이도록 ‘기독교방송인국제연합’과 다양한 언론사역자, 종교 단체의 지도자들, 각계의 지도자들이 대거 연대하여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 달인 2006년  5월 7일 첫 기념행사를 갖는데 5월 7일을 “십계명의 날”로 정한 이유는 그 날이 유대인 달력으로 유월절과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오순절 절기 사이의 가장 큰 일요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십계명의 날’ 제정을 통해 일요일을 신성화 하고 자연스럽게 연합세력 내에 일반적인 신조를 제정하였다. “일반적인 신조의 제정 … 이 일이 성취되면, 완전한 연합을 이루기 위한 단계로서 취할 유일한 방법은 강제 수단이다”(쟁투, 445).


    [십계명 마크(그림파일 3)]


            위의 십계명의 날 마크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가장자리 라운드 하단에는 2006년 5월 7일, 이라고 되어있고 라운드 가장자리 상단에는 ‘십계명의 날’이라고 되어있으며 중앙에는 두 돌비가 있고 돌비 상단에는 십계명의 날 첫 번째 행사를 나타내는 문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뒤에 배경에는 미국 국기가 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지만 미국은 이제 용의 국가라는 것을 천명하는 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뒤에 확연하게 태양빛이 비추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이 ‘태양의 날’인 일요일을 섬기는 국가임을 말해준다. 일요일 휴업령이 올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온 미국이 십계명의 날 기념행사에 큰 호응과 연합이 이루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운동에 ‘기독교 방송인 국제 연합’(NRB)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미국 도처에 있는 수 백 개의 TV 채널과 라디오 방송국이 이 운동에 참여하여 홍보하고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단도 자기의 일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해 방송매체를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십계명 위원회(의장; Belarmino "Blackie" R. Gonzalez)와 연대한 ‘종교 방송인 국제 연합’(NRB)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기독교 방송인 사역자들의  구성모임으로서 NRB 중역 가운데는 가드 쿤스 박사(Dr. Garth Coonce)가 있는데 그는 위성방송을 통해 미국의 15개 주를 비롯해 캐나다와 전 세계 170개국에 3000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에게 기독교 프로그램 방송을 하는 일리노이 주 전체 기독교 방송국(TCT)의 창시자이며 회장이다. 미국의 무수한 언론인들이 이 운동에 대거 참여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기독교 방송망인 피츠버그 코너스톤 텔레비전 방송국의 회장인 론 헴브리(Ron Hembree)가 있다. 그는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십계명 위원회의 일을 홍보해 주기도 하였다. 또한 아틀란틱 대학의 총장 데이비드 클락 박사(Dr. David Clark)와 전국 종교 방송인 협회의 회장인 프랑크 라이트 박사(Dr. Frank Wright)를 비롯한 다수의 방송 지도자들, 국가 위정자들, 대형교회들, 수많은 평신도들, 삼위일체 방송국의 설립자 제이크스(T.D. Jakes) 추기경, 베니 힌(Benny Hinn) 목사, 복음 전도 전국 협회의 회장인 테드 해갈드(Ted Haggard) 목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 운동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클 것인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십계명 위원회의 창시자이며 회장인 란 웩슬러(Ron Wexler)는 2006년 5월 7일 “십계명의 날” 홍보를 위해 ‘십계명 핀’을 만들어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내고 전 세계적인 노력의 상징물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십계명 위원회를 통하여 미국의 공공장소에 십계명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수정헌법안을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고 있다.

         

    [십계명 기념 핀 (그림파일 4)] 교회와 모임들이 기금 마련을 할 수 있도록

    십계명 협회에서 대량 할인 판매 중이다.


     

    십계명의 날과 일요일 휴업령과의 관계


    1. 십계명의 날 제정에 숨겨진 의도


    a. 2006년 1월 10일 십계명 위원회의 공식 발표에 의하면 “십계명은 역사상 성공한 나라들이 따라온 신성한 권위를 나타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십계명의 신성한 권위는 넷째 계명의 회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들이 십계명의 신성한 권위를 운운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 운동에 참여하는 자들은  놀랍고도 담대하게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신성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을 합법화 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창조주 대신 일요일을 만든 교황권의 권위를 인정하는 표를 합법화 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대쟁투 영문 444~446쪽을 보면 짐승의 우상이 어떻게 세워지는지 실체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전체적 회의요, 세계적 대회의 개최이다! 선교 동맹이요, 일반적인 신조의 제정이다 … 이 일이 성취되면, 완전한 연합을 이루기 위한 단계로서 취할 유일한 방법은 강제 수단이다”(쟁투, 445). 그들은 놀랍게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십계명의 날’을 통해 일요일을 연합세력 내에 공동의 신조로 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강제적 성격을 띤 일요일 휴업령이 멀지 않았다.


    b. 십계명 위원회는 “지금까지도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유대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상징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요일 휴업 운동자들이 유대교와 유대인들의 지지와 연합을 얻어내기 위한 발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c. 십계명 위원회는 “2006년 5월 7일, 십계명의 날은 미국이 아직도 “신 아래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담대하게 천명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안식일 회복 없이 십계명의 날을 유대력으로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의 일요일로 제정하여 “신 아래 하나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담대한 천명은 십계명의 날 마크 안에 금간 돌비처럼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고 십계명을 깨뜨리는 것이며 동시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 왔을 때 여호와 대신에 금송아지 우상을 국신(國神)으로 만들어 놓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 선포하며 이 선포와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배도한 제사장인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출 32:5)라고 선포한 것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그것은 둘째 계명과 온 율법을 범한 것이었다. 지금도 넷째 계명을 범함으로 온 율법을 범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배도를 여호와께서는 심히 불쾌히 여기셔서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출 32:10)겠다고 선언하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십계명의 날을 제정하는 사람들은 미국을 “신 아래 하나의 국가”로 천명하고 자신들을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들로 자처하지만 그들의 배후에는 항상 천주교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 세계에 걸쳐 그 모든 가지들을 뻗고 있는 로마교는 하나의 큰 조직체를 이루어 법왕청의 지배아래 그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지구상 각 나라에 있는 여러 백만 명의 교도들은 법왕에게 충성을 하도록 훈련되어 있다. 국적과 정부의 여하를 막론하고 그들은 교회의 권위를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높은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들은 비록 국가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로마교에 순종할 것을 서약하고 로마교의 이익과 배치되는 모든 서약은 취소하게 된다”(쟁투, 580).


    2. 십계명의 날을 제정하게 된 배경


    2005년 6월 27일 십계명 조형물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는데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최근의 이 판결이 미국의 문화와 믿음의 기초 그리고 도덕적 기반과 유산을 파괴하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연방대법원이 켄터키주의 2개 카운티 법원의 벽에 걸린 두 개의 십계명 조형물에 관한 소송건을 심리한 결과 “두 개의 카운티 법원에 설치된 십계명비는 종교적이어서 철거해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십계명 위원회와 연대한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십계명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건국 정신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였다. 미국이 이제 그 전통을 버리고 가톨릭처럼 인간의 전통을 성경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 준수는 가톨릭이 만든 전통일 뿐이다.

        

    또한 십계명 위원회는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교회들, 성전들, 목회 지도자들, 종교 서점들, 그리고 전통가치를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나라에 회복시키고자 하는 국가적이자 세계적인 이 운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또한 십계명 위원회는 “십계명의 날을 통해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나라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 준 기초 원칙, 십계명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천명하며, 우리는 하나 됨을 표명하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전통가치”, “한 목소리, 하나 됨”,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운동”이라는 단어들은 계시록 13장의 미국에 대한 예언처럼 미국이 첫째 짐승인 법왕권의 전통을 따라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가졌던 교황권처럼 “용처럼 말하”(계 13:11)기를 시작 한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의 세력인 자신들의 말처럼 “국가적이고 세계적인 이 운동”에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계 13:12)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운동이 일요일 휴업 운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요일 (법령 제정) 운동은 그동안 암암리에 진행되어 왔다. 그 동안 “지도자들은 진정한 의도를 숨기고 있으므로,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수면하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사건, 125)한다. 그러나 지금은 일요일 법령 제정 운동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는 시기에 이르러왔다. 이들은 이제 곧 “개신교 정부가 그들로 자유로운 독립 국가가 되게 한 원칙들을 희생시키고 입법을 통하여 교황의 거짓과 기만을 퍼뜨리게 될 원칙들을 헌법에 집어넣을 것”(사건, 125)이다.


    “헌법을 바꾸고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는 법률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는 자들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별로 깨닫지 못한다 … 임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 악의 구름을 뒤로 쓸어버리시므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도록 수년 더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탄원해야 할 엄청난 책임이 온 나라의 기도하는 남녀들에게 지워지고 있다”(사건, 126).

       

    국가개혁 운동의 목적은 미국의 수정헌법을 바꾸는 것이다


    십계명의 날의 제정, 십계명 조형물의 설치, 낙태금지 등에 관한 도덕개혁 운동은 결국 개신교와 가톨릭이 연대한 보수주의자들의 힘을 이용하여 미국의 수정헌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도덕개혁 운동자들이 국가개혁 운동자들로 자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국가적인 차원의 개혁이 이루어지려면 국가의  법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번 2006년 5월 7일 십계명 위원회와 연대한 세력들이 유월절과 오순절 한 중간의 일요일을 선정하고 그날에 미국을 “신 아래 하나의 국가”로 천명하겠다는 것은 자신들이 국가개혁 운동자들임을 자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에 충성하는 자신들이 미국의 전통적 가치인 십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된 국가개혁 운동의 배경에는 항상 가톨릭이 있는데 화잇 선지자는 폭로하기를 “그들은 비록 국가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로마교에 순종할 것을 서약하고 로마교의 이익과 배치되는 모든 서약은 취소하게 된다”(쟁투, 580)고 하였다. 이 말씀은 결국 국가에 대한 충성이 교황권에 대한 충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이러한 연합 운동을 하는 중심에 강신술의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교로 가장하여 교회 안에 들어와 국가개혁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다음의 말씀을 보라! “강신술을  통하여 … 영들과 교통하는 자들은 일요일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국가의 법률을 하나님의 율법과 똑같이 순종해야 한다고 강조할 것이다”(쟁투, 592). 그러므로 국가개혁운동을 하는 세력의 중심에는 강신술의 세력이 있고 결국 강신술의 세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크게 박해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자, 이제 원론적인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천주교, 개신교, 유대교, 강신술을 총망라한 연합세력들은 도덕개혁을 통해 국가개혁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들은 그 개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국가의 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도덕개혁 운동의 최종적인 목적은 법을 바꾸어 일요일 강제 경배령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일을 위해서는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제 미국의 사법부를 가톨릭이 장악하고 있음을 살펴보자!

     

    현재 연방대법원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들 (그림파일 5)

        

    미국의 연방대법원을 구성하는 9명의 대법관 중 5명은 천주교인들이다. 상단 왼쪽에서부터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앤터닌 스캘리아, 클레런스 토머스, 앤서니 케네디. 새뮤얼 얼리토에 이르기까지 모두 보수적인 칼라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이것은 부시대통령이 보수적인 존 로버츠를 대법원장에 앉혔고 또 다시 보수적인 가톨릭교도인 새뮤얼 얼리토를 대법관이 되게 함으로써 대법원의 다수가 가톨릭교도가 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어떻게 개신교 국가인 미국 안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천주교회는 1540년에 예수회가 창설된 이래 많은 청년들에게 신학과 더불어 법학을 공부하게 하고 이들을 사회 각 계층에 들여보내는 일을 해왔었다. 그들은 미국을 천주교화하기 위한 전략의 결과로 많은 법관들을 배출해 냈던 것이다. 이런 기저에 깔려있는 이유보다 더 큰 것은 미국의 기독교 보수주의 운동을 하는 ‘기독교 연합’ 이나 ‘복음주의 파와 천주교인들의 연합’(ECT)같은 단체들의 상당수가 가톨릭과 동맹관계에 있으며 그들을 지지해 주기 때문이다.


    리차드 노이하우스(Richard Neuhaus) 신부가 창간하고 현재 편집하고 있는 ‘First Things’라는 월간지가 있는데 이 월간지는 복음주의와 가톨릭의 연대를 추진하는 월간지이다. 노이하우스 신부는 부시의 부비서실장이자 정치적 고문인 칼 로브와 절친한 관계인데 "뉴욕리뷰옵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 2005년 10월 6일 기사에 의하면, 그는 칼 로브의 소개로 부시 대통령과 가깝게 되었고 부시 대통령에게 가장 많은 종교적 영향을 주는 사람이 노이하우스 신부라는 것이다. 이런 배경이 미국의 연방대법원을 가톨릭이 점유하도록 영향을 미친 배경들이다. 이제 연방대법원은 가톨릭 5명, 일요일 성수자 2명, 유대교 신봉자 2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조만간 최고령인 존 폴 스티븐스 대법관이 은퇴할 것으로 보여 부시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또 한 명 추가 임명할 여지가 있다. 이제 일요일 휴업 운동자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의 원칙을 천명한 수정헌법 1조와 2조를 허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비축한 셈이 되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마귀는 자신이 이 세상의 통치자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비록 사단의 세도가 세상에 창궐하는 것을 보는 시대에 우리가 서 있을지언정 그들의 행보는 잠간 동안만 지속될 뿐이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셋째 천사의 큰 외침을 선포해야 할 시기라고 가르쳐 주고 계시다. 적의 군대의 힘이 창궐할수록 그보다 더 늦은비의 큰 권세와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 나팔을 불어야 한다. 삼 일 후면 멸망할 큰 성 니느웨를 향하여 외쳤던 요나처럼 우리는 세상에 확신 있고 담대한 세천사의 기별을 선포해야 한다. 잠시 후면 바람이 곧 놓여질 것이다. 우리는 조금만 더 은혜의 시간이 주어지기를 기도하며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합 3:2)라고 절실한 기도를 올리며 “이 묵시를 판에 기록하여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합 2:2)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2006.06.07 04:53 | 신고
  • 666은 성경에 4번 나오죠

    성경을 자세히보세요 그문제와 답이 성경안에 있습니다.

    (이사야 34: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계13:18 에서 666 을 보고 우리는 매매바코드 생각하죠

    하지만 그것은 우리에 생각일뿐입니다.

    왕상10:14 에 보면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666 금 달란트라하죠

    이방에게서 받은 세금의 수치가 666이란것이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계13:18의 666은 계기록의 역사안에서

    나타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솔로몬과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죠

    666이란 그사람의 지식(하나님을 하는 지식)의 양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이 그의 지혜로 이방인들에게 세금을 666만큼 거둔것 처럼

    제답변이 조금은 미흡할지 모르나 성경의 666을 우리에 생각으로

    맞추어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에서 진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주님은 창세부터 모든것을 성경에 감추시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해하는데 더욱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지라 이말씀이 하나님과함께 계셨으니 이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이요 진리입니다

     

    2006.06.08 14:04 | 신고
  • 666표의 기능입니다. 실제 겪었으며 거짓말이 아닙니다. 기존 정보와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계속 절 미쳤다고 하시는데 제가 겪은걸 그대로 썼습니다. 제가 미친것이 아니며,

    실제입니다. 제가 이 짐승들에게 경배한다고 하면, 정상적인 성생활과, 감성이 원래대로 복구가 되지만,

    계속 십자가를 거는 일반교회에 가려고 하면 괴롭힙니다.


    1. tv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를 역이용하여 듣게하여 사악하게 들리게 할수 있다.

    2. 욕소리를 무방비로 듣게하여 무섭게 조작도 가능하다.

    2. 역이용하여 정신(영혼)을 바꿀수 있으며, 누명 씌우는 것이 가능하다.

    3. 반쪽 여자를 농락여, 감성을 조작 가능 하다. (인간은 양성이 있으며,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쳐져서 생명을 이루는데 이를 기준에서 자신안의 반쪽여자를 농락하는것을 말하는것입니다.)

    4. 공중들림도 감성 조작으로 느끼게 할수 있다.

    5. 위치 추적 가능

    6. 지금까지의 기능의 대부분은 감성을 조작하여 마치 하나님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모르는 분들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일것이라 믿을것이다.

    7. 이자들은 기존에 있어왔던 십자가를 거는 교회를 마귀 교회라고 말하였다.

    8.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하였으며, 666표는 매매를 할수없게 하는 표가 아니며, 상징이고, 666표는 교황같은 사람들이 받게 되고 이 표를 받은자들이 계속 시달리게 되는것이라고 말하였다.

    9. 한마디로 이 교회에서는 666표는 교황이나 기타 불신자들이 받게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매매를 할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는 666표는 받아도 된다고 말하는것입니다.(상징이라고 말함)

    10. 이자들이 하나님께 대적하는 최후에 사탄이며, 하나님께서 홀로 계시며 모든 사람들을 관리하시는 것을 슈퍼컴퓨터와 666표로 흉내낼 것임은 다 아실것입니다.

    11. 무서운것은 단지 위치추적 뿐만이 아니라 뇌를 조작하여 (특히 감성계) 이 짐승들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착각 하게 만든다. 그래서 경배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12. 아직 미완성 단계로, 동영상 전송도 가능 하며, 인간의 뇌의 모든 역영을 조작 할것 같습니다.

    13. 세뇌 가능.

    14. 난 F가 좋고 M이 싫었는데, 이걸 거꾸로 뒤빠꿔버리는 것까지 가능.

    15. 이자들을 경배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보장 하지만, 한분 뿐이신 진리의 십자가를 거는 교회의 하나님을 찾으면 계속 시달리게 함.

    16. 난 이음악 싫고 저음악이 좋은데 계속 세뇌 조작하여 듣기싷은 음악이 더 좋은걸로 착각하게 만듬.

    17. 의지를 맘대로 못하게 합니다. 이 666표가 완성이 되는날엔 너무 무서워서 생각조차 하기 싫습니다. 왜 하나님의 성경말씀예언에 짐승의 표가 그토록 무서운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18. 이 칩과, 무언가 화학물질과 조합을 하면, 인간의 육체까지 지배가 가능 하여, 대항하려 하면, 불구로 만들수도 있습니다. (몸도 마음대로 조작가능) 인간의 뇌가 몸의 신경과 다 연결된것에서 가능한것 같습니다.

    19. 정말,, 이 칩의 기능은 짐승,,, 악마 가 아닐수 없는것입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느껴온 것입니다. 전 영문도 모른체 당하였는데, 666표로 절 범죄한것이 맞습니다.

    추가적인 정보는 또 게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2011.09.22 19:43 | 신고
  • 어렸을적 오멘이라는 영화에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악마인 줄 알았는데 ^^

    많은 공포영화의 소재들을 제공했던 책이지요,

    사실은 당시 요한사도가 핍박당하고 고통받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위로의 서신(편지)이였습니다.

    믿는 자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이시며 이 고난을 이기는 자가 되기를 격려하는 그리고

    갚아주실 것이며 왕으로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고대하자는 편지입니다.

    그런데 고려시대의 편지를 읽기 위해서는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모르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들고

    쓰는사람의 상황과 받는 자의 상황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들이 읽는다면 무슨얘기를 하는지

    알지 못하여 오해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 요한계시록을 읽기 위해서도 2000년전의 당시 로마와 초대교회의 소아시아 상황들을 알고서 읽지 않으면 아주 어려울 수 있는 책입니다.-암호화 되어있어 더욱 그렇지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요한계시록에서 등장하는 짐승의 숫자-666

    먼저 답변을 드리자면

    일차적으로는 일종의 암호로 기독교를 탄압하던 핍박의 대명사 로마의 네로황제를 의미합니다.

    7은 성경에서 완전수요 하나님의 숫자입니다. 거기서 하나가 모자라서 6은 사람의 수인데

    성경에서 세 번반복은 최상급입니다.666지극히 사람 중심적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을 뜻하지요.

    -이글은 읽었던 당시 기독교인들은 다 알아듣는 말이었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알고 있어도 쉽자 않은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궁금한 점은 직접 예수님께 요한이 묻습니다.

     

    기독교인 핍박의 대명사하면 네로황제! 의 이름을 숫자로 환산하면 666이 나온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의 핍박과 검열이 있었기에 암호문자화하였습니다.  

    히브리어로NRON KSR-네로 케사르, 히브리 자음만 기록한 것

    N-50, R-200,O-6,N-50,K-100,S-60,R-200 결국 1차적으로는 네로황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 핍박자의 대명사이며, 죽은 네로가 다시 환생했다고 할 정도로 아니 더 악랄했던 황제

    도미티안 황제를 가르키는 것이었을 것이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데까지 가고 일부 알려주지 않은 부분들도 있는데 그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이니 너무 알려고 하면안됩니다. -여기서 오류가 많이 나온다는 거 아시죠^^

    -----------------------------------------------

    칩-베리칩 얘기가 나오고 이미 심으신 분도 계시다고 하는데...

    의견이 분분하지요

    미국에서는 2017년까지 필요에 의해서 국민들에게 칩을 삽입하는 시술을 할 수도 있다고 의료법에 명시가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짐승의 표???

    짐승의 표라는 것이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다만 말씀의 사람으로 예수를 부인하지 않고 그의 죽으심(우릴 위해)다시 사심(부활)그리고 다시오심(오실때는 올라가신 모습대로-그와 같은 영광으로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는)을 믿는 믿음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이것은 당시의 유행하던 묵시문학(지금의 환타지 소설)의 형태를 빌려서 짐승, 괴물로

    표현한 것인데 당시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기에 문자를 이용해서 숫자를 표현했습니다.

     

    -유독 요한계시록에는 환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의 출현하는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 AD(주후)AnoDomin-90년에서100년 사이 기록된 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12제자 중 가장 어렸던 사도 요한으로 유일하게 자연사한 사도이기도 하지요

    나머지 사도는 모두 비참하게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노년에 밧모섬에서 유배생활하게 됩니다.

    지금 말로 하면 에베소(당시의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고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손꼽힘)에 있는

    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게 됩니다.

    지금 있는 일과 장차 있게 될 일들...

    지금으로 말하면 3D 입체 영화관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지요.

    생전 보지 못했던 것들이 펼쳐지는 ... 근데 말로 설명할 방법이 없네..

    전쟁을 설명할 때 무기들을 설명하는데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몰라서 설명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탱크"라고 하면 될텐데..요한계시록9장 17~18절

    그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줏빛과 유황빛 호심경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말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말이라면 군인들이 타고 이동하는 것을 얘기하는데 예전의 기마부대가 지금은 기갑부대이다.

    기갑병과의 마크에는 보병마크위에 말밥굽이 있다.

    사자머리처럼 위용이 있고 불과, 연기, 유황-

    탱크/전차에는 전면부에 보통 주포(120m/M16 2정, 양쪽에 연막탄 발사기)

    주포는 탄 종류가 여럿인데 백련탄같은 경우는 진짜 불과 연기 물속에서도 타들어가기 때문에 유황같기도 하다.

    -기갑부대에서 5년간 직업군인으로 있었기에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어 탱크에 대한 설명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본인도 공부하는 중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인격체로 만드셨고 스스로 그 사랑을 알고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여러분을 향한 연애 편지입니다. ^^ 요즘 유진피터슨의 메시지 라는 성경이 보기에 쉽도록 나왔더군요

    여러분을 향한 하늘로 부터 쓰여진 연애편지를 꼭 읽어보세요!

    어떤 신도 자신의 피조물을 위해 외아들을 대신 죽이면서까지 피조물을 구원한 신은 신화 속에서도 없습니다!

     

     

    2012.01.29 04:05 | 신고
  • 불교에서 찾아본 666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육근(六根)이란 여섯가지 감각기관을 말하고

    육경(六境)이란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감지하는 대상이요

    육식(六識)이란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작용 감지하는 인식이라

    육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根)의 감각기관으로

    육경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감지하여

    육식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인식한다

    육근을 기능별로 세세히 분류 정리해보자면

    안근(眼根)은 색.모양(色)을 감지하고

    이근(耳根)은 소리(聲)을 감지하고

    비근(鼻根)은 냄새(香)를 감지하고

    설근(舌根)은 맛(味)을 감지하고

    신근(身根)은 촉감(觸)를 감지하는 감각기관이요

    의근(意根)은 5가지 감각기관을 쓰는 정신(法)을 말한다

    <12처(十二處)>

    육근과 육경을 총칭 12처(十二處)라 한다

    여섯가지 감각기관 육근은 6내처(六內處)요,.

    여섯가지 감각기관으로 감지하는 육경은 6외처(六外處)라

    주관적이고 내적인 여섯 조건 육근(六根)과

    객관적이고 외적인 여섯 조건 육경(六境)은

    각각 서로 상응 부합 하는 것이 총칭 12처라

    6근은 곧 나(인간)라는 존재를 가리키고

    6경은 나(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가리킨다

    <18계(十八界)>

    18계(十八界)는 인간 존재의 구성 요소라

    육근과 육경을 총칭함이 12처요

    12처(육근.육경)에 육식을 가함이 18계라

    비유하여 눈(眼根)으로 사물(色)을 보면 사물(色)을 인식하고

    코(鼻根)로 냄새(香)을 맡으면 사물(香)을 인식하는 식별작용

    즉 나(인간)와 나(인간)와 더불어 공존하는 사바세계 실상

    그 세상을 사는 안목(마음)을 총칭 18계라

     

    666  즉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은

    우리의 육신 작용이다.

    그 작용을 관장하는 근본을 누진통이라고도 하는데

    모든 것을 통합하여 인간이라 하는데

    육신의 작용이 나의 다(정신적인 것 까지) 인줄 알고

    거기에 노예가 되면 짐승과 같고 악마의 숫자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얘기 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때 하나님 모습같이 창조 하였다 했는데

    그것은 육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데 그 하나님을 무시하고

    육신 위주로 산다던가 마음 안의 하나님을 무시하고 밖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모습을 잃고

    기계적인 삶 또는 정신 혼란의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마음이 부처라하니 마음안에서 찾고

    기독교는 마음암에 하나님이 있으니 마음 안에서 찾아야 참도닌 종교라 할것이다.

    마음 안에서 찾는다는 공통 점에서 종교는 화합될 것이다.

    아래 카페에서 많은 가르침을 찾아 보시고 질문으로 의문을 푸시기 바랍니다.

    2012.08.24 08:32 | 신고
  • 저 원래 이런 곳에 답변 같은 것 잘 안쓰는 사람인데

    너무 엉뚱한 말들을 쓰시는 분들이 있어서... 제가 올바른 답변을 적겠습니다.

     

    짐승의 숫자이자 사람의 숫자인 666은 당시의 사도요한 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바탕으로 먼저 해석되어야 합니다.

     

    컴퓨터다, 바코드다, 유럽연합이다, 천주교다 등등 이런 아전인수 식의 해석을 잠시 떠나서

    사도요한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짐승(사단)이자 동시에 사람인 존재는 누구일까요?

     

    당시 기독교인을 잔익하게 핍박하였던 로마의 황제 '도미시안'입니다.

    당시 쓰였던 로마의 고대어인 라틴어에는 각 알파벳이 숫자와 연결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도미시안 이라는 이름을 숫자와 조합하여 풀이하면 666이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밧모섬에 유배 되어 있던 사도요한은 교회에 보내는 자신의 서신이 검문에 걸리지 않도록 숫자와 상징을 사용하여 마치 판타지 소설 혹은 정신나간 사람의 편지처럼 기록하여 보냈던 것입니다.

     

    물론 이 666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잔인하게 핍박하는 무리. 그것이 바로 666입니다.

     

    지금 제가 쓴 글은 역사적 해석법으로 계시록을 해석하는 정통 방법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2.08.31 14:33 | 신고
  • 세게여러나라가궁금해요
    2012.10.23 21:20 | 신고

추천토픽&메뉴 바로가기

추천토픽
메뉴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