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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안녕하세요??

제가 꼭 해야 해서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중

1절 부터 5절 까지 나오는 위인들의

업적등 태어난 떄 등을 가르쳐 주시면 감사해요

되도록 빨리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워드3급 | 2006.12.29 18:37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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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업적



    단군-고조선

    - 우리 민족의 시조, 고조선의 첫 임금. 천제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서울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세웠다. 단군에 관한 '삼국 유사'의 기록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의 황제인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을 구원하고자 원하므로, 환인은 천부인(하늘 나라 왕의 표지)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도록 허락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에 내려왔는데, 이 분이 환웅 천왕이다. 환웅이 360여 가지 일을 맡아 다스릴 때 곰과 범 한마리가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환웅에게 빌었다.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20쪽씩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먹으며 굴 속에 있던 중 범은 참지 못하고 도중에 뛰쳐나갔으나, 곰은 잘 참아 내어 37일 만에 여자로 변하였다. 이 웅녀가 아기 갖기를 원하자, 환웅이 잠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함으로써 단군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단군은 인간으로서 처음 왕이 되어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리다가 기자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 주고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동명왕-고구려

    -고구려의 시조(재위 전37~전19). 성은 고, 이름은 주몽.추모.상해.도모. 동부여왕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즉위하였는데, 어느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났다. 유화가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자기를 꾀어 내었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쫓겨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금와왕은 유화를 데려다 궁중에 가두었다. 그 유화가 햇볕을 받고 임신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 사내아이가 곧 주몽이다. 주몽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씩씩하여 7세가 되자 활도 잘 쏘았다. 그러자, 금와왕의 일곱 아들과 신하들은 시기하여 주몽을 죽이려 하였다. 주몽은 유화 부인의 말에 좋아서 졸본부여로 내려가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곧 고구려이다. 기원전 36년에 비류국 송양왕의 항복을 받은 다음, 기원전 34년에 성곽을 쌓고 궁궐을 세웠다. 이어서 해인국을 정벌하고 북옥저를 멸망시켰다.

    온조왕-백제

    -백제의 시조(재위 전 18~28). 고구려 시조 동명 성왕의 세째 아들. 동명 성왕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큰왕비의 아들)가 내려와 고구려의 태자가 되자, 형 비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려 하였으나, 도읍 문제로 의견이 엇갈렸다. 형 비류는 미추홀(지금의 인천?, 충청 남도 아산군 인주?)로 가고, 온조는 하남의 위례성(지금의 경기도 광주?, 충청 남도 천원군 입장?)에 도읍을 정하고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얼마 뒤 비류가 죽고 그 백성들이 위례성에 모여들자 나라 이름을 백제로 고쳤다. 기원전 5년 남한산으로 도읍을 옮기고, 9년 마한을 멸망시켰으며, 10년에는 아들 다루를 태자로 세웠다.

    박혁거세 -신라

    -신라의 시조. 왕호는 거서간. 전설에 의하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량부의 소벌공이 어느 날 숲속에서 말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다가갔더니, 그 자리에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알 속에서 어린 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그 아이가 10여 세가 되자 기골이 빼어나고 총명하여, 의논한 뒤에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기원전 57년 13세에 왕위에 올라 17세 때 왕비를 맞고, 왕비와 함께 전국을 돌면서 농사.양잠을 장려했다. 국호를 서라벌, 서울을 금성이라 정하고 궁성을 쌓아 국가의 기초를 세웠다. 사람들은 박과 같이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박(박)이라는 성을 붙였고, 박이 또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에서 혁거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광개토대왕 -고구려

    고구려 제 19대 왕(재위 391~412). 고국양왕의 태자. 이름은 담덕. 12세 때인 386년 태자로 책봉되고 아버지가 일찍 죽자 17세 때에 왕위에 올랐다. 391년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영락'이라 함으로써 중국과 대등함을 보였다. 392년에는 백제 북쪽의 석현(지금의 재령 부근) 등 1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켜 한강 북쪽의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396년에는 친히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무너뜨리고 왕의 동생과 그의 대신 10여 명을 볼모로 잡아왔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동쪽 땅을 완전히 차지하였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 명의 원군을 보내어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으며, 연나라의 모용희를 반격하여 신성.남소 등 두성 700여리의 땅을 갖게 되었다. 405~406년에 모용의 두 번의 침략을 받았으나 요동성. 목저성에서 모두 물리쳤다. 410년 (광개토 대왕 20)에는 동부여를 정복하고, 이어서 북부여를 무릎꿇게 하였다. 그리하여, 랴오허강 동쪽으로부터 중국 동북부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 하였다. 작은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그는, 아깝게도 39세로 죽었다. 왕이 된 후 하루도 궁궐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전쟁터를 달려 배달 민족의 영웅으로서 높이 존경받고 있다. 그의 능은 자세하지 않으나, 414년에 장수왕이 만주 봉천 지안현 퉁커우에 세운 광개토 대왕의 능비에 그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묘호는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호태왕이다.
      
    이사부 - 신라

     

    신라시대 장군. 541년(진흥왕 2) 병부(兵部)의 책임자이자 당시에는 상대등(上大等)·시중(侍中)을 겸할 수 있던 병부령(兵部令)이 되어 562년까지 실권을 장악하였다. 545년에는 국사 편찬을 제안하여 거칠부(居柒夫) 등이 《국사》를 편찬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백결 선생 -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다. 몹시 가난하여 어찌나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던지 세상에서는 “현순백결(懸百結:가난하여 입은 옷이 갈가리 찢어짐)”의 문자를 빌려 백결선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백결선생은 한점 흔들림이 없이 오직 거문고만을 사랑하여 모든 희로애락을 거문고로 풀었다. 어느 해 세모(歲暮)에 집집마다 울려나오는 떡방아 소리를 듣고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過歲)를 합니까”라고 근심하자 거문고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하였는데, 그 곡조가 후세에 전하여 《대악(樂)》이란 이름이 붙었다.  


    의자왕 -
    의자(義慈)는 휘(諱)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允忠)으로 대야성(大耶城: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黨項城: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唐)나라로 가는 입조(入朝)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계백 -백제 말기의 장군. 일찍이 사로(仕路)에 나가 벼슬이 달솔(達率:제2품)에 이르렀다. 당시 신라가 한강 유역을 강점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나제동맹(羅濟同盟)이 결렬되자 백제는 고구려 ·일본 등과 친교를 맺고 신라에 대항하였다.
      
    관창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의 화랑(花郞). 신라의 좌장군(左將軍)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수련을 쌓았으며, 15세 때 이미 말 타고 활 쏘는 데 능하여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에게 천거되었다.
      
    김유신 -신라 시대의 장군. 김 수로왕의 12대손으로, 15세 때 화랑이 되었다. 629년 (진평왕 51) 아버지와 함께 고구려의 낭비성 공격에 참가했을 때, 홀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장의 목을 베어 옴으로써 신라군의 사기를 더 높여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644년 상장군이 되어서 백제에 빼앗겼던 일곱 성을 되찾았으며, 돌아올 때 백제군이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가 크게 무찔렀다. 647년 왕족인 신하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반란군을 토벌하였으며, 진덕 여왕이 왕위에 있는 동안에도 백제의 공격을 잘 막아 냈다. 660년(무열왕 7) 상대등이 되고, 당나라의 소정방이 이끄는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668년(문무왕 8) 나.당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서울인 금성에 남고, 김인문과 김흠순 등의 장군을 보내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세상을 떠난 뒤에 흥무 대왕의 칭호를 올리었다.
      
    문무왕 - 신라의 제30대 왕(재위 661∼681). 성 김씨. 이름 법민(法敏). 태종무열왕 ·문명왕후(文明王后)의 맏아들, 비(妃)는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智略)이 많았다
      
    원효대사 - 신라 때의 승려.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아명 서당(誓幢) ·신당(新幢). 압량(押梁:慶山郡) 출생.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648년(진덕여왕2)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혜초 -신라의 고승. 723년(성덕왕 22) 당나라 광저우[廣州]에 가서 인도의 승려 금강지(金剛智)의 제자가 된 뒤, 그의 권유로 나신국(裸身國)을 경유하여 인도 동해안에 도착, 불교 성적(聖跡)을 순례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감
      
    장보고 -신라시대의 장군. 일명 궁복.궁파. 일찌기 당나라 서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의 비참한 생활에 분개하여 사퇴하고 귀국하였다. 해적들의 인신 매매를 뿌리뽑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 명의 군사로 바닷길의 요충지인 청해(지금의 완도)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가 되어 군사를 훈련하고, 해적을 소탕하였다. 837(화강왕 2) 왕위 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 그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우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뒤 감의군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후, 시기하는 신하들이 보낸 자객 염장에게 죽음을 당했다.
      
    대조영 -발해의 시조. 왕호 고왕(재위 699~719). 668년(고구려 보장왕 27) 고구려가 망하자 고구려 유민으로 라오허강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당나라의 억압에 대항하여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말갈족을 합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699년 둥마오산(지금의 지린성 근방)에 성을 쌓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진', 연호를 '천통'이라 정하고 왕이 되었다. 713년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회복하고 국호를 발해라 고쳤다. 그 때 발해의 영토는 5천 리(동은 동해, 서는 거란, 남은 신라)에 이르고 10만여호의 집과 수만 군대를 거느린 대국을 이룩했다.

      
    강감찬 -고려시대의 명장. 본관 금주(衿州: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 은천(殷川).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서희 -고려의 외교가 ·문신. 본관 이천(利川). 자 염윤(廉允). 시호 장위(章威). 960년(광종 11) 문과에 급제, 광평원외랑(廣評員外郞)에 이어 내의시랑(內議侍郞)이 되었다
      
    정중부 -고려시대의 무신. 본관 해주(海州). 인종 때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고, 의종 초 교위(校尉)를 거쳐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최무선 -고려 말, 조선 초의 발명가. 본관은 영주(永州:永川)이다. 왜구(倭寇)가 창궐하자 화약제조법의 필요성을 절감, 원나라 이원(李元)에게서 그 제조법을 배웠다



    죽림칠현 -고려의 문인..도가풍으로 유유자적을 즐기던 문인들. 가전체 소설인 <공방전>을 쓴 임춘(林椿), 시와 서예에 능했던 오세재(吳世才), 당대의 명유(名儒)인 이인로(李仁老),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이담지(李湛之), 함순(咸淳). 중국 죽림칠현과 구별해서 강좌칠현(江左七賢), 해좌칠현(海左七賢)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 청담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청담이란 대충 중국의 원조 죽림칠현들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문인들이 나누던 철학적인 담론.
      
    김부식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본관 경주. 자 입지(立之). 호 뇌천(雷川). 시호 문열(文烈).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경주의 주장(州長)인 위영(魏英)의 증손자.
    지눌-고려의 승려. 조계종(曹溪宗) 개조(開祖). 속성 정(鄭). 호 목우자(牧牛子). 시호 불일보조(佛日普照). 서흥(瑞興) 출생
      
    지눌 -고려 시대의 승려. 본성은 정, 호 목우자, 시호 불일보조. 부모의 뜻에 따라 8세 때 중이 되었다. 1182년 승과에 급제했으나, 수도에만 힘쓰기로 하였다. 창평 청원사에 들어가 '단경'을 읽고, 중생을 제도하려면 먼저 자신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깨달았다. 지리산 상무주암에 들어가 3년간 참선하여 선의 참뜻을 깨쳤다. 송광산 길상사로 가서, 중생을 떠나 따로 뿌처가 있음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여 일하는 데에 부처가 있다고 가르쳤다. 선종(참선을 중시한 불교의 한 파)과 교종(불교의 교리를 중시한 불교의 한 파)을 하나로 합치려고 노력하여 선종 우선의 조계종을 세웠다. 죽은 뒤 국사의 관위가 주어졌다. 저서로 '수심결','진심직설','간화결의론','법어' 등이 있다.


    의천 -고려시대의 승려.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 자 의천. 시호 대각(大覺).
      
    이종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의 무신. 시호 앵후. 본관 장수. 1381년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서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정용호군이 되었다. 1397년(태조 6) 옹진 만호로 있을 때 왜구가 다시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자, 이를 격퇴하여 첨절제사에 올랐다. 1400년(정종 2) 상장군으로 있을 때 2가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여, 좌명 공신 4등으로 통원군에 봉해졌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서 1419년(세종 1) 삼군 도체 찰사가 되어, 전함 227척을 거느리고 쓰시마섬을 정복하였다.

      
    정몽주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 연일(延日). 자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초명 몽란(夢蘭)·몽룡(夢龍). 시호 문충(文忠). 영천(永川) 출생.
      
    문익점 -고려시대의 학자 ·문신. 본관 남평(南平). 자 일신(日新). 호 삼우당(三憂堂). 시호 충선(忠宣). 초명 익첨(益瞻). 강성현(江城縣: 경남 산청) 출생.
      
    최충 -고려 초기의 문신.해자. 자 호연. 호 성재, 시호 문헌. 본관 해주.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1013년 국사 수찬관이 되고,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037년(정종 3) '현종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047년(문종 1) 문하시중이 되어 법판들에게 율령을 가르치고 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관리 임명에는 실력을 중히여겼으며, 직무에 성실을 다하여 공신의 호를 받았다. 72세 때 벼슬에서 물러나, 사립 학교와 같은 사숙을 열고 학자들을 기르며 여생을 보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해동 공자'라고 일컬어졌는데, 그의 제자들을 문헌공도라고 불렀다.


    일연 - 고려시대의 승려 ·학자. 속성 김(金). 이름 견명(見明). 자 회연(晦然)·일연(一然). 호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 보각(普覺). 탑호 정조(靜照). 경상북도 경산(慶山) 출생.

    최영 -고려 말기의 무신. 시호 무민. 본관 창원.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 왕의 호위병으로 뽑힌 뒤 39세 때 대장군이 되어 1358년(공민왕 7) 오예포에 침입한 왜선 4백여 척을 무찔렀다. 이듬해 평양에 침입한 홍건적 4만여 명을 물리치고, 1361년 안우와 함께 개성을 점령한 홍건적을 물리쳐 1등 공신이 되었다. 1388년(폐왕 우 14) 수문하시중이 되었을 때, 명나라가 철령 이북의 땅을 소유하겠다고 통고해 오자, 랴오둥 정벌을 나섰다. 그러나,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후 이성계에게 잡혀 누명을 쓰고 고향으로 귀양갔다가, 그 해 12월에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죽음과 함께 고려 왕조의 운명도 기울어지고 말았다.
      
    황희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처음 이름 수로, 자 구부, 호 방촌, 시호 익성. 본관 장수. 개성 출생.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숨어 살았으나, 이 성계의 간청으로 조선의 벼슬에 올랐다. 사헌 감찰, 경기도 도사, 이조 정랑 등을 거쳐 1416년 (태종 16) 이조 판서가 되었다. 1418년 충녕 대군(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에 반대하다가 귀양갔으나, 1422년(세종 4) 풀려나와 좌참찬이 되었다. 그 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31년(세종 13) 영의정이 되어 18년 동안이나 재상으로 있으면서, 농사개량.예법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이 가장 신임하는 재상으로 명망이 높았고,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만인의 존경을 받았으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시와 문장에도 뛰어나 문집인 '방촌집'을 남겼다. 경기도 파주의 방촌 영당, 경북 상주의 옥동 서원 등에서 제사지낸다.

    맹사성 -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 본관 신창(新昌). 자 자명(自明). 호 고불(古佛) ·동포(東浦). 시호 문정(文貞). 온양(溫陽) 출생

    장영실 -조선 시대의 과학자. 본관 아산. 원래 부산 동래에서 종살이를 하였는데, 매사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 원리를 캐내는 데 열심이었다. 그리하여, 광석을 제련하거나, 무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 성을 쌓는 일, 농기구를 개량하는 일 등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숨은 인재를 찾던 세종은 장영실의 소문을 듣고, 1423년(세종 5) 그를 불러 상의원 별좌에 임명하고, 종의 신분에서 풀어주었다. 1432년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천문 관측에 필요한 간의대를 만드는 사업을 벌였다. 그리하여, 1437년 대간의.소간의.현주일귀.정남일귀(해시계) 등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세종은 이 기구들을 경복궁 안의 간의대에 보관시켰다. 1434년(세종 16) 자격루를 완성하고, 4년 후 흠경각의 자동 물시계인 옥루기륜을 만들었으며, 세종 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아는 등 과학 발전에 공이 컸다. '발명의 날'은 장열실의 측우기 발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세종은 그의 공을 기리어 상호군의 벼슬을 내렸으나, 1442년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진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났다.

    신숙주 -조선 초기의 학자.문신. 자 범옹, 호 보한재.희현당, 시호 문충. 본관 고령. 1439년 문과에 급제하고 1443년(세종 25)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서 시로써 이름을 떨쳤다. 귀로에 쓰시마섬에 들러 계해조약을 맺었다. 그 뒤, 랴오둥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학자 황찬에게 음운에 관해 묻고, 성 삼문과 함께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힘썼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1등이 되고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자, 단종과 금성 대군을 죽이는 일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공으로 좌의정이 되고 1460년(세종 6)에는 북방에 침입한 야만족을 정벌하여 영의정으로 올랐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학식으로 6대의 왕을 모시며, '국조오례의'.'동국정운','국조보감'.'세조 실록' 등을 편찬하는 데 참가하였다. 문화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일에 협력한 탓으로 비난 받았다. 저서로 '보한재집'.'북정록' 등이 있다.

    한명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청주(淸州). 자 자준(子濬). 호 구정(鷗亭) ·사우당(四友堂). 시호 충성(忠成).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 ·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의 아버지

    이율곡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이퇴계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 본관 진보(眞寶). 초명 서홍(瑞鴻). 자 경호(景浩). 초자 계호(季浩). 호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 문순(文純). 경북 예안(禮安) 출생

    신사임당 -조선중기의 여류 서화가(書畵家).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사임당(師任堂:思任堂:師妊堂)·시임당(媤妊堂)·임사재(任師齋)이다.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이며,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곽재우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 현풍(玄風). 자 계수(季綏). 호 망우당(忘憂堂). 시호 충익(忠翼). 의령(宜寧) 출생.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조헌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 백천(白川). 자 여식(汝式). 호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시호 문열(文烈).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하생

    김시민 -조선 중기의 무신. 자 면오, 시호 충무. 본관 안동. 1578년(선조11)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판관으로 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 판서에게 건의하였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싼. 1591년(선조24)진주 판관으로 기용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죽은 목사를 대신하여 성을 수리하고 무기를 갖추었는데, 그 공로로 목사가 되었다. 사천.고성.진해 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경상 우도 병마 절도사에 올라 금산에서 다시 적을 격파하였다. 그 해 10월 왜적의 대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3800명의 군사로 7일 동안 성을 굳게 지키며 싸워 왜적 3만여 명의 사상자를 냄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진주대첩) 이를 싸움에서 그는 용전 끝에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1604년 선무 공신에 봉해지고 후에 영의정.상락부원군으로 관위를 높여 주었다.


    이순신 -조선 중기의 명장. 자 여해, 시호 충무, 본관 덕수. 서울에서 태어나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 함경도 동구비보권관이 되었다. 이어서 훈련원 봉사, 발포 수군 만호 등을 거쳐 1591년 유성룡 등의 천거로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에 올라,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비를 갖추기에 힘썼다. 이듬해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1차로 옥포 앞바다에서 적선 30여 척을 무찌르고, 이어서 제 2차로 사천에서 스스로 만든 거북선을 이용하여 적선 13척을 불태웠으며, 당항포에서 100여 척을 각각 쳐부수거나 불태우는 등 승리를 거두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그 해 7월 제3차로 한산도에서 적선 70여척을 무찔러 역사상 유명한 한산 대첩의 큰 공을 세웠다. 이어서 정헌대부에 알랐고, 다시 안골포에서 42척의 적선을 침몰시켰다. 9월에는 적의 본거지였던 부산에 쳐들어가 적선 100여 척을 쳐부수었고,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테서 적의 수군을 크게 무찔러 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소탕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겼으며, 최초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다. 그 뒤 명나라의 원군이 들어오자 죽도로 진을 옮겨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막았다. 그리고 전쟁이 좀 쉬는 듯 하자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 확충에 힘썼다. 1597년 반대파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정탁의 변호로 면하고 권율의 부하 장군이 되었다. 같은 해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어 있던 원균이 참패하자,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어, 남은 배 12척으로 133척의 적선과 대결하여 31척을 쳐부수었다. 1598년 11월 9일,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도망가는 적선을 노량 앞바다에서 무찌르던 중 왼쪽 가슴에 유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글에도 뛰어나 '난중 일기' 등의 저서와 여러편의 시조.한시 등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란 시조는, 그의 애국심을 잘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투철했던 애국 정신과 뛰어난 전술로 나라를 지켜 준 그는, 죽은 뒤 영의정으로 관위가 높여지고,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사적 제 112호인 아산 현충사 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제사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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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조선을 건국함.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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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 -조선 제2대 왕(재위 139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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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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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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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종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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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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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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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신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악형(惡刑)에도 굴하지 않고 순사(殉死)한 조선 전기의 6총신->[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성삼문,박팽년]

    생육신 -조선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하자 세상에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사람.->[이맹전.조여.원호.김시습.성담수.남효온]

    논개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성 주(朱). 전북 장수(長水) 출생. 진주병사(晋州兵使) 최경회(崔慶會)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

    권율 -조선 중기의 명장. 본관 안동. 자 언신(彦愼). 호 만취당(晩翠堂) ·모악(暮嶽). 시호 충장(忠莊).

    홍길동 -서자로 태어나 온갓 무술과 도술을 익혀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훗날 율도국을 세우고 나중에 왕이 되는 '홍길동전' 의 주인공

    임꺽정 -조선시대의 의적(義賊). 일명 거정(巨正). 양주(楊州)의 백정(白丁)이었으나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1559년(명종 14)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관아를 습격, 관원을 살해했다.

    삼학사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세 학사.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등을 말한다.
      
    박문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고령(高靈). 자 성보(成甫). 호 기은(耆隱). 시호 충헌(忠憲)
      
    한석봉 -조선 중기의 서예가. 본관 삼화(三和). 자 경홍(景洪). 호 석봉(石峯) ·청사(淸沙). 개성 출생.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익혀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단원 -김홍도. 조선 말기의 화가. 안견.장승업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화가의 한 사람이며,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이다.



    김삿갓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본관 안동(安東). 본명 병연(炳淵). 속칭 김삿갓. 자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 경기 양주 출생.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다.
      
    김정호 -조선 말기의 지리학자. 자 백원, 호 고산자. 본관 청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서울로 이사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는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지도마저 정확하지 못함을 보고, 실제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지도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전국을 30여 년간 두루 답사한 끝에 1834년(순조 34) '청구도' 2첩을 완성하였으나 만족하지 않고, 전국을 다시 답사하여 1861년(철종 12) '대동여지도'를 다시 간행하였고, 여러 지방의 연혁.풍속.인물.산수.거리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대동지지' 15책을 간행하엿다. '대동여지도'는 손수 그리고 띵판을 새긴 것으로, 그 한 벌을 흥선 대원군에게 바쳤는데, 이것을 본 대원군은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죄명을 씌워 그를 옥에 가두고, 목각판 지도를 압수하여 태워버렸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감옥에서 숨졌다.
      
    영조 -조선의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휘(諱) 금(昑). 자 광숙(光叔). 숙종이 양성(養性)이라는 헌호(軒號)를 내렸다.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 1699년(숙종 25) 6세 때 연잉군(延 燥 君)에 봉해지고, 172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정조 -조선의 제 22대 왕(재위 1777~1800). 이름 성, 자 형운, 호 홍재. 아버지는 장헌 세자,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 1759년(영조 35)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762년 아버지 장헌 세자가 비참하게 죽은 뒤, 1775년부터 할아버지인 영조를 대신해서 정치를 보살피다가 이듬해 영조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영조의 뜻을 이어받아 당파 싸움을 조정하고 뿌리뽑기 위하여 애썼다. 즉,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고루 뽑아 썼다. 규장각을 세워 역대의 서적을 보관하고 임진자.정유자.한구자.생생자 등의 활자를 새로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을 꾀하고, 서적 편찬에도 힘써, '국조보감'.'문원보불'.'규장전운'.'오륜행실' 등으르 간행하였으며, 자신의 문집 '홍재전서'도 완성하였다.

    정약용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 ·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 襲 翁) ·태수(苔 戒 )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

    전봉준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의 지도자. 초명 명숙(明叔), 별명 녹두장군(綠豆將軍). 전라북도 태인(泰仁) 출생.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된 후부터 사회개혁에 대한 뜻을 품게 되었다

    김대건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순교자. 성인. 본관 김해. 세례명 안드레아. 아명(兒名) 재복(再福)·보명(譜名)·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牛江面) 출생. 증조부 진후(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1814년 순교함

    황진이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기생. 진랑이라는 이름도 가졌고, 기생으로서의 이름은 명월이었다. 개성 출생. 중종 때 진사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 공부를 하였는데, 시와 문장이 모두 뛰어났다. 가야금.거문고 등 악기도 잘 다루었고, 얼굴이 예쁜 것으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 마을의 어떤 총각이 자기를 사모하다가 병들어 죽자, 충격을 받았음인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생이 되었다. 그 후 이름만 문인.학자들과 사귀며 뛰어난 글재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의 대학자 서경덕을 자신의 재주와 미모로 유혹하려다 실패하고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청산리 벽계수야.','동짓달 기나긴 밤에...'등의 시조와 많은 한시를 남겼는데, 황진이와 서경덕, 그리고 박연 폭포를 아울러 '송도 삼절'이라 불리었다.

      
    홍경래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난의 최고지도자. 출신 지역은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多美洞).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봉기 당시 42∼43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옥균 -조선 후기의 정치가. 본관 안동(安東). 자 백온(伯溫). 호 고균(古筠) ·고우(古愚). 시호 충달(忠達).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주도하였다

    안중근 -한말의 독립운동가. 본관 순흥(順興)이며, 아명 안응칠(安應七)이다.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다.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이완용 -한말의 정치가. 본관 우봉(牛峰). 자 경덕(敬德). 호 일당(一堂).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서(注書)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 ·검교(檢校) ·수찬(修撰) ·동학교수(東學敎授) ·해방영군사마(海防營軍司馬)를 역임하였다

    윤동주 -시인. 어릴때의 이름은 해환.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용정의 은진 중학교와 평양의 숭실 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연희 전문 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 재학중 여름 방학때 귀국하다가 독립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그가 죽은 뒤 1948년에 그의 동지들이 그가 남긴 원고들을 모아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사'라는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 비로소 알려져 일제 말기의 저항 시인으로서 우명해졌다. 대표 작품으로는 '또 다른 고향'.'십자가'.'별 헤는 밤'.'슬픈 족속'.'무서운 시간' 등이 있으며, 연세 대학교 안에 윤 동주의 시비가 세워졌다.


    지석영 -조선 후기의 의사ㆍ문신ㆍ국문학자. 자 공윤(公胤). 호 송촌(松村). 본관 충주(忠州). 서울 출생.

    손병희(민족대표33인)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호 의암(義菴).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충북 청주(淸州)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鍊性修道)하였다

    유관순 -독립운동가로, 충청남도 천안(天安) 출생이다.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일제 총독에 의하여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즉각 고향으로 내려갔다.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오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안창호 -호는 도산(島山)이다.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방정환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호 소파(小波), 서울 출생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보성전문(普成專門)을 마친 후 도요[東洋]대학에서 철학과를 수학했다.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 청년구락부, 소년운동협의회 등을 조직하였다.
      
    이수일,심순애 - 조중환의 소설『장한몽』에 등장하는 가상인물.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후에 영화로도 나왔음.


    김두한 -한국의 정치가. 호 의송(義松). 서울 출생. 3·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의 아들이다. 서울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면서 주먹왕으로 군림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이상 -한국의 시인, 소설가. 본명 김해경(金海卿). 서울 출생. 대표적인 작품으로 날개,종생기 등의 작품이 있다.
      
    이중섭 -서양화가. 호 대향(大鄕). 평남 평양(平壤) 출생. 오산고보(五山高普)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 노래의 위인은 모두 몇명일까요?
    1절
    단군, 동명왕(고구려-주몽), 온조왕(백제),박혁거세(신라), 광개토대왕, 이사부, 백결, 의자왕(삼천궁녀는 의자왕을 수식하는것), 계백, 관창 (10명)

    2절
    김유신, 문무왕, 원효, 혜초, 장보고, 대조영, 강감찬, 서희, 정중부, 최무선, 죽림칠현(고려문인 7인: 임춘, 오세재, 이인로, 조통, 황보항, 이담지, 함순), 김부식, 지눌국사, 의천, 이종무, 정몽주, 문익점, 최충, 일연 (25명)

    3절
    최영, 황희, 맹사성, 장영실, 신숙주, 한명회, 이율곡, 이퇴계, 신사임당, 곽재우, 조헌, 김시민, 이순신,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 생육신(이맹전, 조여,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 논개, 권율 (34명)

    4절
    홍길동, 임꺽정,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박문수, 한석봉, 김홍도(단원), 김병연(김삿갓), 김정호, 영조, 정조, 정약용, 정봉준, 김대건, 황진이, 홍경래, 김옥균, 안중근, 이완용 (20명)

    5절
    윤동주, 지석영, 손병희(33인은 손병희를 수식), 유관순, 안창호, 방정환, 이수일, 심순애, 김두한, 이상, 이중섭 (11명)

    합계 : 10 + 25 + 34 + 20 + 11 = 100명

    2007.04.03 18:09 | 신고 정말 감사 합니다..] 유용하게 썼습니다. 워드3급
  •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고구려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알에서 나온 혁거세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 신라 장군 이사부
    백결 선생 떡방아 삼천 궁녀 의자왕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 역사는 흐른다

    2.말목 자른 김유신 통일 문무왕 원효대사 해골물 혜초 천축국
    바다의 왕자 장보고 발해 대조영 귀주대첩 강감찬 서희 거란족
    무단 정치 정중부 화포 최무선 죽림칠현 김부식
    지눌국사 조계종 의천 천태종 대마도 정벌 이종무
    일편단심 정몽주 목화씨는 문익점
    해동공자 최충 삼국유사 일연 역사는 흐른다

    3.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황희 정승 맹사성 과학 장영실 신숙주와 한명회 역사는 안다
    십만 양병 이율곡 주리 이퇴계 신사임당 오죽헌
    잘 싸운다 곽재우 조헌 김시민 나라 구한 이순신
    태정태세문단세 사육신과 생육신
    몸바쳐서 논개 행주치마 권율 역사는 흐른다

    4.번쩍번쩍 홍길동 의적 임꺽정 대쪽같은 삼학사 어사 박문수
    삼년 공부 한석봉 단원 풍속도 방랑 시인 김삿갓 지도 김정호
    영조대왕 신문고 정조 규장각 목민심서 정약용
    녹두 장군 전봉준 순교 김대건 서화가무 황진이
    못살겠다 홍경래 삼일천하 김옥균
    안중근은 애국 이완용은 매국 역사는 흐른다

    *별 헤는 밤 윤동주 종두 지석영 삼십삼인 손병희
    만세 만세 유관순 도산 안창호 어린이날 방정환
    이수일과 심순애 장군의 아들 김두한
    날자꾸나 이상 황소 그림 중섭 역사는 흐른다

     

    2007.05.15 20:18 | 신고
  • * 참조 : 노래를 직접 들으려면 다음과 같이 하세요

    http://cafe.naver.com/dhfvdgfsd.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

    위 사이트로 들어가서
    한국을빛낸100명의위인들.exe 을 클릭하세요.(노래방 스타일입니다)


    <한국을 빛낸 100인들의 위인들>
    ㅇ 단군 : 우리나라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 단군왕검으로도 불림. 천제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임. <삼국유사>에 환웅이 웅녀와 결혼, 그 아들이 단군이라는 기록이 있음.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건국하여 약2000년 간 나라를 다스림.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종교로 발전한 것이 대종교임.
    ㅇ 동명왕 : 고구려의 시조.
    → 재위 기간은 B. C. 37~B. C. 19이름은 고주몽 이며 태어날 때부터 임금이 될 때까지 건국 신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금와왕의 일곱 왕자들이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주몽은 졸본부여로 내려와 도읍을 정하고 B. C.37년에 고구려를 세운 다음 임금이 되었다. 그는 송랑국·행인국 등 부근 나라를 개척하고 나중에는 북옥저까지 정복하여 점차 큰 나라의 토대를 쌓았다.
    ㅇ 온조왕 :백제의 시조.
    → 재위 기간은 A.D.(기원 후) 18년에서 A.D.28년까지임.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셋째 아들. 주몽이 유리 왕자를 태자로 삼자, 온조와 비류 왕자는 부하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강 유역까지 내려와 비류는 미추홀에 도읍을 정했고, 온조는 위례에 도읍을 정했다.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백제로 정했다. 미출홀은 모든 조건이 백성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아 얼마 후 이곳 백성들도 백제에 합쳐졌다. 온조왕은 낙랑·마한과 싸워 국토를 넓히고 아들 다루를 태자로 정했다.
    ㅇ 박혁거세 : 신라의 첫 임금.
    → 박씨의 시조. 재위 기간은 B. C. 57년에서 A. D.4년까지임. 전설에 의하면 촌장 소벌도리가 경주 지방 계림에서 말이 우는 소리가 들려 찾아가 보니 그곳에는 이상스럽게도 큰 알이 놓여 있었다. 그 박처럼 생긴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소식을 듣고,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몰려왔다. 여섯 촌장은 우선 이 아이가 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성을 박씨라 하고, 이름을 혁거세라 지었다. 뒤에 혁거세를 임금으로 받드니, 그가 바로 신라의 첫 임금이다.
    ㅇ 광개토대왕 : 고구려의 대 정복왕.
    → 19대 임금으로 호태왕 또는 영락왕이라고 한다. 재위 기간은 391년에서 413년까지임. 서른 아홉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구려의 영토를 넓힌 고구려의 가장 위대한 임금이다. 지금 만주 집안현 통구에 있는 광개토대왕의 능과 비는 왕의 빛나는 업즉을 길이 전해주고 있다.
    ㅇ 이사부 : 신라의 장수
    → 일명 태종. 성은 김씨로서 내물왕의 4대손이다. 562년에 반란을 일으킨 가야에 출정하여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소백산맥 동쪽에 신라의 지배권을 확립하였다.
    ㅇ 백결 : 신라의 탄금가.
    → 본명은 전하지 않는다. 경주 남산 기슭에 살았는데 몹시 가난하여 옷을 백군데나 기워 입었기 때문에 백결 선생이라고 불리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이웃집에서는 모두 떡방아 소리가 들리는데 백결선생의 집에는 먹을 식량도 없었다. 그것을 그의 아내가 한탄하자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어 위로 하였다고 전한다.
    ㅇ 의자왕 : 백제의 제31대 왕.
    → 의자왕은 휘 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라 일컬었다. 그러나 만년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성충 ·흥수 등 충신의 간을 듣지 않고 국정을 돌보지 않다가 660년 나 ·당 연합군의 침공을 맞게 되었다. 계백의 황산벌싸움을 마지막으로 백제의 방어선이 모두 무너져 수도 사비성이 나 ·당 연합군에 포위되자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웅진성에 피신하였으나 끝내 항복하였다. 그는 태자 등 1만 2000여 명과 함께 소정방에게 끌려 당나라에 압송되었다가 그곳에서 병사하였다.
    ㅇ 계백 :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백제의 마지막 장수.
    → 이름은 승. 처음에는 달솔이란 벼슬을 지냈으며, 660년(의자왕 20년)에 장군이 된 무장이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 의자왕이 나라를 돌보지 않고 사치와 허영에 빠져 나라가 어지러울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 5만 명이 쳐들어오자 결사대 5천 명을 이끌고 계백은 용감하게 싸웠다. 장군은 황산벌에서 나·당 연합군을 네 차례나 이겼으나 많은 수를 당하지 못하고 신라군에게 패하여 모두 황산벌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계백은 싸움터에 나감에 있어, 백제는 이미 국력이 기울어져 나·당 연합군ㅇ르 당해내지 못하고 멸망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계백 장군은 백제가 망한 뒤에 장차 가족들이 적군의 종이 되어 참혹하게 살아갈 생각을 하니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아내와 아들 딸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싸움터로 떠났다. 성충, 홍수, 계백 이 세 사람을 백제의 3충신이라 한다.
    ㅇ 관창 : 신라의 무열왕 때의 화랑.
    → 신라 좌장군 품일의 아들.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였으며 660년 신라가 당나라와 백제를 칠 때에 부장이 되었다.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군과 싸운 끝에 생포되었으나 계백 장군은 관창의 용맹함에 탄복하여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 뒤 백제군과 싸우다가 관창이 다시 생포되자 계백은 관창의 목을 베어 말꼬리에 매달아 돌려보냈다. 신라군은 어린 관창의 죽음에 크게 자극을 받아 백제군을 대패시켰다.
    ㅇ 김유신 : 삼국 통일의 명장.
    → 김유신은 가야 왕의 후손으로 신라의 만노군 태수였던 김서현과 만명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무술을 열심히 닦아 열 다섯 살에 화랑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 만명 부인은 그가 술집 여자인 천관을 찾아다니는 것을 알고 꾸짖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다시는 안 갈 것을 서약했다. 어느 날, 김유신을 태운 말이 무심코 늘 다니던 술집으로 간 것을 깨닫고, 그 말의 목을 쳤다. 그는 이일이 있고 난 뒤 크게 결심을 하고 삼국통일을 이루겠다는 커다란 포부를 길러 나갔다. 김유신이 죽은 후, 그의 유해는 금산원에 장사 지냈고 835년 흥무대왕에 추존되었으며 경주 서악서원에서 제사 지냈다.
    ㅇ 문무왕 : 신라의 제 30대 임금. 통일 신라를 이룩한 임금.
    → 재위기간 661년~681년. 태종 무열왕의 큰 아들로 660년에 김유신과 함께 당나라 군대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임금이 된 후 백제의 남은 군사를 소탕하였고 668년에는 당나라와 병합하여 고구려를 멸망 시켰다. 그러나 당나라는 전쟁이 끝났는데도 물러가지를 않고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도호부를 두어 계속 통치하려고 했다. 문무왕은 당나라군과 싸워 당나라군을 북으로 쫓아내고 통일을 이룩하였다.
    ㅇ 원효대사 : 신라 문무왕 무렵의 고승.
    → 설총의 아버지. 원효는 중이 된 후의 법호이고 그의 어릴 때의 이름은 서당이었다. 서당은 처음에는 화랑이었는데,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다가 646년 황룡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배를 타러 당주계로 가다가 캄캄한 밤에 빈집으로 알고 무덤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원효는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한 그릇 마셨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깨어보니 자기가 달게 마신 물이 해골바가지 속에 담긴 빗물이었음을 알고 깨달은 바 있어 그대로 신라로 돌아왔다. 그는 분황사에 있으면서 원효종을 제창하여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는데 힘썼다. 그 뒤에 요석공주를 만나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이었다. 부처의 계율을 어긴 원효는 스스로 절을 떠나 이름마저 소성거사로 바꾸었다.
    ㅇ 혜초 :신라의 고승
    → 혜초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떠나 절에서 공부를 하다가 열 살 때 당나라로 건너가서 신라원에 공부를 하였다. 그 뒤 그곳을 나와 당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금강지라는 인도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인도 순례를 마치고 인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글로 써서 남겼는데 그것이 『왕오천축국전』이다. 이 책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ㅇ 장보고 : 통일신라 시대의 바다의 영웅.
    → 궁복, 궁파라고도 부름. 완도에 성을 쌓아 청해진을 설치하고 수병을 훈련하여 해적들을 완전히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학하였음. 그 뒤 중국, 일본과의 무역을 크게 일으켰음.
    ㅇ 대조영 : 발해의 시조.
    → 재위 668~719년. 왕호는 고왕. 고구려가 망한 뒤 남은 무리를 이끌고 천물령에서 당나라 군대를 크게 이겼음. 699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모아 동모산에 나라를 세워 국호를 진이라 하였음. 713년 국호를 ‘발해’라 고치고, 고구려의 옛땅을 거의 회복, 해동성국을 이룩했음.
    ㅇ 강감찬 : 고려 초기의 명장, 문장가.
    → 1010년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끝까지 항복을 반대했으며, 하공진에게 적을 설득시켜 물러가게 함. 1018년 거란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 왔을 때 일흔 살의 많은 나이로 적군을 물리치고, 도망치는 적군을 공격하여 구주에서 섬멸시켰는데, 이것을 구주 대첩이라고 함. 그 후 거란이 고려를 넘보는 일은 없게 되었다고 함.저서로 <구선집>등이 있으나 지금은 전해지지 않음.
    ㅇ 서희 : 고려 성종 때의 외교가.
    → 982년 송나라에 가서 중단되었던 국교를 회복하고 돌아왔음. 993년 거란의 침입 때 적장 소손녕과 담판, 설득하여 거란군을 철수시켰음. 994년 청천강 이북의 여진족을 모두 몰아내고 압록강 동쪽에 여섯 개의 성 (강동 6성)을 쌓는 등, 지금의 평안 북고 일대의 국토를 완전히 확보했음.
    ㅇ 정중부 : 고려 말기의 무신.
    →무신 천대에 불만이 쌓여 반란을 일으켜 문신들을 죽였음. 의종을 폐위시키고, 의종의 동생인 호를 새 왕으로 세우고 정권을 잡았음. 이를 ‘무신의 난’ 또는 ‘정중부의 난’이라고 함. 무신 정치가 시작되자 문화의 암흑 시대로 들어갔음. 1179년 같은 무신인 경대승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했음.
    ㅇ 최무선 :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장군, 발명가.
    →1376(우왕 2년) 원나라 이원에게 화약 제조법을 배우고, 이듬해 화통도감을 설치, 화약, 화통 등을 제조했음. 1380년 왜구가 침입하자 진포에서 화통, 화포 등으로 전멸시킴. 저서로는<화약 수련법>,<화포법>등이 있음.
    ㅇ 김부식 : 고려의 학자, 문신.
    → 자는 입지, 호는 뇌천. 1134년 묘청이 왕을 설득 시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기려고 하자, 적극 반대하여 중지 시켰음. 이에 묘청은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개경으로 쳐들어왔음. 김부식은 총사령관이 되어 난을 평정하였는데, 이것이 유명한 ‘묘청의 난’임. 1145년 우리나라 최초의 정사인 <삼국사기>50권의 편찬을 끝마쳤음. 이듬해 의종이 즉위하자 <인종실록>의 편찬을 지도했음. 저서로 <삼국사기>,<김문열공집>(20권),<봉사어록>등이 있음.
    ㅇ 지눌 : 고려의 중.
    →호는 목우자. 보조 국사라고도 함. 조계종의 시조임. ‘중생을 떠나 따로 부처가 없다.’고 설파하며 적극 현실에 참여했음. 선종과 교종을 통합, 불교계의 기풍을 확립했음. 저서로 <진심적설>,<수심결>등이 전함.
    ㅇ 의 천 : 고려의 중.
    → 고려 천태종의 시조. 이름은 후, 자는 의천. 대각 국사라고도 함.<속대장경>을 완성하였음. 숙종 때 화폐 제조를 건의, 경제 발달에도 이바지 함. 교선 일치를 주장하고, 천태종을 만들어 선종의 종파를 통일, 고려 불교의 융합을 실현, 한국 불교사상 획기적인 업적을 이룩함. 저서 <해동유본견행록>,<대각국사문집>,<석원사림>등이 있음.
    ㅇ 이종무 :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
    → 본관 장수. 시호 양후. 1381년(우왕 7) 아버지와 함께 왜구를 격파한 공으로 정용호군이 되고 1397년(태조 6) 옹진만호 때 왜구가 침입, 성을 포위하자 이를 격퇴하여 첨절제사에 올랐다. 1400년(정종 2) 상장군으로 제2차 왕자의 난에 공을 세워 이듬해 좌명공신 4등으로 통원군에 봉해졌다. 삼군도체찰사로 임명되어 대마도를 정벌함.
    ㅇ 정몽주 : 고려 말기의 학자, 충신.
    → 호는 포은. 유교를 깊이 연구해 길재, 이색과 함께 고려 3은 이라 일컬어짐. 이성계와 힘을 모아 토지 제도를 고쳤음. 1388년 우왕의 랴오둥 정벌 전쟁에 반대,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왕위에 오르게 했으나,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뒤의 태종)이 찾아와 이성계 편이 되어 달라는 시조를 지어 그의 뜻을 묻자, <단심가>를 지어 고령[ 바치는 충성심을 표현해 보였음.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에게 죽임을 당했음.
    ㅇ 문익점 : 고려 말기의 학자, 문신.
    → 처음은 익첨, 호는 삼우당. 1363년 원나라에 갔다가 귀국할 때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 가지고 들어와, 장인 정천익과 함께 고향에서 가꾸었음. 뒷날 우리나라 의복과 경제 생활에 크게 이바지함.
    ㅇ 최충 : 고려 초기의 문신, 학자.
    →호는 선재, 월포. 1013년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137년 <현종실록>편찬에 참여했음. 1047(문종 1년)법률 관들에게 율령을 가르침으로써 고려 형법의 기틀을 마련했음.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서 ‘해동 공자’라 불리었음.
    ㅇ 일연 : 고려 말기의 중, 학자.
    → 호는 목암. 뛰어난 중인 동시에 대학자이며 대문학가였음. 100여 권이나 되는 많은 책을 지어냈으나, 그 중<삼국유사>만 오늘날까지 전해짐. <삼국유사>에는 우리나라 고대의 설화와 시기들이 실려 있어, 우리의 고대사 및 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음.
    ㅇ 최영 : 고려 말기의 장군.
    →여러 차례 홍건적과 왜구를 물리치고, 오직 나라를 지키는 일에 힘썼음. 랴오둥 정벌을 주장했으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함. 이성계에게 잡혀 개경으로 압송되었다가 사형당함.
    ㅇ 황희 : 고려 말기, 조선 초기의 문신.
    →호는 방촌. 시호는 익성. 고려 무왕때 지방 관리를 지내다가, 고려가 망하자 시골로 내려가 살았음. 백성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마음으로 조선 왕조 때에도 벼슬을 지냈음. 정치적인 능력과 뛰어난 인품으로 이름을 떨쳤음. 예조, 이조, 병조, 호조 등 6조의 판서를 지낸 뒤 영의정에 올랐음. 농사짓는 법을 개량, 씨앗을 농민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왜적을 막기 위한 방비책에 힘썼음.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사상을 내세워 덕망이 높았음. 오랫동안 벼슬 생활을 하였으나 청빈하여 무척 가난하였다고 함.
    ㅇ 맹사성 :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
    → 이조 초기의 명상. 자는 성지. 호는 고불. 온양사람으로, 세종 때에 우의정·좌의정을 재냈고,<태종 실록>을 편찬하였음. 청렴결백하기로 유명함.
    ㅇ 장영실 :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
    → 1434년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인 자격루 완성. 1437년 해시계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였음. 1441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는 등 과학 발전에 공이 컸음. 발명의 날은 장영실의 측우기 발명을 기념하여 제정된 것임.
    ㅇ 신숙주 : 조선 세조 때의 학자, 문인.
    → 호는 보한재. 집현전에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웠음. 1453년 계유정난에 참여, 세조의 왕의 찬탈을 도왔고, 세조가 즉위하자 적극 보좌했음. 단종과 금성대군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 1457년 금성 대군에게 사약을 내리고 단종에게 스스로 죽을 것을 명하게 했음. 뛰어난 학식과 문재로써 6대 왕을 보필한 공로가 적지 않으나, 수양 대군의 왕위 찬탈을 도운 것으로 인해 후세의 비난을 받음.<국조보감>,<세조실록> 등의 편찬에 참여 하였고, 일본과 여신의 지도를 만들었음. 저서로 <해동제국기>,<보한재집>등이 있음.
    ㅇ 한명회 : 조선 전기의 문신.
    → 이조 세조 때의 공신. 호는 구정. 청주 사람. 수양 대군을 도와 김 종서 등 고명 대신을 차례로 죽이고, 단종을 몰아 내는데 크게 획책 사육신등의 처형 후, 이조판서를, 뒤에 영의정을 지냈음, 시호는 충성.
    ㅇ 이율곡 :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
    → 호는 율곡. 신사임당의 아들.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유학계의 대학자임. 이황의 ‘이기 이원론’에 대립하여 ‘이기 일원론’을 주장하여 기호학파를 이루었음. 여러 벼슬을 지냈지만, 그 중에서도 대사간의 직책을 아홉 번이나 맡아 왕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힘썼으며, 특히 국력이 약한 것을 걱정하여 10만 군대양성을 주장했으나,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음. 백성들이 자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향약’이라는 자치 조직의 규칙을 마련했으며, 이 ‘항약’ 운동을 크게 일으켰음. 저서로 <격몽요결>,<시무육조>,<만언봉사>,<성학집요>,<동호문답>등이 있음.
    ㅇ 이퇴계 : 주선 중기의 학자, 문신.
    →이름은 황 호는 퇴계. 주자학의 대가였으며, ‘이기 이원론’을 주장했음. 시도 잘 지어 <도산 십이곡>같은 유명한 작품을 남겼음. 도산 서원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병중에도 성심껏 지도했다고 함. 대표적 저서로 <성학십도>, <주자서절요>,<퇴계집>등이 있음.
    ㅇ 신사임당 : 조선 중기의 여류 문인, 서화가.
    →호는 사임당 또는 임사재. 이이(율곡)의 어머니, 산수, 포도, 풀, 곤충 등을 자 그려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 화가라는 평을 받고 있음. 어진 어머니인 동시에 착한 아내의 본보기가 되었음. 그림 <자리도>,<산수도>,<초충도>등과 한시 <사친>등이 있음.
    ㅇ 곽재우 : 임진왜란 때의 의병 대장.
    → 호는 망우당.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음. 그 때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 장군’이라고도 불렸음. 그의 용맹성에 놀란 왜병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함.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에는 화왕산성을 끝까지 지켰음. 그 후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감. 왕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사양하고, ‘망우정’이란 정자를 짓고 여생을 보냄. 저서 <망우당집>이 있음.
    ㅇ 김시민 : 조선 중기의 무신
    → 자는 면오. 1592년 임진왜란 때 고성, 진해 등에서 왜군을 무찔러 경상 우도 병마 절도사가 되었음. 이해 10월 적의 대군의 진주성을 포위하자, 3800명의 군사로 7일간의 공방전 끝에 3만여 명의 왜적을 부상 또는 죽게 하여 물리쳤으며, 자신의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마쳤음.
    ㅇ 이순신 : 임진왜란 때의 장군.
    →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의 함선을 무찌르고 남해안 일대 바다에서 세력을 장악하였음.1597년 그의 승진을 시기한 원균의 모함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정탁의 변호로 풀려 나와 백의 종군하였음. 정유재란에서 원균이 참패하자, 3도 수도 통제사로 임명되어 12척의 배로 적선 133척과 대결하여 명량싸움에서 적의 대군을 격파했음.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철수하는 일본군을 노량 앞 바다에서 섬멸시키고, 왼편 가슴에 적의 유탄을 맞고 쉰 네 살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음. ‘충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저서<난중일기>와 시 20여 수를 남겼음.
    『-사육신-
    ㅇ 성삼문 : 조선 초기의 학자, 사육신의 한 사람.
    →자는 근보, 호는 매죽헌, 집현전 학사로 신숙주와 함께 <예기대문언독>을 편찬했으며, 음운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하여 랴오둥 반도에 여러 차례 왕래하는 등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큰 공을 세움,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 성승, 박팽년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실패했으며, 단종에 대한 절개를 굽히지 않아 극형에 처해졌음. 자기의 지조를 읊은 시조 2수가 전함. 저서 <성근보집>이 있음.
    ㅇ 박팽년 : 조선 세종 때의 학자, 사육신의 한 사람.
    →호는 취금헌. 세종 때 집현전의 학자로 활약해 임금의 총애를 받았고, 경학, 문장, 필법등이 뛰어났음.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빼앗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의 밀고로 실패했음. 그의 재능을 아껴 세조가 마음을 돌릴 것을 권했으나 거절하여 처형되었음.
    ㅇ 이 개 : 조선 전기의 학자, 사육신의 한사람.
    → 본관 한산. 자 청보·백고. 호 백옥헌. 시호 의열, 뒤에 충간으로 개시. 훈민정음의 창제에 참여했다. 1447년 문과중시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하고, 1456년(세조 2) 직제학 이 되고, 이해 성삼문·박팽년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시문과 글씨에 능했음.
    ㅇ 하위지 : 조선 전기의 문신, 사육신의 한사람.
    →본관 진주. 자 천장·중장. 호 단계·연풍. 시호 충렬. 집현전 교리로서 상정에 참여. 침착 ·과묵한 청백리로, 측근에서 세조를 보필하는 동안 국록을 손대지 않고 고스란히 따로 저장해 두었다. 1466년 성삼문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 체포되어 친국 끝에 동료들과 함께 거열형에 처해졌다. 뛰어난 문장가였음.
    ㅇ 유응부 :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사람.
    → 본관 기계. 자 신지·선장. 호 벽량. 시호 충목. 첨지중추원사·평안도절제사를 역임하고 1455년(세조 1) 중추원동지사로 정2품에 올랐다. 성삼문·박팽년 등과 단종 복위를 모의하고 명나라 사신을 초대하는 연회장소에서 세조를 살해하는 소임을 맡았으나 김질의 배신으로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복종하지 않아 죽음을 당하였다. 학문에 뛰어나 절의파 학자로 알려졌고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에 능하였으며 효성이 극진하였다. 재상으로서 끼니를 거를 정도로 청렴하였고 숙종 때 병조판서가 추증되었으며 시조 3수가 전해진다.
    ㅇ 유성원 :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사람.
    → 본관 문화. 자 태초. 호 낭간. 시호 절의·충경.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저작랑이 되어 <의방유취> 편찬에 참여하였다. 1447년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집현전학사로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문종이 즉위하자 대교 등을 지내고, 1451년(문종 1) 사가독서하였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의 협박에 정난공신을 녹훈하는 교서를 썼으나, 그 뒤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가 탄로되자 1456년(세조 2) 자결했다. 시조 한 수가 <가곡원류>에 전한다.』
    『-생육신-
    ㅇ 이맹전 : 조선 전기의 문신, 생육신의 한 사람.
    → 본관 벽진. 자 백순. 호 경은. 시호 정간. 1427년(세종 9) 친시문과에 급제, 정자·정언 등을 거쳐 외직을 자처하여 거창현감으로 나갔다. 수양대군이 1453년에 계유정난을 일으켜서 단종을 몰아내고 집권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선산에 내려가 평생 도의지교를 맺었던 김숙자 등과 학문을 교유하며 일생을 마쳤다.
    ㅇ 조려 : 조선 전기의 문신, 생육신의 한 사람.
    → 본관 함안. 자 주옹. 호 어계은자. 시호 정절. 1453년(단종 1) 진사가 되고 명망이 높았으나,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항거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함안에 돌아가 백이산 아래에서 독서와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의 왕위가 복위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정조 때에는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문집에<어계집>이 있다.
    ㅇ 성담수: 조선 전기의 문신, 생육신의 한 사람.
    → 본관 창녕. 자 미수. 호 문두. 성삼문의 6촌. 생육신의 한 사람. 1356년(세조 2) 성삼문 등의 단종복위운동 때 그의 아버지 희도 관련되어 국문을 받고 김해로 귀양갔다가 3년 후 풀려났으나 곧 세상을 떠났다. 이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 뒤 벼슬을 단념하고, 파주 문두리에 은거, 독서와 낚시질로 소일하였다.
    ㅇ 김시습 : 조선 전기의 학자, 생육신의 한 사람.
    → 본관 강릉. 자 열경. 호 매월당·동봉·청한자·벽산. 법호 설잠. 시호 청간. 서울 성균관 부근에 있던 사저에서 출생하였으며, 신동·신재로 이름이 높았다. 1463년(세조 9) 효령대군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 사업을 도와 내불당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1465년(세조 11)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입산하였다. 2년 후 효령대군의 청으로 잠깐 원각사 낙성회에 참가한 일이 있으나 누차 세조의 소명을 받고도 거절, 금오산실에서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금오신화>를 지었고,<산거백영>(1468)을 썼다. 이곳에서 6~7년을 보낸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거백영 후지》(1476)를 썼다. 그는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유·불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ㅇ 원호 : 조선시대 생육신중의 한사람.
    → 본관 원주. 자 자허. 호 무항·관란. 시호 정간. 1423년(세종 5) 식년문과에 급제, 여러 청환직을 지내고 문종 때 집현전 직제학이 되었다. 단종 초에 수양대군이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고향인 원주에 내려가 은거하다가 1457년(세조 3) 단종이 죽자 영월에서 3년상을 치렀다. 그뒤 호조참의에 임명되었으나 이에 불응하고 여생을 마쳤다. 1703년(숙종 29) 원주에 정문이 섰고, 원천석의 사당에 배향되었다.
    ㅇ 남효원 : 조선 전기의 문신, 생육신의 한사람.
    → 본관 의령. 자 백공. 호 추강·행우·최락당. 시호 문정. 김종직의 문하로 김굉필·정여창·김시습·안응세 등과 친교가 두터웠다. 1478년(성종 9) 세조에 의해 물가에 이장된 단종의 생모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의 복위를 상소하였으나, 도승지 임사홍, 영의정 정창손의 저지로 상달되지 못하자 실의에 빠져 유랑생활로 생애를 마쳤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 때는 김종직의 문인이었다는 것과 소릉 복위를 상소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까지 당하였다. 만년에 저술한<육신전>은 빛을 못 보다가 숙종 때 비로소 간행되었다. 1713년(중종 8) 소릉이 추복되면서 신원되어 좌승지에 추증되고 1782년(정조 6)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 생육신의 창절사에 제향되었다. 저서에<추강집><추강냉화><사우명행록><귀신론> 등이 있다. 』
    ㅇ 논개 : 임진왜란 때의 의인.
    → 성은 주씨라고 전한다. 전라북도 장수 태생. 임진왜란 무렵 진주 병사 최경희의 부인이었다. 기생이라는 말도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설이다. 왜군이 진주성을 함락하고 촉석루에서 승전 잔치를 하고 있는 때를 이용하여 술에 취한 왜장 게다니를 끼고 벽류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남강에 몸을 던져 나라를 위해 죽었다. 그 바위는 후세에 의암 이라 부르고 비를 세웠으며 남강가에 사당을 지어 나라에서 제를 지냈다.
    ㅇ 권율 : 임진 왜란 때의 장군.
    → 자는 언신, 호는 만취당. 젊어서는 벼슬에 뜻이 없어 책만 읽다가 마흔 여섯 살 때야 과거에 급제했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울에 들어가 수비하라는 왕명을 받고 10만 대군을 이끌고 북으로 진격, 용인까지 왔으나, 잘못된 작전으로 일본군에 패함. 광주로 돌아와 남은 부하들을 맹훈련시킨 뒤 금산의 이치로 나아가 싸워 이겼음. 1593년에는 함께 싸우던 명나라 군사들의 자만과 방종 때문에 왜군에게 대패했음. 그 결과 행주산성이 고립되자 3만여 왜군이 행주산성을 공격, 군사와 백성이 다 함께 적군에 대하여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적군의 8할을 죽이고 격퇴했음. 이것이 유명한 ‘행주대첩’임.
    ㅇ 홍길동 : 조선 광해군 때 교산 허균이 지은 소설.
    → 활자본. 1책. 한글소설의 효시로 중국소설 <수호전>에서 영향을 받아 임진왜란 후의 사회제도의 결함, 특히 적서의 신분 차이의 타파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그의 혁명사상을 작품화한 것이다. 주인공인 길동은 홍판서와 시비 춘섬 사이에서 태어나 늘 천대를 받고 자란다. 그는 총명한 재주에 학식이 뛰어나 호풍환우하는 법과 둔갑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 사람들의 멸시를 참지 못하여 집을 뛰쳐나와 적굴에 들어가 괴수가 되어 활빈당을 조직한다. 각 지방의 탐관오리들과 토호들의 불의의 재물을 탈취하는 등 양반계급을 괴롭히고 가난한 양민을 돕다가 조정의 회유로 부득이 형조판서까지 되었으나 마침내는 고국을 하직하고 난징으로 가다가 율도국 정착해 이상적 왕국을 건설한다는 이야기이다.
    ㅇ 임꺽정 : 조선시대의 의적.
    → 일명 거정. 양주의 백정이었으나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1559년(명종 14)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관아를 습격, 관원을 살해했다. 한때는 개성에 쳐들어가 포도관 이억근을 살해하기도 했다. 백성들의 호응으로 관군의 토벌을 피했으나 1560년 형 가도치와 참모 서림이 체포되어 그 세력이 위축되다가 1562년 토포사 남치근의 대대적인 토벌로 구월산에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명종실록>에는 그의 이름이 임거질정으로 적혀 있다.
    『-삼학사-
    ㅇ 홍익한 : 조선 중기의 문신, 삼학사중 한사람.
    → 본관 남양. 자 백승. 호 화포. 초명 습. 시호 충정. 1636년 청나라가 속국시하는 모욕적 조건을 내세워 사신을 보내왔을 때 사신을 죽임으로써 설욕하자고 주장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론을 폈으나, 남한산성에서 왕이 화의하니 오달제·윤집과 함께 선양에 잡혀가 끝내 굽히지 않고 죽음을 당해 적들이 감탄하여 ‘삼한삼두의 비를 세웠다. 영의정에 추증. 저서에<화포집><북행록><서정록> 등이 있다.
    ㅇ 윤 집 : 조선 중기의 문신, 삼학사 중 한사람.
    → 본관 남원. 자 성백. 호 임계·고산. 시호 충정(忠貞). 병자호란 때 화의를 적극 반대, 척화론자로 오달제·홍익한과 함께 청나라에 잡혀가서 갖은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선양서문 밖에서 사형되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ㅇ 오달제 : 삼학사의 한사람.
    → 본관 해주. 자 계휘. 호 추담. 시호 충렬. 후금의 위협으로 사신을 교환하게 되자 이에 반대하고, 주화파의 최명길을 탄핵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청나라와의 화의를 극력 반대하였다. 인조가 청군에 항복한 뒤 적진에 송치되었으나 적장 용골대의 심문에 굴하지 않아 다시 선양으로 이송, 그곳에서도 모진 협박과 유혹에 굴하지 않아 윤집·홍익한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 영의정이 추증. 문집에<충렬공유고>가 있다. 』
    ㅇ 박문수 : 조선 영조 때의 문신.
    → 호는 기은. 1727년 영남 암행어사가 되어 부정한 간리를 적발함. 1730년 호서어사가 되어 굶는 백성들의 구제에 힘씀. 1741년 함경도 진휼사로서 경상도에서 곡식을 실어다가 흉년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을 구제, 후에 함흥 만세교 옆에 송덕비가 세워졌음. 1769년 호조 판서가 되어 균역법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였음.
    ㅇ 한석봉 : 조선 중기의 서예가.
    → 자는 경홍, 호는 석봉, 청사, 이름은 호. 중국의 서체와 서풍을 모방하던 풍조를 벗어나 독자적인 경지를 확립, 호쾌하고 강건한 서풍을 창시하였음.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계의 쌍벽을 이룸. 필적으로는 <석봉 서법>,<석봉 천자문>등이 보관되어 있고, 실제로 그가 쓴 비문이 남아 있음.
    ㅇ 김삿갓 :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 본관 안동. 본명 병연. 속칭 김삿갓. 자 성심. 호 난고. 경기 양주 출생.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이 되었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형 병하와 함께 종이던 김성수의 구원으로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 거기서 공부를 하며 성장하였다. 뒤에 사면을 받고 고향에 돌아왔으나 폐족자에 대한 천대가 심하고 벼슬길도 막혀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즐겨 큰 삿갓을 쓰고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므로 삿갓이라는 별명도 여기서 생겼는데, 전국을 방랑하면서 도처에서 즉흥시를 남겼다. 그의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고, 그런 작품에 뛰어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방랑을 계속하여 전라도 동복(전남 화순)에서 객사하였다. 작품으로<김립시집>이 있다.
    ㅇ 김정호 : 조선 말기의 지리학자.
    → 호는 고산자. 가문이 비천했으나 어려서부터 학문을 열심히 닦는 한편, 정밀한 지도를 만들 뜻을 품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30여 년 동안 노력한 끝에 순조 말년에<청구도>2첩을 완성했음. 그 후<청구도>에 불만을 느끼고 전국 각지를 실제로 가서 조사, 1861년 <대동여지도>를 완성하여 발간함. 또<여지승람>의 잘못을 고치고 보충하기 위하여 32권 15책의 <대동지지>를 썼으며, <지구도>도 만들어 냄.<대동여지도>를 손수 그려 목판으로 만들어 흥선대원군에게 바치자. 그 정밀함에 놀란 대원군은 나라의 비밀을 퍼트렸다는 죄목으로 목판 지도를 불태우고 감옥에 가둠. 심한 고문을 당한 끝에 감옥에서 숨짐.
    ㅇ 영 조 : 조선 제 21대 왕.
    →재위 1724~1776년. 자는 광숙, 호는 양성헌, 이름은 금. 숙종의 넷째 아들. 1721년(경종 1년)8월 왕세자로 책봉됨. 1724년 즉위. 가혹한 형벌을 없애거나 뜯어 고쳐 인구너 존중을 꾀함. 신문고 제도를 되살려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직접 고하게 함. 진을 설치하여 토성을 고쳐 쌓는 등 국방 대책에도 힘썼음. 인쇄술을 개량하여<퇴도언행록>,<속대전>,<국조악장>,<동국문헌비고>등 많은 서적을 발간함. <악학궤범>의 서문,<어제경세 문답>등을 친히 지어냄.
    ㅇ 정조 : 조선 제 22대 왕.
    → 호는 홍재 재위1777~1800년. 1759년 세손에 책봉되고,1762년 아버지 사도 세자가 비명에 죽자 왕통을 이음. 탕평책에 힘썼고, 남인, 북인, 서인을 고루 기용했음. 1791년 천주교를 탄압한 신해 사옥을 일으킴. 규장각을 두어 역대 서적을 보관했으며, 많은 활자를 새로 만들어 인쇄술을 발달 시켰음. 악형을 금지하고 빈민 구제법을 제정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문화적 황금 시대를 이룩하였음. 문집 <홍재전서>가 있음.
    ㅇ 정약용 : 조선의 실학자.
    → 호는 다산. 실학에 전념, 서양학문과 천주교 교리를 깊이 연구했음. 18년간 경서학에 전념, 학문의 체계를 세우고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등 많은 책을 지어냈음. 정치를 바로잡고 백성들을 구하는 데 학문의 뜻을 두었으며, 40년 동안 백성들을 위해 일했음. 저서 <정다산 전서>등이 있음.
    ㅇ 전봉준 : 조선 말기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 별명은 녹두 장군. 1894년 3월 동학교도 중심으로 부안, 정읍, 전주 등을 점령했으나, 외세에 의해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수습하였음. 일본군의 침략에 대항해 싸워 중 남부 지역과 함경도, 평안남도까지 차지하였으나, 금구 싸움에서 조직적인 일본군에 패하였음. 순창으로 도망, 재기를 꾀하다가 체포, 처형당했음.
    ㅇ 김대건 :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 어릴 적 이름은 재복, 세례명은 안드레아. 1836년 프랑스 신부 모방에게 영세를 받고, 마카오로 가서 서양학문을 배우고 9년 만에 귀국, 비밀리에 전도에 힘씀. 1846년에 프랑스 신부들에게 연락을 취하려다 체포되어, 9월 16일 스물 다섯 살로 한강 가 새남터 형장에서 죽었음. 교황청에서 1925년 시복식이 거행되었으며, 한국 전 성직단 대주교로 정해졌음. 그 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에 올랐음.
    ㅇ 황진이 : 조선 중기의 기생, 여류 시인.
    → 얼굴이 곱고 시도 잘 짓고 노래에도 뛰어나 많은 풍류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당시의 대학자이며 시인인 서경덕을 비롯해 많은 문인들과 사귀었음. 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 3절로 불리었음. <해동가요>,<청구영언>,<가곡원류>등에 시조가 실려 전해지고 있음.
    ㅇ 홍경래 : 조선 중기의 농민 반란의 지도자.
    → 1800년 양반의 서자인 우군칙을 만나 반란을 일으키기로 약속, 만주 마적단 두목 정시수와 큰 부자인 관리 이희저 등을 포섭해 가산 다복동에서 군사 훈련을 시작했음. 1811년 혹심한 퓽년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2000명 군사를 이끌고 평서 대원수라 자칭, 난을 일으켰음. 가산 군청을 습격해 군수를 죽이고, 박산, 정주 등의 8읍을 쳐부수고 평안도 일대의 세력을 잡았음. 그러나 안주 송림리에서 패하고 정주까지 후퇴, 관군과 싸우다가 싸움터에[서 죽었음. 이를 ‘홍경래의 난’이라고 하며, 조선의 대표적인 민중반항운동의 하나로 손꼽힘.
    ㅇ 김옥균 : 조선 후기의 정치가.
    → 본관 안동. 자 백온. 호 고균·고우. 시호 충달. 갑신정변을 주도하였다. 1894년 상하이에서 살해당하여 시체는 본국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음. 1894년 갑오경장으로 개화당 내각이 새로 조직되자, 총리 대신 김홍집과 법무 대신 서광범의 상소로 반영죄가 풀림. 저서로 <기하근사>,<치도약론>,<갑신일록>등이 있음.
    ㅇ 안중근 : 조선 말기의 애국 지사.
    → 의병 운동에 참가해 일본군과 싸웠음. 1909년 10월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체포되었음. 6차례의 재판에서 끝까지 항변,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했음. 글씨에 뛰어나 많은 유필을 남겼음. 옥중에서 쓴 <동양 평화론>은 당시의 현실 분석에 뛰어남.
    ㅇ 이완용 : 조선 말기의 민족 반역자.
    → 호는 일당. 1896년 외부·학부 대신, 농공상부 대신 서리 등의 직책을 맡았으나, 1901년 친일파로 변절했음. 1905년 을사조약을 지지, 서명함으로써 을사 오적의 한사람이 되었음. 1910년 8월, 한일 합방 조약을 체결, 우리나라를 완전히 일본에 넘겨줌으로써 매국의 원흉이 되었음. 그 공으로 일본정부로부터 백작 칭호를 받고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으며, 1920년 후작을 받고, 죽을 때까지 일본에 충성을 다하였음.
    ㅇ 윤동주 : 일제 말 암흑기의 저항 문학의 대표적 시인.
    → 1943년 독립 운동 관련 혐의로 체포되어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죽었음. 1955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이 발간됨. 작품에<자화상>,<무서운 시간>,<별 헤는 밤>등이 있음.
    ㅇ 지석영 : 조선의 의학자, 국어학자.
    → 1879년 우리나라 최초로 40여 명에게 종두를 실시해 성공함.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우두 종법을 실시,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많은 공을 세움. 1909년 한자를 국어로 풀이한<자전석요>를 간행, 한자 해석의 새로운 면을 개척함. 저서로 <우두신설>이 있음.
    ㅇ 손병희 :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 호 의암. 초명 응구. 후명 규동. 충북 청주 출생. 삼일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 동학 난이 일어나자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10만 동학군을 이끌고 관군과 싸웠다. 그 뒤, 일본을 거쳐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1897년에는 천도교 제3대 교주가 되었다. 1919년 기독교, 불교 대표들과 삼일운동을 일으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수감 중에 병 보석으로 풀려 나와 요양을 하다가 병사하였다.
    ㅇ 유관순 : 3.1 운동 때의 순국 소녀.
    → 3.1 운동 때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하였음. 그 해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수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행렬을 지위,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으며, 부모는 살해되었음. 감옥 안에서 계속 독립 만세를 부르며 일제에 항거, 갖은 형벌 끝에 옥사했음.
    ㅇ 안창호 : 독립운동가, 교육자.
    → 호는 도산. 1897년 독립 협회 가입.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남녀 공학이 점진 학교를 세웠음. 1907년 신민회를 조직,<대한 매일 신보>를 기관지로 발행했음. 평양에 대성 학교, 정주에 오산 학교를 설립했음. 청년 학우회를 조직, 민족의 지도적 인재 양성에 힘썼음. 1912년 미국에서 대한인 국민 총회를 조직, <신한 민보>를 창간함. 이듬해에는 흥사단을 조직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독립 정신을 고취시켰음. 1919년 3.1 운동 직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 정부의 내무 총장 등을 지내며<독립신문>을 창간했음.1924년 난징에 동명 학원을 설치하였음. 1937년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병으로 풀려 나와 치료 중 사망하였음. 일상을 정직과 성실로써 나라와 겨레를 위해 바쳤음 저서로 <안도산 전집>등이 있음.
    ㅇ 방정환 :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 호 소파, 서울 출생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보성전문을 마친 후 도요대학에서 철학과를 수학했다.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 청년구락부, 소년운동협의회 등을 조직하고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어린이>(1923)의 창간을 비롯<신청년><신여성> <학생> 등의 잡지를 편집 ·발간했다. 한편 동화대회, 소년문제 강연회, 아동예술 강습회, 소년지도자대회 등을 주재하여 계몽운동과 아동문화운동에 앞장섰다. 창작동화뿐만 아니라 많은 번역·번안 동화와 수필과 평론을 통해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을 하였다. 1940년<소파전집>을 박문출판사가 간행하고, 광복 후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소파 동화독본> 전5권을 펴냈다. 한편 새싹회에서는 '소파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수여하고 있다.
    ㅇ 이수일과 심순애 :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 의 주인공
    → 물질적 가치를 뛰어넘는 사랑의 대표주자로 인식
    ㅇ 김두한 : 한국의 정치가
    → 호 의송. 서울 출생. 3·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들이다. 서울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면서 주먹왕으로 군림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광복 후 한독당 재정위원·대한민주청년연맹 부위원장·대한노조총연합회 최고위원 등을 지냈고, 반탁운동과 노동운동에 종사하였다. 1954년 3대 민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고, 1965년 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선거소송, 한독당 내란음모사건 및 국회발언대에서 정일권 총리와 장기영 부총리 등에게 미리 준비한 오물을 투척한, 이른바 국회오물투척사건 등 독특한 정치생활을 하고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72년 고혈압으로 사망하였다.
    ㅇ 이상 : 시인, 소설가.
    → 본명은 김해경, 이상은 필명. 1931년 시 <이상한 가역 반응>,<파편의 경치>등을 잡지<조선과 건축>에 발표했으며, 이듬해 <조선>에 시 <건축 무한 육면각체>를 처음으로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음. 1936년 <조광>
    ㅇ 이중섭 : 서양화가.
    → 호 대향. 평남 평양 출생. 오산고보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부산·제주·통영 등지를 전전하며 재료가 없어 담뱃갑 은박지를 화폭 대신 쓰기도 했다. 1952년 부인이 생활고로 두 아들과 함께 도일하자, 부두노동을 하다가 정부의 환도와 함께 상경하여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단 한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그후 일본에 보낸 처자에 대한 그리움과, 생활고가 겹쳐 정신분열병증세를 나타내기 시작, 1956년 적십자병원에서 간염으로 죽었다. 작풍은 포비슴(야수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향토적이며 개성적인 것으로서 한국 서구근대화의 화풍을 도입하는 데 공헌했다. 담뱃갑 은박지에 송곳으로 긁어서 그린 선화는 표현의 새로운 영역의 탐구로 평가된다. 작품으로 <소>(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소>(홍익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2008.06.27 19:15 | 신고
  • eksrnsehdauddhkddfgsddjojiohu,m.,/mzkchdkhuklm,dsabnjm/mvllclw;들어가보면암

    2011.04.11 09:20 | 신고
  • 저는 2절까지만 알고 있지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1절:아름다운 이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터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고구려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알에서 나온 혁거세,

    만주벌판달려라, 광개토대왕 신라장군 이사부.

    백결 선생 떡방아.삼천궁녀 의자왕,

    황산벌에 계백 맞서 싸운 관창.역사는 흐른다~

     

    2절:말목자른 김유신 통일 문무왕 원효대사 해골물 해초 천축국

    바다의 왕자 장보고 발해대조영 귀주대첩 강감찬 서희 거란족

    무단정치 정중부 화포 최무선,죽림칠현 김부식

    지눌국사 조계정 의천 천태종.대마도 정벌 이종무

    일편단심 정몽주 목화씨는 문익점

    해동공자 최충 삼국유사 일연 역사는 흐른다~

     

    3절: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황희 정승 맹사성 과학 장영실 신숙주와 한명회 역사는 안다
    십만 양병 이율곡 주리 이퇴계 신사임당 오죽헌
    잘 싸운다 곽재우 조헌 김시민 나라 구한 이순신
    태정태세문단세 사육신과 생육신
    몸바쳐서 논개 행주치마 권율 역사는 흐른다

    4절:.번쩍번쩍 홍길동 의적 임꺽정 대쪽같은 삼학사 어사 박문수
    삼년 공부 한석봉 단원 풍속도 방랑 시인 김삿갓 지도 김정호
    영조대왕 신문고 정조 규장각 목민심서 정약용
    녹두 장군 전봉준 순교 김대건 서화가무 황진이
    못살겠다 홍경래 삼일천하 김옥균
    안중근은 애국 이완용은 매국 역사는 흐른다

    마지막:별 헤는 밤 윤동주 종두 지석영 삼십삼인 손병희
    만세 만세 유관순 도산 안창호 어린이날 방정환
    이수일과 심순애 장군의 아들 김두한
    날자꾸나 이상 황소 그림 중섭 역사는 흐른다

     

    2011.05.31 22:08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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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절 주인없는 이땅에 금수강산에 단군할아버지가 땡잡으시고 인생한판뜻으로 나라세우니 대대손손 땡잡은 인물이많아 고구려부신 동명왕 배째온돌방 홈그라운드 혁거세 만주벌판 마스터 광개토대왕 독도내땅 이사부  백결선생 백혈병 삼천캐시의자왕  벌마스터 게백 맟서싸운 관창 역사는망했다.

    죄송 1절밖에모름 이외에 알고싶으면 검색하셈 이거 글쓴거 배껴씀  힘들어ㅠㅠ

     

    2011.10.27 07:48 | 신고
  • 안녕하세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업적

     

    단군

    - 우리 민족의 시조, 고조선의 첫 임금. 천제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서울을 정하고 단군 조선을 세웠다. 단군에 관한 '삼국 유사'의 기록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의 황제인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을 구원하고자 원하므로, 환인은 천부인(하늘 나라 왕의 표지)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도록 허락하였다. 환웅은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에 내려왔는데, 이 분이 환웅 천왕이다. 환웅이 360여 가지 일을 맡아 다스릴 때 곰과 범 한마리가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 환웅에게 빌었다.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20쪽씩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먹으며 굴 속에 있던 중 범은 참지 못하고 도중에 뛰쳐나갔으나, 곰은 잘 참아 내어 37일 만에 여자로 변하였다. 이 웅녀가 아기 갖기를 원하자, 환웅이 잠시 변하여 웅녀와 혼인함으로써 단군을 낳게 되었다고 한다. 단군은 인간으로서 처음 왕이 되어 1500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리다가 기자에게 임금의 자리를 물려 주고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동명왕

    -고구려의 시조(재위 전37~전19). 성은 고, 이름은 주몽.추모.상해.도모. 동부여왕 해부루가 죽고, 금와가 즉위하였는데, 어느날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하백의 딸 유화를 만났다. 유화가 말하기를,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자기를 꾀어 내었기 때문에 부모에게서 쫓겨났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금와왕은 유화를 데려다 궁중에 가두었다. 그 유화가 햇볕을 받고 임신하여 알을 낳았는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 사내아이가 곧 주몽이다. 주몽은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씩씩하여 7세가 되자 활도 잘 쏘았다. 그러자, 금와왕의 일곱 아들과 신하들은 시기하여 주몽을 죽이려 하였다. 주몽은 유화 부인의 말에 좋아서 졸본부여로 내려가 나라를 세우니, 이 나라가 곧 고구려이다. 기원전 36년에 비류국 송양왕의 항복을 받은 다음, 기원전 34년에 성곽을 쌓고 궁궐을 세웠다. 이어서 해인국을 정벌하고 북옥저를 멸망시켰다.

    온조왕

    -백제의 시조(재위 전 18~28). 고구려 시조 동명 성왕의 세째 아들. 동명 성왕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 유리(큰왕비의 아들)가 내려와 고구려의 태자가 되자, 형 비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려 하였으나, 도읍 문제로 의견이 엇갈렸다. 형 비류는 미추홀(지금의 인천?, 충청 남도 아산군 인주?)로 가고, 온조는 하남의 위례성(지금의 경기도 광주?, 충청 남도 천원군 입장?)에 도읍을 정하고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얼마 뒤 비류가 죽고 그 백성들이 위례성에 모여들자 나라 이름을 백제로 고쳤다. 기원전 5년 남한산으로 도읍을 옮기고, 9년 마한을 멸망시켰으며, 10년에는 아들 다루를 태자로 세웠다.

    박혁거세

    -신라의 시조. 왕호는 거서간. 전설에 의하면, 신라 6부의 하나인 사량부의 소벌공이 어느 날 숲속에서 말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다가갔더니, 그 자리에 커다란 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알 속에서 어린 아이가 나왔다고 한다. 그 아이가 10여 세가 되자 기골이 빼어나고 총명하여, 의논한 뒤에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기원전 57년 13세에 왕위에 올라 17세 때 왕비를 맞고, 왕비와 함께 전국을 돌면서 농사.양잠을 장려했다. 국호를 서라벌, 서울을 금성이라 정하고 궁성을 쌓아 국가의 기초를 세웠다. 사람들은 박과 같이 큰 알에서 나왔다고 하여, 박(박)이라는 성을 붙였고, 박이 또 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에서 혁거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광개토대왕

    고구려 제 19대 왕(재위 391~412). 고국양왕의 태자. 이름은 담덕. 12세 때인 386년 태자로 책봉되고 아버지가 일찍 죽자 17세 때에 왕위에 올랐다. 391년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영락'이라 함으로써 중국과 대등함을 보였다. 392년에는 백제 북쪽의 석현(지금의 재령 부근) 등 10여 개의 성을 함락시켜 한강 북쪽의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다. 396년에는 친히 백제를 정벌하여 58성을 무너뜨리고 왕의 동생과 그의 대신 10여 명을 볼모로 잡아왔다. 이리하여, 한강 이북과 예성강 동쪽 땅을 완전히 차지하였다. 400년에는 신라 내물왕의 요청으로 5만 명의 원군을 보내어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으며, 연나라의 모용희를 반격하여 신성.남소 등 두성 700여리의 땅을 갖게 되었다. 405~406년에 모용의 두 번의 침략을 받았으나 요동성. 목저성에서 모두 물리쳤다. 410년 (광개토 대왕 20)에는 동부여를 정복하고, 이어서 북부여를 무릎꿇게 하였다. 그리하여, 랴오허강 동쪽으로부터 중국 동북부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차지 하였다. 작은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그는, 아깝게도 39세로 죽었다. 왕이 된 후 하루도 궁궐에서 편히 쉬지 못하고 전쟁터를 달려 배달 민족의 영웅으로서 높이 존경받고 있다. 그의 능은 자세하지 않으나, 414년에 장수왕이 만주 봉천 지안현 퉁커우에 세운 광개토 대왕의 능비에 그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묘호는 국강상 광개토경 평안호태왕이다.
     
    이사부 - 신라시대 장군. 541년(진흥왕 2) 병부(兵部)의 책임자이자 당시에는 상대등(上大等)·시중(侍中)을 겸할 수 있던 병부령(兵部令)이 되어 562년까지 실권을 장악하였다. 545년에는 국사 편찬을 제안하여 거칠부(居柒夫) 등이 《국사》를 편찬하는 계기를 이루었다.
     
    백결 선생 -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다. 몹시 가난하여 어찌나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던지 세상에서는 “현순백결(懸百結:가난하여 입은 옷이 갈가리 찢어짐)”의 문자를 빌려 백결선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백결선생은 한점 흔들림이 없이 오직 거문고만을 사랑하여 모든 희로애락을 거문고로 풀었다. 어느 해 세모(歲暮)에 집집마다 울려나오는 떡방아 소리를 듣고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過歲)를 합니까”라고 근심하자 거문고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하였는데, 그 곡조가 후세에 전하여 《대악(樂)》이란 이름이 붙었다.  


    의자왕 -
    의자(義慈)는 휘(諱)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다. 무왕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 642년 친히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城) 등 40여 성을 빼앗았고, 이어 윤충(允忠)으로 대야성(大耶城:경남 합천)을 함락시켜 성주인 품석(品釋)을 죽이는 등 신라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듬해에도 당항성(黨項城:남양)을 빼앗아 신라가 당(唐)나라로 가는 입조(入朝)의 길을 막는 등 국위의 만회에 힘썼다.
     
    계백 -백제 말기의 장군. 일찍이 사로(仕路)에 나가 벼슬이 달솔(達率:제2품)에 이르렀다. 당시 신라가 한강 유역을 강점함으로써 그때까지의 나제동맹(羅濟同盟)이 결렬되자 백제는 고구려 ·일본 등과 친교를 맺고 신라에 대항하였다.
     
    관창 -신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때의 화랑(花郞). 신라의 좌장군(左將軍) 품일(品日)의 아들이다. 어려서 화랑이 되어 널리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수련을 쌓았으며, 15세 때 이미 말 타고 활 쏘는 데 능하여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에게 천거되었다.
     
    김유신 -신라 시대의 장군. 김 수로왕의 12대손으로, 15세 때 화랑이 되었다. 629년 (진평왕 51) 아버지와 함께 고구려의 낭비성 공격에 참가했을 때, 홀로 적진으로 돌진하여 적장의 목을 베어 옴으로써 신라군의 사기를 더 높여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644년 상장군이 되어서 백제에 빼앗겼던 일곱 성을 되찾았으며, 돌아올 때 백제군이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가 크게 무찔렀다. 647년 왕족인 신하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반란군을 토벌하였으며, 진덕 여왕이 왕위에 있는 동안에도 백제의 공격을 잘 막아 냈다. 660년(무열왕 7) 상대등이 되고, 당나라의 소정방이 이끄는 군사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668년(문무왕 8) 나.당 연합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서울인 금성에 남고, 김인문과 김흠순 등의 장군을 보내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세상을 떠난 뒤에 흥무 대왕의 칭호를 올리었다.
     
    문무왕 - 신라의 제30대 왕(재위 661∼681). 성 김씨. 이름 법민(法敏). 태종무열왕 ·문명왕후(文明王后)의 맏아들, 비(妃)는 파진찬(波珍飡) 선품(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 외모가 뛰어나고 머리가 총명하며, 지략(智略)이 많았다
     
    원효대사 - 신라 때의 승려. 속성 설(薛). 법명 원효. 아명 서당(誓幢) ·신당(新幢). 압량(押梁:慶山郡) 출생. 설총(薛聰)의 아버지이다. 648년(진덕여왕2) 황룡사(皇龍寺)에서 승려가 되어 수도에 정진하였다
     
    혜초 -신라의 고승. 723년(성덕왕 22) 당나라 광저우[廣州]에 가서 인도의 승려 금강지(金剛智)의 제자가 된 뒤, 그의 권유로 나신국(裸身國)을 경유하여 인도 동해안에 도착, 불교 성적(聖跡)을 순례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감
     
    장보고 -신라시대의 장군. 일명 궁복.궁파. 일찌기 당나라 서주에 건너가 무령군 소장이 되었으나, 신라에서 잡혀간 노비의 비참한 생활에 분개하여 사퇴하고 귀국하였다. 해적들의 인신 매매를 뿌리뽑기 위해 왕의 허락을 얻어 1만 명의 군사로 바닷길의 요충지인 청해(지금의 완도)에 진을 설치하고 청해진 대사가 되어 군사를 훈련하고, 해적을 소탕하였다. 837(화강왕 2) 왕위 계승 다툼에서 밀려난 우징이 청해진에 오자, 이듬해 그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민애왕을 죽이고 우왕을 왕위에 오르게 한 뒤 감의군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후, 시기하는 신하들이 보낸 자객 염장에게 죽음을 당했다.
     
    대조영 -발해의 시조. 왕호 고왕(재위 699~719). 668년(고구려 보장왕 27) 고구려가 망하자 고구려 유민으로 라오허강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당나라의 억압에 대항하여 천문령에서 당나라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말갈족을 합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699년 둥마오산(지금의 지린성 근방)에 성을 쌓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진', 연호를 '천통'이라 정하고 왕이 되었다. 713년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회복하고 국호를 발해라 고쳤다. 그 때 발해의 영토는 5천 리(동은 동해, 서는 거란, 남은 신라)에 이르고 10만여호의 집과 수만 군대를 거느린 대국을 이룩했다.

     
    강감찬 -고려시대의 명장. 본관 금주(衿州: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 은천(殷川).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서희 -고려의 외교가 ·문신. 본관 이천(利川). 자 염윤(廉允). 시호 장위(章威). 960년(광종 11) 문과에 급제, 광평원외랑(廣評員外郞)에 이어 내의시랑(內議侍郞)이 되었다
     
    정중부 -고려시대의 무신. 본관 해주(海州). 인종 때 견룡대정(牽龍隊正)이 되고, 의종 초 교위(校尉)를 거쳐 상장군(上將軍)을 지냈다.
     
    최무선 -고려 말, 조선 초의 발명가. 본관은 영주(永州:永川)이다. 왜구(倭寇)가 창궐하자 화약제조법의 필요성을 절감, 원나라 이원(李元)에게서 그 제조법을 배웠다

     

    죽림칠현 -고려의 문인..도가풍으로 유유자적을 즐기던 문인들. 가전체 소설인 <공방전>을 쓴 임춘(林椿), 시와 서예에 능했던 오세재(吳世才), 당대의 명유(名儒)인 이인로(李仁老), 조통(趙通), 황보항(皇甫抗), 이담지(李湛之), 함순(咸淳). 중국 죽림칠현과 구별해서 강좌칠현(江左七賢), 해좌칠현(海左七賢)이라고도 하였다. 우리나라 청담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청담이란 대충 중국의 원조 죽림칠현들처럼 현실에서 벗어나 고고하게 살아가는 문인들이 나누던 철학적인 담론.
      
    김부식 -고려시대의 문신 ·학자. 본관 경주. 자 입지(立之). 호 뇌천(雷川). 시호 문열(文烈). 신라 왕실의 후예로서 경주의 주장(州長)인 위영(魏英)의 증손자.
    지눌-고려의 승려. 조계종(曹溪宗) 개조(開祖). 속성 정(鄭). 호 목우자(牧牛子). 시호 불일보조(佛日普照). 서흥(瑞興) 출생
     
    지눌 -고려 시대의 승려. 본성은 정, 호 목우자, 시호 불일보조. 부모의 뜻에 따라 8세 때 중이 되었다. 1182년 승과에 급제했으나, 수도에만 힘쓰기로 하였다. 창평 청원사에 들어가 '단경'을 읽고, 중생을 제도하려면 먼저 자신이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깨달았다. 지리산 상무주암에 들어가 3년간 참선하여 선의 참뜻을 깨쳤다. 송광산 길상사로 가서, 중생을 떠나 따로 뿌처가 있음이 아니라, 중생을 위하여 일하는 데에 부처가 있다고 가르쳤다. 선종(참선을 중시한 불교의 한 파)과 교종(불교의 교리를 중시한 불교의 한 파)을 하나로 합치려고 노력하여 선종 우선의 조계종을 세웠다. 죽은 뒤 국사의 관위가 주어졌다. 저서로 '수심결','진심직설','간화결의론','법어' 등이 있다.


    의천 -고려시대의 승려. 천태종(天台宗)의 개조(開祖). 자 의천. 시호 대각(大覺).
     
    이종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의 무신. 시호 앵후. 본관 장수. 1381년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서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정용호군이 되었다. 1397년(태조 6) 옹진 만호로 있을 때 왜구가 다시 쳐들어와 성을 포위하자, 이를 격퇴하여 첨절제사에 올랐다. 1400년(정종 2) 상장군으로 있을 때 2가 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여, 좌명 공신 4등으로 통원군에 봉해졌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서 1419년(세종 1) 삼군 도체 찰사가 되어, 전함 227척을 거느리고 쓰시마섬을 정복하였다.

      
    정몽주 -고려 말기의 문신·학자. 본관 연일(延日). 자 달가(達可). 호 포은(圃隱). 초명 몽란(夢蘭)·몽룡(夢龍). 시호 문충(文忠). 영천(永川) 출생.
     
    문익점 -고려시대의 학자 ·문신. 본관 남평(南平). 자 일신(日新). 호 삼우당(三憂堂). 시호 충선(忠宣). 초명 익첨(益瞻). 강성현(江城縣: 경남 산청) 출생.
     
    최충 -고려 초기의 문신.해자. 자 호연. 호 성재, 시호 문헌. 본관 해주.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1013년 국사 수찬관이 되고, 태조에서 목종까지의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037년(정종 3) '현종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047년(문종 1) 문하시중이 되어 법판들에게 율령을 가르치고 형법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관리 임명에는 실력을 중히여겼으며, 직무에 성실을 다하여 공신의 호를 받았다. 72세 때 벼슬에서 물러나, 사립 학교와 같은 사숙을 열고 학자들을 기르며 여생을 보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해동 공자'라고 일컬어졌는데, 그의 제자들을 문헌공도라고 불렀다.


    일연 - 고려시대의 승려 ·학자. 속성 김(金). 이름 견명(見明). 자 회연(晦然)·일연(一然). 호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 보각(普覺). 탑호 정조(靜照). 경상북도 경산(慶山) 출생.

    최영 -고려 말기의 무신. 시호 무민. 본관 창원.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아버지가 죽으면서,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 왕의 호위병으로 뽑힌 뒤 39세 때 대장군이 되어 1358년(공민왕 7) 오예포에 침입한 왜선 4백여 척을 무찔렀다. 이듬해 평양에 침입한 홍건적 4만여 명을 물리치고, 1361년 안우와 함께 개성을 점령한 홍건적을 물리쳐 1등 공신이 되었다. 1388년(폐왕 우 14) 수문하시중이 되었을 때, 명나라가 철령 이북의 땅을 소유하겠다고 통고해 오자, 랴오둥 정벌을 나섰다. 그러나, 이 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 후 이성계에게 잡혀 누명을 쓰고 고향으로 귀양갔다가, 그 해 12월에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죽음과 함께 고려 왕조의 운명도 기울어지고 말았다.
     
    황희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처음 이름 수로, 자 구부, 호 방촌, 시호 익성. 본관 장수. 개성 출생.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숨어 살았으나, 이 성계의 간청으로 조선의 벼슬에 올랐다. 사헌 감찰, 경기도 도사, 이조 정랑 등을 거쳐 1416년 (태종 16) 이조 판서가 되었다. 1418년 충녕 대군(세종)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에 반대하다가 귀양갔으나, 1422년(세종 4) 풀려나와 좌참찬이 되었다. 그 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31년(세종 13) 영의정이 되어 18년 동안이나 재상으로 있으면서, 농사개량.예법 등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세종이 가장 신임하는 재상으로 명망이 높았고,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하여 만인의 존경을 받았으며, 숱한 일화를 남겼다. 시와 문장에도 뛰어나 문집인 '방촌집'을 남겼다. 경기도 파주의 방촌 영당, 경북 상주의 옥동 서원 등에서 제사지낸다.

    맹사성 - 고려 말 조선 초의 재상. 본관 신창(新昌). 자 자명(自明). 호 고불(古佛) ·동포(東浦). 시호 문정(文貞). 온양(溫陽) 출생

    장영실 -조선 시대의 과학자. 본관 아산. 원래 부산 동래에서 종살이를 하였는데, 매사를 자세히 관찰하고, 그 원리를 캐내는 데 열심이었다. 그리하여, 광석을 제련하거나, 무기를 만들고 고치는 일, 성을 쌓는 일, 농기구를 개량하는 일 등에 뛰어난 솜씨를 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숨은 인재를 찾던 세종은 장영실의 소문을 듣고, 1423년(세종 5) 그를 불러 상의원 별좌에 임명하고, 종의 신분에서 풀어주었다. 1432년 중추원사 이천을 도와 천문 관측에 필요한 간의대를 만드는 사업을 벌였다. 그리하여, 1437년 대간의.소간의.현주일귀.정남일귀(해시계) 등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세종은 이 기구들을 경복궁 안의 간의대에 보관시켰다. 1434년(세종 16) 자격루를 완성하고, 4년 후 흠경각의 자동 물시계인 옥루기륜을 만들었으며, 세종 23년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수표를 발명하여 하천의 범람을 미리 아는 등 과학 발전에 공이 컸다. '발명의 날'은 장열실의 측우기 발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이다. 세종은 그의 공을 기리어 상호군의 벼슬을 내렸으나, 1442년 그가 감독 제작한 왕의 가마가 부서진 책임을 지고 벼슬에서 쫓겨났다.

    신숙주 -조선 초기의 학자.문신. 자 범옹, 호 보한재.희현당, 시호 문충. 본관 고령. 1439년 문과에 급제하고 1443년(세종 25)에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서 시로써 이름을 떨쳤다. 귀로에 쓰시마섬에 들러 계해조약을 맺었다. 그 뒤, 랴오둥에 귀양와 있던 명나라 학자 황찬에게 음운에 관해 묻고, 성 삼문과 함께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힘썼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1등이 되고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성삼문 등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자, 단종과 금성 대군을 죽이는 일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공으로 좌의정이 되고 1460년(세종 6)에는 북방에 침입한 야만족을 정벌하여 영의정으로 올랐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학식으로 6대의 왕을 모시며, '국조오례의'.'동국정운','국조보감'.'세조 실록' 등을 편찬하는 데 참가하였다. 문화 사업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나,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는 일에 협력한 탓으로 비난 받았다. 저서로 '보한재집'.'북정록' 등이 있다.

    한명회 -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 청주(淸州). 자 자준(子濬). 호 구정(鷗亭) ·사우당(四友堂). 시호 충성(忠成). 장순왕후(章順王后:睿宗妃) ·공혜왕후(恭惠王后:成宗妃)의 아버지

    이율곡 -조선 중기의 학자·정치가. 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이퇴계 -조선 중기의 학자 ·문신. 본관 진보(眞寶). 초명 서홍(瑞鴻). 자 경호(景浩). 초자 계호(季浩). 호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시호 문순(文純). 경북 예안(禮安) 출생

    신사임당 -조선중기의 여류 서화가(書畵家). 본관은 평산(平山)이고, 호는 사임당(師任堂:思任堂:師妊堂)·시임당(媤妊堂)·임사재(任師齋)이다.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이며, 율곡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곽재우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 현풍(玄風). 자 계수(季綏). 호 망우당(忘憂堂). 시호 충익(忠翼). 의령(宜寧) 출생.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거슬린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조헌 -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 백천(白川). 자 여식(汝式). 호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시호 문열(文烈). 이이(李珥)·성혼(成渾)의 문하생

    김시민 -조선 중기의 무신. 자 면오, 시호 충무. 본관 안동. 1578년(선조11)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 판관으로 있을 때, 군사에 관한 일을 병조 판서에게 건의하였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 자리에서 물러나싼. 1591년(선조24)진주 판관으로 기용되었으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죽은 목사를 대신하여 성을 수리하고 무기를 갖추었는데, 그 공로로 목사가 되었다. 사천.고성.진해 등지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경상 우도 병마 절도사에 올라 금산에서 다시 적을 격파하였다. 그 해 10월 왜적의 대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3800명의 군사로 7일 동안 성을 굳게 지키며 싸워 왜적 3만여 명의 사상자를 냄으로써 큰 승리를 거두었다.(진주대첩) 이를 싸움에서 그는 용전 끝에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1604년 선무 공신에 봉해지고 후에 영의정.상락부원군으로 관위를 높여 주었다.


    이순신 -조선 중기의 명장. 자 여해, 시호 충무, 본관 덕수. 서울에서 태어나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 함경도 동구비보권관이 되었다. 이어서 훈련원 봉사, 발포 수군 만호 등을 거쳐 1591년 유성룡 등의 천거로 전라 좌도 수군 절도사에 올라, 왜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군비를 갖추기에 힘썼다. 이듬해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1차로 옥포 앞바다에서 적선 30여 척을 무찌르고, 이어서 제 2차로 사천에서 스스로 만든 거북선을 이용하여 적선 13척을 불태웠으며, 당항포에서 100여 척을 각각 쳐부수거나 불태우는 등 승리를 거두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그 해 7월 제3차로 한산도에서 적선 70여척을 무찔러 역사상 유명한 한산 대첩의 큰 공을 세웠다. 이어서 정헌대부에 알랐고, 다시 안골포에서 42척의 적선을 침몰시켰다. 9월에는 적의 본거지였던 부산에 쳐들어가 적선 100여 척을 쳐부수었고, 1593년(선조 26) 다시 부산과 웅천테서 적의 수군을 크게 무찔러 남해안 일대의 적군을 소탕하고 한산도로 진을 옮겼으며, 최초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되었다. 그 뒤 명나라의 원군이 들어오자 죽도로 진을 옮겨 서해안으로 진출하려는 적을 막았다. 그리고 전쟁이 좀 쉬는 듯 하자 훈련을 강화하고 군비 확충에 힘썼다. 1597년 반대파 간신들의 모함을 받고 서울에 압송되어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정탁의 변호로 면하고 권율의 부하 장군이 되었다. 같은 해 정유재란 때, 삼도수군 통제사가 되어 있던 원균이 참패하자,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로 임명되어, 남은 배 12척으로 133척의 적선과 대결하여 31척을 쳐부수었다. 1598년 11월 9일, 고금도로 진을 옮기고 도망가는 적선을 노량 앞바다에서 무찌르던 중 왼쪽 가슴에 유탄을 맞고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글에도 뛰어나 '난중 일기' 등의 저서와 여러편의 시조.한시 등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란 시조는, 그의 애국심을 잘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투철했던 애국 정신과 뛰어난 전술로 나라를 지켜 준 그는, 죽은 뒤 영의정으로 관위가 높여지고,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사적 제 112호인 아산 현충사 등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제사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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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조선을 건국함.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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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 -조선 제2대 왕(재위 139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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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종 -조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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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조선 제4대 왕(재위 1418∼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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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종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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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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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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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신 -단종의 복위(復位)를 꾀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악형(惡刑)에도 굴하지 않고 순사(殉死)한 조선 전기의 6총신->[이개,하위지,유성원,유응부,성삼문,박팽년]

    생육신 -조선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탈취하자 세상에 뜻이 없어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사람.->[이맹전.조여.원호.김시습.성담수.남효온]

    논개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성 주(朱). 전북 장수(長水) 출생. 진주병사(晋州兵使) 최경회(崔慶會)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

    권율 -조선 중기의 명장. 본관 안동. 자 언신(彦愼). 호 만취당(晩翠堂) ·모악(暮嶽). 시호 충장(忠莊).

    홍길동 -서자로 태어나 온갓 무술과 도술을 익혀 약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훗날 율도국을 세우고 나중에 왕이 되는 '홍길동전' 의 주인공

    임꺽정 -조선시대의 의적(義賊). 일명 거정(巨正). 양주(楊州)의 백정(白丁)이었으나 정치의 혼란과 관리의 부패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1559년(명종 14) 불평분자들을 규합,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창고를 털어 곡식을 빈민에게 나누어 주고 관아를 습격, 관원을 살해했다.

    삼학사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청(淸)나라와의 화의를 반대한 세 학사. 홍익한(洪翼漢) ·윤집(尹集) ·오달제(吳達濟) 등을 말한다.
     
    박문수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 고령(高靈). 자 성보(成甫). 호 기은(耆隱). 시호 충헌(忠憲)
     
    한석봉 -조선 중기의 서예가. 본관 삼화(三和). 자 경홍(景洪). 호 석봉(石峯) ·청사(淸沙). 개성 출생. 왕희지(王羲之) ·안진경(顔眞卿)의 필법을 익혀 해(楷) ·행(行) ·초(草)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단원 -김홍도. 조선 말기의 화가. 안견.장승업과 함께 조선 시대 3대 화가의 한 사람이며,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풍속화가이다.

     

    김삿갓 -조선시대의 방랑시인. 본관 안동(安東). 본명 병연(炳淵). 속칭 김삿갓. 자 성심(性深). 호 난고(蘭皐). 경기 양주 출생.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폐족(廢族)이 되었다.
     
    김정호 -조선 말기의 지리학자. 자 백원, 호 고산자. 본관 청도.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서울로 이사하여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 정확한 지도를 만들어 보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는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지도마저 정확하지 못함을 보고, 실제로 여러 지방을 다니며 지도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전국을 30여 년간 두루 답사한 끝에 1834년(순조 34) '청구도' 2첩을 완성하였으나 만족하지 않고, 전국을 다시 답사하여 1861년(철종 12) '대동여지도'를 다시 간행하였고, 여러 지방의 연혁.풍속.인물.산수.거리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대동지지' 15책을 간행하엿다. '대동여지도'는 손수 그리고 띵판을 새긴 것으로, 그 한 벌을 흥선 대원군에게 바쳤는데, 이것을 본 대원군은 나라의 기밀을 누설하였다는 죄명을 씌워 그를 옥에 가두고, 목각판 지도를 압수하여 태워버렸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감옥에서 숨졌다.
     
    영조 -조선의 제21대 왕(재위 1724~1776). 휘(諱) 금(昑). 자 광숙(光叔). 숙종이 양성(養性)이라는 헌호(軒號)를 내렸다.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 1699년(숙종 25) 6세 때 연잉군(延 燥 君)에 봉해지고, 1721년에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정조 -조선의 제 22대 왕(재위 1777~1800). 이름 성, 자 형운, 호 홍재. 아버지는 장헌 세자, 어머니는 혜경궁 홍씨. 1759년(영조 35)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762년 아버지 장헌 세자가 비참하게 죽은 뒤, 1775년부터 할아버지인 영조를 대신해서 정치를 보살피다가 이듬해 영조가 죽자 왕위에 올랐다. 영조의 뜻을 이어받아 당파 싸움을 조정하고 뿌리뽑기 위하여 애썼다. 즉, 탕평책을 써서 인재를 고루 뽑아 썼다. 규장각을 세워 역대의 서적을 보관하고 임진자.정유자.한구자.생생자 등의 활자를 새로 만들어 인쇄술의 발달을 꾀하고, 서적 편찬에도 힘써, '국조보감'.'문원보불'.'규장전운'.'오륜행실' 등으르 간행하였으며, 자신의 문집 '홍재전서'도 완성하였다.

    정약용 -조선 후기의 학자 ·문신.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 ·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菴) ·자하도인(紫霞道人) ·탁옹( 襲 翁) ·태수(苔 戒 ) ·문암일인(門巖逸人) ·철마산초(鐵馬山樵).

    전봉준 -조선 후기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의 지도자. 초명 명숙(明叔), 별명 녹두장군(綠豆將軍). 전라북도 태인(泰仁) 출생. 아버지가 민란의 주모자로 처형된 후부터 사회개혁에 대한 뜻을 품게 되었다

    김대건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순교자. 성인. 본관 김해. 세례명 안드레아. 아명(兒名) 재복(再福)·보명(譜名)·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군 우강면(牛江面) 출생. 증조부 진후(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1814년 순교함

    황진이 -조선 중기의 여류 시인. 기생. 진랑이라는 이름도 가졌고, 기생으로서의 이름은 명월이었다. 개성 출생. 중종 때 진사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 공부를 하였는데, 시와 문장이 모두 뛰어났다. 가야금.거문고 등 악기도 잘 다루었고, 얼굴이 예쁜 것으로 더욱 유명하였다. 15세 무렵, 마을의 어떤 총각이 자기를 사모하다가 병들어 죽자, 충격을 받았음인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생이 되었다. 그 후 이름만 문인.학자들과 사귀며 뛰어난 글재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의 대학자 서경덕을 자신의 재주와 미모로 유혹하려다 실패하고는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청산리 벽계수야.','동짓달 기나긴 밤에...'등의 시조와 많은 한시를 남겼는데, 황진이와 서경덕, 그리고 박연 폭포를 아울러 '송도 삼절'이라 불리었다.

     
    홍경래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일어난 홍경래난의 최고지도자. 출신 지역은 평안도 용강군 다미동(多美洞).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봉기 당시 42∼43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김옥균 -조선 후기의 정치가. 본관 안동(安東). 자 백온(伯溫). 호 고균(古筠) ·고우(古愚). 시호 충달(忠達).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주도하였다

    안중근 -한말의 독립운동가. 본관 순흥(順興)이며, 아명 안응칠(安應七)이다. 황해도 해주(海州)에서 출생했다. 한학(漢學)을 수학했으나 오히려 무술에 더 열중하였다

    이완용 -한말의 정치가. 본관 우봉(牛峰). 자 경덕(敬德). 호 일당(一堂). 1882년(고종 1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서(注書) ·규장각대교(奎章閣待敎) ·검교(檢校) ·수찬(修撰) ·동학교수(東學敎授) ·해방영군사마(海防營軍司馬)를 역임하였다

    윤동주 -시인. 어릴때의 이름은 해환. 북간도 명동에서 태어났다. 용정의 은진 중학교와 평양의 숭실 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연희 전문 학교를 거쳐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 재학중 여름 방학때 귀국하다가 독립 운동에 관련된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그가 죽은 뒤 1948년에 그의 동지들이 그가 남긴 원고들을 모아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사'라는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 비로소 알려져 일제 말기의 저항 시인으로서 우명해졌다. 대표 작품으로는 '또 다른 고향'.'십자가'.'별 헤는 밤'.'슬픈 족속'.'무서운 시간' 등이 있으며, 연세 대학교 안에 윤 동주의 시비가 세워졌다.


    지석영 -조선 후기의 의사ㆍ문신ㆍ국문학자. 자 공윤(公胤). 호 송촌(松村). 본관 충주(忠州). 서울 출생.

    손병희(민족대표33인) -한말 천도교의 지도자, 독립운동가. 호 의암(義菴). 초명 응구(應九). 후명 규동(奎東). 충북 청주(淸州) 출생. 1882년(고종 19) 22세 때 동학(東學)에 입교, 2년 후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만나 수제자로서 연성수도(鍊性修道)하였다

    유관순 -독립운동가로, 충청남도 천안(天安) 출생이다.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일제 총독에 의하여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즉각 고향으로 내려갔다.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오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안창호 -호는 도산(島山)이다. 평안남도 강서(江西)에서 출생했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교도가 되었다.
     
    방정환 -아동문학의 보급과 아동보호운동의 선구자인 아동문학가. 호 소파(小波), 서울 출생이다. 선린상업학교를 중퇴하고 보성전문(普成專門)을 마친 후 도요[東洋]대학에서 철학과를 수학했다.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 청년구락부, 소년운동협의회 등을 조직하였다.
     
    이수일,심순애 - 조중환의 소설『장한몽』에 등장하는 가상인물. 이수일과 심순애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후에 영화로도 나왔음.
     

    김두한 -한국의 정치가. 호 의송(義松). 서울 출생. 3·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독립운동가 김좌진(金佐鎭)의 아들이다. 서울 교동국민학교를 마치고 협객으로 활동하면서 주먹왕으로 군림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주먹의 힘으로 민족적·의협적인 행동을 하였다.
     
    이상 -한국의 시인, 소설가. 본명 김해경(). 서울 출생. 대표적인 작품으로 날개,종생기 등의 작품이 있다.
     
    이중섭 -서양화가. 호 대향(大鄕). 평남 평양(平壤) 출생. 오산고보(五山高普) 졸업. 일본 도쿄문화학원[東京文化學院] 미술과 재학 중이던 1937년 일본의 전위적 미술단체의 자유미협전(自由美協展:제7회)에 출품하여 태양상(太陽賞)을 받고, 1939년 자유미술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다른님들이 "이수일과 심순애는 왜 나오죠?" 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요.

    그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수일과 심순애는 조중환의 소설『장한몽』 에 나오는 가상 인물입니다.

    그 줄거리를 알려드리자면,

    줄거리

    주인공 이수일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친구인 심택의 집에서 자라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뒤 심순애와 혼인을 약속한다. 그런 어느 정월 보름날, 심순애는 김소사의 집으로 윷놀이를 갔다가, 거기에서 대부호의 아들인 김중배를 만난다. 심순애에게 매혹된 김중배는 다이아몬드와 물질공세로 그녀를 유혹하였고, 심순애의 마음은 점점 이수일로부터 멀어져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수일은 달빛 어린 대동강가 부벽루에서 심순애를 달래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한 번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여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울분과 타락 끝에 고리대금업자 김정연의 서기가 된 이수일은 김정연의 죽음과 함께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심순애는 대동강에 투신자살하려다가 수일의 친구인 백낙관에게 구출된다. 결국, 두 사람은 백낙관의 끈질긴 설득으로 다시 결합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원작은 일본작가 오자키의 소설 "곤지키야샤(금색야차)"입니다.

     

    ※이 노래의 위인은 모두 몇명일까요?
    1절
    단군, 동명왕(고구려-주몽), 온조왕(백제),박혁거세(신라), 광개토대왕, 이사부, 백결, 의자왕(삼천궁녀는 의자왕을 수식하는것), 계백, 관창 (10명)

    2절
    김유신, 문무왕, 원효, 혜초, 장보고, 대조영, 강감찬, 서희, 정중부, 최무선, 죽림칠현(고려문인 7인: 임춘, 오세재, 이인로, 조통, 황보항, 이담지, 함순), 김부식, 지눌국사, 의천, 이종무, 정몽주, 문익점, 최충, 일연 (25명)

    3절
    최영, 황희, 맹사성, 장영실, 신숙주, 한명회, 이율곡, 이퇴계, 신사임당, 곽재우, 조헌, 김시민, 이순신,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사육신(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성삼문, 박팽년), 생육신(이맹전, 조여,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온), 논개, 권율 (34명)

    4절
    홍길동, 임꺽정,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박문수, 한석봉, 김홍도(단원), 김병연(김삿갓), 김정호, 영조, 정조, 정약용, 정봉준, 김대건, 황진이, 홍경래, 김옥균, 안중근, 이완용 (20명)

    5절
    윤동주, 지석영, 손병희(33인은 손병희를 수식), 유관순, 안창호, 방정환, 이수일, 심순애, 김두한, 이상, 이중섭 (11명)

    합계 : 10 + 25 + 34 + 20 + 11 = 100명

     

    ※이완용이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들어간 이유!

    노래의 4절 마지막에 보면

    "안중근은 애국 이완용은 매국 역사는 흐른다"

    위 노래에서 이완용과 같은 매국자도 포함된것은 그의 높은 학문과 그밖에 업적들도 거론했고, 결론은 그와같은 행동을 하지 말자라고 내렸던 것입니다.

     

    ※삼천궁녀를 표기 안하는 이유

    삼천궁녀는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삼천궁녀의 집들을 만들어 줄 예산이 없었다고 합니다.

     

    컴퓨터부를 다니기를 잘 했어요.

    타자가 더 빨라 졌어욬ㅋ^>^

    너무 힘들어요

    2011.11.27 16:41 | 신고
  • 안중근,안창호,김좌진,김구등등임당.

    2012.01.16 19:35 | 신고
  • 단군,동명왕,온조,박혁거세,광개토대왕,이사부,의자왕,계백,관창,김유신,문무왕,원효,혜초,장보고,서희,강감찬,안중근,이완용,윤동주,유관순 등등이나옵니다.

    2012.04.24 22:29 | 신고
    프로필 사진
  • 동명왕도있지않나요?

     

    2012.05.02 18:35 |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