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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의 역사

대브리튼 왕국에서 잉글랜드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역사, 알고 싶습니다. 대답해주세요!

숲속파티 | 2009.01.22 22:07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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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일스에는 일찍부터 북해 방면에서 온 켈트인이 정착해 있었다. 1세기부터 5세기 전반에 이르는 동안에는 로마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그 후에는 작은 왕국들이 분립하여 서로 다투는 한편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인에 대한 항쟁도 계속되었다. 8세기 후반에 잉글랜드의 머셔 왕국의 오파(Offa) 왕이 둑을 쌓아 웨일스인의 침입을 막았기 때문에 지금도 웨일스인은 잉글랜드를 오파둑 건너편이라고 부르는 일이 있다. 1세기에 노르만인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부터 남웨일스는 급속히 노르만 제후의 영토가 되었으나, 북웨일스는 저항을 계속하였다.

    13세기 후반에 귀네드왕 루엘린은 웨일스의 반 이상을 지배하여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 일컬었으나 1282년 에드워드 1세와의 싸움에서 패배함으로써 웨일스의 왕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웨일스는 본토와 변토()로 나누어졌으며, 에드워드 1세는 장남을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봉하고 본토를 그 영지로 삼았다. 영국 왕의 장남에게 주어지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는 칭호는 그때부터의 관행에서 연유한다. 웨일스 고유의 언어 ·관습 ·문화는 그 후에도 잉글랜드와의 합병 때까지 유지되었으며, 변토지역에서는 그 동안에도 웨일스인의 반항이 계속되었다.

    특히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고 자칭한 O.글렌다우어의 난(15세기 초)이 유명한데, 결국 랭카스터가()의 헨리 4세에 의하여 진압되고 말았다. 15세기 후반 장미전쟁() 때 웨일스인은 웨일스의 명문 튜더가()의 혈통을 이은 헨리 7세를 지지하였다. 1536년 잉글랜드와의 합병으로 전()웨일스 영국의 일부가 되었으며, 잉글랜드어(영어)가 공용어로 정해지고, 많은 웨일스 관습법이 폐지되었다. 합병 후 영국 국회에서 웨일스를 대표하였던 지주층은 18세기 이후에도 국교회()에 머물렀고, 일반 대중은 머서디스트계(감리회)의 비국교도가 되었다. 1920년 웨일스 문제를 옹호하는 D.L.조지 등의 자유당에 의하여 웨일스 교회는 국교회의 범위 밖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20년대말 이후의 불황을 계기로 웨일스는 노동당의 변함없는 기반이 되고 있다.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아일랜드어: Tuaisceart Éireann, 얼스터 스코트어: Norlin Airlann)는 영국을 이루고 있는 네 개의 구성 국가(홈 네이션)중 하나이다. 영국인들은 북아일랜드를 북아일랜드라 하지 않고 전통적인 아일랜드의 행정구역 명칭이었던 얼스터(Ulster)라고 흔히 부른다. 최대 도시이자 수도는 항구 도시인 벨파스트이다. 북아일랜드는 IRA과 관련된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유명하다.

    역사

    얼스터 인구의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라는 점을 감안한 영국아일랜드 정부법으로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로 분리되었으며 영국령에 속하게 되었다.

     

    잉글랜드는 지리적 ·인구적으로 그레이트브리튼섬, 즉 영국 전체의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스코틀랜드 ·웨일스에는 켈트계 인종이 거주하였으나 잉글랜드에는 5∼6세기에 앵글로색슨인이 켈트인을 쫓아내고 정주하였다. 그 후 노르만인이 정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웨일스인이 잉글랜드인을 앵글로노르만인으로 적대시하는 전통은 거기서 기인된다.

    또한 잉글랜드는 1282년 웨일스의 주요부분을 지배하였고, 1536년에는 전()웨일스를 합병하였으며,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와, 1810년에는 아일랜드와 연합왕국을 형성하였으나, 정치적 통합의 주체는 사실상 잉글랜드에 있었다. 아일랜드는 다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얼스터 지방만 남기고 1921년 자유국을 선언하고 연합왕국에서 분리해서 자치령이 되었다. 1937년에는 완전독립을 이루고 1949년에는 공화제를 채택하여 영국연방에서도 이탈하였다.

    언어도 앵글로색슨어와 노르만어로 구성된 잉글랜드어(영어)가 켈트어를 몰아내고 전연합왕국의 공용어 ·일상어가 되었으며 잉글랜드의 주도 런던은 동시에 연합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종교적으로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전통적으로 비국교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잉글랜드에서는 헨리 8세종교개혁 이래 국왕을 교회의 수장()으로 하는 국교회의 신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잉글랜드는 연합왕국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도 영국은 에스파냐 ·네덜란드 ·프랑스에 잇따라 제해권()을 다투고 18∼19세기에 세계제국()의 지위를 달성하였을 때에도 중심은 잉글랜드에 있었다. 16~18세기에 걸친 영국의 중상주의정책()은 해외식민지를 원료공급원 ·제품수요지로서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다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산업혁명은 잉글랜드를 전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고 연합왕국의 다른 부분이나 식민지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에 대한 경제적 선진성에 의해서 전세계로부터 초과이윤()이 유입되어 발전을 이룩하였다.

    1770년대에 잉글랜드의 총인구 중 농업인구는 40 %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1830년대에는 26 %가 되고 그 후에는 잉글랜드 특히 중부 ·북부의 공업지대는 아일랜드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를 흡수해서 인구구성을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을 추진한 것은 이들 노동력 외에 에너지원()으로서의 중부 ·북부 잉글랜드, 웨일스 남부의 대규모의 탄전개발과 각종 신기계 발명, 런던 ·브리스틀 ·리버풀을 비롯한 양항의 존재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부(미들랜드지방)와 북부(랭커셔 ·요크셔 ·더럼 등)의 공업지대가 경제입지론의 고전적인 예를 제공하고 있다.

    2009.01.23 10:24 | 신고 고맙습니다만..... 스코틀랜드의 역사는 어디있는지요 ㅡ.ㅡ 숲속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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