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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역사

저는  초3이예요..   학교  숙제인데   자동차의  역사를  알아오라고  했거든요.....  최대한   빨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크리스탈 | 2014.05.22 11:42 수정됨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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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역사

     

    인류가 굴대로부터 바퀴를 발명한 것은 약 6,000년 전이다. 그것을 사람의 힘이나 짐승의 힘으로 굴린 시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으며,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수레는 항상 인간의 꿈이었다. 예를 들면, R.베이컨은 1250년 “어느 날엔가 말이나 그밖의 동물에 의하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15∼16세기의 대예술가이며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도면까지 그렸던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스프링의 힘으로 달리는 3륜의 자주차()의 도면을 그렸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1569년 네덜란드인 S.스테핀이 돛에 바람을 받아 주행하는 풍력() 자동차를 만들어, 28명을 태우고 시속 34km로 달렸는데, 현재와 같이 고도한 범주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는 달리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1680년에는 대과학자 I.뉴턴이 증기를 뒤쪽으로 분출시켜 그 반동으로 달리는 추력() 자주차를 계획하였으나, 실물을 제작하지는 못하였다. 본래의 의미의 자동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에 증기기관이 실용화된 후이며, 특히 1770년 프랑스의 N.J.퀴뇨가 제작한 증기자동차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에 의해 주행한 차로서 유명하다. 당시 퀴뇨는 프랑스군의 공병 대위였으며, 포차()를 견인할 목적으로 대소 2대의 증기자동차를 시작()하였다. 이 증기자동차는 앞바퀴 하나만을 구동하는 3륜차였으며, 중량이 크고 보일러의 용량이 작았기 때문에 그 속도가 겨우 사람이 걷는 정도인 시속 5km였다.

    또 보일러도 15분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으며, 앞바퀴 하중()이 너무 커서 조향()하기가 어려웠고, 브레이크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대형의 것은 파리 교외에서 시운전 중 언덕길에서 세우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 화재를 일으켰다. 퀴뇨의 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중지되었으나, 그후에도 유럽 각지에서 증기자동차의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 중 영국의 R.트레비식이 1801년 완성한 증기자동차는 상당히 실용적인 것이었으며, 그 2년 후에 제작한 지름 3.8m의 거대한 구동바퀴를 갖춘 4륜차는 런던 시내에서 시속 13km로 주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26∼1836년에는 W.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버스)가 런던 시내와 첼트넘 간에서 정기 운행하여, 사상 최초로 실용화된 자동차가 되었다.

    이 정기버스는 22인승에 평균 속도는 16∼23km/h였다. 이렇게 하여 증기자동차가 그 실용의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1865년에, “1대의 자동차에 3인의 운전수를 태운다, 그 중 1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60km 앞을 달려야 한다, 최고속도를 6.4km/h 이하로 하고, 시가지에서는 3.2km/h한다, 증기를 방출하지 않는다” 등을 정한 ‘붉은 깃발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의 자동차 발전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것은 마차를 끄는 말이 자동차에 놀라서 폭주하여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자동차가 상당히 보급된 1896년까지 존속되었다.

    증기자동차는 유럽 대륙이나 미국에서도 제작되었지만, 보일러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자동차의 성능이 낮고, 불을 때서 증기가 발생하여 주행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등의 결함이 있어, 개인용의 소형 자동차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증기기관은 영국 등에서 대형 트럭이나 중량물 견인용 트랙터 등으로 192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보다 소형이고 강력하며 간편한 원동기를 계속 추구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전기자동차가 출현하였으나, 이것도 축전지가 무겁고 항속거리가 짧으며, 충전에 장시간을 요하는 등의 결점이 있었다. 그래도 구조가 간단하고 내구성()이 크며 운전하기가 쉬운 점 등이 있어 주로 여성용으로 미국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소량 생산되었다. 자동차의 본격적인 발전은 내연기관의 발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연기관에 대한 발상은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네덜란드의 C.하위헌스가 1680년에 화약의 폭발에 의해 작동되는 기관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1860년에는 프랑스의 J.E.르누아르가 석탄가스를 원시적인 점화장치로 연소시키는 기관을 만들었고, 3년 후에는 액체연료로 작동되는 기관을 마차에 탑재하고 주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68년 오스트리아의 S.마르쿠스가, 1884년 이탈리아의 E.베르나르디가 내연기관을 탑재한 자동차를 만들었다. 한편, 1862년 프랑스에서는 A.B.로사가 사이클 기관의 원리를 발견하였으며, 1876년 독일의 N.오토가 처음으로 이 원리에 따른 4행정사이클 기관을 완성하였다.

    오토 내연기관연구소의 젊은 기사였던 G.다임러가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가볍고 강력한 기관을 완성하고, 1885년 이것을 목제의 2륜차에 탑재하여 사상 최초의 2륜차를 시작하여, 각각 특허를 얻었다. 또 K.벤츠도 독자적으로 2행정사이클 가솔린기관을 완성, 다임러와 같은 해인 1885년에 3륜차를 제작하고 다음해에 특허를 얻었다. 다임러와 벤츠 두 사람은 사상 처음으로 실용적인 가솔린기관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업화한 점에서 획기적이었으며, 두 사람은 자동차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그후 이 두 회사는 서로 좋은 경쟁상대로 발전하였으며, 1926년 합병하여 회사명을 다임러-벤츠, 차의 명칭을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로 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자동차 제조회사이다. 프랑스에서는 파나르-르바소르(Panhard-Levassor)회사가 다임러 기관의 제작권을 얻어 자동차의 생산을 개시하였는데, 앞쪽에 기관을 설치하고, 동력을 클러치변속기 → 뒷바퀴로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갖추었다.

    또한 1900년 다임러가 발표한 최초의 메르세데스차는 벌집 모양의 라디에이터, 둥근 핸들, 반타원형 스프링 등을 사용하여 현재에 이르는 자동차의 근본적인 형태를 확립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자동기어 장치(1827년 프랑스의 O.페쿠르), 변속기(1832년 영국의 W.H.제임스), 공기타이어(1845년 R.W.톰프슨) 및 그 밖의 발명도 크게 공헌하였다.

    1887년 영국의 J.버틀러가 3륜 가솔린차의 시작에 성공하였고, 1889년에는 독일의 마이바흐, 프랑스의 푸조, 이탈리아의 비안키 등이 자동차의 생산을 개시하였다. 좀 늦은 1893년에 미국에서도 C.두리에이와 F.두리에이 형제가 미국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완성하고, 2년 후에 생산·판매를 시작하였다. 1894년에는 프랑스의 《프티 주르날》 신문사의 주최로 파리-루앙 간 126km 구간에서 자동차경주가 열려, 드 디옹 백작이 운전한 드 디옹 부통 증기자동차가 6시간 걸려 평균 21km/h의 속도로 1착을 하였다.

    그러나 엄정한 판정 결과 다임러 기관을 탑재한 푸조와 파나르가 승리를 나누어 가지게 되어 가솔린 자동차의 우위가 입증되었다. 후에 드 디옹 부통도 가솔린 자동차로 전향하였다. 유럽에서는 처음에 자동차는 귀족이나 일부 대부호만이 가졌으나,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R.E.올스는 1901년 유명한 올즈모빌을 425대 제작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양산 제조업체가 되었다.

    러나 1908년 H.포드가 발표한 T형 포드는 간결하고 신뢰성이 높은 설계와 새로운 합금강의 사용으로 견고할 뿐 아니라, 양산방식 때문에 그 값이 저렴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첫해에 6,850대, 그 다음해에는 1만 대를 판매하였다. 1913년에 포드는 급증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컨베이어 라인에 의한 작업방식을 채택하였고, 최전성기였던 1925년에는 연간 199만 950대를 생산하였다.

    그 결과 1927년에는 최염가형 로드스터의 값이 260불이었다. 그러면서도 품질이 나쁘지 않았고, 대량구입에 의한 우수한 원자재, 대량생산에 의한 균일한 공작 등으로 10배 이상이 되는 비싼 차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충분한 이익을 올려, 근로자에게 그 당시의 평균의 배가 되는 일급 5달러를 주고, 신규 구입자에게는 수표로 50달러씩 되돌려 주기도 하였다(1914).

    T형 포드는 미국 외에 영국·독일에서도 생산되고 세계 각지에서 조립되었으며, 1908년 10월 1일의 첫 출고부터 1927년 5월 26일 생산 중지일까지의 18년 반 사이에 1500만 7033대를 생산하였다. 통칭 ‘딱정벌레’라고 하는 폭스바겐이 1972년, 1945년 만에 이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여기에는 27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종전 후의 무의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T형 포드는 그 전성기에 전세계 자동차 보유량의 68%를 차지하고 있었다. T형 포드의 성공은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A.시트로엥은 포드에서 배운 방식으로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을 개시하였으며, 1922년 독일의 오펠(Opel)사는 5CV차를 양산하여 유럽의 대중에게 제공하였다. 이탈리아에서도 1919년에 피아트(Fiat)사가 501형을 양산하였고, 영국에서는 1922년에 H.오스틴이 유명한 오스틴 세븐을 발표하여 자동차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30년에는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전근대적인 일품제작()의 고급차는 거의 소멸하고, 자동차는 모두 대중차 양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사이에 기구상() 개량·진보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차체(body)는 1900년대에 이르러 마차의 형태를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그후에도 포장마차형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상자형 대중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말에 이르러서이다.

    1930년대에는 전부 강판으로 된 상자형 차체의 양산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1934년부터는 유선화()가 진행되었다. 1940년 이후에는 차체의 높이가 더 낮아지고 길이도 길어지고 폭이 넓어졌으며, 스텝이 차체에 포함되고, 객실이 더욱 넓어졌다.

    2011.10.27 22:09 | 신고
  • 자동차 역사

     

    인류가 굴대로부터 바퀴를 발명한 것은 약 6,000년 전이다. 그것을 사람의 힘이나 짐승의 힘으로 굴린 시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으며,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수레는 항상 인간의 꿈이었다. 예를 들면, R.베이컨은 1250년 “어느 날엔가 말이나 그밖의 동물에 의하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15∼16세기의 대예술가이며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도면까지 그렸던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스프링의 힘으로 달리는 3륜의 자주차()의 도면을 그렸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1569년 네덜란드인 S.스테핀이 돛에 바람을 받아 주행하는 풍력() 자동차를 만들어, 28명을 태우고 시속 34km로 달렸는데, 현재와 같이 고도한 범주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는 달리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1680년에는 대과학자 I.뉴턴이 증기를 뒤쪽으로 분출시켜 그 반동으로 달리는 추력() 자주차를 계획하였으나, 실물을 제작하지는 못하였다. 본래의 의미의 자동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에 증기기관이 실용화된 후이며, 특히 1770년 프랑스의 N.J.퀴뇨가 제작한 증기자동차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에 의해 주행한 차로서 유명하다. 당시 퀴뇨는 프랑스군의 공병 대위였으며, 포차()를 견인할 목적으로 대소 2대의 증기자동차를 시작()하였다. 이 증기자동차는 앞바퀴 하나만을 구동하는 3륜차였으며, 중량이 크고 보일러의 용량이 작았기 때문에 그 속도가 겨우 사람이 걷는 정도인 시속 5km였다.

    또 보일러도 15분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으며, 앞바퀴 하중()이 너무 커서 조향()하기가 어려웠고, 브레이크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대형의 것은 파리 교외에서 시운전 중 언덕길에서 세우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 화재를 일으켰다. 퀴뇨의 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중지되었으나, 그후에도 유럽 각지에서 증기자동차의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 중 영국의 R.트레비식이 1801년 완성한 증기자동차는 상당히 실용적인 것이었으며, 그 2년 후에 제작한 지름 3.8m의 거대한 구동바퀴를 갖춘 4륜차는 런던 시내에서 시속 13km로 주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26∼1836년에는 W.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버스)가 런던 시내와 첼트넘 간에서 정기 운행하여, 사상 최초로 실용화된 자동차가 되었다.

    이 정기버스는 22인승에 평균 속도는 16∼23km/h였다. 이렇게 하여 증기자동차가 그 실용의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1865년에, “1대의 자동차에 3인의 운전수를 태운다, 그 중 1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60km 앞을 달려야 한다, 최고속도를 6.4km/h 이하로 하고, 시가지에서는 3.2km/h한다, 증기를 방출하지 않는다” 등을 정한 ‘붉은 깃발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의 자동차 발전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것은 마차를 끄는 말이 자동차에 놀라서 폭주하여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자동차가 상당히 보급된 1896년까지 존속되었다.

    증기자동차는 유럽 대륙이나 미국에서도 제작되었지만, 보일러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자동차의 성능이 낮고, 불을 때서 증기가 발생하여 주행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등의 결함이 있어, 개인용의 소형 자동차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증기기관은 영국 등에서 대형 트럭이나 중량물 견인용 트랙터 등으로 192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보다 소형이고 강력하며 간편한 원동기를 계속 추구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전기자동차가 출현하였으나, 이것도 축전지가 무겁고 항속거리가 짧으며, 충전에 장시간을 요하는 등의 결점이 있었다. 그래도 구조가 간단하고 내구성()이 크며 운전하기가 쉬운 점 등이 있어 주로 여성용으로 미국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소량 생산되었다. 자동차의 본격적인 발전은 내연기관의 발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연기관에 대한 발상은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네덜란드의 C.하위헌스가 1680년에 화약의 폭발에 의해 작동되는 기관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1860년에는 프랑스의 J.E.르누아르가 석탄가스를 원시적인 점화장치로 연소시키는 기관을 만들었고, 3년 후에는 액체연료로 작동되는 기관을 마차에 탑재하고 주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68년 오스트리아의 S.마르쿠스가, 1884년 이탈리아의 E.베르나르디가 내연기관을 탑재한 자동차를 만들었다. 한편, 1862년 프랑스에서는 A.B.로사가 사이클 기관의 원리를 발견하였으며, 1876년 독일의 N.오토가 처음으로 이 원리에 따른 4행정사이클 기관을 완성하였다.

    오토 내연기관연구소의 젊은 기사였던 G.다임러가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가볍고 강력한 기관을 완성하고, 1885년 이것을 목제의 2륜차에 탑재하여 사상 최초의 2륜차를 시작하여, 각각 특허를 얻었다. 또 K.벤츠도 독자적으로 2행정사이클 가솔린기관을 완성, 다임러와 같은 해인 1885년에 3륜차를 제작하고 다음해에 특허를 얻었다. 다임러와 벤츠 두 사람은 사상 처음으로 실용적인 가솔린기관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업화한 점에서 획기적이었으며, 두 사람은 자동차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그후 이 두 회사는 서로 좋은 경쟁상대로 발전하였으며, 1926년 합병하여 회사명을 다임러-벤츠, 차의 명칭을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로 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자동차 제조회사이다. 프랑스에서는 파나르-르바소르(Panhard-Levassor)회사가 다임러 기관의 제작권을 얻어 자동차의 생산을 개시하였는데, 앞쪽에 기관을 설치하고, 동력을 클러치변속기 → 뒷바퀴로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갖추었다.

    또한 1900년 다임러가 발표한 최초의 메르세데스차는 벌집 모양의 라디에이터, 둥근 핸들, 반타원형 스프링 등을 사용하여 현재에 이르는 자동차의 근본적인 형태를 확립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자동기어 장치(1827년 프랑스의 O.페쿠르), 변속기(1832년 영국의 W.H.제임스), 공기타이어(1845년 R.W.톰프슨) 및 그 밖의 발명도 크게 공헌하였다.

    1887년 영국의 J.버틀러가 3륜 가솔린차의 시작에 성공하였고, 1889년에는 독일의 마이바흐, 프랑스의 푸조, 이탈리아의 비안키 등이 자동차의 생산을 개시하였다. 좀 늦은 1893년에 미국에서도 C.두리에이와 F.두리에이 형제가 미국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완성하고, 2년 후에 생산·판매를 시작하였다. 1894년에는 프랑스의 《프티 주르날》 신문사의 주최로 파리-루앙 간 126km 구간에서 자동차경주가 열려, 드 디옹 백작이 운전한 드 디옹 부통 증기자동차가 6시간 걸려 평균 21km/h의 속도로 1착을 하였다.

    그러나 엄정한 판정 결과 다임러 기관을 탑재한 푸조와 파나르가 승리를 나누어 가지게 되어 가솔린 자동차의 우위가 입증되었다. 후에 드 디옹 부통도 가솔린 자동차로 전향하였다. 유럽에서는 처음에 자동차는 귀족이나 일부 대부호만이 가졌으나,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R.E.올스는 1901년 유명한 올즈모빌을 425대 제작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양산 제조업체가 되었다.

    러나 1908년 H.포드가 발표한 T형 포드는 간결하고 신뢰성이 높은 설계와 새로운 합금강의 사용으로 견고할 뿐 아니라, 양산방식 때문에 그 값이 저렴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첫해에 6,850대, 그 다음해에는 1만 대를 판매하였다. 1913년에 포드는 급증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컨베이어 라인에 의한 작업방식을 채택하였고, 최전성기였던 1925년에는 연간 199만 950대를 생산하였다.

    그 결과 1927년에는 최염가형 로드스터의 값이 260불이었다. 그러면서도 품질이 나쁘지 않았고, 대량구입에 의한 우수한 원자재, 대량생산에 의한 균일한 공작 등으로 10배 이상이 되는 비싼 차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충분한 이익을 올려, 근로자에게 그 당시의 평균의 배가 되는 일급 5달러를 주고, 신규 구입자에게는 수표로 50달러씩 되돌려 주기도 하였다(1914).

    T형 포드는 미국 외에 영국·독일에서도 생산되고 세계 각지에서 조립되었으며, 1908년 10월 1일의 첫 출고부터 1927년 5월 26일 생산 중지일까지의 18년 반 사이에 1500만 7033대를 생산하였다. 통칭 ‘딱정벌레’라고 하는 폭스바겐이 1972년, 1945년 만에 이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여기에는 27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종전 후의 무의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T형 포드는 그 전성기에 전세계 자동차 보유량의 68%를 차지하고 있었다. T형 포드의 성공은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A.시트로엥은 포드에서 배운 방식으로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을 개시하였으며, 1922년 독일의 오펠(Opel)사는 5CV차를 양산하여 유럽의 대중에게 제공하였다. 이탈리아에서도 1919년에 피아트(Fiat)사가 501형을 양산하였고, 영국에서는 1922년에 H.오스틴이 유명한 오스틴 세븐을 발표하여 자동차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30년에는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전근대적인 일품제작()의 고급차는 거의 소멸하고, 자동차는 모두 대중차 양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사이에 기구상() 개량·진보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차체(body)는 1900년대에 이르러 마차의 형태를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그후에도 포장마차형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상자형 대중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말에 이르러서이다.

    1930년대에는 전부 강판으로 된 상자형 차체의 양산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1934년부터는 유선화()가 진행되었다. 1940년 이후에는 차체의 높이가 더 낮아지고 길이도 길어지고 폭이 넓어졌으며, 스텝이 차체에 포함되고, 객실이 더욱 넓어졌다.

    2011.12.14 11:42 | 신고
  • 자동차 역사

    인류가 굴대로부터 바퀴를 발명한 것은 약 6,000년 전이다. 그것을 사람의 힘이나 짐승의 힘으로 굴린 시대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으며,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수레는 항상 인간의 꿈이었다. 예를 들면, R.베이컨은 1250년 “어느 날엔가 말이나 그밖의 동물에 의하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달리는 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라고 예상했다.

    15∼16세기의 대예술가이며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도면까지 그렸던 만능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스프링의 힘으로 달리는 3륜의 자주차()의 도면을 그렸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1569년 네덜란드인 S.스테핀이 돛에 바람을 받아 주행하는 풍력() 자동차를 만들어, 28명을 태우고 시속 34km로 달렸는데, 현재와 같이 고도한 범주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는 달리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1680년에는 대과학자 I.뉴턴이 증기를 뒤쪽으로 분출시켜 그 반동으로 달리는 추력() 자주차를 계획하였으나, 실물을 제작하지는 못하였다. 본래의 의미의 자동차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중반에 증기기관이 실용화된 후이며, 특히 1770년 프랑스의 N.J.퀴뇨가 제작한 증기자동차는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에 의해 주행한 차로서 유명하다. 당시 퀴뇨는 프랑스군의 공병 대위였으며, 포차()를 견인할 목적으로 대소 2대의 증기자동차를 시작()하였다. 이 증기자동차는 앞바퀴 하나만을 구동하는 3륜차였으며, 중량이 크고 보일러의 용량이 작았기 때문에 그 속도가 겨우 사람이 걷는 정도인 시속 5km였다.

    또 보일러도 15분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으며, 앞바퀴 하중()이 너무 커서 조향()하기가 어려웠고, 브레이크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때문에 대형의 것은 파리 교외에서 시운전 중 언덕길에서 세우지 못하고 벽에 부딪쳐 화재를 일으켰다. 퀴뇨의 시도는 프랑스 혁명에 의해서 중지되었으나, 그후에도 유럽 각지에서 증기자동차의 연구가 계속되었다. 그 중 영국의 R.트레비식이 1801년 완성한 증기자동차는 상당히 실용적인 것이었으며, 그 2년 후에 제작한 지름 3.8m의 거대한 구동바퀴를 갖춘 4륜차는 런던 시내에서 시속 13km로 주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26∼1836년에는 W.핸목이 만든 10대의 증기자동차(버스)가 런던 시내와 첼트넘 간에서 정기 운행하여, 사상 최초로 실용화된 자동차가 되었다.

    이 정기버스는 22인승에 평균 속도는 16∼23km/h였다. 이렇게 하여 증기자동차가 그 실용의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1865년에, “1대의 자동차에 3인의 운전수를 태운다, 그 중 1명은 낮에는 붉은 깃발, 밤에는 붉은 등을 가지고 60km 앞을 달려야 한다, 최고속도를 6.4km/h 이하로 하고, 시가지에서는 3.2km/h한다, 증기를 방출하지 않는다” 등을 정한 ‘붉은 깃발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의 자동차 발전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것은 마차를 끄는 말이 자동차에 놀라서 폭주하여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자동차가 상당히 보급된 1896년까지 존속되었다.

    증기자동차는 유럽 대륙이나 미국에서도 제작되었지만, 보일러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자동차의 성능이 낮고, 불을 때서 증기가 발생하여 주행이 가능하게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등의 결함이 있어, 개인용의 소형 자동차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증기기관은 영국 등에서 대형 트럭이나 중량물 견인용 트랙터 등으로 1920년대 중반까지 사용되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보다 소형이고 강력하며 간편한 원동기를 계속 추구하였다.

    19세기 중반에 전기자동차가 출현하였으나, 이것도 축전지가 무겁고 항속거리가 짧으며, 충전에 장시간을 요하는 등의 결점이 있었다. 그래도 구조가 간단하고 내구성()이 크며 운전하기가 쉬운 점 등이 있어 주로 여성용으로 미국에서 1920년대 중반까지 소량 생산되었다. 자동차의 본격적인 발전은 내연기관의 발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연기관에 대한 발상은 상당히 오래 되었으며, 네덜란드의 C.하위헌스가 1680년에 화약의 폭발에 의해 작동되는 기관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1860년에는 프랑스의 J.E.르누아르가 석탄가스를 원시적인 점화장치로 연소시키는 기관을 만들었고, 3년 후에는 액체연료로 작동되는 기관을 마차에 탑재하고 주행하는 데 성공하였다. 1868년 오스트리아의 S.마르쿠스가, 1884년 이탈리아의 E.베르나르디가 내연기관을 탑재한 자동차를 만들었다. 한편, 1862년 프랑스에서는 A.B.로사가 사이클 기관의 원리를 발견하였으며, 1876년 독일의 N.오토가 처음으로 이 원리에 따른 4행정사이클 기관을 완성하였다.

    오토 내연기관연구소의 젊은 기사였던 G.다임러가 가솔린을 연료로 하는 가볍고 강력한 기관을 완성하고, 1885년 이것을 목제의 2륜차에 탑재하여 사상 최초의 2륜차를 시작하여, 각각 특허를 얻었다. 또 K.벤츠도 독자적으로 2행정사이클 가솔린기관을 완성, 다임러와 같은 해인 1885년에 3륜차를 제작하고 다음해에 특허를 얻었다. 다임러와 벤츠 두 사람은 사상 처음으로 실용적인 가솔린기관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기업화한 점에서 획기적이었으며, 두 사람은 자동차의 아버지라고 일컫는다.

    그후 이 두 회사는 서로 좋은 경쟁상대로 발전하였으며, 1926년 합병하여 회사명을 다임러-벤츠, 차의 명칭을 메르세데스 벤츠(Mercedes-Benz)로 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이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자동차 제조회사이다. 프랑스에서는 파나르-르바소르(Panhard-Levassor)회사가 다임러 기관의 제작권을 얻어 자동차의 생산을 개시하였는데, 앞쪽에 기관을 설치하고, 동력을 클러치변속기 → 뒷바퀴로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갖추었다.

    또한 1900년 다임러가 발표한 최초의 메르세데스차는 벌집 모양의 라디에이터, 둥근 핸들, 반타원형 스프링 등을 사용하여 현재에 이르는 자동차의 근본적인 형태를 확립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자동기어 장치(1827년 프랑스의 O.페쿠르), 변속기(1832년 영국의 W.H.제임스), 공기타이어(1845년 R.W.톰프슨) 및 그 밖의 발명도 크게 공헌하였다.

    1887년 영국의 J.버틀러가 3륜 가솔린차의 시작에 성공하였고, 1889년에는 독일의 마이바흐, 프랑스의 푸조, 이탈리아의 비안키 등이 자동차의 생산을 개시하였다. 좀 늦은 1893년에 미국에서도 C.두리에이와 F.두리에이 형제가 미국 최초의 가솔린 자동차를 완성하고, 2년 후에 생산·판매를 시작하였다. 1894년에는 프랑스의 《프티 주르날》 신문사의 주최로 파리-루앙 간 126km 구간에서 자동차경주가 열려, 드 디옹 백작이 운전한 드 디옹 부통 증기자동차가 6시간 걸려 평균 21km/h의 속도로 1착을 하였다.

    그러나 엄정한 판정 결과 다임러 기관을 탑재한 푸조와 파나르가 승리를 나누어 가지게 되어 가솔린 자동차의 우위가 입증되었다. 후에 드 디옹 부통도 가솔린 자동차로 전향하였다. 유럽에서는 처음에 자동차는 귀족이나 일부 대부호만이 가졌으나,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R.E.올스는 1901년 유명한 올즈모빌을 425대 제작하여 세계 최초의 자동차 양산 제조업체가 되었다.

    러나 1908년 H.포드가 발표한 T형 포드는 간결하고 신뢰성이 높은 설계와 새로운 합금강의 사용으로 견고할 뿐 아니라, 양산방식 때문에 그 값이 저렴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첫해에 6,850대, 그 다음해에는 1만 대를 판매하였다. 1913년에 포드는 급증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자동차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컨베이어 라인에 의한 작업방식을 채택하였고, 최전성기였던 1925년에는 연간 199만 950대를 생산하였다.

    그 결과 1927년에는 최염가형 로드스터의 값이 260불이었다. 그러면서도 품질이 나쁘지 않았고, 대량구입에 의한 우수한 원자재, 대량생산에 의한 균일한 공작 등으로 10배 이상이 되는 비싼 차에 비해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회사가 충분한 이익을 올려, 근로자에게 그 당시의 평균의 배가 되는 일급 5달러를 주고, 신규 구입자에게는 수표로 50달러씩 되돌려 주기도 하였다(1914).

    T형 포드는 미국 외에 영국·독일에서도 생산되고 세계 각지에서 조립되었으며, 1908년 10월 1일의 첫 출고부터 1927년 5월 26일 생산 중지일까지의 18년 반 사이에 1500만 7033대를 생산하였다. 통칭 ‘딱정벌레’라고 하는 폭스바겐이 1972년, 1945년 만에 이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여기에는 27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종전 후의 무의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T형 포드는 그 전성기에 전세계 자동차 보유량의 68%를 차지하고 있었다. T형 포드의 성공은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의 A.시트로엥은 포드에서 배운 방식으로 유럽에서 처음으로 대량생산을 개시하였으며, 1922년 독일의 오펠(Opel)사는 5CV차를 양산하여 유럽의 대중에게 제공하였다. 이탈리아에서도 1919년에 피아트(Fiat)사가 501형을 양산하였고, 영국에서는 1922년에 H.오스틴이 유명한 오스틴 세븐을 발표하여 자동차의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30년에는 전세계를 휩쓴 대공황으로 전근대적인 일품제작()의 고급차는 거의 소멸하고, 자동차는 모두 대중차 양산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사이에 기구상() 개량·진보도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차체(body)는 1900년대에 이르러 마차의 형태를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그후에도 포장마차형의 시대가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상자형 대중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 말에 이르러서이다.

    1930년대에는 전부 강판으로 된 상자형 차체의 양산이 시작되었으며, 특히 1934년부터는 유선화()가 진행되었다. 1940년 이후에는 차체의 높이가 더 낮아지고 길이도 길어지고 폭이 넓어졌으며, 스텝이 차체에 포함되고있었다

    2012.11.07 19:26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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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들어가서알아보세요

    http://www.cleancar.co.kr/hs1.htm

    2014.05.22 11:42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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