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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위인들 누구인지 가르쳐주세요 궁금합니다

장애인 위인들 누구인지 가르쳐주세요

♥마법소녀루나여신♥ | 2015.12.31 22:22 수정됨 최초등록일 2015-12-31 22:21 최종수정일 2015-12-31 22:22 | 조회 0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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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사람으로

    헬렌켈러,스티븐 호킹,바이런,가 있습니다.

    | 2015.12.31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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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내용을 참고해보세요~



    장애를 극복한 위인들



    ◇ 세계적인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콘스탄티니디스


    파란 나일강의 색깔만 기억하는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콘스탄티니디스는 인간세계에서의 승리자로 전세계에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다. 1995년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청소년음악회에서 입상함으로써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그의 연주회는 매번 세계의 주목을 받아 미국교육방송, 영국 BBC, 스위스의 라디오 방송, 독일의 RIAS,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라디오 등에서 중계되었으며, 전세계의 청중들과 비평가들에게 환호를 받았다.


    그의 양친은 그리스인이며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다. 런던 왕립음악학교에서 리센티에트(유럽에서의 학사와 박사의 중간학위)를 받고 졸업한 뒤에 미국 보스턴 왈라스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았으며 여기서 음악학사를 받고, 클리블랜드 음대에서 음악석사 학위를 받았다.


    바르샤바 콘서바토리의 최우수 디플로마를 받고 또한 쇼팽의 고향인 젤라로와 왈라에서 쇼팽곡으로 된 연주회를 개최하는 영광을 얻기도 한 그는 1969년 미국 최고의 젊은이로 뽑히기도 했다. 어떤 나이와 배경을 가진 청중들과도 쉽게 어우러지는 그에 대한 매력은 세대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었으며 모든 청중에게 환희를 주었다.


    4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단지 불편할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일반의 상식을 깨고 시각장애인으로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그에게 장애는 단지 조건일 뿐인 것이다.


    ◇ 의자 위의 지휘자 제프리 테이트


    의자에 앉아서 지휘봉을 흔드는 지휘자 제프리 테이트. 그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휼륭한 지휘자의 한사람이다. 그는 왼쪽 다리가 마비되어 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의자에 않아서 지휘를 하지만 제네바 오페라단 수석 지휘자이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의 천부적 재능을 보여준 그는 배고픈 예술가의 말년을 걱정하는 부모의 권유로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인턴수련까지 마쳤다. 하지만 음악을 포기하지 못하고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 메트로 오페라단 지휘자 레빈의 권유로 지휘를 시작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오페라에 인생을 걸고 정상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 '말은 잘 못하지만 거짓말은 안한다'는 크레티앙 총리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캐나다의 제20대 총리 장 크레티앙 자유당 당수는 선천적인 장애인이다. 왼쪽 안면 근육마비로 한쪽 귀가 멀고 발음이 불분명한 그는 정치만화가들로부터 회화적 대상이 되기도 한 자신의 신체적 멍에를 딛고 캐나다 선거사상 가장 빛나는 승리를 쟁취한 주인공이다.


    그는 30년 정치생활을 '말은 잘 못하는 대신 거짓말은 않는다'는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불리한 조건을 이겨냈다. 그는 선거유세에서도 언어장애와 그로 인한 고통을 솔직히 시인함으로써 오히려 유권자들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퀘백주 몬트리올 인근 셔위니건의 변호사 출신인 그는 시골호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수수한 농담과 청바지를 즐기는 소탈한 성품이라고 한다. 연방통합을 강력히 주장하는 그의 소신으로 고향인 퀘백주에서의 인기는 없다.


    63년 스물 아홉살로 하원의원에 당선 정계에 발을 디딘 뒤 68년부터 84년까지 16년간 부총리와 재무, 공업, 법무 등 주요직책을 거쳐 풍부한 행정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능한 정치인이라고 한다.


    ◇ 휠체어를 탄 독일의 2인자 볼프강 쇼이블레


    유럽의 한복판에 위치한 인구 8천만의 경제대국, 통일이 되면서 경제력에 걸맞게 정치적 영향력 또한 급속히 신장해 가는 독일, 머지않아 장래에 어쩌면 휠체어를 탄 척수장애인이 그런 독일을 이끌어 갈지 모른다.


    독일의 내무장관과 집권당의 원내총무를 지낸 볼프강 쇼이블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독일의 원내총무는 수상 다음의 중책으로 수상직에 오르는 마지막 정류장이다. 원내총무로 선출되던 날 콜 수상은 휠체어를 타고 회의장을 나오는 쇼이블레의 손에 미국의 옛대통령 루즈벨트의 자서전 한 권을 쥐어 주었다. 이 사실로 독일 내에서는 독일에서의 루즈벨트의 탄생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원내총무 선출을 계기로 그에 관한 갖가지 눈물겨운 신화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의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고 한다.


    소이블레가 척추장애인이 된 것은 1990년 한 정신병자의 저격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고부터다.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그는 저격 5일 후 의식을 되찾았으나 의사는 그에게 척추장애인임을 선고한다. 그로부터 그는 최소한 2년은 입원해 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무장관직에 복귀했다.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를 위해 그는 집무실 책상의 서랍을 톱으로 잘라내었고, 하루 17시간의 격무에 들어갔다.


    그의 정계복귀는 그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독일인들 사이에 커다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독일인들 사이에 커다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처럼 심각한 척추장애인이 어떻게 정부 요직의 임무를 해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 없는 인생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정치와 권력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이제 그의 장애가 과연 그의 정치여정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는 한 신체장애가 그 사람의 일생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루즈벨트의 예를 통해 익히 알고 있기에 그의 장래도 낙관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 독일을 대표하는 언어장애 작가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부 독일의 뷔르템베르크의 소도시 칼브에서 태어났다. 신교의 목사인 아버지는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일이 있으며, 외할아버지는 30여개국의 언어를 구사하는 뛰어난 분이었다. 그의 서재에는 기독교 서적에서부터 그리스 및 라틴의 고전, 인도의 서적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어린 헤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많은 독서의 영향으로 헤세는 어려서부터 동양 종교에 흥미를 느꼈으며 코스모폴리탄적인 평화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또한 18세기의 독일 문학에 심취하기도 하였는데 소년 헤세는 이렇듯 간접체험을 통해 공상의 나래를 펼쳤다.


    14세가 되자 헤세는 목사가 되기 위해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학교 규율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반년 만에 퇴학당하고 만다. 한편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자폐증으로 시달렸는데 그러한 그도 괴테의 작품을 읽고 나면 마음의 안정을 되찾곤 하였다고 한다.


    한 때는 숙련공이 되려고 기계 공장에서 3년 동안이나 시계 톱니바퀴를 다루는 일을 하기도 하였으나 주위의 비웃음에 그만 두었다. 기계공장을 그만 둔 헤세는 서점의 점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체험이 소설 '수레바퀴 밑에서'를 낳았다.


    1899년에는 시집 '낭만의 노래'와 '한밤중의 한시간'을 발표했다. 1904년에 쓴 '페터 카멘친트'는 자연 속에서 인간의 애정을 탐구하고 있는데 헤세는 이 작품으로 일약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 해 아홉 살 연상인 마리아 베르누이와 결혼한 그는 조용한 시골에 파묻혀 오로지 창작에만 몰두했다. 그리하여 1915년에 유명한 '크놀프'를 발표하였다. 1911년 헤세는 결혼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싱가포르, 수마트라, 실론 등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 때 받은 감명들을 글로 옮긴 책이 1922년에 발표된 '싯타르타'이다.


    한편 아내의 정신병 악화와 자신의 신경장애 때문에 헤세는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요법으로 치료를 받았다. 그 후 정신과 의사의 권유를 받고 프로이드 심리학을 연구한 헤세는 1919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데미안'을 완성하였다.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갈등을 그린 '지와 사랑'은 1930년에 발표되었으며 대작 '유리알 유희'는 1943년에 발표되었다.


    마침내 1946년 헤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나 소설은 음악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그 내용이 명상적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헤세의 작품 속에는 인도의 불교철학이 숨쉬고 있음이 발견된다.



    출처



    http://www.onnews.or.kr/detail.php?number=622&thread=22r06

    | 2015.12.31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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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켈러(실명, 말을 못함, 난청) , 아이슈타인(난독증), 루즈벨트(하반신 중증장애), 스티븐 호킹(루게릭병), 바이런(지체 장애)

    동메달 총 획득메달
    • 3
    | 2015.12.31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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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호킹 헬렌켈러

    은메달 총 획득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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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 2015.12.31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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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켈러와 스티븐호킹이있어요

    | 2017.04.20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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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브라유와 헬렌켈러 그리고 스티븐호킹등 많은사람이있죠

    | 2017.04.20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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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랭클린 D 루즈벨트

    (소아마비)

    루즈벨트는 미국의 32대 대통령이자,

    뉴딜정책으로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사실 루스벨트는 대통령이 되기 전 39세의 나이에 소아마비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 되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큰 좌절을 느낀 그는 정계를 은퇴하려 했다. 하지만 몇 년간 뼈를 갂는 재활훈련 끝에 어느정도 회복되자 사람들은 그의 의지에 찬사를 보냈고이에 힘입어 다시 정계에 복귀하게 되며,

    이후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으로

    12년을 백악관에서 보내게 된다


    윈스턴 처칠

    (언어장애)

    처칠은 20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명이자, 철의 리더십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이끈 영국의 수상이다.그는 위대한 연설가였고 정치가였으며

    화가이자 문학가였다

    (1953년에는 노벨 문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사실 어린 시절에는 몹시 병약했으며,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연설가로

    인정받는 그가 평생을 언어장애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몇몇 발음들은 아예 발음하지 못했고

    실함 말더듬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처칠은 자신의 부족함 점과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고 연습했으며,

    결국 수많은 명연설로 영국인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 100인에 뉴턴과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스티븐호킹

    (지체장애)

    어린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원에서 학업을 쌓아가던 도중

    루게릭병이 발병해 1~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된다.

    루게릭병은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위축되는 병인데,

    말년에 결국 호흡조차 할 수 없게되어 사망하게 된다

    당시 호킹은 병으로 인해 책 한장 넘기기도 힘들고

    한줄의 공식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박사학위를 따냈다.

    이후 그는 우주론과 양자 중력의 연구에 크게

    기여했으며, 금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추앙받게 된다 그의 병은 기적적으로 진행이 매우 느려졌는데 현재 이미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 정정하다 신체 중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두 개의 손가락

    "인생은 아무리 나빠 보여도 살아있는 한 누구나

    희망이 있고 또 성공 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스티븐 호킹 -


    루트비히 판 베토벤

    (청각장애)

    서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이며, 아무리 클래식에 관심이 없어도

    베토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수 많은 명곡을 작곡해 낸 그가 청각장애를

    가졌었다는 것은 역시 대단히 유명한 사실인데,

    이미 20대 후반부터 청각에 이상이 생겨 30대에는

    피아노 연주를 할 수 없을 만큼 장애가 심했다고 한다.음악가로서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큰

    좌절과 절망감에 빠질 수 밖에 없었고

    이 때쯤 그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게 된다

    '절망하여 죽으려 생각했으나 예술이 나를 붙잡는다'

    는 유서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고 운명에 맞서 싸운 결과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곡가가 될수 있었다


    세종대왕

    (시각장애)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시한 조선의 임금이자

    한국사 최고의 성군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당시 세종대왕은 조선의 농업,기술,국방,문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국가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는데 그 과정에서 과도한 업무와 불규칙한 생활습관 등 여러 요인으로 당뇨성 망막증이 생겼을 것이라 추정된다

    | 2017.04.20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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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켈러여사 가수 스티비윈더같은 훌륭한

    분들이 많아요.

    특히 스티비원더는 아주 인기많은 팝송가수

    입니다.

    너무 유명한곡 한곡만 감상할까요?


    https://youtu.be/L0Ylf4EoiIU

    금메달 총 획득메달
    • 2
    • 2
    • 2
    | 2017.04.22 수정됨 최초등록일 2017-04-22 16:50
    최종수정일 2017-04-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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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왜 꼭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걸까요? 장애와 '공존' 할순 없는 걸까요? 화두를 던져 봅니다.

    | 2017.04.23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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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렌켈러 (마비장애)

    아인슈타인(난독중)

    스티브호킹(루게릭병)

    바이런(지체 장애)

    등이 있죠

    | 2017.04.24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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