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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요 10조에 전라도 차별조항이 있는 이유?

왕건은 초기에 나주 장악해서 전라도에 애정이 있을법도 한데 왜 전라도 인재 등용하지말라고 썼나요. 전라도 사람에게 데이기라도 했나요? 전라도 신하가 뒤통수 쳤나

익명 | 2017.04.21 20:42 | 조회 0 |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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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전라도지역 사람들은 강자에겐 비굴하리만치 굽신가리고 약자에겐 악랄하게 괴롭히며 됫통수를 치는데 선수 였습니다.

    그래서 못 몯을 인간들이며 큰일을 도모하기엔 배신들을 때리곤 하여 몹쓸 사람들이라고 쓰지말라고

    한겁니다...

    그것이 현재도 똑같습니다.

    | 2017.04.21 수정됨 최초등록일 2017-04-21 20:45
    최종수정일 2017-04-2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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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던 때에 전주에서 난이 발생합니다. 역모지요. 그래서 그 지역에 대한 페널티로 그런 기록을 남긴 것입니다.

    이 같은 사례는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충청도 같은 경우에는 그런 반란들로 인해 지역이름이 수차례 바뀌기까지 하지요. 함경도지역, 전라도 지역, 충청도 지역등 전국에 걸쳐 이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연좌법의 성격으로 그 지역 사람들을 차별해 왔었죠.

    앞서 답변하신 분처럼 지역사람들의 특성 때문이 절대 아닙니다.

    | 2017.04.21 | 의견 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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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이라기 보단 정치적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백제 출신에 대한 배척 같은 건데, 정작 전라도 출신 인재가 많이 발탁되었고 중역을 맡기도 했으며, 정확한 위치 또한 논란에 있죠. 


    https://namu.wiki/w/%ED%9B%88%EC%9A%94%2010%EC%A1%B0


    여덟째, 차현(車峴) 이남의 금강(錦江) 밖은 산형지세(山形地勢)가 배역(背逆)하니 그 지방의 사람을 등용하지 말 것.[편집]


    ○ 其八曰,車峴以南,公州江外,山形地勢,並趨背逆,人心亦然,彼下州郡人,參與朝廷,與王侯國戚婚姻,得秉國政,則或變亂國家,或銜統合之怨,犯蹕生亂,且其曾屬官寺奴婢,津驛雜尺,或投勢移免,或附王侯宮院,姦巧言語,弄權亂政,以致灾變者,必有之矣,雖其良民,不宜使在位用事,
    ▷ 8조는, 차현(車峴 차령산맥(車嶺山脈)) 이남과 공주강(公州江) 밖은 산형(山形)과 지세가 모두 배역(背逆)하니 인심 역시 그러하다. 그 아래의 주ㆍ군 사람이 조정에 참여하여 왕후ㆍ국척(國戚)과 혼인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국가를 변란하게 하거나 통합당한 원망을 품고 임금의 거둥하는 길을 범하여 난리를 일으킬 것이며, 또 일찍이 관청의 노비와 진(津)ㆍ역(驛)의 잡척(雜尺)에 속했던 무리들이 권세 있는 사람에게 의탁하여 신역을 면하거나 왕후(王侯)나 궁원(宮院)에 붙어 말을 간사하고 교묘하게 하여 권세를 부리고 정치를 어지럽혀서 재변(災變)을 일으키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니, 비록 그 선량한 백성일지라도 벼슬 자리에 두어 권세를 부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두고 전라도 지역을 겨냥한 지역감정과 연결시키는 의견이 있고, 훈요십조가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 제기의 강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지역에 대한 지역감정설은 근거가 없는 단순한 설에 불과하며, 후백제의 주요 세력이자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가 후백제 멸망 후에 고려에서 얼마나 큰 대접을 받았는가 하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또한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한 신숭겸, 6대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보필한 최지몽도 전라도 출신이다. 그리고 혜종의 외가가 바로 나주 오씨이다. 애초에 저 '차현 이남, 공주강 바깥'이란 지역이 어디인지 상당히 애매하다. 통일 과정에서 있던 청주, 공주의 반란, 통일 후 있었던 천안 부근의 목천 오성 반란 등을 근거로 차현 이남에서 금강 북쪽에 이르는 지역(대략 현재의 충청남도 중부 지역)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왕건 집권 당시의 상당 요인들이 호남 출신이었다는 점, 훈요십조를 왕건에게서 받아 기록한 박술희도 후백제 지역 출신이라는 점에서 특정지역에 대한 지역감정설에 상당한 의문을 주는 부분이 있다.
    왕건이 점을 쳐 봤는데 전주 출신한테 나라를 빼앗긴다는 괘가 나와서였는지도 모른다 농담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됐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개성 왕씨를 숙청(왕씨 학살)하는 시점에서 대신들이 이걸 언급한다. 즉 고려는 태조의 유훈을 지키지 않아서 망한 것(...)

    전조(前朝)의 태조(太祖)가 후손(後孫)에게 훈계를 전하면서 백제(百濟) 사람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지난번에 후손들이 그 훈계를 준수했더라면 〈전주 사람인〉 전하께서 또한 어찌 오늘날이 있었겠습니까?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 2월 26일 병신 2번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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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22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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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선의 '훈요십조의 진실'에 의하면, 궁예가 많이 등용했던 오늘날의 청주 지방(차현 남쪽 청주) 사람들을 경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궁예는 이 차현 인근에서 어린시절을 지냈다고 합니다.


    고려초 백제 지역의 호족과 귀족은 중앙에 진출하여 권력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한편 고려 17대 인종의 왕비였던 공예왕후 임씨는 전라도 장흥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고려는 공예왕후 계열에서 왕을 배출하였습니다.


    따라서 훈요십조는 일부 사람들이 왜곡했거나, 해석 상의 오류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2017.06.18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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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사람중에도 좋은 분들이 참 많아요. 뭐 무등산이 반골의 기운이 있어서 그렇다곤 하는데... 휴 저도 2010년에 전라도 여자한테 사기당하고 나서 썩 좋게보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너무 성급하게 일반화 하지는 않는게 좋겠죠? 분명 호남사람들 중 좋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 2017.08.29 | 의견 쓰기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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