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

오픈지식

오픈지식 신라의 군사제도 2006.03.22 신고
  • 통일이전 군사제도
    신라는 초기에 6부(部)의 장정을 징발하여 편성한 6부병(六部兵)이 수도를 수비하였다. 신라의 군사제도는 삼국간의 항쟁이 격화된 진흥왕 때부터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하였는데 삼국항쟁이 격화된 544년(진흥왕 5) 6개의 부대를 통합하여 대당(大幢)을 편성하였다.
    이는 통일이전 신라 군사력의 기본이 되는 6정의 효시로 그 뒤 550년대에 영토의 비약적인 확장과 더불어 점령지에 주를 설치했는데, 이때 주마다 군단을 설치한 결과 종전의 대당 이외에 진흥왕의 영토확장과 더불어 설치된 상주정(上州停:552), 한산정(漢山停:604)과 문무왕 때 우수정(牛首停:673), 무열왕 때 하서정(河西停:658), 신문왕 때 완산정(完山停:685) 등 6정(停)을 편성, 각주에 배치되어 주의 이동과 함께 그 소재지가 이동되었다. 대당을 제외한 나머지 5개의 정은 모두 지방민을 징발하여 편성된 부대로 생각된다.
    이 외에도 서당(誓幢:583), 낭당(郞幢:625)이란 부대를 두어 국방에 힘썼다. 한편 군조직과는 별도로 왕궁 수비대인 시위부(侍衛府:624)도 있었다.

    통일신라
    신라의 통일기의 군사조직은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중앙의 9서당 지방의 10정으로 대별된다..

    9서당
    진평왕5년(583)부터 증설되어 통일 후 신문왕 7년(687) 때에 완성된 9서당은 수도에 주둔한 중앙군단으로서 신라인 외에 고구려 ·백제 ·말갈인 등으로 구성된 왕 직속의 군대이다. 이 9서당은 옷깃의 빛깔에 따라 부대 소속을 구별하였다. 이는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다른 국민에 대한 우환을 덜고 중앙의 병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노린 군사 편제로서 금색(衿色)으로서 부대를 구별하였다.

    10정
    지방의 군사조직인 10정은 통일 이전에에는 6정으로 편제 되었으나 통일 후(686년) 넓어진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 하기 위해 9주를 기준으로 각 주에 1정씩 배치하고 한주(漢州)는 지역이 넓고 국방상 요지였기 때문에 2개의 정을 설치하였다. 10정이 배치된 곳은 국방상 지방통치의 거점이었다. 이와 같이 배치된 정은 국방 및 경찰의 임무도 겸하였으므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이밖에 주 및 변방에 배치된 군단인 5주서(五州誓)와 3변수당(三邊守幢)도 있었고 또 노당(弩幢:弩牛部隊) ·운제당(雲梯幢:登城部隊) ·석투당(石投幢:抛車部隊) ·여갑당(餘甲幢)과 법당(法幢) 등이 있다.

    10정의 명칭
     음리화정(音里火停)    - 경북 상주 청리면
     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 - 충남 청양 청양면
     거사물정(居斯勿停)   - 전북 임실 청웅면
     삼량화정(參良火停)   - 경북 달성 현풍면
     소삼정(召參停)      - 경남 함양 죽남면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 - 전남 나주 남평면
     남천정(南川停)      - 경기 이천 주내면
     골내근정(骨內斤停)   - 경기 여주군 여주읍
     벌력천정(伐力川停)   - 강원 홍천 홍천면
     이화혜정(伊火兮停)   - 경북 청송 안덕면

    6정의 위치
     대 당(大幢)  - 경주
     귀 당(貴幢)  - 상주
     한산정(漢山停) - 광주(廣州)
     우수정(牛首停) - 춘천
     하서정(河西停) - 강릉
     완산정(完山停) - 전주

    추천 0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