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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지식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 2006.05.09 신고
  •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 head, 1861-1947)는 과정철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과정철학사상은 “과정과 실제(Process and Reality, 1929)”라는  책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과정과 실제"는 그야 말로 난해한 글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과정과 실재는 수십번을 읽어도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용어자체가 일상적이지 않고, 과거의 전통적인 철학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암호를 접할 때의 느낌을 받을 정도다.

      여기에서는 "과정과 실제"라는 책의 내용중에서 3부 “파악의 이론”편의 내용에 관한 것을 다룰려고 한다. 「과정과 실제」3부 “파악의 이론”은 총 5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 ‘느낌의 이론’과 ‘2장 최초의 느낌’, 3장 ‘느낌의 전달’, 4장 ‘명제와 느낌’, 5장 ‘경험의 보다 고차원적 위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철학을 ‘유기체 철학’이라 부른다. 그의 철학 체계에서 파악 이론은 실재를 유기체화 하는 근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파악은 현실적 존재자가 스스로를 창조하는 과정으로 자신의 여건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과정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파악할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현실적 존재는 이 세상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파악할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현실적 존재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지금의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사물과 추상적인 것들까지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것은 나와 직접 관계되기도 하지만 나와 관계된 존재와 관계되어서 나와 관계성을 맺기도 한다. 결국 나는 이 세상의 모두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에서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는 파악이라는 구조로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가 다른 현실적 존재자를 여건으로 하는 것을 물리적 파악이라 하고, 여건이 영원한 객체인 것을 개념적 파악이라 한다. 지각되는 주체의 세계 속에 있는 항목을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것을 적극적 파악이라 하고, 그것을 느낌이라고 한다. 느낌으로부터 배제된 것은 소극적 파악이다. 파악은 단순 물리적 느낌과  복합적인 순수 물리적 느낌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만을 여건으로 하는 느낌이고, 후자는 두 개 이상의 순수한 단순 물리적 느낌의 통합에서 발생한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를 구성하고 있는 파악 자체는 전적으로 공적이거나 전적으로 사적인 것일 수 없고, 언제나 그 양자의 결합으로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고전적인 관념론과 실재론을 모두 거부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이러한 이론들은 경험론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물론 고전적인 경험론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파악은 물리적인 경험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정신성은 반드시 물리적인 토대를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감각적 경험이 정신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선험적 지식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가 어떤 존재에 대해 느낌을 받는다면 그것을 지각하는 것은 정신성에 의해서이다. 정신성에 의해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정신이 경험에 선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은 정신성 없이는 지각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둘은 유기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현실적 존재자의 궁극적 성질은 생성의 활동이다. 그것은 생성 자체가 현실적 존재자의 구조라는 것이다. 이 과정이 파악이다. 파악은 언제나 주체를 가지는 데 이것은 현실체로써 자기 실현, 즉 만족을 추구한다. 자기 실현에는 주체가 주어지고 파악을 위한 최초의 여건이 주어진다. 이러한 파악에는 부정적인 것도 있는데, 이것은 이미 주어진 객관적 여건에 의해 생긴다.


      이미 주어진 객관적 여건에 의하여 가치 평가가 일어나는데 그것은 평가 절상이나 평가절하로 나타난다. 부정적 느낌은 평가절하와 관계된 것이라 생각된다. 똑같은 존재를 파악하더라도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느끼는 주체에 따라 주어진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적이다. 시간이 흐르면 주어진 여건이 달라지고 결국 주체가 느끼는 느낌도 달라질 수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현실적 존재자를 여건으로 하는 파악을 물리적 파악이라고 부르고 영원한 객체를 대상으로 하는 파악을 개념적 파악이라 한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형태의 파악의 주체적 형식도 의식을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다시 파악에는 두 종류, 즉 적극적 파악과 소극적 파악이 있다. 적극적 파악이 바로 느낌이다. 적극적 파악은 지각되는 주체의 속에 있는 항목을 적극적으로 포함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적극적인 포함과는 반대로 확고한 배척 작용을 소극적 파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대성의 원리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자는 이 세계 속에 있는 각 항목과 확고한 유대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확고한 유대가 현실적 존재자에 의한 그 항목에 파악이다. 따라서 상대성의 원리에 따라 소극적 파악 역시 이와 같은 유대를 표현하는 것이라 간주해야 한다. 소극적 파악은 주체 자체의 실질적인 내적 구성에는 아무런 적극적 기여도 하지 않는 것으로 항목들을 확고하게 배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극적 파악 역시 하나의 유대를 표현하는 것으로 전연 무의미 한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적극적 파악 즉 느낌이다.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현실적 존재자는 느낌의 과정이다. 우리는 현실적 계기를 느낌에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 합생이라 말한다.  


       현실적 존재자가 생성하는 과정은 앞선 현실태를 자기 속으로 포함시키는 파악의 작용과 더불어 시작한다. 이것들 원초적인 파악이 물리적 파악이다. 즉 그것들은 단순 물리적 느낌 또는 인과적 느낌이며 과거에 대하여 순응적인 파악이다. 그러므로 존재론의 원리에 따라, 이것들 원초적인 느낌, 즉 현실태의 생성의 과정은 물리적 느낌으로 시작해야 하지 개념적 파악과 더불어 시작할 수는 없다. 즉 그것은 현실적 가능성으로부터 발생하지 단순한 관념적인 일반적 가능성으로부터 발생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념적 파악은 원초적인 단순 물리적 파악에 뒤이은 단계에서 시작함이 틀림없다. 각 물리적 느낌으로부터 순수한 개념적 느낌이 파생한다. 그리고 순수한 개념적 느낌의 여건은 물리적으로 느낀 현실적 존재성의 확정성을 결정하는 영원한 객체이다. 원초적인 물리적 느낌이 개념적 파악을 위한 여건, 즉 영원한 대상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영원한 대상은 그 단순 물리적 느낌의 대상화된 여건의 확정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개념적 파악은 앞선 현실태의 성소인 영원한 대상의 재생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적 파악이 재생산하는 영원한 대상은 실현된 결정소로서가 아니라 결정의 일반적 능력으로서의 영원한 객체이다. 즉 개념적 느낌이 재생산하는 것은 영원한 객체를 매개로 대상화된 현실태가 아니라, 진입의 특정 계기로부터 추상된 영원한 객체이다. 그러나 개념적 느낌은 재생산적이고 또 원초적인 물리적 느낌에 의하여 발생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다시 느끼는 것은 그 발단에서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즉 개념적 느낌과 단순 물리적 느낌은 기본적 느낌의 두개의 중요한 종이다. 모든 다른 느낌은 그 복합성이 어떤 것이나 간에, 이것들 기본적 느낌의 단계에서 시작하는 통합 과정에서부터 발생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단순 물리적 느낌은 하나의 현실적 존재자만을 그 여건으로 하는 느낌이다. 단순한 순수 물리적 느낌에 반해서 복합적인 순수 물리적 느낌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순수한 단순 물리적 느낌의 통합으로서 발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복합적 느낌을 다시 통합함으로써 한층 더 복합적인 느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계속적 통합에 의하여 계속 복합성의 도를 더해 가는 느낌이 생겨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순수한 복합적인 개념적 느낌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들 두 종류의 느낌이, 그것들의 파생적인 복합적 느낌과 더불어서 순수파악의 두 종류를 형성한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있어서 명제 이론이 중요하게 생각된 것처럼 보여진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명제가 느낌의 유혹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차적이고, 파생적이다. 그것은 판단을 통해 참이나 거짓으로 결정되는 여건이다. 그는 명제를 불순한 가능태라고 특징 짓는다. 명제는 술어적 패턴으로 결합시킬 현실적, 논리적 주어들을 지시하고 있다는 데서 현실태의 특수성을 갖는다. 동시에 생성중인 현실적 존재들과의 일반적인 관련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가능태의 일반성을 갖는다. 이점이 화이트헤드가 명제를 불순한 가능태라고 특징짓는 궁극적 원인이다. 다시 말하면 명제는 특정한 현실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한정적인 가능태라는 것이다. 명제를 현실적인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반대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명제는 실재성을 가지지 않지만 느낌을 위한 한 여건이 된다. 이것이 바로 느낌에의 유혹이다. 이러한 유혹은 거짓 명제에 의미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일제 잔재 청산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라는 명제는 거짓인 명제이다. 그러나 뜻있는 사람들은 일제 잔재 청산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일제 잔재 청산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라는 명제는 거짓이다. 그러나 느낌에의 유혹으로써 그 명제는 뜻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투자하든지, 스폰서를 구하여 자본을 마련하든지하여 그에 관련된 대책위원회나 입법을 통하여 어떤 방법으로든 일제 잔재를 완전히 청산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명제, 그리고 거짓명제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의식은 경험의 불가결한 토대가 아니라, 어쩌다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다. 의식이 있고 거기에 그 여건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여건이 성숙되어질 때 비로소 의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험이 의식을 가능케 하는 것이지, 의식이 경험을 가능케 하지 않는다. 의식이란 긍정-부정의 대비를 느끼는 주체적 형식으로 출현할 뿐이다. 지금 우리가 강의시간에 교수의 강의를 듣는다고 가정하자. 강의를 들을 때 그 내용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고, 논쟁하지도 않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들을 수 있다. 반면에 강의를 들으면서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하며 비판하면서나 자신만의 독특한 사유를 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교수의 강의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고 논쟁할 수 도 있고, 또한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이때가 더 의식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강의 내용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아무 생각 없이 들을 때 무의식적인 상태가 되고,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의식이란 현실태와 가능태 사이의 대비를 수반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있어서 현실적 존재는 파악이라는 구조로서 이루어져 있다. 현실적 존재자의 궁극적 성질은 생성의 활동이고 그것은 생성자체가 현실적 존재자의 구조라는 것이고, 이 과정이 바로 파악이다. 화이트헤드는 전통적인 서양철학을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불구하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말이다. 서구의 전통철학은 존재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은 결정론적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환경오염의 문제와 불평등한 세계구조를 가져왔다. 끊임없는 발전만을 추구하는 서양의 개발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기저가 된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은 이러한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혁명적인 사상이다. 그의 사상의 특징은 관계론일 것이다. 모든 만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관계되어져 있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나 스스로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과 관계되어서 가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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