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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만찬

이것 좀 알려주세요!!!!!!ㅜ0ㅜ



1)최후의만찬이 만들어진 시기


2)성당의 이름


3)그림의 재료


4)표현기법



지식머니 30~날아갑니다!!!!

매칭된 토픽 화가 2007.08.19 수정됨 최초등록일 2007.08.19 14:40
최종수정일 2007.08.1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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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귤상자의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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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만찬, 1495~1498년작,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수도원의 식당


    최후의 만찬은 산타 마리아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면에 그려진 벽화로 레오나르도다 빈치가 밀라노에 거주하던 마지막 무렵인 1495년에서 1948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은 그림을 그리는데 사용한 독특한 기법 때문에  이 그림은 빠른 속도로 훼손 되었는데 여러번에 걸쳐 섬세한 복원 작업을 시도했지만 작품의 원래 색깔은 살리지 못하고 전체 색상이 어둡게 되었으며 표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최후의 만찬의 프레스코 기법


    전통적인 벽화는 회벽이 완전히 마르기 전에 그 위에 색을 칠해서 급하게 완성해야만 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장시간에 걸쳐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를 원했는데 <최후의 만찬>역시 세밀하게 작업하려고 색을 칠해 놓은 벽이 다 마른 후 다시 덪칠을 하는 정교한방법을 사용했다.

    그 방법은 템페라와 유화를 혼합한 새로운 물감이었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벽화는 쉽게 변질된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은 이미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생존해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최후의 만찬>이 이렇게 빨리 변형된  원인은 프레스코 기법의 원인도 있지만 근본 원인은 습기 때문이라고 한다.

    1796년 나폴레옹 군대들이 이탈리아를 점령했을 때 벽화가 있는 수도원을 마구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습기가 많아 썩기 시작한 벽을 보수 공사하면서 원작을 많이 손상시키게 되었다.

    그리고 1943년  2차세계대전 중에는 공중 폭격의 유탄에 맞아 식당 자체가 무너지기도 했는데 사려깊은 수도장이 벽화 위에 천을 걸쳐 파편을 어느 정도 막아주어 훼손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다.

    1943년 폭격 당한 수도원 내의 식당 모습. 천이 걸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수난을 당한 <최후의 만찬>은  벽에서 떼어지고 캔버스에 옮겨져 습기와 차단을 시켰는데 1977년 이후부터 보수 작업과 청소작업을 단행하면서 5백년 동안 쌓였던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보수 작업을 하면서 덧칠한 오일 등을 깨끗이 청소함으로서 원작의 화려한 색과 생동감이 있는 인물들의 개성 등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대대적인 작업을 통해 원래 색깔을 찾았다고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원본에 없는 색을 덧칠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런 작업을 거친 <최후의만찬>은 현재는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관광객들이 가지고 온 공해, 먼지 등을 유리로 된 방에서 기계로 털고 그 다음 방에서 신선한 공기를 다시 공급 받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적인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참고자료>

    템페라기법 - 안료를 물과 달걀 노른자에 개서 그리는 기법으로 매우 쉽게 마른다.

    그래서 화가들은 색을 칠할때마다 전에 칠한 물감 위에 덪칠을 해야 한다.


    유화 - 염료를 호두나 아마 기름에 개서 사용하는데 건조 속도가 매우 느려 장시간에 걸쳐 작업을 해야 한다.


    템페라에서 유화로 - 1400년대까지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던 템페라 기법은 달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즉 안료 가루를 물에 탄 다음  그것을 다시 달걀과 섞어 쓰는 방식인데 주로 달걀 노른자만을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만든 템페라로 색칠한 면은 거의 동일한 색상으로 칠한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그래서 1400년대 화가들은 더 다양한 색과 단계적으로 변하는 색의 효과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달걀보다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면  더 많은 색상을 얻을수 있으며, 색의 농도 조절도 더욱 정확하게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식물성 기름을 사용하는 플랑드르의 유화방식은 1400년대 중엽에 이탈리아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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